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23화 (23/81)

23.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4)

어느 정도 커리큘럼의 수준을 잡아갈 만큼 검사를 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때가 다 되었다.

애들도 밥 먹으라고 보내야 하고 나도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니 다 같이 172호실을 나왔다.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이 있는 연구 센터 a동은 ‘중앙연구 센터’라고도 불리는, 연구 센터의 메인 건물이다.

메인 건물인 이유는 이 건물에 가장 중요한 시설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회에서 귀하게 여기는 S급 이능력자들의 실험실과 숙소는 모두 a동에 붙어 있다.

S급 에스퍼들은 이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에 a동에서 안 나오다시피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막상 나는 a동은 많이 안 와 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결국 B급 에스퍼이기 때문에 내 이능 실험은 주로 b동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에스퍼 연구는 b동에서 이루어지니까, 사실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은 b동이지만.

아무튼, 연구 센터 a동은 그동안 잘 안 왔던 곳이지만 이제는 맨날 오게 될 듯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가 된 세 명의 S급 에스퍼들과 연구 센터 a동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계획서는 밥 먹고 마저 하지, 뭐.

그런데 갑자기 복도를 걸어가던 조용이 어느 창문을 보고 냅다 큰 소리로 말했다.

“어?! 장하나가 변신한 사람이다!”

조용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창문에는 사람들의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키가 192센티나 되는 조용은 남들보다 눈높이가 높았다. 그래서인지 창문 너머로 정수리만 보이는 게 아니고 얼굴까지 다 보이는 듯했다.

‘근데 장하나가 변신한 사람이면 우진이잖아?!’

나는 창문 앞으로 바짝 붙어 안에 있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창문 너머에는 가이드 교육생들이 의자에 앉아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 교육생들 중에서 맨 뒷줄에 오른쪽. 창문 가까이에 앉은 저 까만 머리는……

‘진짜 우진이잖아?!’

나는 우연히 보게 된 우진이가 너무 반가워서 소리 지를 뻔했다.

창문 앞에 붙어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더니 우린이가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해서 안아 들어서 보여 줬다.

오빠를 보고 반가워하는 우린이 옆으로 다른 애들도 바짝 붙어서 우진이를 찾았다.

“와 진짜 잘생겼네. 이렇게 보니 혼자서만 빛이 나네, 완전. 선배가 왜 껌뻑 죽는지 좀 이해가 간다. 우리랑 점심 같이 먹자고 하자!”

‘어, 그래도 되나?’

나는 흥분한 장하나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마구 내려치며 하는 말에 혹했다.

“그런데 나 지금까지 협회 생활하면서 가이드랑 식당에서 마주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되는 건가?”

내가 맹한 소리를 하며 고민하자 애들이 괜찮다면서 날 다그쳤다.

애들 말에 의하면 가이드들이 시설 안에 있는 식당을 주로 이용하긴 하지만 협회에서 강제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애들은 가이드들이 가이드 시설이랑 붙어 있는 a동 식당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그런 것도 모르는 날 모지리 취급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연구 센터 a동은 방문을 잘 안 해서 몰랐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가이드 교육생이랑 실전 임무 에스퍼랑 만날 일 없잖아요. 우리처럼 연구 센터에 있는 에스퍼면 마주칠 때도 있겠지만. 그…… 항상 임무 나가시잖아요.”

평소엔 수줍음 많은 소영이가 나랑 우진이 사이를 궁금해했다.

하긴 얘 말대로 가이드 교육생은 a동 연구 센터랑 시설 밖으로는 안 나오니 궁금하긴 했겠지.

‘음…… 이거 뭐부터 설명해 줘야 하지? 내가 우진이를 구해 준 일부터 시작해야 하나? 근데 그건 애들한테 설명하긴 좀 징그러운데. 쟤들은 다 협회에 구출된 애들이라 괴수 얘기 싫어할 테고…….’

어디서부터 뭐라고 얘기할지 고민하던 차에 가이드 교육이 끝났는지, 문밖으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복도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들보다 큰 키에 조각 같은 얼굴인 우진이를 바로 찾아냈다.

내가 조심스럽게 우진이를 부르려는 틈에 우린이가 먼저 큰 소리로 오빠를 불렀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시설로 이동하던 우진이가 우리를 보았다.

우진이는 바로 이쪽으로 오더니 내 품에 안긴 우린이를 받아 안았다.

아니, 안아 들려고 했는데 힘이 없어서 고꾸라질 뻔해서 내가 받쳐 줬다.

나는 얼른 우진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웃으면서 우진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진 씨, 괜찮아요? 아하하, 오랜만이네요.”

“오빠 왜 전화 안 받았어!”

간만에 우진이랑 인사를 나누려는데 우린이가 내 말을 잘라 버렸다.

날 보며 같이 안부 인사를 하려 했던 우진이도 우린이를 보면서 바빠서 못 받았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게 된 바람에 인사 타이밍이 끊겼다.

덕분에 말없이 우린이 내려놓는 걸 도와주며 뻘쭘하게 서 있는데 조용이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강하나의 남자’구나.”

아씨, 깜짝 놀라서 사레들릴 뻔했다.

우진이가 우린이에게 정신 팔려 못 들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똑똑히 들었나 보다.

우진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조용을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만회하지? 조용 저 녀석은 조용히나 하지, 쓸데없는 소릴 크게 말하고 난리야.’

“근데 진짜 잘생기셨어요! 강 선배랑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장하나의 적절한 끼어들기로 우진이의 관심이 돌려졌다. 우진이는 조금 당황해하더니 장하나에게 대답을 들려줬다.

“저흰…… 그, 하나 씨가 저를 구해 주셔서 알게 되었어요.”

“선배가 구해 준 걸 빌미로 꼬리 쳤구나.”

“나도 구한 사람이 미인이면 쫓아다닐 듯.”

“그런데 구출한 사람한테 집적거려도 되는 거야?”

‘너네 모두 그런 쓸모없는 혼잣말은 속으로 하면 안 되겠니?’

아직 애들이라 그런지 할 말 못 할 말 안 가리고 아무 말로 잔치를 벌이고 있길래 나는 우진이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헛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우진 씨, 미안해요. 쟤들이 아직 18살의 청소년들이라 그래요. 원래 키가 큰 편인 우진 씨보다도 큰 조용이도 아직 청소년이예요.”

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우진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우진이에게 애들의 거슬리는 헛소리에 대한 양해를 부탁하면서 같이 가다 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

S급인 애들은 협회에서 모든 걸 지원해 주기 때문에 밥값을 안 받는다. S급의 식사는 S급 본인이 결제했을 때 무료라는 얘기다. 그리고 B급인 나랑 우진이, 우린이 식사는 돈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뜻이지.

저 애들은 공짜니까 알아서 결제하게 놔두고 나는 우진이랑 우린이 밥을 사 주기로 했다.

우진이는 어제 시설에 입소했기 때문에 돈이 없을 테니까 시설밖에서는 뭘 사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키오스크에서 우린이가 직접 메뉴를 고를 수 있게 안아 올렸다.

우린이가 메뉴를 고른 뒤에 우진이가 키오스크를 사용하도록 자리를 비켜 주려는데 우진이는 키오스크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우진 씨? 왜 그래요?”

“그냥, 이런 시설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요. 아직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식당이 있었군요.”

우진이는 키오스크를 보면서 아련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진이는 지금까지 입원해 있다가 어젯밤에 퇴원해서 협회 식당 안 써 봤겠구나.’

식당마다 다 있는 키오스크를 보면서 저러다니, 다운타운 보면 완전 놀라겠는걸?

나는 언젠가 우진이를 다운타운에 데려갈 생각을 하며, 아직도 내 스마트워치를 갖고 있던 우린이에게 시계를 건네받았다.

우진이는 오늘의 최고가 메뉴인 육회를 시켰다. 오랫동안 망한 세상을 떠돌다 살았으면 신선식품을 못 먹었겠지. 나는 이 겨울에 육회를 고른 우진이를 이해했다.

우린이는 메뉴 사진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 눈치였는데 그냥 맘에 들게 생겼다는 이유로 오므라이스를 골랐다. 이것도 특별메뉴다. 난…… 그냥 무료 식단에서 추가 반찬 있는 세트 메뉴 먹어야지.

내가 무료 다음으로 제일 싼 메뉴를 고르자 우진이가 내 눈치를 봤다.

“아니야, 우진아. 돈 아끼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런 거야.”

나는 우진이에게 열심히 변명을 하고 스마트워치로 3인분을 결제했다.

키오스크에서 번호표를 받고 자리에 앉았는데 주변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그러니까 우리 말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말이다. 다들 우진이를 힐끔거리는 것 같다.

‘뭐지? 왜 쳐다보는 거야?’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장하나도 나와 같이 시선을 느낀 모양이다. 장하나가 주변을 힐끔거리더니 말했다.

“교육생 가이드가 시설 밖에 나오니까 신기한가 봐요. 다들 엄청 쳐다보네.”

“아, 교육생 유니폼 입고 있어서 쳐다본 거구나. 왜 쳐다보나 했네.”

장하나의 말 덕분에 시선 때문에 느껴지는 불쾌함이 싹 사라졌다.

돈 없는 교육생이 시설 밖에서 밥 사 먹는 게 신기해서 그런 거구나!

‘하긴 밖에서 들어온 새내기는 돈이 없는 거 다들 아는데 희한하게 보일 수도 있지. 그리고 새내기들을 꼭 유니폼을 입고 다녀서 구분이 되니까.’

협회는 한 명의 협회원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 기간을 길게 잡는다. 그리고 그 기나긴 교육 기간 동안 아직 덜 배운 협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꼭 표식을 한다.

그 표식 중 하나가 새내기 유니폼이다.

협회에 막 가입한 에스퍼나 가이드 새내기들은 집중 교육 기간인 3개월 동안은 교육생 전용 유니폼을 입는다.

물론 에스퍼 유니폼이랑 가이드 유니폼이 다르듯이 새내기 유니폼도 에스퍼 전용과 가이드 전용이 따로 있다.

어느 새내기든 간에 3개월 간의 집중 교육 기간이 끝나면 기본 유니폼을 배급받는다.

기본 유니폼을 배급받고도 3년에서 5년 정도 되는 정규 교육생 기간 동안에는 교육생 배지를 달아서 기존 에스퍼와 구분을 한다.

그리고 이 교육생 기간에는 교육용으로 나가는 파견이 아니면 임무가 없기 때문에 교육생 기간의 협회원은 가난하다.

‘시설 밖에 있는 것들은 꿈도 못 꾸는 시기지.’

그러니 협회 생활 3개월도 안 된 사람이 자유롭게 다른 협회 시설을 이용하는 게 신기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새내기들은 협회의 교육커리큘럼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도 벅차니까.

‘그래도 우진이 그만 쳐다봐, 이놈들아. 우진이 얼굴 닳아.’

주변에서는 기분 나쁠 정도로 대놓고 쳐다보고 있지만, 우진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우진이는 번호표와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그래도 우진이가 협회 안으로 들어온 지 한 달은 됐는데 겨우 식당에 신기해하니 좀 기분이 이상했다.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아파서 돌아다닌 데가 너무 없었나 보다.

‘그럼 감회가 새로울 만도 하지.’

나는 우진이를 이해하기로 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