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22화 (22/81)

22.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3)

의자도 없고 책상도 없고 안내 책자는 당연히 없으며 영사기도 스크린도 없었다. 그러면 당연 교육용 프레젠테이션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교육자도 나 말고는 없잖아요. 쟤들은 나한테 배우는 입장일 거 아니야.’

대책 없는 워크숍이 시작되기 직전에 이 괴상한 상황을 혼자서 한탄하는데 김대엽 씨도 뭔가 맘에 안 드는지 큰소리를 냈다.

“거기! 외부인은 함부로 워크숍에 끼어들 수 없네. 당장 나가 주게!”

김대엽 씨가 가리킨 손가락의 끝에는 우린이가 있었다.

우린이는 가뜩이나 오빠랑 전화 연결이 안 돼서 속상한데 이상한 아저씨가 자길 보며 삿대질을 하자, 나에게 달려와서 안겼다.

김대엽 씨는 그 모습을 보자, 나에게 외부인을 데려오면 어떡하냐, 내 경력이 몇인데 어떻게 외부인을 데려올 생각을 하냐며 노발대발했다.

나는 함부로 외부인을 데려와서 죄송하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딱히 갈 곳이 없는 어린아이라 봐주시면 안 되겠느냐 사정했지만, 김대엽 씨는 딱 잘라 거절했다.

“신원까지 불분명한 외부인을 어떻게 믿고 함께 하겠나.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건 저 외부인이 우리의 기밀을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기밀을 어디에 전달했을지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걸 의미하네.”

“그냥 애잖아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기밀 얘기하긴 해요?”

“장하나 에스퍼! 자넨 고위험군인 S급 에스퍼야. 자네의 존재 자체가 고급 정보면서 자네의 교육에 대한 정보는 귀중한 협회의 자산이라는 걸 잊지 말게!”

“그럼 귀중한 대접 좀 해 주시던가요~ 맨날 연구 센터에 가둬서 실험이나 하고. 내가 무슨 실험 동물이에요?”

장하나가 투덜대기 시작하자 김대엽 씨는 장하나를 무시하고 다시 내가 데려온 우린이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린이를 172호 밖으로 내보내라는 얘기였는데….

“그럼 워크숍 끝날 때까지 애 어디 있으라는 건데요?”

그냥 연구 센터 방황하는 게 더 기밀을 알기 쉬울 거라고 둘러댔지만 김대엽 씨는 넘어가지 않았다.

김대엽 씨가 우린이를 내보내라며 성화니, 장하나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날도 추운데 저 쪼그만 애를 어디 가라고 자꾸 나가라고 해요. 그냥 둬요. 강 선배가 책임진다잖아요.”

“예외는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이로운 법이야.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센터밖에 있는다고 해도 얼어 죽지 않아.”

“와, 진짜 내보내게요? 저 꼬맹이를? 진짜 못됐다. 머리털 어디 갔나 했더니 양심에다 이식하신 거예요?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하하. 장하나야, 너도 어떻게 김대엽 씨가 성격 나쁜 대머리라는 말을 꼭 그렇게 꼬집어서 해야 했니?’

장하나 때문에 김대엽 씨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결국 김대엽 씨가 172호실 밖으로 나가면서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쾅!

9시 15분이었지만 아직도 워크숍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

15분이 더 지나 9시 반이 되자, 화를 다스린 김대엽 씨가 다시 172호실로 들어왔다.

시작 시간보다 30분 더 지난 지금에야 드디어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온 김대엽 씨가 우리에게 앉으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의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맨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4명이 둥글게 모여 앉으니까 꼭 보드 게임하는 자리 같았다.

내 감상과는 무관하게 김대엽 씨는 늦게 시작한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이 곧바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먼저, 김대엽 씨는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이라는 처음 듣는 교육과정을 열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김대엽 씨가 말하길, 우리가 보유한 8명의 S급 에스퍼들은 너무나 불안정하다고 한다.

특히 사용한 이능을 가이딩으로 복구하는 게 까다로워서 그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그저 실험실의 측정 도구로만 쓰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이드보다 에스퍼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 등급이니 매칭률이니 뭐니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가미되면 소수의 고등급 에스퍼들은 가이딩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에스퍼는 충전 불가능한 건전지처럼 이능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협회에서는 이들을 묵혀 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던 김대엽 씨는 S급의 에스퍼들 중에서 전투형 이능력자들이라도 이능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투를 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건의를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능의 힘이 전투에서의 힘’이라는 논리에 막혀 적극적으로 검토받지 못했는데 나의 존재로 인해 실현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이중 이능력자이긴 해도 신체 강화 B급인 내가 B급 대련부터 차곡차곡 올라와 최종 결승을 하는 모습에 협회의 간부진은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 3번이나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능의 힘이 전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모델로 잡아 새롭게 자라나는 S급 이능력자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하고 싶다고 한다.

“뭐, 아무튼 의도는 알겠어요. 나의 할 일은 청소년 에스퍼들을 가르치는 거라는 거죠?”

김대엽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는 애들에게 뭘 가르치면 되나요?”

“그것은 전투의 전문가인 자네가 직접 평가해서 결정하면 된다네!”

어…… 뭔가 잘못된 기분인데.

“……그럼 제가 무엇을 평가해서 어떤 것을 가르치면 되는 겁니까?”

“협회에서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강하나 에스퍼의 판단과 능력을 믿고 있네. 자네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서 우리 미래의 주역들을 자네같이 이능을 적재적소에 발휘하는 인재로 만들어 주게.”

‘그러니까, 알아서 맨땅에 헤딩하라는 거죠?’

딱히 뭐에 중점을 둬야 할지 몰라서 커리큘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 알아서 하라는 거잖아요. 부르긴 했지만 ‘협회는 아무 생각이 없다.’라는 말을 워크숍에서 들으니까 기가 막혔다.

김대엽 씨는 내가 뭔 생각을 할지는 파악 못 하고 혼자 신나서 얘길 늘어놨다.

교육 시간은 주 5일이고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하면 된다느니 하며 평가서랑 진행 사항 서식을 건네줄 테니 일주일에 한 번씩 제출하라느니….

거기에 덧붙여 나더러 전문가니 어쩌니 추켜세우면서 즉석으로 애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함소영 말고는 전투하는 걸 본 적도 없는데.”

내가 소극적으로 나오니까 김대엽 씨는 또 토라졌는지 젊은 친구들이 매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구시렁대고는 오늘 안에 계획서를 제출해 달라며 새침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김대엽 씨는 휑하니 172호실을 나갔다.

어찌나 고개를 세차게 돌리던지 얇은 솜털처럼 정수리를 살짝 덮고 있던 열 가닥의 머리카락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흔들거렸다.

‘하여간 삐지기는 엄청 잘 삐지네. 쪼잔한 대머리 같으니.’

워크숍이라고 이름 붙은 통보 시간이 끝났음에도 나는 자리를 나설 수가 없었다. 계획서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커리큘럼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냐.’

앞길이 막막했다. 그 와중에 애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뜨려고 하길래 나는 애들이 못 나가게 붙들고 간단한 테스트를 하겠노라고 통보했다.

내가 애들을 붙잡은 건 혼자 남기 억울해서가 아니다. 계획서를 쓰기 위해 붙잡은 것이다.

나는 김대엽 씨가 내뱉었던 말을 복기했다.

애들이 이능에만 너무 의존하지 않게 해 달랬다. 그건……

‘어떻게 하란 말일까?’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답을 내놨다.

일단, 애들이 맨몸으로 상황을 대응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목표를 애들의 무술 실력을 향상하는 걸로 잡기로 했다. 그것 말고도 이능을 자신의 신체 능력과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건 심화 과정으로 빼놓기로 했다.

일단 신체 능력부터 키워야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니까.

“간단하게 하자. 정말 가볍게.”

먼저 가볍게 2,000m 달리기부터 애들한테 시켰다. 내가 알기로는 쟤들은 18살쯤 되었고, 에스퍼들은 원래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신체 기능이 뛰어난 편이니 이 정도는 시켜 봐야지.

내가 2,000m 달리기를 시킨 지 12분 만에 신체 강화 이능력자인 함소영과 조용이 완주를 했다.

이 정도 달리기로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 게 강화 계열 사람다웠다.

반면에 장하나는 15분이 되니 헉헉대며 겨우 들어왔다.

우리 장 후배는 앞날이 힘겹겠다.

사실 2,000m 달리기를 15분 안에 완주하는 건 일반인들 기준이면 매우 잘했지만, 얘들은 에스퍼니까 그냥 평이한 수준이다.

S급이라고 해서 기본 체력이 더 좋을 거라 기대했지만 연구 센터에서 이능 검사만 받고 살아온 모양이다.

특히 장하나는 심폐 지구력 좀 길러야겠다.

여러 가지 체력장 검사를 더 시켜 보면서 대충 뭐부터 어떻게 가르칠지 구상을 잡고 있는데 장하나가 말을 걸었다.

“왜 아까부터 자꾸 똥개 훈련만 시켜요! 특별 교육이라며! 이게 특별한 거냐고요!”

“이 시간은 너희가 이능에 너무 매달리지 않게 교육하는 시간이라잖아. 맨몸으로도 잘 싸우게 교육하라는 거지. 그래서 난 내가 이능 없이 잘 싸우는 방식을 너희한테 가르칠 거야. 장하나, 너는 가장 기초 체력이 부족해서 집중 교육 대상이니까 각오해 둬.”

“뭐야~ 특별 교육이 아니고 그냥 체육 시간이잖아요. 대체 어디가 특별하다는 거람. 그냥 맨날 실험실에서 하는 이능 훈련이 더 특별하겠다.”

나는 장하나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측정한 값을 체력 검사지에 기록했다.

이 교육 시간을 무술 교육 시간으로 쓸 것이다. 이능을 최소한으로 써서 전투하도록 만들라고 했으니, 그게 무술을 가르치란 말이지.

이게 다른 에스퍼들도 다 받는 기초 훈련과 뭐가 다른 건가 하는 회의감도 일순 들었지만 난 시키는 대로 일할 뿐이다.

나는 차분하게 애들 체력장으로 지구력, 순발력, 민첩성, 유연성, 교치성 등을 측정해서 애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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