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2)
나는 우린이와 함께 지내고 있지만, 기본적인 내 생활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나는 5시면 일어나서 조깅을 갔고 돌아와서 씻고 아침 먹으러 나갈 준비를 하면서 우린이를 깨웠다.
내 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이제 교육생들과 함께 받던 오전 훈련과 오후 훈련을 전부 개인 훈련 시간으로 돌린 것인데, 따로 우린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내가 돌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훈련 시간을 온전히 육아에만 쓰지는 않았다.
아무 할 일 없이 둘만 있는 건 우린이도 나도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린이를 돌볼 수 있는 종류로 훈련을 바꿨다.
한 팔로는 애를 안고 철봉 운동을 한다거나 목말을 태우고 스쿼트랑 달리기를 하는 등으로 말이다. 우린이도 플랭크를 하는 내 등을 책상으로 써서 동화책도 읽고 소꿉놀이도 하는 걸 보니 얘도 이런 상황에 딱히 불만 없이 알아서 잘 노는 모양이다.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우진이는 퇴원해서 가이드 시설로 입소했다.
가이드들은 연구 센터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건물에서 다 같이 지내는데, 이 건물은 희한하게도 입구가 없다.
가이드 시설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연구 센터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이 통로의 입구에는 가이드들의 스마트워치나 가이드 시설 담당인 치유계 에스퍼들의 스마트워치로 본인 인증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사실 나는 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요즘은 왜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이제 우진이는 정식으로 가이드로서 협회에 등록되고 스마트워치까지 배급받았기 때문에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력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린이는 신원 등록도 안 된 난민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 우진이가 아직 멍도 다 안 빠진 얼굴로 시설에 입소하는 날, 우린이도 오빠를 따라가려 울고불고 떼를 썼지만, 가이드도 아닌 신원 미상자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협회 측에서 거절했다.
딱 봐도 가족인 어린아이지만 협회는 단호했다.
그래서 나와 우린이는 아직까지 룸메이트로 지내게 되었다.
나와 같이 살게 된 우린이는 아침을 먹고 쉼터에 가서 오늘 갖고 놀고 싶은 물건들을 잔뜩 빌린 다음에 운동하는 내 옆에서 혼자 놀거나 아님 같이 놀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쉼터에 가서 놀잇감 대부분을 반납하고 한두 개는 숙소로 가져가서 갖고 논다.
저녁을 먹은 다음 나랑 밤 산책을 다녀오거나 숙소에서 더 놀다가 잔다.
아직까지는 싫다고 운 적이 없으니 나랑 지내는 생활을 나쁘다고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룸메이트와 그럭저럭 평온한 일상을 지내는 동안, 인사 관련 공문이 내려왔다.
내가 협회에서 새로 얻게 된 일은 ‘고위험군 에스퍼 특별 교육’이라고 한다. 이게 뭐냐면……
‘나도 몰라.’
그냥 공문에 그렇게 적혀 있어. 고위험군 에스퍼는 뭐야? S급 말하는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특별 교육은 뭐지?
분명 협회에는 에스퍼 전용 교육 커리큘럼이 존재한다. 나도 그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았으니 확실히 알긴 안다.
먼저 에스퍼가 뭔지 배우고 이능 발산하는 법이랑 가이딩 같은 공통분모를 배우고 나면 군인처럼 체력 훈련이랑 기본 전투 훈련을 배운다.
그리고 훈련과 함께 이능의 종류별로 나눠서 이능을 조절하는 법과 심도 있게 다루는 법을 배운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으면 에스퍼 데이터베이스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연구 센터의 모르모트 노릇도 함께하면서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은 보통 3년에서 5년 정도 걸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교육생이 아닌 정식 에스퍼 협회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별 교육’이라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나도 이능이 희소한 축에 들었지만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협회도 이런 혼란을 예상한 것인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워크숍에 참가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워크숍 장소는 ‘연구 센터-a동 172호’네. 일단 가 봐야 뭔지 알 것 같다.
***
도착한 연구 센터-a동 172호는 널따란 빈 공간이었다.
바닥도 푹신한 매트인 걸 보니 체육관으로 써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벽 한 면이 거울인 걸 보니 옆방에서 연구진이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진 듯하다.
하긴 여긴 연구 센터니까.
우린이랑 내가 너무 부지런히 온 것인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9시에 오라고 해서 아침 먹고 바로 왔더니 아직 8시 55분이구나.
그래도 5분 전이면 워크숍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투덜거리는 동안 우린이는 거울 앞에 가서 거울에 손자국을 찍고 있다. 거울이 엄청 커서 신기하다며 좋아한다.
처음에는 괜히 데려왔나 싶었지만 처음보는 대형 거울에 좋아하는 걸 보니 데려오길 잘했다.
우린이랑 같이 떠들고 있는 중에 172호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어? 우진이잖아? 우진이가 여기에 왜 왔지?’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안으로 들어온 우진이도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장 미소 지으며 나에게 걸어왔다. 우진이가 웃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나는 우진이의 호선을 그리는 입술 사이에 보이는 가지런한 하얀 치아와 새카만 머리칼과 대조되는 흰 피부, 반달 같은 눈웃음과 검은 나비가 내려앉은 듯한 속눈썹과 왼쪽 눈에 단아하게 찍힌 눈물점을 정신없이 바라봤다.
내 앞으로 다가온 우진이는 섬섬옥수 같은 하얗고 길쭉한 손을 들더니 짧아서 까슬까슬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나 씨, 잘 지냈어요? 오늘도 하나 씨는 밤톨 같아서 참 귀엽네요. 워크숍 때려치우고 데이트나 갈래요?”
‘하, 시발. 어쩐지 얼굴에 멍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더라니.’
우진이가 아니다.
우진이는 아니지만, 우진이의 얼굴을 눈앞에 두고 욕을 할 수는 없어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야, 폴리모프 풀어라. 장하나.”
“아이, 왜 벌써 알고 그랭~”
“그런 대사는 변신 풀고 하라고. 우진이의 얼굴과 목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마!”
듣기 나쁜 건 아닌데, 아무튼 하지 마라. 내가 질색팔색을 하자 장하나는 변신을 풀었다.
나보다 반 뼘 넘게 높았던 눈높이가 비슷해지고, 여러 가지 색깔의 브릿지가 잔뜩 있는 화려한 머리털과 해골 그림과 불꽃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여자애가 나타났다.
'공적인 일로 모이는 건데도 얘는 오늘도 유니폼 따윈 안 입는구나.'
변신을 푼 장하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걔가 유명한 ‘강하나의 남자’지? 차우진이라는 사람 말이야~ 부정해도 소용없어. 이미 다 읽었으니까.”
“너 진짜 적당히 까불어라.”
“내 이능 알잖아? 진짜 잘생겼더라! 선배가 껌뻑 죽을 만해. 근데 선배 그렇게까지 넋 놓는 거 처음 본다. 완전 웃겨! 걔 얼굴이 그렇게 좋아? 응?”
장하나는 입을 열고 상대방은 신경도 안 쓰고 떠들어 댔다. 에가협은 선후배 문화도 없는데 이름이 같아서 애매하다는 이유로 날 선배라고 부르는 장하나는 마인드 리딩에 폴리모프 이능이 있는 이중 이능력자다.
이 이능으로 장하나는 남의 머릿속을 읽어 낸 다음 그 사람이 신경 쓰는 상대로 변신해서 자주 놀려 먹는다.
‘아주 변태 같은 이능이야.’
딱히 쓸 일이 많은 이능도 아니다 보니 장하나는 남 놀려 먹기에 열심히 이능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얘 말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근데 ‘강하나의 남자’라는 건 뭐야? 누가 그런 이상한 말 만들어 냈어?”
“선배가 어떤 남자한테 껌뻑 죽는다는 건 선배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긴데? 엄청 지극정성이라며~ 맨날 찾아가서 꽃도 바치고 시간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날 아는 놈들은 다 알 거라니 협회 사람 대부분이 다 안다는 거네.’
대체 왜 아는 거야? 병문안 열심히 간 게 그렇게까지 소문날 일인가? 아니면 행정부에서 우진이 사전 교육자 자리를 너무 적극적으로 따냈나?
그렇지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오리무중인 소문의 근원지에 대한 신경은 끄고 일하러 온 거니 일이나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시계를 봤다. 아직도 58분이다.
“아니 근데, 2분 남았으면 다들 모일 때도 되지 않았어? 왜 안 와?”
괜히 씨근덕거리고 있는데 우린이가 울먹였다.
“오빠…… 갔어요? 아까 있었는데…… 왜 오빠 없어요?”
장하나 때문에 우린이도 울게 생겼네. 지금까지 나랑 지내면서 한 번도 운 적 없었는데 애 울면 장하나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도 없는 거, 나는 우린이를 달래기 위해 우진이한테 전화를 걸어 주겠다면서 스마트워치를 풀어 우린이에게 쥐여 주었다.
그런데 우진이한테 전화를 걸려는 중에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들어왔다. 조용이랑 함소영이다.
장하나, 조용, 함소영. 저 3명의 공통점은 미성년자 S급이란 것이다. 셋 다 나이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역시 고위험군 에스퍼는 미성숙한 S급 에스퍼 얘기였구나.’
이 3명은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에 각성한 에스퍼로 한창 혼란한 전장에서 에가협에 구출된 애들이다.
발견된 시기도 얼마 차이 안 나고 게이트 브레이크 전 초창기에 발견된 애들이라 이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을 텐데, 아직도 교육생 신분을 못 벗어나는 친구들이다.
‘얘들이 워크숍 담당자는 아닐 텐데. 9시 넘었는데 담당자는 왜 안 와?’
9시 2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투덜댔다.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김대엽 씨가 들어왔다.
“다들 모였구먼. 그럼 이제부터 ‘고위험군 이능력자 특별 교육’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겠네.”
“여기서요?”
우린 지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172호실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