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20화 (20/81)

20. 내가 키우게 된 S급들 (1)

대련 대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인사 평가 기간이 되었다.

이 기간을 잘 보내야 내년에 맡을 업무들이 정해진다. 업무마다 임금이 다르기 때문에 다들 인사 평가를 잘 받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돈이 있어야 협회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 이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냥 다운타운에서 노는 게 목적이지만.

그래도 그것 말고도 인사 평가에 따라 직책도 정해지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협회에서 얻는 지위는 곧 협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이기도 하니까.

직책이 높아지면 협회의 결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협회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웬만한 직책으로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발언에 힘이 생기기는 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김대엽 씨처럼 말이다.

자연계 A급 에스퍼인 김대엽 씨는 나만큼이나 오래된 경력이 있는 에스퍼다. 김대엽 씨는 오랜 시간 착실하게 협회의 임무를 수행해서 협회의 신망이 두텁다.

그래서 협회에서의 입지가 굳건하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의 직책을 받아 에스퍼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아서 대련 대회처럼 능력을 입증하는 자리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이런 면모에서 김대엽 씨는 나와 비슷하다. 협회에 충실하면서 일한 기간까지 비슷하지.

그러나 김대엽 씨가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협회에 처음 왔을 때 어린아이였던 나와 달리 김대엽 씨는 성인이었다는 점이다.

어렸던 내가 협회에 적응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과는 다르게 김대엽 씨는 그때부터 차곡차곡 입지를 다져왔겠지. 그 시작의 차이가 지금 내가 김대엽 씨에게 내 인사 평가를 전달받는 위치로 만들어 준 것일 거다.

“그래서 다들 하나 씨의 대련 대회 실적을 우수하게 보고 있어. 협회가 지상에 올라온 이래로 자네는 항상 우승을 했잖나. 작년엔 긴급 임무로 인해 결승전을 못 치러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참가했으면 자네가 우승이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네. 대괴수 섬멸팀에서도 인상적인 실적을 쌓고 있는 것도 알고 있네.”

나는 김대엽 씨가 전해 준 내 평가를 들으며 안심했다.

최근에 팀에서 사고를 친 적 있었는데도 팀에서 내 평가가 괜찮은가 보다. B급 신체 강화라서 화려한 실적은 못 내는데 다행이었다.

신체 강화는 개인적으로는 유용한 이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염동력자나 물, 불, 전기 등을 다루는 자연계 에스퍼들보다는 파급력이 약하다고 해야 하나, 좀 소홀히 여겨지는 풍조가 있긴 했다.

인간의 몸에서 힘만 세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제약이 많았고, 당장 눈앞의 적을 섬멸할 수는 있으나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부담이 있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금강불괴라는 이능이 더해진 이중 이능력자라 보통의 신체 강화 이능력자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넓었다.

이중 이능으로 협회에서 최고의 맷집을 자랑하는 내가 팀에서 주로 하는 임무는 적을 탐색하면서 약점을 찾아내는 일이었는데, 솔직히 이게 눈에 띄는 일은 아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냥 시킨 일 잘한다는 평만 들었기 때문에 올해 평가도 기대 안 했는데 내년을 기대해 봐도 좋겠는걸?’

평가에 야박한 김대엽 씨가 이런 얘길 전해 주는 걸 보니 느낌이 좋다.

김대엽 씨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얘길 전해 주며 말을 마쳤다.

“……해서 이제 평가 기간도 끝나 가니 조만간 인사 관련 공문이 내려올 거야. 연구팀에서는 자네가 에스퍼를 관리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네. 조만간 관리자 회의 때도 만나겠구먼. 그럼 앞으로도 열심히 하게.”

***

연말이 다가오자 날이 많이 추워졌다. 아침부터 어두컴컴했던 하늘은 저녁 무렵이 되자 이번 겨울의 첫눈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는 어두침침한 겨울 저녁에 나는 친구들과 다운타운의 술집에 모여 관리직이 결정된 나의 밝은 미래를 축하받았다.

“우리 동기 중에서 첫 관리자가 될! 강하나를 위하여!”

“위하여!”

오늘은 화영이도 쉬는 날이라 간만에 괴수 처리 중급-f반 주니어팀이 모두 모였다.

7년 전,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결성되었던 우리 팀은 협회가 임시 정부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3년 뒤에 해체되었다.

그나마 위험한 괴수들을 대부분 퇴치하는 데 성공하고 협회가 안정적으로 세상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협회에서 모든 협회원에게 괴수 퇴치를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자, 다들 적성에 잘 맞는 업무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화영이는 의료 업무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 했고, 승환이는 행정 업무를 원했으며 해미는 연구팀의 실험을 돕는 쪽으로 업무를 바꿨다. 상혁이는 괴수를 처리하는 것보다 인명 구조를 하고 싶어 해서 예전처럼 괴수를 잡는 사람은 나만 남게 되었다.

게다가 괴수의 개체 수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서 내가 출동하는 날도 줄었다.

출동이 없어 협회에 있을때 내가 하는 업무는 팀원들과 합을 맞추는 것 외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요즘 교육생들과 같이 훈련을 받고는 했는데 이제 다 개인 훈련으로 돌려야겠네.’

아무튼, 승진이나 다름없는 소식에 기분이 좋다.

내 옆에 앉은 우린이도 우리가 하는 게 뭔지는 모르고 일단 웃으면서 같이 건배했다.

엊그제부터 내 룸메이트가 된 우린이는 생맥주를 마시는 우리 틈바구니에서 레모네이드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우린이는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가는 6살이지만 마이 페이스가 뚜렷하고 가리는 게 없어서 의외로 괜찮은 룸메이트였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관심 없는 주제가 쏟아져 나오는 자리에서는 닭 다리와 감자튀김을 가지고 혼자 노는 주체적인 어린이라서 지내기 편했다.

그렇지만 주체적인 어린이는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한창 진행 중인 관심 없는 대화를 멋대로 끊어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나 오빠랑 전화하고 싶어요.”

나는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풀어서 우진이한테 영상통화를 걸고 우린이 앞에 놔주었다.

우진이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데에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이는 내가 데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린이는 정황은 잘 모르지만, 오빠가 아프다니 나랑 지내는 상황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대신에 오빠와 전화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신기하게도 면회 사절 중인 우진이도 내 번호로 걸린 차우린 전화는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우진이 병실에서 쫓겨난 뒤로 우진이랑 말을 나눠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우린이가 우진이랑 통화하면 목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 영상 통화하면 얼굴도 볼 수 있고.’

오빠랑 영상 통화도 하고 싶고 감자튀김도 먹고 싶었던 우린이는 감자를 손에 가득 움켜쥐고 화면 너머에 있는 우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남매는 서로 애틋하게 안부를 전하다가 갑자기 우진이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우린아? 숙소는 아닌 것 같은데.

“식당이라고 해, 우린아.”

사실대로 술집에 왔다고 하면 왠지 혼날 것 같았다. 우린이는 착하게도 내 말대로 식당이라 말했지만, 우진이는 납득하지 않았다.

-협회 식당이 지금까지 해? 음식점 같은데.

“아, 우진 씨는 다운타운 안 가 봐서 모르시겠구나. 협회 건물 근처에는 민간인들이 운영하는 상가가 있어요. 우린이랑 저흰 여기서 저녁을 먹고 있답니다.”

화영이는 우린이 옆에 붙어서 같이 통화에 끼어들었다. 아직도 우진이 면회 사절인 거 알면서 넉살도 좋다.

‘우진이도 갑자기 화영이가 끼어들어서 깜짝 놀란 것 같은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결국 우진이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빨리 끊긴 게 아쉬워서 괜히 화영이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우진이가 에스퍼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 왜 끼었어?”

“협회에서 지내는 이상, 익숙해져야 하잖아. 우린이도 우리랑 있고 말이야. 전화도 네 번호로 걸었는데 뭘 그래.”

“그래도 우진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걸.”

“이제 협회도 대회 끝나서 입소시킬 텐데 자꾸 피하기만 하는 건 본인 손해야. 계속 마주하는 게 에스퍼들인데 언제까지 피할 수 있겠어? 그나마 가이드한테 제일 안전한 곳은 협회일걸?”

“야, 칙칙한 얘기 그만해. 축하하는 자리에서 왜 우울한 남 얘기를 하냐? 아직 공문은 안 떴지만 무슨 일 배정받을 것 같은지 얘기나 해 봐. 아마 훈련 조교일 것 같은데 지금 조교 한 명 밀어내는 거 아니야?”

나랑 화영이가 우진이 얘기를 하자 해미가 말을 끊어 버렸다.

하긴 내 승진을 미리 축하하는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긴 했다. 나는 친구들과 지금 내가 할 만한 관리직이랑 그 직급에서 얻게 될 권한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이야길 나눴다.

그러다 우린이가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할 수 없던 우리는 적당히 놀다가 자리를 접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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