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17화 (17/81)

17. 에스퍼와 가이드 (8)

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심호흡을 한 다음 얼굴을 짝 소리가 나도록 두 번 때렸다.

“후, 정신이 번쩍 나네.”

나는 그나마 맑아진 정신으로 경기에 임했다.

어느덧 계열 경기가 마지막 한 경기만 남았다.

상대는 S급 함소영이다.

‘역시 S급이라 여기서 만나게 될 줄 알았지.’

소영이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었다.

‘와 좀 무서운데?’

전에 한번 맞아 봐서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기에 더 무섭다.

소영이 공격은 한번 맞으면 무조건 내가 진다.

그래서 소영이가 직접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약간의 긴장 속에서 경기의 시작을 기다렸다.

삐익-

시작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리자마자 소영이가 주먹을 날렸다.

S급의 무시무시한 펀치 위력이 무시하기 어려운 위력의 풍압을 만들어 냈다.

일단 상대를 날려 보내 빈틈을 만들어서 가까이 다가오려는 거겠지.

주먹질로 풍압을 날려 보내도 치명상을 입히려면 직접 때려야 하니까.

소영이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멀어지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지만 근접 공격을 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히려 함소영이 만들어낸 풍압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풍압에 휘말리는 멍청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풍압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기 전, 발돋음을 하여 풍압에 날아가는 척하면서 뛰어올랐다.

소영이의 계략에 말려든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다.

예상했던 대로 풍압으로 내 빈틈을 만들었다고 여긴 소영이가 다가왔다.

나는 소영이가 다가오는 걸 보고 균형을 바로잡았다.

나는 다리로 소영이의 몸통을 잡아 넘어뜨렸다.

조그마한 함소영이 경기장 바닥에 얼굴을 박고 엎어지면 내 승리가 될 것이다.

쾅!

단순히 얼굴을 바닥에 박은 걸로는 절대로 날 수 없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소영이가 얼굴 대신 주먹을 바닥에 내리친 것이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닥 전체가 금 가면서 소영이가 내리친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꺼졌다.

소영이와 엉켜있던 나는 그대로 같이 추락했다.

와아… 연구팀에서 오냐오냐하는 S급이라서 그런지 기물 파손의 스케일이 남다르네.

다들 수리비로 급여 깎일까 봐 기물 파손은 최대한 안 하는데, 하강감이 느껴질 정도로 바닥을 깨부수다니…

그래도 나랑 직접 붙으면 손도 못댈 거라고 바로 파악해서 지형으로 건드리는 걸 보니 실력은 많이 늘었다.

아직 대처 속도는 한참 모자랐지만 말이다.

소영이는 바닥을 내려쳐서 날 공중에 띄웠지만,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속도가 공중에 뜬 나보다 느렸다.

나는 양다리로 붙잡고 있던 소영이를 바닥에 메다꽂았다.

쾅!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는지 머리가 땅에 박힌 소영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어린앤데 너무 세게 했나? 얘는 나처럼 금강불괴도 아닌데.

나는 움직이지 않는 소영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봤다.

S급의 무시무시한 맷집으로 갑자기 일어나서 날 때릴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이번엔 진짜로 쓰러졌는지, 소영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오늘의 대련 대회가 끝났다.

***

내일은 결승전이 있는 대회의 마지막 날이다.

결승전까지 달려도 준준결승부터 하기 때문에 오전 경기만 하면 다 끝난다.

’대회 끝나면 우진이 때린 놈 패 주러 가야지.’

나는 내일을 위한 각오를 다지며 숙소로 돌아왔다.

푹 자고 내일 대련부터 잘 치르자 다짐하며 자리에 누웠는데 옆 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뭐야? 누가 이렇게 건물이 떠나가라 울어?”

나는 울음소리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김상혁 방으로 쳐들어갔다.

방 안에는 역시나 우린이가 울고 있었고 옆에서 쩔쩔매는 김상혁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사정을 들어 보니 우린이는 어제 사건 때문에 우진이 옆에 못 있고 어젯밤은 화영이네 숙직실에서 보내고 오늘은 상혁이랑 보낸다고 한다.

그렇지만 상혁이가 마음에 안 드는지 갑자기 운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상혁이의 이야기고 이제 우린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우린이가 직접 마음에 안 드는 걸 얘기해 주면 불만 사항을 처리해 줄 수 있겠지.

“으아아앙!! 싫어!!!”

그러나 우린이는 그저 울면서 여기가 싫다는 말밖에 안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린이를 안아 들고 내 방으로 데려갔다.

내 방에 온 우린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그러고는 상혁이 방이 싫은 이유를 말해 줬다.

“아까 아저씨가 너무 크고 무섭게 생겼어… 같이 자기 싫어… 훌쩍.”

“음, 그렇지. 상혁이가 좀 험상궂게 생기긴 했지. 네 마음 이해해. 나도 상혁이랑 같이 자고 싶지 않거든.”

우린이는 거기에 덧붙여 나는 안 무섭게 생겨서 괜찮다고 해 줬다.

내 방에서 자는 건 괜찮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원래 혼자 편히 자려고 했던 나는 우린이도 같이 재우려고 침대에 눕혔다.

애가 빨리 잠들었으면 해서 한참을 토닥이고 있었는데 우린이는 말똥한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우리 오빠는 자기 전에 맨날 노래 불러 주고 옛날 얘기해 줬어요. 그런데 여기 오고는 안 해 주다가 이제 해 줬는데 어제부터 오빠랑 같이 못 잔대요.”

“어…… 그래서 지금 나한테 노래 불러 달라는 거야? 너 내가 노래 부를 때마다 그거 아니라고 화냈잖아.”

다행히도 그런 뜻은 아니었는지 우린이는 말을 이었다.

“있잖아요. 우리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나는 우린이가 그런 안쓰러운 말을 꺼내고 나서 다시 울까 봐 긴장했다.

그렇지만 우진이를 곧 만날 수 있을 거라 달래 주었더니, 우린이는 금방 잠들었다.

다행이다. 나도 푹 자고 중요한 내일을 맞이해야 해.

나는 룸메이트와 평화롭게 잠을 청했다.

***

다음날, 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잠을 자서 6시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늦잠을 잤어도 대회는 10시에 시작하니까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섯 살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자고 있는 우린이를 상혁이에게 맡기고 몸을 풀러 갔다.

***

오늘은 결승이라 송주하를 상대해야 한다.

주하는 꽤 경력이 쌓인 노련한 S급이라 까다롭다. 거기에 염동력자이기도 해서 정말 상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이길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련함으로 따지면 내가 주하를 이미 이겼으니까.

나는 평소처럼 스트레칭과 조깅을 하며 몸을 풀었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초조해 봤자,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만치 않은 상대에 대한 대처를 안 할 수는 없기에 주하를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했다.

내가 주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대충 예상 시나리오를 돌려보고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

오늘의 경기는 가장 짧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다.

대련 대회 최강자전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판돈이 크기도 하고.

상혁이도 우린이를 데리고 기어코 도박판에 합류하러 왔다.

‘그래, 많이 벌어서 우린이 과자라도 하나 사 주렴.’

나는 상혁이의 운빨을 응원하며 대기실로 갔다.

오늘 처음으로 대련하게 될 상대는 자연계 김대엽 씨다.

이분은 나만큼이나 협회에 오래 계신 분이라 주하보다 훨씬 노련한 에스퍼다.

김대엽 씨는 물을 다루는 에스퍼인데, A급이라 물을 뽑아내는 화력이 좋아서 물이 없는 공간에서는 대기에서 수분을 뽑아내서 쓴다.

그리고 그 물을 그냥 퍼부으면 타격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얼려서 날린다.

바로 지금처럼.

쾅, 쾅, 쾅!!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우박 같은 얼음덩어리들에 눈 같은 급소를 맞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면서 달려들었다.

원래 김대엽 씨는 얼음을 날카롭게 벼려서 날린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날붙이가 별로 소용이 없고 대련 때는 금기 사항이라 덩어리로 날려 댔다.

모양 신경 안 써서 그런지 임무 때보다 더 빠르고 많이 날리는 것 같았다. 완전 따가워!

나는 적당히 거리를 좁혀서 상대에게 도약했다.

“……?”

그런데 상대가 여유로워 보인다. 이럴 땐 꼭 뭔가를 하던데.

“으악!!”

아니나 다를까 언제부턴가 우박을 안 날린다 했더니 그걸 모아서 내 팔을 얼려 버렸다.

아무리 나라도 팔이 꽝꽝 얼어 버린 상태에서 큰 충격을 가하면 위험하다.

하지만 나는 팔이 두 개지.

곧장 남은 팔로 다시 공격을 시도했으나 김대엽 씨는 이쪽 손마저 얼려 버렸다.

‘아니, 건조한 한국의 겨울 공기에 이렇게 수분이 많아?’

그래도 어깨까지 꽝꽝 얼려 버린 오른쪽과 달리 왼쪽은 손목도 못 얼린 걸 보면 이게 한계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공격하는 건 포기하고 발로 김대엽 씨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퍽!

역시 다룰 수분이 부족했는지 김대엽 씨는 내 팔을 얼렸던 수분을 빼고 얼음덩어리를 모아서 내 공격을 막았다.

나는 자세를 바꿔 얼음이 빠져 그나마 자유로워진 손으로 땅을 짚고 몸통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먼저 들어간 오른발로 코끝을 차는 데 성공했지만, 두 번째로 들어간 왼발은 내 패턴을 얼추 알고 있던 김대엽 씨가 막아 냈다.

“하아… 하아…”

가까스로 내 공격을 막아낸 김대엽 씨가 숨을 몰아쉬었다.

보통 여기서 녹다운 되는데, 첫 타를 맞고도 막아 내다니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

그렇지만 역시 코를 맞은 게 충격이 컸는지 김대엽 씨는 돌려차기로 자세가 무너진 나를 바로 공격하지 못했다.

돌려차기 자세 때문에 바닥에 엎어진 나는 그 틈을 노려 대엽 씨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바로 팔꿈치로 찍어 내려 승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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