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16화 (16/81)

16. 에스퍼와 가이드 (7)

특출난 이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해미는 아직도 연구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A급 특수계 텔레포터라서 연구 센터에서 매우 좋아하는 이능력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텔레포트는 연구할 게 많은 이능력이다.

이능력을 개량해서 실생활에서 쓰기 위한 능력 제품을 만들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 난 개량할 거리가 없는 신체 강화 B급이라서 행복하다.

연구 센터에서 안 부르니까.

연구센터 맨날 가느니 A급보다는 협회에 무시당하는 B급이 낫지.

연구센터는 갈 때마다 개고생을 한다고.

우린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오후 경기를 나가야 하고 쟤들은 관람하러 가야 하니까.

오후 경기는 다들 가이딩 긴축 재정 때문인지 이능을 좀 살살 썼다. 그래도 평가 점수 때문에 아예 안 쓸 수는 없어서 무리하지 않게 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 이겨 보려고 전심전력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상대가 되진 못했다. 2분도 안 돼서 녹다운 되었으니까.

가이드가 부족하다는데 왜 그렇게 힘을 빼나 몰라.

***

그렇게 오후 경기가 끝나고 오늘의 경기 일정도 모두 끝났다.

계열 대련도 곧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화영이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얘 전화 자주 안 하는데 웬일이지?”

다시 전화해 보니 받지 않는다.

'많이 바쁜가? 급한 거면 다시 연락 주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컨디션 조절을 위해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

계열 대련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오늘부터 S급 에스퍼가 같이 경기에 오른다.

“이번에는 누가 오는지 좀 볼까?”

나는 기대하는 척하며 대진표를 열람했지만, 상대가 뻔해서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하만 오겠지, 뭐.

그런데 올해는 대진표는 조금 달랐다. 한 명이 더 있었다.

소영이가 나온다!

함소영은 그 흔한 신체 강화 이능에서 S급을 받은 친구다.

S급이다 보니 낼 수 있는 위력이 진짜 무시무시하다. 아마 주먹 한 방에 산 하나는 날아갈 것이다.

아직 어리고 힘 조절이 서툴러서 그동안 대회에 안 나왔었는데 올해부턴 출전시키나 보다.

한참 대진표를 보던 나는 대기실에 걸린 시계를 봤다.

‘그나저나 이제 오늘 대회 시작하는데 가이드가 안 오네? 끝난 뒤만 봐준다 이건가? 오늘은 S급이랑 맞붙는데.’

띠링.

마치 내 투덜거림을 들은 듯이 협회로부터 알림이 왔다.

가이드도 소중한 우리 동료니까 소중히 대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런 당연한 얘길 왜 문자로 보내 주는 거야.”

어이없는 내용의 공문이 왔던 스마트워치에서 눈을 떼니, 이번엔 누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또 상혁이네.

그런데 항상 밝은 김상혁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야, 하나. ……뭐 별일 없지?”

“좀 있으면 경기 시작인데 뭔 일이 있겠어. 별일은 네가 있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아니, 난 뭐…… 나한테 일이 있는 건 아닌데, 일단 경기 잘해라.”

상혁이는 이상한 낌새로 싱거운 말만 하고는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대체 뭐지?

김상혁이 찝찝하게 굴고 가버렸지만 나는 대련 준비를 해야 했다.

오늘은 S급이랑 대련하는 날이니 이능은 가능하면 아껴야지. 가이드도 안 오는데 최대한 적게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A급은 어느 정도 맞아볼 만한데 S급은 진짜 아프다.

“그건 진짜 몸빵으로 버틸 수준이 아니야. 맞는 순간 녹다운이야. 금강불괴도 기절은 한다고.”

나는 소영이의 이능 출력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최대한 안 맞는 걸 목표로 삼을 거지만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오늘의 대련에 임했다.

오전 경기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다들 경기 전에 가이드가 오지 않는 게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이능을 잘 안 썼다.

이런 상황이면 오로지 맨몸 싸움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기꺼웠다.

지금의 대련처럼 말이다.

나는 대련 중인 상대가 뻗는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췄다.

그리고 몸을 낮춘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에 손을 짚었다.

자세 때문에 하늘로 뻗은 다리가 중력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다리에 무게와 힘을 실어 몸을 돌렸다.

그대로 상대의 머리를 노리며 뒷발로 내려찍었다.

퍽!

머리를 노렸지만, 상대가 피하려고 몸을 빼는 바람에 조준이 살짝 빗나갔다.

그래서 머리를 노리려던 게 코를 맞추고 말았다.

타격감이 약한 건 아니었지만 아직 상대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나는 남는 발로 상대의 배를 차 버렸다.

명치를 정통으로 맞은 상대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휴, 이 정도면 쉽네.”

이렇게 오전의 마지막 경기도 3분 안에 끝났다.

이번에도 관중들의 함성이 우렁차게 쏟아졌다.

오후 경기부터는 S급 에스퍼가 참가한다.

벌써부터 관중석에선 나랑 S급 에스퍼가 치를 대련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 대기실로 향했다.

곧장 대기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반대편 복도에 익숙한 인영이 있었다.

누군지 알아본 나는 바로 아는 척을 했다.

“우와 이게 누구야? 신체 강화계의 빛나는 별, 소영이잖아?! 일격이면 누구나 쓰러뜨려 버리는 일격필살 함소영!”

내가 격하게 반가워하자 우리 일격필살의 소영이는 이상하게 부르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나는 경외를 담아 부른 건데 반응이 너무 야박하다.

나보다도 머리 하나는 작고 수줍음 많은 저 어린애가 주먹질 한 방에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걸 상기하면 높은 급수가 무섭긴 무섭다.

연구진 놈들이 왜 그렇게 싸고도는지 이해도 가고.

애초에 S급이 너무 적기도 하다. 에가협 한국 지부에는 11명뿐이니까.

그중에서 에스퍼는 8명이고, 대련 가능한 사람으로 추리면 더 적다. 비전투용 이능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S급 중에서 짬밥 높으신 김희원 팀장님 같은 경우는 이미 직위도 높고 데이터 뽑을 대로 다 뽑은 데다가 본인도 대련 안 좋아해서 참가를 안 한다.

그래서 매년 주하만 참가하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소영이도 같이 굴릴 예정인가 보다.

어쨌든 나는 소영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대기실 문 앞에는 상혁이와 화영이가 서있었다.

화영이는 상혁이에게 왜 똑바로 안 하냐는 내용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상혁이가 한마디도 못 하고 듣고만 있는 걸 보니 진짜 잘못한 게 있는 것 같다.

화영이는 내가 온 걸 보고 다가와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화영이의 다크서클이 완전 진한 걸 보니 진짜 엄청 나쁜 소식일 것 같다.

“너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네 얘기야, 화영아? 무슨 일인데 그래?”

화영이는 걱정 어린 내 말을 무시하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차우진 씨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너도 한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우진이가 나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건강한 적이 없긴 했지만, 갑자기 나빠질 상태는 아니지 않았어? 요즘엔 많이 건강해져서 내 경기 보러 왔잖아.”

화영이는 내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우진이 병실 앞까지 날 끌고 갔다.

그리고 날 들여보내지 않고 잠시 설명을 들어 보라고 했다.

“어제 오후 경기가 끝나기 전에 우진 씨가 사라졌었어. 다행히 새벽에 찾긴 했는데, 누군가 우진 씨한테 3단계 가이딩을 한 것 같아. 범인은 지금 찾아내고 있어.”

“뭐야?! 센터 안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어떤 미친놈이야?!”

화영이의 이야기에 경악한 나는 병실 앞에서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화영이는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A급 경기 중에 한 거 보면 A급 참가자 중 한 명이겠지. 지금 수색 중이야.”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걸 못 찾아?”

나는 협회의 무능함에 열받아서 화영이의 손을 떼고 역성을 냈다.

화영이가 조용히 하라면서 내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두 번째로 입이 막히자, 잃어버렸던 이성이 돌아왔다.

‘후, 그래. 여긴 우진이 병실 앞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해.’

나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안에는 인사불성인 우진이 혼자 있었다.

신이 빚은 조각 같던 우진이의 얼굴은 눈두덩이에 시커먼 멍이 올라와 있고 탐스럽고 고왔던 입술은 다 터졌으며 목과 손, 손목까지 군데군데 멍이 든 게 보였다.

‘이 개자식, 누군지 잡히기만 해 봐라. 내가 가만 안 둔다 진짜.’

"새벽에 찾았다며… 왜 이능 치료를 안해준거야?"

이렇게 처참한 모습의 우진이를 보니, 슬프면서도 주변에 화가 났다.

‘다들 마음이란 게 없나? 어떻게 우진이가 이런 꼴인데, 이능 치료를 안 해주는 거지?’

화영이는 상심한 내 어깨를 붙잡고 병실 밖으로 이끌었다.

우진이의 병실에서 큰소리를 내면 안되니까 나는 얌전하게 화영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화영이는 의료센터 복도로 나오고 나서야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화영이가 말해주길, 지금은 가이딩 긴축 재정이라 목숨이 위험한 상태 아니면 안 해 준다고 한다.

게다가 우진이는 아직 교육도 안 받은 가이드라서 당장 가이딩 매칭도 못 하니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했다.

순간 욱할 뻔했지만 이건 화영이 잘못도 아니고 우진이도 멀지 않은 병실에서 자고 있으니 참았다.

그리고 아직 오후 경기가 남아 있어서 애들은 날 경기장으로 돌려보냈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질 않네. 범인 누구냐. 잡히면 내 손에 죽는다.”

심란한 상황이었지만 대련을 망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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