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에스퍼와 가이드 (5)
나는 1시부터 시작하는 대련 대회를 보기 위해 애들이랑 만났다. F급 에스퍼들은 수가 많지만, 전투에 사용할 만한 화력이 안 되기 때문에 참가자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연구팀도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경기도 한 번에 10개의 대련을 동시에 돌린다.
F급 에스퍼의 전투는 일반인의 전투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지름 500m의 원형 경기장에 패널을 세워 여러 개의 경기를 한 번에 한다. 딱히 관찰할 거리가 별로 없으니 빨리 끝내려는 협회의 의지이기도 하다. E급 결승전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치른다.
오늘은 F급의 경기를 모두 끝내려고 여러 개의 경기를 한 번에 빨리빨리 돌려서 그렇지 경기의 개수 자체는 많은 편이다. 경기가 많다는 뜻은 뒤집어 말하면 베팅할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F급 에스퍼는 낼 수 있는 이능 출력이 작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F급의 경기는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관중석은 의외로 사람이 아주 없지 않았다. 다들 모니터에 몰려서 토론하는 거 보니까 우리 같은 도박 중독자들인가 보다. 우리도 그 사람들처럼 모니터에 붙어서 누구에게 걸지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
결승전까지의 경기가 더 있으니 베팅할 거리는 얼마든지 더 있다. 우리는 지금 배정된 모든 경기에 베팅을 하고 관중석에 앉았다.
첫 경기는 강화계 대련이었다. 대련은 1대 1로 15분간 벌이며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항복 선언이 나오게 하면 승리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연구진들이 경기를 관람하며 이능력과 그를 다루는 센스, 대처 능력 등을 평가한다.
F급 강화계 에스퍼는 근력 강화라도 위력이 세지 않아 보는 재미가 없다. 그냥 힘센 격투기 선수 같다. 한방에 샌드백 정도는 터뜨린다고 하지만.
게다가 지금은 12경기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싸움 난장판 같다. 패널을 세워서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 줬지만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는 칸막이에 갇혀서 몸싸움하는 사람들로밖에 안 보였다. 차라리 모니터로 보는 게 더 재밌겠다.
적당히 관람하다가 재미없어서 간식거리나 사 오는 사이에 경기가 끝났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내가 건 사람이 이겼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전광판을 확인했다.
‘아, 이게 뭐야. 딱 절반 땄잖아.’
잃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아무 변화가 없으니까 시간만 버린 기분이다. 상혁이 놈은 5천 원 벌었다고 좋아했다.
이제 대련 대회의 꽃. 자연계 대련이 시작한다. 자연계는 숫자도 많아서 2세트로 나눠서 한다. 불 쏘고 물 뿌리고 전기 날리면서 싸우는데 재미없을 리가 없지. 자연 계열 이능은 흔하기 때문에 사람도 많다.
히히, 재밌겠다. 나는 방금 전에 사 온 팝콘이랑 음료수를 꺼내며 애들과 경기를 감상했다.
하지만 자연계 경기가 이렇게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래서 다들 F급 대련 안 보는 거구나. 이건 이능 대련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건…… 그냥 마술 쇼야. 싸움과 함께 벌이는 마술 쇼라고.
자연계 뇌 속성 이능력자가 정전기로 공격하는 건 처음 봤다. 정전기로 따갑게 만들어서 손 떼게 만드는 거 봐. 상대인 수 속성 이능력자는 손가락으로 물줄기를 만들어서 상대방 얼굴에 뿌린다.
“뭐야 이게. 네가 물뿌리개야? 어차피 수속성은 뇌 속성 상성에 진다고.”
내가 야유를 하고 있으니까 승환이가 오더니 저 물뿌리개 에스퍼가 내가 판돈을 건 에스퍼라고 알려 주었다.
“아 그래? 그럼 꼭 이겨야겠네, 내 5천 원이 걸려 있으니까. 물뿌리개 힘내라! 콧구멍에다 뿌려 버려! 세상의 편견에 맞서서 뇌 속성 정전기를 이기는 거야!”
내 응원의 덕택인지 물뿌리개는 정전기를 이기고 다음 경기에 진출했다. 아싸, 판돈 벌었고!
이 사람들 경기 하나하나에 내 5천 원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상기하니까 갑자기 경기가 재밌어졌다.
“꼭 이겨야 해! 내 5천 원을 위해서!”
나는 열심히 내 판돈을 위해 응원을 했다.
***
F급 결승전까지 모두 보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슬프게도 난 2만 5천 원을 잃었다. 상혁이는 7만 원을 잃어서 많은 위안이 되었다.
해미는 3만 원을 따고 승환이는 11만 원 땄다고 한다. 조승환 쟤 작년에 김상혁 때문에 돈 잃더니 미래를 보는 이능이라도 새로 발굴한 거 아냐? 어떻게 저만큼이나 딴 거야?
우린 다운타운으로 가서 11만 원을 얻은 승환이가 사 준 밥을 먹었다.
나의 도박 중독자 친구들은 내일 E급 대련에 또 돈을 걸러 갈 예정이라고 한다. E급 경기가 F급 경기보다 숫자가 많아서 더 쏠쏠하게 벌 수 있다나 뭐라나.
나는 많이 놀았으니 이제 대회 준비할 겸 안 가기로 했다. 우진이가 가이딩해 줘서 가뿐해진 몸으로 대회 준비 열심히 해야지.
***
드디어 B급 대련의 날이 밝았다. 계열 경기가 120개씩 있고 그렇지만 D급 경기부터는 경기 시간이 3분이기 때문에 이틀이면 결승전까지 다 치른다.
나는 오늘부터 대련을 계속 치르게 된다는 의미다. B급 결승 치르면 A급 경기도 나가야 하니까. 경기는 늘 그렇듯이 강화 계열부터 시작했다. 나는 이중 이능력자라 순서가 좀 뒤에 있다.
C급 에스퍼부터 종종 있는 이중 이능력자란 나처럼 두 가지 이상의 이능이 있는 에스퍼를 말한다.
겉보기엔 티가 잘 안 나는데 나는 금강불괴와 근력 강화 두 가지의 이능이 있다. 그래서 이중 이능이 아닌 근력 강화 에스퍼와 붙으면 내가 유리하다. 아무래도 난 상처가 안 나니까.
계열 경기가 한차례 끝난 뒤, 이중 이능력자들을 끼워서 계열 경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상대는 선글라스의 이현진 씨였다. 이분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강화 계열 에스퍼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능 차단 기능이 있는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지금처럼 레이저가 퓽퓽퓽 나온다.
“아! 따가! 시작하자마자 레이저를 쏘는 게 어딨어?!”
일단 나는 레이저를 최대한 덜 맞기 위해 냅다 뛰었다. 관중석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금강불괴라도 레이저 맞으면 뜨겁고 아프거든요? 급소를 맞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이현진의 레이저는 시야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온다. 지속적으로 대련 상대를 지지는 건 규칙 위반이기 때문에 하지 않지만, 현진 씨의 레이저는 띄엄띄엄 나를 향해 계속 날아왔다.
내가 금강불괴가 아니었으면 화상을 입었을 거다.
아 진짜 엄청 뜨거워!
나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로 보이면서 도망치고 있지만, 약점을 알고 있다.
저 레이저는 시야에 잘 닿지 않으면 위력이 약해지지.
콰앙!
어느 정도 멀어진 나는 땅바닥에 주먹을 날려 바닥을 부쉈다.
바닥이 부서지며 그 파편과 먼지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나는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시야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타다닷-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빠르게 이현진에게 다가갔다.
비록, 가까이 갈수록 내 위치가 드러나고 레이저를 강하게 맞을 수 있지만 상관없다.
흙먼지 입자 때문에 레이저의 위력도 떨어지는 데다가, 한 방만 제대로 맞추면 내가 이기니까.
나는 금방 이현진의 가까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나는 이현진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흙먼지 바깥으로 주먹을 뻗었다.
퍼억-
그렇게 이현진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꽂아넣는데 성공하고,
털썩
이현진도 K.O 시키는 데 성공했다.
1분 45초 만의 일이었다.
***
이현진과의 대련을 시작으로 강화 계열과의 대련이 이어졌다.
강화 계열은 주로 신체의 능력을 강화하는 에스퍼들이다. 격투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이현진 같은 계열은 좀 다르지만.
아무튼, 신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빠른 시간에 판단하는 게 승패를 좌우한다.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막은 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그대로 밀어냈다.
상대는 무게가 실려있던 주먹이 강한 힘으로 밀쳐지자, 균형을 잃었다.
물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나는 빈틈이 생긴 상대의 관자놀이를 쳐서 상대를 쓰러뜨렸다.
이현진을 상대했던 방식이랑 비슷하지만 원래 싸움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상대의 빈틈을 만들고 힘으로 제압한다.
이런 간단한 공식을 몸으로 이뤄내는 것이 대련이다.
대련에서 만나는 상대를 모두 빈틈을 보이게 만들어 쓰러뜨렸다.
가끔은 튼튼해서 한방에 안 쓰러지는 상대도 만났지만 그런 상대도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한번 때린 곳을 그대로 연속으로 때리면 다 쓰러진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대련에서 만난 상대 모두를 쓰러뜨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계열 경기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자 모두 끝났다.
내일부터는 계열 경기의 승자들과 결승전까지 달리게 된다.
나는 당연히 내일의 참가자로 올랐지만, 상혁이는 떨어졌다.
올해도 계열 경기를 통과 못 하는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위로주라도 사 주고 싶었지만, 내일도 경기가 있으니 대회 끝나고 사 줘야겠다.
오늘은 B급전 둘째 날이다.
나는 연달아 두 경기를 마치고 잠시 틈이 생겨 숨을 돌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누가 노크를 하더니 문을 열었다.
“하나, 잠깐 시간 있어?”
“어? 이화영? 지금 한창 바쁠 시간 아니야? 여긴 왜 있어? 그리고 나 아직 대답 안 했는데 선수 대기실 벌컥벌컥 들어오면 어떡해?”
내가 막무가내 행동에 대해 따졌지만, 화영이는 내 말을 무시하고는 따라오라면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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