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11화 (11/81)

11. 에스퍼와 가이드 (2)

난쟁이의 서식지라 땅굴의 통로는 천장이 낮았다.

걸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낮은 탓에 나는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짐승보다 못한 놈들은 자기들 서식지 아무 데나 배설을 하는지 이 좁은 통로에 지독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플래시를 비추며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난쟁이 놈들은 어찌나 재빠른지 뒤꽁무니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어간 끝에 통로의 폭이 넓어졌다.

곧 놈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드러날 것이다. 거기서 먹이를 먹고 생식을 하겠지. 천유하 씨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했다.

예상대로 비좁던 통로는 허리를 세울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동시에 난쟁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정면에 플래시를 비췄다.

“……!”

난쟁이 두 마리가 콧김을 뿜으며 내 앞에 서 있었다. 뒤쫓아 기어 오면서 플래시로 앞을 비췄으니 내가 있다는 걸 알았겠지.

퍽, 퍽!

손쉽게 난쟁이 두 마리를 빠르게 뭉개 버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두 마리를 유인한 걸로는 부족하다. 땅굴의 규모로 봐서는 백여 마리는 족히 있을 것 같았다.

놈들이 유하 씨에게 일을 벌이기 전에 시선을 돌려야 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니 통로와 비교도 안 되게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불빛을 비춰 보니 놈들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뭉쳐 있는 형상이 드러났다.

‘뭐야, 왜 뭉쳐 있는 거야?’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다급하게 유하 씨를 불렀다.

“유하 씨! 천유하 씨! 여기 계세요?”

내 목소리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니 빛을 비춰도 신경도 안 쓰던 놈들이 나를 향해 돌아봤다.

“빨리 비켜 이것들아! 유하 씨 무사한지 살펴봐야 하니까!”

놈들과 나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이능은 공성전에 활용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십 마리로 동시에 달려드는 놈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하나둘씩 달려드는 놈들을 뭉개고 터뜨리며 처리했지만 워낙에 수가 많아 개떼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난쟁이 놈들은 나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차기와 박치기를 하는 걸로 모자라 내 몸에 기어올라 깨물고 할퀴고 별짓을 다 했다.

그래 봤자 금강불괴인 내 몸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덕지덕지 들러붙고 매달리는 놈들 때문에 움직이는 게 불편하긴 했다.

나는 내 앞에서 덤벼드는 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마침내 몸에 매달린 놈들까지 모두 해치웠다.

놈들은 역시 유하 씨를 해코지하기 위해 모였던 게 맞았는지, 뭉쳐 있던 놈들을 치워 놓은 자리에는 유하 씨가 있었다.

“유하 씨! 괜찮으세요?”

나는 한달음에 유하 씨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유하 씨는 덩굴인지 뭔지 질긴 줄기로 칭칭 감겨 있었고 입에는 동물의 가죽인지 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게 물려 있었다.

‘이래서 대답을 못 하셨구나.’

나는 재갈을 풀고 덩굴을 뜯어냈다. 플래시로 유하 씨를 찬찬히 비춰 보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유하 씨.

‘…어?’

유하 씨가 무사해 안심하는 사이 갑자기 땅굴이 크게 진동했다.

쿠구궁!

큰 소리가 나더니 땅굴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딱히 보호할 수단이 없는 나는 몸을 날려 유하 씨를 보호했다.

“크흑!”

땅굴이 무너지며 거대한 바위와 흙덩이들이 내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런 채로 진동과 소음이 멈추길 한참 기다렸다.

나는 엎드려서 유하 씨가 있을 공간을 만든 채로 흙더미 밑에 깔려 있게 되었다.

무너진 파편에 맞아서 스마트워치가 고장 난 건지 플래시도 꺼져 버려 둘만 남은 좁은 공간은 어두컴컴했다.

“젠장……!”

소란이 멎고 먼저 유하 씨가 무사한지 확인하려 나는 입을 열었다.

“유하 씨, 무사하세요? 다리가 흙더미에 깔리거나 그런 건 아니죠?”

“……네, 저, 전 무사해요……. 강하나 에스퍼님은 괜찮으세요?”

“전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거만 빼면 괜찮아요. 가능한 상태이시면 불 좀 켜 주시겠어요?”

“아 네, 네. 지금 바로 켜 드릴게요.”

내 얼굴을 향해 직방으로 플래시를 켠 유하 씨는 깜짝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다. 나도 덩달아 놀라서 팔에 힘이 빠질 뻔했다.

……아니, 귀신 놀이하던 거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얼굴에 직방으로 빛을 쏜 걸 보고 놀랄 수도 있긴 한데. 코앞에서 그러시니까 좀 상처받을 것 같거든요.

유하 씨는 빛을 비춰서 내가 몸을 지지대로 써서 임시로 자신이 있을 공간을 만들어 준 걸 파악하고 날 걱정하며 울먹거렸다.

나는 금강불괴에 신체 강화 이능이라 괜찮다고 유하 씨를 안심시키고 스마트워치 신호가 잡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달칵달칵-

“시, 신호가 잡히지 않네요…. 어, 흐윽. 어, 어떡하죠…?”

“괜찮아요, 유하 씨. 울지 마세요. 금방 구조될 테니까 우린 체력이나 비축해두자고요.”

우리 위로 흙이 두껍게 쌓였나 보다. 아마 우릴 찾기 위해 다른 팀원들이 땅굴을 뒤지려고 이능을 쓰다가 오히려 땅굴이 무너진 것일 테다.

‘무너뜨린 놈 누군진 몰라도 일 끝나면 시말서 써라.’

아무튼 수색 작업에 들어갔으니 곧 우리를 찾아낼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모든 만사는 전화위복이라고도 하잖아. 난 이렇게 만들어진 유하 씨와 보내는 오붓한 시간이나 알차게 활용해 봐야겠다.

유하 씨도 가이드니까 화영이한테 들었던 이상한 얘기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팀원이니 친해지면 더 좋고.

“하하하, 어쩌다 보니 플랭크를 원 없이 해 보게 됐네요. 이러다 더 끝내주는 코어 근육이 생기겠는걸.”

“죄송해요…… 흐윽, 죄송합니다…… 강하나 씨. 괜히, 저 때문에……. 으흐흑.”

아니, 분위기 좀 띄우려고 농담한 건데 유하 씨를 울려 버렸다.

“괜찮아요, 유하 씨. 울지 말아요.”

나는 유하 씨를 달래고 우린 곧 구출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줄곧 궁금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운을 띄웠다.

“저희 에스퍼들은 이런 식으로 몸 쓰는 거에 이골이 났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만 해도 지금 생채기 하나 없잖아요. 그보다 저는 유하 씨가 더 걱정이네요. 사실 가이드들은 민간인과 신체가 비슷하잖아요. 이런 힘든 일에 제대로 된 보호도 못 해 드려서 죄송해요. 그래서 가이드 분들이 현장을 많이 힘들어하시나 봐요.”

“아니에요. 훌쩍. 강하나 에스퍼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이 최선을 다하시는 건 알아요. 저도 하나 씨 덕분에 무사한걸요……. 좋은 에스퍼 분들이 많다는 거 저희 가이드들도 잘 알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현장 복귀하는 거 겁내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어서 걱정했거든요. 지금처럼 능력이 부족해서 가이드 분들이 트라우마가 생기셨나 하고요.”

“아…… 그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에요. 그것보단…… 좀 더 근본적인 이유예요…….”

유하 씨는 그 말을 끝으로 우물쭈물하더니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흠, 어쩔 수 없지.’

나는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려 유하 씨랑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패닉에 빠지기 쉬우니까 긴장도 풀 겸 구조대가 올 때까지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꽤 오래 기다린 듯한데 구조대가 아직 우릴 못 찾았나 보다.

얼마나 오래 못 찾았냐면 피곤했던 유하 씨가 잠시 쪽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도 우릴 못 찾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가 우리가 갇힌 지 다섯 시간째였다.

“…….”

우린 갇힌 지 일곱 시간 만에 구조되었다.

구조해 준 애들 말에 따르면 나는 작은 동산 하나를 일곱 시간 동안 등에 지고 플랭크를 했다고 했다.

‘어쩐지 무겁더라.’

나는 깔린 직후 무게를 버티기 위해 계속 신체 강화 이능을 사용했었다. 팔다리가 다 후들거리고 어지러웠다.

***

‘뭐지?’

현장에서 구조된 직후 눈을 뜨니 의료 센터였다. 지금 옆에 있는 화영이가 얘기해 주길 이능 과다 출력으로 기절했다고.

‘오, 그랬구나. 이런 적은 좀 오랜만인데.’

화영이 옆에는 우진이랑 우린이가 앉아 있다.

헐? 이게 뭐지? 꿈인가?

“하나 씨, 괜찮으세요?”

‘우와아, 우진이가 날 걱정까지 해 준다. 꿈? 이거 꿈 맞지?’

우진이가 내 이마를 만져 보고 손을 맞댔다.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손의 감촉이 전해진다. 멍하니 우진이의 얼굴을 감상하다가 우진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가이딩이 필요해서 쓰러진 거라 들었어요. 아직도 필요하신 거면 제가 가이딩 해 드릴게요.”

아니 이게 무슨 위험한 말이에요, 교육 기간도 안 끝난 분이. 교육도 사전 교육밖에 안 받으신 분이 가이딩을 하신다뇨?! 그런 거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고요!

아직 교육을 안 받아서 매칭률도 모르고 조절하는 법도 모르는 가이드가 가이딩 함부로 하면 큰일 날 수 있었다.

게다가 받는 나도 큰일 날 수 있다. 미 교육 가이드한테 가이딩받게 된 경위 설명해야 하고 강제성이 없었는지 증거 자료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 삼키고 우진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 자씩 신중하게 뱉어 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우진 씨. 이제 전 괜찮으니까 마음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직 우진 씨도 가이딩을 잘 모르시니까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군요…….”

우진이는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며 손을 살며시 빼냈다.

차우진이라는 사람을 계속 만나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진이는 과묵하고 쑥스러움이 많다.

평소에 같이 있을 때도 주로 내가 이야기하고 우진이는 거의 듣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자기주장을 할 때는 별로 없는데 거절당하면 무안해하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웬만하면 받아 주고 싶은데 곤란한 건 곤란한 거라 확실하게 거절하는 게 좋겠지?’

게다가 지금 표정도 귀엽고.

똑똑-

귀여운 우진이를 감상하는 사이에 누가 내 병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