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9화 (9/81)

9. 차우진 (8)

하루가 지났지만, 우린이는 아직도 쉼터에 가길 거부한단다. 그래서 화영이는 우린이를 데리고 출근했다고 했다. 나도 오늘은 조깅을 안 나가고 화영이를 따라와서 우린이를 봐줬다.

우진이 순서를 가장 마지막으로 두고 회진을 돈 화영이는 우진이 순서가 되자 나를 불렀다.

나는 우린이를 안고 화영이를 따라 우진이 병실로 들어갔다. 우진이는 내심 자고 있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과 달리 일어나 있었다.

가만히 누워서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고 있던 우진이에게 화영이가 통보했다.

“안녕하세요, 우진 씨. 차우진 씨는 어제 17시부터 에스퍼 가이드 협회 소속의 가이드가 되셨습니다.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에스퍼와 가이드는 발견 즉시 협회에 소속시키고 있으니 본인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점은 양해 바랍니다.”

‘…와, 진짜 행정부 애들 신고 접수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시켰구나. 김상혁 놈도, 행정부 놈들도 아주 그냥 일 처리 속도가 끝내 주네.’

화영이의 일방적인 통보를 들은 우진이는 어안이 벙벙한지 눈만 끔뻑거렸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말이 안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우진이도 그런가 보다.

화영이는 우진이가 받아들이길 기다리지 않고 통보를 계속 이어 갔다.

“협회 소속 에스퍼와 가이드는 협회에서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민간인보다 우선적으로 보호하죠. 그래서 치료 시스템에도 차등을 둡니다. 협회의 새로운 가이드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협회원만 받을 수 있는 치료를 해 드리겠습니다.”

치유계 A급 에스퍼인 이화영은 신체를 복원하는 이능을 가졌다. 화영이의 이능은 목숨만 붙어 있다면 잘려 나간 팔다리, 녹아내려 손상된 피부 등 신체의 모든 걸 복원했다.

예전에 같이 임무를 할 때는 머리통이 절반 날아간 사람을 복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래 갖고 있던 신체의 원형으로 복원하는 이능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기형이나 지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화영이는 우진이 옆에 서서 한 손은 우진이 배 위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우진이의 코를 막았다. 우진이가 숨이 막혀 입을 벌리자, 입가에 다가가서 이능으로 만든 연기를 우진이 입에 토해 냈다. 한참을 우진이에게 연기를 먹이던 화영이는 치료가 끝났는지 고개를 들었다.

“차우진 씨의 손상된 장기는 완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능력으로는 체력을 회복시키지 못하며 후유증을 없애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또한 몸에 새겨진 충격도 완화할 수 없어 당분간 간헐적인 통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기억해 주세요. 당분간은 체력을 회복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안색이 나빠진 화영이는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갔다. 나는 화영이를 따라 밖으로 나가서 화영이에게 바칠 뇌물로 미리 사 놨던 막대 사탕을 종류별로 내밀었다. 재작년부터 담배를 끊은 화영이는 이제 입이 심심하면 막대 사탕을 물었기 때문이다.

“고생했어, 화영아. 신경 써 줘서 정말 고마워!”

“그냥 내 할 일 한 건데, 네가 왜 고마워. 너의 사랑 우진이는 한 달 넘게 못 움직여서 이제 재활해야 한다는 걸 일단 알아 둬. 사탕은 고맙게 받으마.”

“그래도 편의도 많이 봐주고 신경도 많이 써 줬잖아. 네 덕에 우진이가 살아나서 참 다행이야.”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살아온 네가 목매고 좋아하니까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 사정도 딱하고. 구출된 민간인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럼 난 이제 가이딩 받으러 가 볼게.”

화영이는 사탕 한 개만 받아서 입에 물고 나머지는 아기한테 주라면서 시크하게 센터 복도를 지나갔다.

다시 병실로 들어가니 우진이가 갓 태어난 아기 사슴처럼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어나려는 걸 보니 이제 배가 안 아픈가 보다. 일어나느라 말려 올라간 옷 사이에서 보이는 배를 보니 누렇게 올라왔던 멍 자국들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윽……”

우진이는 몸에 힘이 없는지 일어나려다가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우진이를 부축해 앉는 걸 도와줬다.

‘우와, 우진이가 이제 기대지 않아도 앉아 있는다!’

낯빛도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좋다. 역시 치유계 A급은 짱이다. 화영이가 바로 가이딩을 찾는 걸 보면 내상이 엄청났던 것 같지만.

“우진 씨, 괜찮으세요?”

“…….”

우진이는 아직도 방금 휩쓸고 지나간 일들을 정리하지 못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도 가이드로 등록됐다는 소식에 발작하지 않는 걸 보니 치료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잖아. 역시 건강이 최고인가 봐.’

한참을 고장 나 있던 우진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 아프지 않네요.”

우진이는 심경이 복잡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우진이가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달래서 난 우린이를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는데 우린이가 악을 쓰면서 싫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혼자 나왔다.

***

신규 에스퍼나 가이드는 이능 연구 센터에서 사람이 파견되어 사전 교육을 하고 연구 센터에서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집중 교육 기간은 3개월이고 그 이후에는 협회에서 짠 커리큘럼에 따라 훈련과 교육을 받는다.

에스퍼의 경우, 그 과정을 수료하면 자율적으로 스케줄을 조정해서 훈련받을 수 있다. 과정은 총 3년에서 5년 정도 걸린다. 그 이후는 자처하여 연구 센터에서 실험 조교를 하며 추가 수당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다운타운에서 알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우진이는 연구 센터에서 파견된 사람이랑 만나서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연구팀 사람들은 어딘가 좀 쎄한 구석이 많아서 벌써부터 우진이한테 내보이긴 좀 그랬다.

그래서 화영이는 우진이의 심신 미약을 빌미로 연구팀을 물리고 그나마 친분이 있는 나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우진이 병실에서 나오게 된 나는 중앙 센터에 가서 사전 교육 자료를 건네받았다. 신규 회원에게 사전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업무이기 때문에 진행자에게는 급료가 나온다.

‘돈도 받고 우진이도 보고 일석이조네.’

내가 우진이에게 뭘 가르쳐 줘야 하는지 자료를 살펴보았다.

‘…음, 에스퍼와 가이드에 대한 설명이랑 등급, 가이딩 단계 설명만 하면 되네.’

별거 없구먼. 쇠뿔도 단김에 빼랬으니 나는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다시 우진이의 병실 앞으로 갔다.

‘우진이 상태가 괜찮으면 설명 빨리 끝내야지.’

내가 미적거리면 연구팀에서 다른 사람을 파견해 버릴 거다.

병실 창문을 통해 우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설명을 못 해 주니까.

다행히도 우진이는 아까 전처럼 힘겨워하는 모습이 아니고 우린이를 안아서 달래고 있었다. 나는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하하…… 다시 와서 미안해요, 우진 씨. 그래도 이제 어떻게 생활하게 될지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간단한 설명을 준비했는데 들어 보시겠어요?”

“……네, 듣겠습니다.”

흔쾌히 허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진이는 대답을 하고 우린이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린이는 제 오빠에게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차우린, 오빠 놓고… 잠시 내려가 있어…”

“아, 긴 얘기는 아니니까 그냥 들어도 괜찮아요!”

우린이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우진이 가슴팍에 더 얼굴을 파묻었다.

2주 넘게 혼자 생존했다 구출되고서도 그동안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저럴 만도 하지. 나는 우린이를 이해하기로 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에스퍼 가이드 협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게이트 브레이크 후로 2년 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즈음부터 협회의 존재를 인식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이전부터 에스퍼와 가이드의 존재를 다들 아셨을 거예요. 게이트 브레이크의 여파로 많은 분들이 에스퍼와 가이드로 각성하셨으니까요.”

좋아, 서론은 잘 끊었다.

“그리고 점차 게이트 브레이크 이전에도 에스퍼와 가이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실 그렇죠. 에스퍼와 가이드는 게이트 브레이크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협회도 그 전부터 존재했죠. 협회는 세상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비밀리에 존재했지만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한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희 협회에 대한 설명이었고요. 이제 에스퍼와 가이드에 대한 설명을 해 드릴게요.”

그럭저럭 협회에 대한 설명을 잘한 것 같다. 이제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진이 표정이 별로다.

‘음,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자.’

나는 에스퍼와 가이드는 일반인과 다르게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F부터 S까지의 등급과 에스퍼는 강화계, 자연계, 정신계, 특수계로 나뉜다는 설명을 재빠르게 마치고 가이드에 대한 설명을 들어갔다.

우진이가 에스퍼를 무서워하니까. 가이딩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우진이가 말을 걸었다.

“그, 가이딩에 대한 설명은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뭔지 알아요…….”

“어…… 그런데 우진 씨는 협회 미 가입자였어서 정식으로 교육받으신 적이 없지 않나요? 일단 정규 교육 자료로 준비된 설명인데 한번 들어 보세요.”

“그래도…… 저도 뭔지 알고 있어요. 그, 가이드가…… 에스퍼한테 하는…… 그, 성 접대 같은 거잖아요…….”

우진이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보를 얘기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 눈을 피하면서 얼굴 붉히는 게 엄청 귀엽다. 그렇지만 잘못된 정보는 바로 잡아 줘야지.

“아하하! 가이딩은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발휘할 수 있는 이능이고 의료 행위예요. 아마 3단계에 대한 정보만 안 좋게 퍼져서 그런 인식이 생긴 모양인데 그런 건 긴급 상황만 아니면 잘 안 하는 거예요.”

“……”

잘못된 정보로 부끄러워하는 우진이가 귀여워서 조금 웃었더니 우진이 얼굴이 더 빨개졌다.

‘아, 진짜 귀엽네!’

나는 우진이에게 기본적인 가이딩을 설명하기 위해 우진이의 손바닥에 내 손을 포갰다. 우진이는 나보다 키가 커서 그런지 손도 길쭉하고 컸다.

“가이딩의 기본은 가이드와 에스퍼의 신체 접촉이죠. 그냥 이렇게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손만 대면 할 수 있어요. 가이딩은 가이드만의 고유한 이능이라 이렇게 저랑 손을 맞대고 있어도 우진 씨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거예요. 에스퍼가 필요로 해도 가이드가 시작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가이드만의 이능이 ‘가이딩’이랍니다.”

설명하면서 너무 가까이 붙어서 답답했는지 우진이 품에 안겨 있던 우린이가 날 밀어냈다. 이 정도면 사전 교육으로 전할 정보는 다 전한 것 같으니, 나는 우진이에게 퇴원하면 가이드 전용 숙소에서 지내게 될 것이란 설명을 마지막으로 하고 이만 마무리했다.

이제 오후 훈련 참가해서 다시 착실하게 살아야지. 곧 대련 대회도 코앞이라 열심히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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