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차우진 (6)
오랜만에 얼굴 보고 만난 김에 난 그동안 못 물어본 걸 우진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우진 씨가 가이드라는 걸 들었는데요.”
“쿨럭!”
우진이가 주스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마시던 주스도 토하고 다 흘렸다.
“우진아 괜찮아?”
나는 주변에서 티슈를 뽑아 주스를 닦아 내고 우진이의 상태를 살폈다. 하필 토마토주스여서 각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우진이는 금방 기침이 멎었다. 물론 각혈하지도 않았다. 진정된 우진이가 잔기침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십니까?”
“그게, 아직 등록 안 되어 있으시면 등록하시는 게 어떤가 해서요. 아무래도 협회에 소속되면 생활도 안정적이잖아요. 주거도 나오고 수입도 생기고. 문화생활도 가능하고요.”
“……가입하면, 여기 있는 에스퍼들이 다 알게 되는 거죠? 내가, 가이드란 걸, 요.”
“어, 그렇죠? 에스퍼한테 가이드는 꼭 필요하니까요. 누가 있는지 알고 매칭하고 그래야 하니까.”
내 말을 들은 우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나를 붙잡고 매달렸다. 내 옷깃을 붙잡은 우진이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제가, 제가 가이드란 걸 잊어 주실 수는 없나요? 그냥 제가 일반인이라고 기록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진 씨, 잠깐 진정해요!”
진짜 화영이 말대로잖아?!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 몰랐는데…….
일단 발작하는 우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옆에서 우린이가 겁먹은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다.
‘어떡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이 남매가 날 안 무서워할까?’
일단 급한대로 우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우진 씨, 괜찮아요. 에스퍼가 우진 씨 가이드인 거 알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저랑 화영이도 에스퍼고 우진 씨 가이드인 거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줄곧 낯빛이 창백하던 우진이는 내 말을 듣고 결국 기절해 버렸다.
***
큰일이다. 어제저녁 이후로 우진이가 나를 무서워한다.
난 그냥 오늘도 인사차 들렀을 뿐인데 나를 본 우진이가 새파랗게 질리면서 덜덜 떨었다. 옆에 있던 우린이마저도 오빠가 무서워하니까 나를 별로 안 반긴다.
슬프게도 어제저녁의 여파는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의료 센터를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화영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더니 우진이가 화영이의 진료를 거부하게 됐다고 화영이한테도 무지 혼났다.
나한테 실컷 화를 내던 화영이는 결국 우진이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너무한 처사에 울컥했지만 날 무서워하던 우진이를 떠올리고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내가 잠시 참기로 하자.’
우진이 얼굴 감상을 한동안 못하겠네. 취미 생활을 못 하게 됐으니 운동이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제 좀 있으면 대련 대회도 열리니까.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가니 다들 대련 대회 준비 중인지 사람이 많았다.
‘흠, 쟤들한테 질 수 없지.’
나도 체육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서 하던 대로 했다.
나는 협회에서 훈련용으로 지급해 준 쇳덩이를 지고 한창 스쿼트를 했다. 300개쯤 하는 중인데 상혁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지? 쟤가 수련 중에 날 찾는 일은 별로 없는데.’
까만 봉투를 들고 온 상혁이는 다짜고짜 봉투에서 맥주병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소주 한 병 더 꺼내서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체육관에서는 음주 금진데요, 김상혁 씨.’
상혁이의 기행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어쩔 수 없이 상혁이를 데리고 체육관을 나갔다.
“자, 이제 말해 봐요, 김상혁 씨. 뭔 일인데?”
소주 반병을 원샷한 상혁이는 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악, 술 냄새!"
심란한 친구 앞에서 할 행동은 아니지만 난 코를 부여잡았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야, 뭐야? 무슨 일인데? 화학 테러 말고 말로 해.”
상혁이는 알콜의 힘으로 업그레이드된 슬픈 목소리로 주절주절 사정을 늘어놓았다. 두서없는 상혁이의 이야기를 정리하지면 이랬다. 상혁이의 가이드 고정호 씨가 상혁이의 면회를 거절한단다.
상혁이가 이번에 임무를 나갔다가 이능 발작을 일으켜서 고정호 씨에게 상해를 입혔는데 고정호 씨는 이 사건으로 상혁이의 담당을 그만두겠다고 한단다.
하긴 상혁이가 이능 발작으로 고정호 씨에게 상해를 입힌 건이 이번으로 다섯 번째다.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을 만도 하지.”
나는 고정호 씨에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상혁이는 이능 발작은 에스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현장에서 이능 발작을 일으켰다는 건 그만큼 과로했다는 의미인데 이해해 줘야 하는 부분이 아니냐고 했다.
"어, 그래. 듣고 보니 네 말도 옳다."
나는 적당히 상혁이를 달래며 얘기를 들어 줬다.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우진이 얘기를 묻는다. 어제 각자 병문안 선물을 사서 갈라졌으니 생각이 났나 보다.
에휴, 상혁이를 위로해 줄 겸 같이 망한 내 병문안 얘기를 해 줬다. 우진이가 이제 내가 에스퍼인 줄 알게 돼서 날 무서워한다고.
내가 에스퍼니까 혼자서 조깅 갔다가 우진일 구했지, 민간인이나 가이드였으면 가능했겠냐고.
나는 이왕 털어놓는 거 우진이에게 섭섭했던 점까지 상혁이에게 털어놓았다. 가만히 내 얘길 듣던 상혁이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근데 왜 기절할 정도로 에스퍼를 무서워해? 네가 맨날 노래를 부르는 차우진, 설마 가이드냐?”
‘어? 뭐야, 이 자식 어떻게 안 거지?’
난 우진이의 비밀을 밝히고 다닐 생각이 없다. 어차피 협회에 가입될 게 훤하긴 해도 그렇게 싫어하는데 당장 가입시키고 싶지도 않다고.
그러나 김상혁은 새로운 에스퍼나 가이드는 무조건 협회에 가입시키는 규칙을 잘 따르는 놈이다. 저놈은 우진이가 협회 미가입자 가이드인 걸 알면 당장 중앙 센터 가서 신고할 놈이었다.
퍽!
나는 우진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에 취한 상혁이의 뒤통수를 후려져서 기절시키고 숙소에다 눕혔다.
***
오전 훈련을 마친 나는 점심을 먹고 센터 건물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무작정 걷는 거라 중앙 센터 뒤편에 있는 민간인 보호 시설까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센터 근처에는 어린애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 누구지?’
주위를 살펴보니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우린이였다.
‘점심시간인데 쟤가 왜 밥 안 먹고 저기서 저러고 있지?’
일단 나는 우린이에게 다가가서 달래 주었다. 애를 달래는 김에 밥 안 먹고 왜 여기 있냐고 물었더니, 오이가 나와서 먹기 싫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 오빠들이 너무 무섭고 여기가 싫다고 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쏟아 낸 우린이는 자기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을 마친 뒤,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알았어, 오빠 보여 줄게. 울지 마!”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나는 우린이를 안고 의료 센터로 뛰어갔다.
‘…우진이가 나는 안 보고 싶어 해도 우린이는 보고 싶어 할 테니까 괜찮겠지?’
나는 귀청이 떨어져라 크게 우는 우린이를 데리고 허겁지겁 우진이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운이 좋게도 우진이는 자고 있었다. 우진이가 나를 못 봐서 다행이다. 또다시 우진이가 나를 보면서 떠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무리 나라도 조금은 상처받을 것 같았거든.
나는 우린이를 우진이 옆에 놔두고 슬쩍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린이가 나를 막았다.
자고 있는 우진이를 보더니 오빠를 깨우라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 얘가 왜 이래? 우린아, 오빠 아파서 자야 한 대”
내 말을 들은 우린이는 오히려 더 악을 쓰고 울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우진이는 깨지 않았지만 난 우린이를 안아 들고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나와도 우린이가 계속 울어서 결국 의료 센터 밖으로 나가야 했다. 센터 밖으로 나온 뒤에도 우린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우린이에게 뚝 하면 오빠를 볼 수 있다고 열심히 회유했지만 우린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울었다. 결국엔 나도 지쳐서 그냥 벤치에 앉아, 우린이 등만 토닥여 줬다.
“흑흑… 으아아앙!”
“으아… 우린아, 제발 그만 울어.”
그런 우리를 안쓰럽게 본 건지, 지나가던 의료국 직원이 우린이한테 주스를 쥐여 준 덕분에 우린이는 울음을 그쳤다.
주스를 준 직원은 화영이랑 같은 팀원으로, 우진이랑 우린이 사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우진이를 담당하는 의료팀은 우린이가 면회 시간을 한참 넘겨도 그러려니 놔두고, 가끔은 의료 센터에서 우린이를 재우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봐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린이가 머무는 쉼터가 우린이가 적응하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이다.
에가협의 난민 쉼터는 보육원의 기능을 담당하지만 이곳에 10세 미만의 아이들은 거의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보금자리를 꾸린 다운타운 거주자들이 아이를 입양해 가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린애들이 얼마 없기도 했지만.
그런 이유로 쉼터에서 보호하는 애들은 대부분 입양을 거부하는 청소년 애들이다. 그런 걔들이 6살 우린이랑 놀아 줄 리가 없지.
그뿐만 아니라, 쉼터에서도 우린이를 전담해서 돌봐줄 수 있는 사정이 안 되었을 것이다. 쉼터에 애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담당 인력도 얼마 없다고 들었으니까.
그래서 의료국 직원에게 사정을 들어 보니, 우린이가 떼를 쓰고 울면 쉼터 측에서 우린이를 의료 센터로 보내 주기도 했나 보다.
‘어쩐지 어느 날은 내가 안 데려왔는데도 있더라니…….’
나는 우린이가 안쓰러워서 점심시간 내내 같이 있어 줬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후 훈련 스케줄까지 10분밖에 안 남게 되었다. 이제 슬슬 자릴 털고 일어나려는데 우린이가 내 바지춤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뚱한 표정으로 가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개인 사정으로 훈련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우린이의 손을 떼어 내고 내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우린이는 다시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저 자판기에서 과자 하나 뽑아 주고 주스랑 과자 먹는 거 봐줬을 뿐인데, 애가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하아……"
덕분에 오후 훈련은 땡땡이치게 되었다. 나 웬만하면 훈련 안 빠지는데 우린이가 이걸 해냈네.
옆에 있어 준다고 하니 우린이는 이제 울지 않았다. 하지만 애 얼굴이 완전 똥 씹은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우린이의 우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애를 데리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즐기려면 속세의 것이 짱이다.
’…그러고 보니 얘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에 태어났댔지? 문명의 거리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라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무난하게 놀기 위해서 우린이를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로 다운타운의 영화관은 DVD방에 더 가깝다고 하지만 우린 영화관이라고 부른다. 신작 영화는 영원히 안 나오지만.
영화관의 방 하나를 차지한 우린이와 나는 공주가 마법을 뿅뿅 쓰면서 모험하는 만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에 와서 케이크도 먹였다.
나는 최대한 우린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쥐어짜서 제공했건만, 우린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영화 보고 케익도 잘 먹는 걸 보면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애가 웃지를 않는다.
‘얘 어떡하냐. 중증이네, 이거.’
한참 당분을 제공하면서 우린이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카페 창밖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