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차우진 (4)
화영이와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여기는 크림 생맥주가 있어서 참 좋았다. 역시 음식은 싸제 음식이다.
‘센터도 밥은 잘 나오지만 이런 번화가 음식은 안 나온다고. 술도 없고.’
크리미한 맥주 거품을 벌컥벌컥 넘기고 나니 센터 안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해방감이 느껴진다.
술잔을 내려놓고 보니, 화영이가 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뭐야, 왜 그러는데?”
“개인 정보라서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말이야. 넌 보호자고 어차피 협회 일이니까 말해 줄게. 잘 들어.”
“뭔데 그래? 우진이 일이야? 이미 신상도 다 털어봐 놓고 왜 망설여?”
“그 사람, 가이드야. 급수는 D급.”
“우와, 진짜? 그럼 우진이도 이제 협회 들어가서 같이 일하는 거야? 완전 짱이네?”
“협회는 이능력자인거 알면 무조건 가입시키니까 그렇긴 한데. 아직 협회에는 안 알리고 본인한테만 얘기해 줬거든. D급 가이드이신 거 알고 계시냐고. 그랬더니 그거 듣고 기절했어.”
“엥? 네가 그냥 타이밍 잘못 맞춘 거 아니야? 졸릴 때 말 걸었다든가.”
“……너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렴. 아무튼 그 사람은 그러고 나서 다시 깨어나니까 퇴원시켜 달라고 했어. 난 그 사람이 협회 소속 가이드를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이상하잖아. 협회원이 되는 걸 왜 싫어해? 센터 밖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지 않아? 적어도 다른 사람이 약탈할까 봐 불안하지는 않잖아. 문명적인 생활도 보장되고.”
“그건 네가 에스퍼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야. 가이드가 아니라.”
화영이는 그 말을 마치고 맥주를 쭉 들이켰다.
‘아니, 당신도 에스퍼잖아요. 치유계이긴 해도 당신도 본질은 에스퍼거든? 가이드가 아니라.’
화영이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일단 협회에는 비밀로 부칠 생각이라고 했다. 나도 당장에는 그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직 우진이도 많이 아프고 말이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
운동, 훈련, 식사로만 꽉 차 있던 내 하루 스케줄은 ‘우진이 병문안’과 함께 ‘우린이 놀아 주기’가 추가됐다. 두 개를 한꺼번에 처리하긴 하지만.
사실 우린이의 놀이 친구가 되어 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나는 우진이가 우린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냥 우린이를 데려왔다가 데려가는 역할만 했었다.
그런데 우린이가 오빠가 안 놀아 주고 잠만 잔다고 여기가 싫다고 우는 바람에 애를 달랠 겸 놀아 주게 되었다.
이왕 놀아 주는 거 최선을 다해서 놀아 줘야지.
“뭐 하고 놀까, 우린아?”
소꿉놀이나 종이접기 같은 얌전한 걸 예상했던 나는 우린이의 높이 던지기를 해 달라는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 오빠가 힘쓰는 거 전문이거든. 지겨울 만큼 해 줄게!”
하지만 먼저 지쳐 떨어지는 건 나였다.
‘헉헉… 아니, 무슨 애가 이렇게 체력이 좋아?! 고작 여섯 살이면서! 그렇게 삐쩍 말랐으면서! 1미터 날았다가 떨어지는 것도 1시간쯤 했으면 지겨울 때도 됐잖아!’
나는 힘드니까 이제 다른 놀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린이는 관대하게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놀이를 하자고 했다.
우린이와 내가 새롭게 하는 이 놀이의 이름은 인간 자이로드롭이다. 지금 내가 붙인 이름이다.
나는 지금 우린이 양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우린이를 공중에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 살이 이렇게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나이인 줄은 몰랐네. 아무튼 이왕 시작한 거 신나게 즐겨야지.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놀이시간 끝은 아름답지 못했다.
“으아아아앙!”
자이로드롭 놀이를 하다가 우린이가 울었기 때문이다. 당황해서 우린이를 살펴보니 왼쪽 팔이 축 늘어지고 좀 길어진 거 같다.
…어깨가 빠졌나 보다.
“어린애 팔은 맞춰 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니까 지나가던 의료국 직원이 우린이의 팔을 끼워 줬다. 우진이가 자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우진이는 우린이랑 재회한 뒤,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그 감기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잘 낫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진이는 퇴원하겠다고 떼를 쓴 날부터 내가 우린이랑 놀러 오는 지금까지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우린이가 오빠를 만나러 와도 같이 놀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린이는 기껏 만나게 된 오빠가 잠만 자니까 침울해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팔까지 빠졌으니 기분이 평소보다 매우 나빠 보였다.
“…….”
오늘은 결국 우린이를 쉼터에 데려다주고 나 혼자서 다시 우진이를 보러 왔다.
우린이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깨어 있는 우진이를 보고 싶다. 자는 얼굴도 좋지만 우진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우진이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몇 번 못 들어 봐서 아쉽다고.
나는 하루의 대부분 잠들어 있는 우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지만 오늘도 그른 것 같다. 그냥 철봉 운동이나 하러 가야겠다.
***
대괴수 섬멸팀은 협회의 임무를 받아 B구역에 나타난 거대 말벌 떼를 처리하러 출동했다. 대괴수 섬멸팀은 47명으로 인원이 꽤 크기 때문에 분반해서 헬기를 나눠 타고 출동한다.
우리 팀을 실은 9대의 헬기는 상공을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구역 근처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갑자기 돌풍이 들이닥쳤다.
이 바람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맨 하늘에 갑자기 풍압이 생길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 부자연스러운 바람으로 인해 재수 없게도 우리가 탄 헬기만이 방향을 잃고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재빨리 조종판으로 가서 수동 조작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강한 풍압에 날개가 망가졌는지 방향 전환이 되질 않았다.
이 빌어먹을 바람은 한번 들이닥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어이 날개를 박살 냈다. 아무래도 말벌 괴수 중에 이능을 쓰는 놈이 있는 듯했다.
그저 잠깐 불어닥친 강한 바람이었던 것은 지속적으로 몰아쳐 대며 우릴 가뒀다.
“젠장…!”
우리가 탄 헬기는 거센 바람 속에 속절없이 휘말려 회전했다. 풍압을 못 견딘 창문이 산산조각이 나고 헬기의 문짝도 바람에 뜯겨 날아갔다. 우리는 그 속에서 안전벨트만 꽉 붙잡은 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착륙했다.
염동력자인 주하가 최선을 다해 헬기를 지켜 냈기 때문이다. 주하는 S급 에스퍼답게 그 난리 속에서 모두를 무사히 지켜 내고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S급 염동력자도 바람에 날아가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우리는 다른 팀원들과 따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각 헬기의 탑승 구성원은 공격 조원, 탐색 조원, 의료 조원과 가이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따로 떨어져 나가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구성을 추려 낸 것이다.
파직- 지지직.
우리는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전을 하려 했으나 무전이 먹통이었다.
상공은 아직도 바람이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지면은 무사한데, 5~6m 떨어진 하늘이 위험한 걸 보면 저건 괴수의 능력일 것이다. 지금 눈앞에는 보이지 않아도 저 앞에는 괴수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지까지 빙 돌아가기로 했다. 수백 마리의 말벌 괴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나아갈 수는 없으니까.
활동하기 좋은 최소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적이다. 대부분 짐은 보급품 헬기에 있고, 우리는 최소 단위의 활동조이기 때문에 물자도 최소한으로 꾸렸기 때문이다.
탐색 조원인 나랑 의료 조원인 김준서, 공격 조원인 송주하까지 해서 3명의 에스퍼와 송주하의 담당 가이드인 서레아 씨로 구성돼 있다. 활동이 가능한 구성이긴 한데 장기전을 치르기엔 가이드가 부족한 구성이다. 주로 담당 가이드는 에스퍼랑 1대 1 비율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하는 S급인데 레아 씨는 A급이다. 매칭률은 다행히 68%로 높은 편이지만 레아 씨는 주하가 아닌 우리와는 매칭률이 낮다. 난 40%대였나? 준서는 16%인가 그랬던 기억이 난다. 주하만 가이딩하기도 벅차서 우린 신경 못 써 주겠지만 애초에 주하가 아니면 가이딩도 힘든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이능을 아끼면서 합류하고 싶었지만 주하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주하는 경로에 대한 토의가 끝나자마자, 우릴 염동력으로 들어 올렸다.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송주하는 염동력으로 우리를 들어 올리고 허공을 날았다.
나는 이능을 아끼고 싶어 주하를 만류했지만 주하는 최대한 빨리 합류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어차피 주하의 염동력에 붙들린 채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주하의 의견을 따랐다.
우리는 주하의 이능에 몸을 맡기고 날아서 이동했다. 세찬 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허공을 날고 있는데 어디선가 거대한 드론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팀에서 보낸 드론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소리의 정체는 곧 모습을 드러냈다.
“!!”
소리의 정체는 우리가 퇴치하러 온 말벌 괴수였다.
정체를 알아낸 보람이 없게도 우리는 말벌 괴수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150센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말벌들이 우릴 공격하기 위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이렇게 공중에, 그것도 자의도 아닌 타의로 떠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위험 표지판처럼 노랑과 검정으로 이루어진 외골격의 괴물들이 들이닥치는 걸 바라볼 뿐이었다.
나야, 외상을 입지 않으니 괴수의 공격 자체는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팀원들은 어쩌지?’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괴수들은 우리에게 닿지 못했다.
유일하게 공격이 가능한 상태인 주하가 자기장을 펼쳐서 우릴 보호한 것이다. 주하는 거시에서 더 나아가 염동력으로 괴수들을 공격했다.
말벌 괴수의 외피는 두껍고 단단해서 어지간한 압력으로는 찌그러지지 않았다.
S급 에스퍼인 주하는 순수하게 염동력의 압력만으로 괴수의 외피를 망가뜨릴 수 있겠지만, 주하는 그러지 않았다. 이능 출력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능은 되도록이면 아끼는 게 좋다. 그래서 주하는 압력으로 외피를 터뜨리는 대신에 그보다 약한 출력으로 외피 사이의 무른 곳, 괴수의 관절을 비틀어 뜯어 버렸다.
쩌저적.
염동력으로 말벌 괴수를 찢어 죽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개체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주하는 S급답게 새카만 구름 같던 괴수 떼들을 모두 해치웠다.
“우와, 역시 송주하.”
어림잡아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괴수 떼를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금방 처리하는 걸 보니 S급이 대단하긴 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능을 너무 많이 사용했는지 주하는 말벌 괴수들의 사체가 후드득 떨어지는 걸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어, 라?”
그와 동시에 염동력이 끊긴 우리는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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