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4화 (4/81)

4. 차우진 (3)

중앙 센터 데스크에 왔더니 행정부 승환이를 만났다. 승환이는 강화계 A급 에스퍼로 천리안 이능력자인데 현장 임무를 나가기보단 주로 행정 일을 한다.

잘은 모르겠는데 행정 일하는데 이능이 꽤 도움이 된다나 어쩐다나. A급이나 되는 에스퍼인데 현장에 파견되는 게 훨씬 보람 있고 즐겁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승환이는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서 우리처럼 파견 임무 나가느니 콕 박혀서 행정 업무 보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아, 승환이를 만난 김에 우진이가 넣은 실종 신고 건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물어봐야지.’

한참 실종 신고 팀원 추려 냈는데 내 경위서가 들어가면 분명 행정팀에게 미움을 샀을 것이다.

‘어느 누가 얼마나 삐졌는지 알아내야 해. 그래야 각 잡고 기분을 풀어 주지.’

신청서를 접수한 나는 곧장 실종 신고의 진행 현황을 물어보았다. 승환이는 잠깐 알아보더니 내게 대답을 해 주었다.

승환이의 말에 따르면 우진이의 신고는 아직 접수되기 전이라서 피해 본 행정 직원은 아무도 없고, 내가 알아서 다 처리했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고 한다. 승환이는 한술 더 떠서 다른 실종 사건들도 해결해 줄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이런 게으른 행정부 놈들.’

그 실종 신고 한 건 한 건에 사람의 목숨과 가족들의 슬픔이 담겨 있거늘.

그렇지만 매일 수십 건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니 쟤들도 바쁘겠지.

남한테 떠넘기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신고된 괴수 처리하고 그거 뒤처리하기도 빠듯한데 민간인 한 명 한 명을 찾으러 다닐 인력이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말이다.

굳이 임무의 경중을 따지자면, 실종자 찾기보다는 괴수 처리가 더 중요하다. 괴수는 지속적으로 인명 피해를 내니까.

상혁이가 속해 있는 인명 구조팀도 처음엔 민간인 한 명 한 명을 구하러 가기 위해 꾸려진 팀이었으나, 인원 부족이랑 물자 부족 때문에 괴수 피해 현장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자잘한 민간인 신고 건은 담당팀이 따로 없고 비어 있는 시간대가 맞는 에스퍼들로 대충 땜빵을 채워서 팀을 꾸린다.

나처럼 혼자서 멀쩡하게 괴수 처치까지 가능한 에스퍼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꼭 팀을 꾸리는 게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팀이 바라는 것처럼 접수되기도 전에 자잘한 실종 건수들을 해결해 줄 에스퍼는 없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행정팀에서 날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난 이 경위서 건을 꼭 긍정적인 인사 평가로 반영해 달라 부탁하고 오후 훈련을 받으러 갔다.

***

오후 일정이 끝나갈 때쯤, 화영이한테서 우진이 일로 연락이 왔다. 우진이가 자긴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안 되니 퇴원하고 싶다고 한단다.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퇴원을 해?’

나는 어이가 없어서 곧바로 우진이를 보러 달려갔다.

우진이 병실에 도착하니, 화영이랑 의료팀이 퇴원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우진이를 붙들어 말리고 있었다.

우진이가 거동이 불편해서 그런지, 의료팀은 우진이를 제압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퇴원하겠다고 우기기만 하는 우진이를 옆에서 진정시키며 설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우진이는 혼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침대를 세워 기대서 앉아 있었고 아파서 큰 목소리도 못 냈다.

“저런 꼴로 무슨 퇴원을 하겠다는 거야?”

나는 우진이를 말리기 위해 의료팀에 가세했다.

“우진아! 병원비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보호자로 치료비 냈어.”

에가협 치료 센터는 괴수 처리반 에스퍼와 가이드는 무상으로 치료해 준다. 동반자 2인까지는 무상으로 치료해 주지.

‘우진이는 내 동반자 자격으로 무상으로 치료받았으니 내가 낸 거 맞지, 뭐.’

그리고 이젠 의료 보험 같은 건 없는 세상이라서 치료비가 어마어마하다고. 아프면 끝장이야.

내 말을 들은 우진이는 파리한 얼굴로 날 보더니 안 그래도 괜찮고 미안하다며 내 호의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우진아, 내 호의를 안 받으면 넌 죽는다고. 네가 퇴원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 복횡근 손상돼서 당분간 못 걷는대!"

나는 한시라도 빨리 우진이를 말리기 위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런데 우진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뭐랄까 좀 기분 나빠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는 지레 찔끔해서 말투를 다시 다듬었다.

"그, 우린이는 어떻게 돌보려고 그래요, 그런 몸으로?”

나는 필사적으로 핑계를 대기 위해 우린이 얘길 꺼냈다.

우린이 이야기가 나오자 우진이는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우린이가 어딨는지 찾기 시작했다. 겨우 우진이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린이 얘기로 살살 달래야겠다.

“우린이는 지금 안전하게 민간인 보호 쉼터에 있어요. 아직 어린이 교육 시설 같은 건 없지만 보육원 역할을 대신 해 주기도 하니까 쉼터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우린이 얘기를 꺼내니까 우진이가 몸부림을 멈추고 얌전해졌다. 이제 우진이에게 치료비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설명을 하기 전에 잠시 내가 짧은 평화를 느끼는 그 틈을 타서, 화영이가 우진이에게 주사를 찔러 넣었다.

“저기요, 뭐 하는 거예요? 그거 안정제야?”

내가 당황해서 마구 따지는 사이에, 안정제를 맞은 우진이는 축 늘어져서 아주 얌전해졌다.

우진이를 재운 의료팀은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나도 화영이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

아까 통화할 때 자세한 얘기를 못 들었기 때문이다.

“자, 이화영 씨, 말해 봐요. 우진이가 왜 저런지.”

나는 일부러 존댓말을 해가며 차갑게 물었다. 우진이가 왜 갑자기 퇴원 얘기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저런 중상의 몸으로 다짜고짜 퇴원을 한다고 할 거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비 얘기도 핑계일 거 같고. 나보다 먼저 있었던 화영이는 알겠지.

그러나 우리 화영 씨가 말하길,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우진이는 약에 취해서 자다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의료진을 부르더니 퇴원시켜 달라고 하더란다.

“뭐야…… 그럼 갑자기 왜 그런 거지? 우진이랑 대화를 해 보고 싶은데 이화영씨가 우진이를 재워 버렸네요. 어쩔 거야, 이거.”

내가 한창 투덜대자 화영이가 말했다.

“강하나, 한잔하러 갈래?”

“음, 무술 수련하러 가려고 했지만, 좋아! 이화영이 쏜다니까. 오랜만에 공짜 싸제 음식 먹으러 가자!”

우린 화영이의 자가용을 타고 센터에서 5km 떨어진 다운타운으로 갔다. 에가협 센터 근처에 있는 다운타운은 구조된 민간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협회의 영향을 받는 민간인 마을이다.

7년 전, 게이트 브레이크로 세상이 망했다. 망한 세상의 은행은 한참 전에 무너졌고 화폐도 흐지부지됐지만 에가협은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여 협회원들이 사용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화폐는 협회 사람이 아닌, 에가협에서 치료받은 민간인들에게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민간인들은 이 돈이 없기 때문에 치료를 받고 나면 협회에 빚을 지게 된다. 졸지에 빚쟁이가 된 사람들은 센터에서 소일거리를 도맡아서 에가협에 진 빚을 갚는다.

이렇게 본의 아니게 협회원도 아니면서 센터에 붙어 살게 된 사람들은 센터 근처에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빚을 다 갚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을에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생기던 가게들로 마을만의 작은 시장이 생겨나더니, 점점 번화하여 지금의 다운타운이 되었다.

게이트 브레이크 전, 번화가만큼은 못하지만 나름 있을 건 다 있다. 식당, 술집, 카페, 오락실, 영화관 등 놀거리가 풍부하다. 최근엔 볼링장도 생겼다고 했다. 화영이랑 나는 감자튀김이 유명한 햄버거집으로 들어갔다.

“앗, 안녕하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 대괴수 섬멸팀 김희원 팀장님이 계시네? 옆에 송주하도 있는 걸 보니 S급 염동력자 회식인가 보다. 이왕 만나게 된 거 난 반갑게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우리 공격 조원님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화영이도 아는 사람이었는지 나와 같이 인사를 건넸다.

하긴 S급 에스퍼들은 의료국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저 둘은 한국지부 협회에 있는 S급 중에서도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이니까.

S급들은 낼 수 있는 이능력 출력이 큰 만큼 이능 조절을 힘들어한다. 이능 조절은 수도꼭지로 수압을 조절하는 거랑 비슷하다. 한번 열어서 물 한잔 받았다가 다시 잠그려면 댐의 수문보다 싱크대 수도꼭지가 더 쉬운 것처럼.

갖고 있는 이능력이 매우 큰 S급들은 이능으로 사고 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그 거대한 출력량으로 이능을 막 쓰다가 이능력 과다 출력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에스퍼 개인이 위험해진다. 이능력 과다 출력을 하면 뇌압이 올라가고 그대로 뇌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능력 과다 출력을 했을 경우에는 가이드의 가이딩으로 뇌손상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협회에서는 에스퍼와 가이드는 페어를 맺어 활동하는 것이 권고된다.

그리고 이 페어는 가이딩을 최고의 효율로 이뤄낼 수 있는 조합으로 맺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에스퍼와 가이드는 급수가 있다. F, E, D, C, B, A, S 순으로 급수가 올라가는데 급수가 높을수록 낼 수 있는 이능력의 출력이 크다.

그리고 에스퍼가 낸 출력을 메꾸려면 에스퍼의 출력 이상의 가이딩 출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매칭률이라는 게 또 있어서 에스퍼와 가이드의 매칭률이 높을수록 가이딩이 안정적이라고 한다. 매칭률에 따라 가이딩의 효율이 높아진다 낮아진다 그런 얘기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가이딩은 가이드의 출력량이 높은 게 최고다.

그래서 높은 급수의 가이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급수가 올라갈수록 사람이 적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가이드는 에스퍼보다 사람이 적다. 급수 높은 에스퍼일수록 가이딩으로 메꿔 줄 사람이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의료국은 높은 급수 에스퍼들이 뇌가 터져 죽지 않도록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 의료국 사람이라면 S급은 당연히 알고 지내겠지. 게다가 김희원 팀장은 가이딩이 부족해서 뇌압이랑 안압 올라가서 눈을 하나 잃은 사람이잖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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