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 마이 히어로-3화 (3/81)

3. 차우진 (2)

거대 괴수 7마리를 토벌하는 우리의 임무는 3일 만에 끝났다. 그리고 나는 본부에 도착하고 시말서를 냈다.

‘사고 쳐서 우울하다. 이럴 땐 좋은 걸 보고 들으면서 심신을 달래야 해.’

나는 심신에 좋은 우진이를 보러 갔다. 역시 잘생긴 게 짱이야.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

의료국에 가니 반가운 소식이 날 기다렸다. 우진이가 드디어 의식을 회복했다고 했다.

“우와아! 역시 우진이가 짱이야.”

방금까지만 해도 우울했던 기분이 싹 가셔서 난 허겁지겁 우진이를 보러 갔다.

“세상에! 우진이가 눈 뜨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어!”

병실 창문으로 보이는 하얀 피부에 칠흑 같은 검은 머리에 겨울 호수 같은 회색빛 눈, 우수에 찬 표정이 화보가 따로 없었다. 최고다! 최고야, 차우진! 나는 감격에 차서 병실 문을 활짝 열고 크게 인사했다.

“우진아, 안녕!”

“그쪽은 누구시죠?”

우진이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나를 낯선 얼굴로 쳐다보았다.

‘어? 어, 맞다. 사실 우진이는 나를 처음 보지?’

의식 불명인 환자의 신상을 캐고 뻔질나게 만나러 오면서 혼자서 내적 친밀도가 MAX를 찍어 버렸기 때문에 우진이는 내가 초면인 걸 잊어 버렸다.

“어, 음, 나는 너를, 아니 당신을 구해 준 사람이에요.”

“아, 그러셨군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아, 적당히 톤도 낮으면서 음색도 부드러운 게 목소리도 끝내 준다. 눈 살짝 내리깔면서 처연한 표정 짓는 거 봐. 오진다, 진짜.

정신없이 감상하는 중이었는데 처연한 미남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구해 주신 김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네? 네, 뭔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게 어린 동생이 있거든요.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에 태어나서 출생신고도 안 된 어린애인데, 제 동생 좀 찾아 주세요.”

“어, 일단 센터에 실종자 신고를 넣으면 정식으로 파견대가 조성될 거예요.”

“……어제, 일어나자마자 신고는 넣었는데 파견팀 꾸리는데 수일이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동생하고 마지막으로 만난 게 보름이 넘었어요……!”

“아……그, 그렇지만 저희도 절차라는 게 있어서….”

“아직 6살밖에 안 된 앤데……. 애가 살아 있는지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으윽.”

“으아악, 우진아 아프지 마!”

우진이는 감정이 격해지면서 큰소리를 내서 배가 아픈지, 배를 감싸면서 점점 고꾸라졌다.

FM대로 일을 처리하려던 나는 우진이가 아파하자 당장 찾아 주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시말서도 썼으니 아예 경위서도 세트로 쓰지, 뭐.

***

완벽한 경위서를 쓰기 위해 나는 스마트워치로 현장을 촬영하며 우진이의 동생을 찾으러 갔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플래시를 켜면서 우진이가 가르쳐 준 주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우진이 구한 곳 근처네.”

날도 어두워져서 더 그때 생각이 난다. 그때처럼 인기척 하나 없네.

“아, 잠깐만 설마 얘도 괴수한테 잡혀간 건 아니겠지?”

나는 불길한 상상을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내저으며 길을 걸었다. 불안하게 그때처럼 인기척 하나 없었다.

“아냐 나쁜 생각하지 마, 강하나! 그 애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좋은 생각을 하자.”

우진이 동생 이름은 우린이랬지? 6살 여자아이고. 우진이처럼 검은 머리고 눈은 파란색. 우진이 동생이면 닮았겠지? 엄청 귀엽겠다. 리틀 우진이 같으려나? 왼쪽 눈 밑에 점 있는 것도 닮았을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폐허가 된 골목길을 떠돌던 나는 별안간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담벼락이 있는 그곳엔 작은 인영이 있었다.

“저기, 안녕? 네가 우린이니?”

“……어, 누, 누구세요?”

“나는 우진 오빠 친구야. 나랑 같이 오빠 만나러 갈래?”

희미한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곧바로 대꾸했다. 뭔가 납치범 같은 대사였지만 우린이의 경계를 풀어야 했다. 그냥 막 데려가는 게 더 납치범 같잖아.

‘어, 근데 쟤 우린이 맞겠지? 여기에 어린애가 두셋씩 있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나는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다가가 인영에다 플래시를 비춰 보았다.

작고 꼬질꼬질한 여자아이가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찡그리고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음, 검은 머리에 6살배기 여자애. 얘 맞는 거 같은데.’

나는 확실한 신원 파악을 위해 다시 물었다.

“네가 우린이니?”

“네…… 진짜 우리 오빠 친구예요? 오빠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는데…….”

우진이가 가정 교육을 잘 시켰구나. 어린이 신변 안전 교육의 FM대로 행동하는 우린이를 보면서 어떻게 달래서 데려갈지 고민했다.

우진이랑 통화하면 직빵인데 우진이는 민간인이라 스마트워치가 없다.

‘친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아, 맞다. 나 우진이 사진 찍어 놓은 거 있었지?’

나는 스마트워치에서 카메라 앨범을 뒤져 우진이 사진을 찾았다.

‘이건 구조 현장 사진이라 어린애한테 보여 주긴 좀 그렇고……. 신원 매칭 하려고 찍은 사진이랑 자는 게 이뻐서 꽃이랑 같이 찍은 거 보여 주면 되겠다! 둘 다 자는 사진이긴 하지만 뭐 어때, 자기 오빠인 거 알아보겠지?’

나는 사진을 홀로그램화하고 확대해서 우린이에게 보여 주었다.

“너희 오빠 맞지? 내가 너네 오빠랑 아는 사람이야.”

스마트워치 위로 우진이 사진 화면을 띄워 주니 우린이가 화면을 보면서 격하게 반겼다. 이 정도면 우린이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

나는 우린이가 기분이 좋아진 이 순간을 이용해서 오빠에게 가지 않겠냐고 다시 물었다. 오빠 사진을 보고 흥분한 우린이는 당연히 간다고 대답하고 나에게 안겼다.

우린이는 우진이의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품에서 내리고는 곧장 오빠에게 달려갔다. 드디어 만나게 된 우린이랑 우진이는 서로를 얼싸안고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을 모두 녹화했다. 이걸로 내 경위서는 완벽해질 거다.

그런데 우린이는 좀 씻겨서 데려올 걸 그랬다.

폐허에서 2주 넘게 홀로 생존한 우린이는 가출했던 고양이처럼 꾀죄죄했다. 우린이의 흙먼지랑 찌든 때는 우린이를 안고 온 나에게도 묻었고, 우린이랑 감동의 재회를 하고 있는 우진이에게도 묻었다.

게다가 우진이는 아직 거동을 못 하는 환자라서 침대에 기대 누워 있는데 우린이가 올라오는 바람에 침대도 먼지가 잔뜩 묻어났다.

‘누가 치워, 이거…….’

침대 이불 시트 다 갈아야 하고 우진이도 자리에서 못 일어나기 때문에 옷 갈아입히고 씻겨 줘야 한다. 우린이는 아기니까 당연히 누가 옷 갈아입히고 씻겨 줘야 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아직도 재회의 포옹 중인 우린이와 우진이를 떼어 냈다.

“저기, 나를 나쁜 사람 보듯이 그러지 말아 줄래? 씻고 깨끗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너희.”

우진이에게 위생의 중요성을 설명한 나는 우린이를 옆구리에 끼고 의료 센터 샤워실에 가서 벅벅 씻겼다. 예상대로 이 꼬맹이에게선 시커먼 땟국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씻고 나니까…

“너, 우진이랑 엄청 닮았구나?”

새하얀 얼굴에 까만 나비 같은 속눈썹이 판박이네. 우진이처럼 왼쪽 눈에 눈물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른쪽 입술 아래에 점이 있다는 게 다르긴 했다.

‘그리고 우진이가 더 잘생기긴 했지.’

우진이가 더 차분해 보이고 섬세하게 생기고 눈밭에 피어난 투명한 보석으로 세공된 꽃 같달까?

나는 머릿속으론 우진이를 떠올리며 손으로는 부지런히 우린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말렸다.

우린이가 입고 있던 옷은 너무 낡고 더러워서 도저히 다시 입힐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다 해진 우린이의 옷을 그냥 소각로에 보내 버리고 소아용 환자복을 꺼내 입혔다.

깨끗해진 우린이를 다시 병실로 데려왔더니 우진이가 자고 있다.

‘우리 우진이, 우느라고 피곤했구나.’

우린이 씻기는 동안 누가 다녀갔는지 이불 시트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고 우진이도 뽀송뽀송했다. 내가 하려던 일이 줄어든 건 좋지만 뭔가 아쉽다.

나는 잠든 우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왕 동생을 찾게 된 거 좀 더 좋아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우진이는 환자니까 어쩔 수 없지. 우진이도 편히 쉬어야 할 테니 이만 가 보는 게 좋겠다.’

나는 병실을 나와 새롭게 구한 난민인 우린이를 민간인 보호 쉼터에 맡기고 경위서를 제출했다.

***

오전 훈련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상혁이가 오늘도 식판을 들고 와 내 옆에 앉았다.

상혁이는 나와 같은 신체 근력 강화계 B급이지만 팀이 달라서 훈련이 겹치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예전 팀 동료라고 나를 생각해 주는 상혁이는 내 걱정을 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야, 강또! 너 또 사고 쳤다며?”

김상혁이 내가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내 팀원들이 나를 ‘강또’라고 부르면 ‘강화계 또라이’라는 뜻으로 충격을 분산할 수 있는데, 네가 그렇게 부르면 ‘강하나 또라이’라는 의미가 돼 버리잖아!

“강또라고 부르지 마라. 그럼 넌 ‘상또’다. 상혁인 또라이, 상또라이 김상혁.”

나는 시말서와 경위서를 연달아 쓴 게 괜히 서러워서 평소보다 짜증을 냈다.

“시말서 쓴 얘기는 대충 들었는데, 경위서는 또 왜 썼냐? 좀 있으면 인사 평가 기간인데 너 이렇게 막 살아도 괜찮아?”

그렇지만 내 친구 상혁이는 내 헛소리를 무시하고 장래를 걱정해 줬다.

“사실 나도 쪼끔 걱정돼.”

그래서 우진이 부탁 안 들어 줄랬는데 우진이가 울잖아. 불가항력이었다. 나 대괴수 섬멸팀 잘리려나? 지금 팀이 완전 맘에 들어서 잘리고 싶지는 않았다.

대괴수 섬멸팀은 정예 협회원들로 이루어져 있고 출동도 많아서 급여도 셌다. 내가 잘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하기는 하다. 만약을 대비해 팀 신청 여러 군데 찔러 봐야지.

상혁이는 자기가 소속된 인명 구조팀은 어떠냐고 나를 꾀었지만 거절했다.

센터 밖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제 출동 건수도 얼마 없고 잔해처리반에 더 가까웠다. 출동 건수가 적으면 급여도 적다. 우린 출동 건수에 비례해서 돈을 받으니까.

상혁이는 내 질문에 아니라고 우겼지만 사실 상혁이도 출동 없어서 다른 팀 용병으로 뛰는 날이 더 많다.

나는 일이 없는 상혁이에게 팀을 옮기는 게 어떻겠냐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줬고, 상혁이는 나에게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격려를 해 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이번 대련 대회에서 몸값을 올리자는 결론을 냈다.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대련 대회는 에스퍼끼리 대련을 붙여 평가 성적을 매기는 대회다. 평가 성적은 당연히 인사에 반영되고 성적이 높을수록 어려운 임무에 투입된다. 난이도 높은 임무일수록 임금이 높다.

우리가 참가하려는 대련 대회는 에스퍼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대회이기 때문에 자율 신청으로 신청자를 모집한다.

‘에스퍼라고 다 전투원이 아닌 데다가 평화주의 에스퍼들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매년 참가해서 괜찮은 성적을 낸다. 그래서 B급 강화계인데도 높은 등급 베테랑 에스퍼들로 이루어진 대괴수 섬멸팀에 있는 것이다.

내가 B급 에스퍼이기 때문에 더 높은 등급의 에스퍼와는 상대가 안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S급 염동력자들이 무조건 싸움짱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크나큰 착각이다.

물론 염동력은 편리한 이능이지만 편리성이 판단력을 만들어 주진 않으니까. 속박이랑 자기장은 상대하기 좀 힘들긴 한데, 어차피 대련에선 그게 금지이기도 하고.

아무튼, 대련은 내 능력을 보여 주는 최고의 무대다. 상혁이랑 나는 안정적인 인사 평가를 꿈꾸며 중앙 센터로 가서 대회 참가 신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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