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차우진 (1)
새벽에 보너스 구출 건을 하고 난 뒤, 내 생활에는 새로운 스케줄이 추가됐다.
임무가 없을 때 나는 늘 조깅>아침밥>오전 훈련>점심>오후 훈련>저녁밥>심야 수련>취침 이런 하루를 보냈는데, 여기에‘차우진 면회’가 추가되었다.
내가 구한 미남은 이름이 ‘차우진’이라고 했다. 아직도 의식 불명인지라 본인이 밝힌 건 아니고 의료국에서 멋대로 지문 채취해서 신원 조회를 했다고 한다.
의료국에 괴수가 침입해 난리가 나면 끝장이니까 어쩔 수 없지. 동의 없이 멋대로 신원 조회해도 우진이도 이해해 줄 것이다. 이제 병원이라고 부를 것도 없고 여기가 유일한 의료 기관인데 환자의 신원은 확실해야지.
신원 불명이면 괴수가 아니라고 밝혀질 때까지 길고 괴로운 마라톤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이버 펑크 코리아는 얼마나 편리한지. 전부 지문 등록 깡그리 해 놔서 관리가 쉽잖아. 웬만한 사람은 지문만 채취하면 누군지 다 알아낼 수 있다는 건 국가적인 축복이다.
오후 훈련을 마친 나는 꽃집에서 라넌큘러스 세 송이를 사고 우진이를 만나러 갔다. 저번에는 우진이가 백합을 닮아서 백합을 사 갔더니 병문안에는 적합하지 않은 꽃이라며 무지 혼났다. 향이 너무 강해서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백합처럼 적당히 꽃송이가 큼지막하고 하얗고 분홍빛인 라넌큘러스를 사 갔다.
‘우진이도 피부가 하얗고 단정하니까 잘 어울리겠지.’
면회 둘째 날에는 주스나 과일 같은 먹거리를 사 갔는데 우진이는 의식 불명이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화영이랑 같이 의료국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다.
나흘째인 오늘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우진이를 보러 가는 데 요령이 붙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게다가 오늘은 기쁜 소식도 있다.
이제 우진이는 괴수에게 오염된 어떤 유독 물질도 없다는 게 판명돼서 방호 텐트에서 나와 일반 병실에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우진이를 만날 때 방호복을 안 입게 되었다.
나는 우진이 머리맡에 있는 협탁에 꽃병을 두고 라넌큘러스를 꽂아 두었다. 역시 내 안목이다. 우진이랑 라넌큘러스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미남과 꽃은 최고다. 오죽하면 옛날에 ‘꽃을 든 남자’ 상표명까지 있었겠어.
실컷 감상한 나는 물수건으로 우진이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었다. 시커멓게 멍들었던 우진이의 배는 이제 멍이 많이 빠져서 노란 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일은 산소 호흡기도 뗀다고 하니 정말 많이 좋아졌다.
이제 의식만 돌아오면 되겠다.
나는 오늘의 면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
아침이 되자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E구역에서 괴수 집단 출연이 발생했다고 했다. 듣자 하니 괴수들 덩치가 장난 아닌가 보다.
‘이런 임무에는 탐색 조 강하나가 딱이지.’
금강불괴에 근력 강화 능력이 있는 나는 무술에 격투기도 겸비하여 괴수한테 깔짝대면서 약점 파악하기에 딱이었다. 겸사겸사 결정타도 먹이고.
뭐,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능력인 사물 읽는 정신계 에스퍼나 멀리까지 내다보는 천리안 강화계 에스퍼도 있지만 걔들은 비전투원이니까. 난 전투 능력이 있어서 유사시에 대처 능력이 더 좋고.
아무튼 대괴수 섬멸팀에는 탐색조, 공격조, 의료조가 함께 붙어서 다닌다. 그리고 각 조원들을 가이딩하는 가이드들까지 약 30명의 팀원들과 함께 E구역으로 이동했다.
기존에 있던 지역 자치 체계가 무너진 바람에 지역의 이름들은 A, B, C, D, E, F, G구역이라는 몰개성한 이름으로 바뀌고 말았다. 각종 시, 구, 읍, 면 등도 다 재미없게 알파벳으로 부른다. a포인트, b포인트 이런 식으로.
‘뭐, 협회에서 임무 지점으로 데려다주고 난 센터에서 사니까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이런 재미없는 이름을 만들어 낸 곳은 에스퍼 가이드 협회, 약칭 에가협이란 곳이다.
이 단체는 정부가 망하자 갑자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서 정부가 관리하던 시스템을 꿀꺽해 버리고 한국의 정부인 양 활동하고 있다.
사실상 온 세상을 에가협이 관리하고 있다. 한국지부, 대만지부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서.
그리고 세상이 요지경이 된 데는 괴수들의 몫이 컸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세상은 ‘게이트 브레이크’라는 전대미문의 큰 사건을 겪었다. 그게 뭐냐면 갑자기 하늘이 빨개지면서 괴물들이 튀어나와 기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한 것이다.
다 무너져 버린 아수라장 속에서 거의 죽어 가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에가협의 등장에 목숨을 구했다. ‘에스퍼’라는 초능력자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괴물을 죽이고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에가협은 전 세계에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어 에스퍼들과 가이드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지켜 내는 안전망이 되어 주겠다고 광고하며 모아 온 에스퍼들과 가이드들을 열심히 부리고 있다.
바로 지금처럼.
헬기를 타고 도착한 E구역은 5층 건물만 한 용가리가 불을 뿜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아니, 용가리가 아니라 들쥐네. 왜 쥐면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라인에 뿔을 달고 다녀. 불까지 뿜고.’
같은 헬기를 탄 공격조의 S급 염동력자 송주하가 건물 잔해를 쥐 머리 위에 띄워 떨어뜨려 보고, 자기장으로 불을 막아서 들쥐를 태워 보려고 했지만, 저 털은 방화 처리가 되어 있는지 거대 들쥐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염력으로 속박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힘이 많이 드니까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겠다.
내 역할은 공격조의 품을 줄여 주는 일이니까.
둔한 공격만 퍼붓는 공격 조 팀원 대신 내가 괴수의 약점을 공략하여 쓰러뜨리면 공격 조 팀원의 이능력을 아낄 수 있다.
‘아직 약점 파악도 못 한 거대 괴수가 7마리 더 있다니 바쁘겠네.’
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휘이잉-
나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착륙 지점을 쥐의 머리통으로 조준했다.
그와 동시에 자세를 잡고 내려찍기를 준비했다.
하강 중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세우고 왼쪽 다리를 높게 들었다. 동시에 이능력인 근육 강화로 강한 충격을 준비한 나는, 그대로 추락하면서 왼발로 쥐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려찍기를 정통으로 맞은 쥐는 살짝 휘청거렸다.
하지만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했다.
‘머리뼈에 금 정도는 내고 싶었는데 아쉽네.’
거대 쥐는 너무 멀쩡하다 못해 나에게 화가 났는지, 머리 위에 있는 나를 붙잡기 위해 앞발로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렇지만 너무 뻔한 괴수의 앞발질에 잡힐 내가 아니다.
나는 날 잡으려고 날아드는 쥐의 앞발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쥐의 머리통 위를 뛰어다녔다.
뛰어다니는 도중에 뿔도 한번 걷어차 봤는데, 머리에 난 뿔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 웬만한 공격으로는 충격을 주는 게 어려워 보였다.
근력 강화 이능의 출력을 높여서 공격하면 충격을 줄 수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화력을 내야 하는지 재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내 이능이 낭비될 것이다.
난 이능을 가능한 적게 쓸 생각이므로 공략 방향을 바꿨다. 단단한 곳이 아닌 무른 곳을 공격하자. 이런 부위는 근력 강화 이능도 필요 없다.
퍽퍽퍽!
나는 쏟아지는 앞발 세례를 피하면서 거대 쥐의 귀로 달려가 냅다 차 버렸다. 으드득하고 연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쥐의 귀가 걷어찬 모양 그대로 구겨졌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감각 기관이니까 없애면 더 편하겠지.’
거기에 더불어 상처가 고통스러우니 앞발로 날 잡으려고 하는 시도도 줄어들 것이다.
통증으로 쥐가 거대한 몸통을 뒤틀며 불을 뿜고 난리를 쳤지만, 나는 털을 붙잡고 버티며 반대편 귀로 건너가 남은 귀도 찢어 버렸다.
‘신경을 분산했으니 이제 진짜 급소를 노려야지.’
거대한 쥐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몸부림을 쳤지만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지는 않았기 때문에 매달릴 만했다.
나는 그대로 눈 쪽으로 건너가 양쪽 눈알에 번갈아 가며 주먹을 메다꽂았다.
“크아아아아!”
이번 건 진짜 아팠는지 거대한 쥐는 괴성을 내질렀다. 덩칫값을 하는 건지 쥐의 외견을 했음에도 '찍찍' 소리를 내지 않았다.
굉음을 한바탕 내지른 괴수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불을 내뿜었다.
‘하하, 너의 콧잔등에 걸터앉은 나에게 그 불길은 닿지 않지.’
주둥이 가까이 내려져 있는 신발 밑으로 거대한 불길이 솟구쳐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 불길은 나에게 닿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걸터앉은 거대 쥐의 콧잔등 고도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뭔가 심상치 않아서 뒤를 보니, 위에 있는 헬기에 직방으로 불길이 쏟아졌다.
[치직, 야이씨! 강하나- [email protected]#$%]
무전으로 나를 향한 욕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난 무전을 받는 대신에 정권 지르기로 쥐의 목에 구멍을 뚫으면서 내 일을 끝마쳤다.
나를 제외한 팀원 전원이 불꽃 세례를 맞게 한 죄로 나는 임무 내내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팀장은 나에게 본부로 가면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힝, 너무해. 그래도 내가 백방으로 뛰어다녀서 이능 낭비는 줄었잖아요.”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팀장에게 나는 열심히 일했다는 걸 주장했다.
에스퍼의 이능력은 많이 사용할수록 신체에 부담을 준다. 주로 뇌에 부담이 많이 가고 이능력에 따라 추가 부담이 있기도 했다.
이능력을 많이 사용해 신체에 부담이 온 에스퍼는 가이드의 이능력인 가이딩으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간다. 에스퍼가 쓴 이능은 가이딩이라는 또 다른 이능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가이드도 가이딩을 많이 하면 신체적인 부담을 받는다고 한다. 난 가이드가 아니라 어떤 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능력은 인력이다.
그래서 이능력을 아끼면 인건비를 아낀 셈이고.
그런 이유로 나는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전 언제나 에가협에 금전적인 보탬이 되고 있다고요!”
당당하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팀원 전원이 공격을 받게 한 건 너무했죠……. 네…… 저도 압니다. 제 역할은 역할이고 잘못은 잘못이라는 걸요…….”
팀장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던 나는 이제 변명하길 포기하고 얌전히 시말서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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