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처음으로 구한 사람
차가운 새벽 공기가 살갗에 닿는다.
새카맣던 하늘에 이제 막 해가 떠오르며 거리를 비추었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꺼지는 시간이지만 애초에 가로등은 깨지거나 부서져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무너진 담벼락이나 깨져 있는 시멘트길 등이 햇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엉망진창인 거리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무사히 대피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이곳은 괴수가 한바탕 휩쓸고 간 민가라서 며칠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킨 곳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대피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종종 새벽 조깅을 하면서 순찰을 돌았다.
‘음, 해도 떴고 이제 슬슬 샤워하고 아침 먹으러 돌아갈까?’
별만 빛나던 깜깜한 하늘은 어느덧 보랏빛으로 물들다가 점점 밝은 주황빛을 내보였다. 나도 꽤 오래 뛴 듯싶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저 모퉁이만 돌고 그만 돌아가야겠다.’
그리고 곧바로 모퉁이를 돌아 지나치려는 순간, 나는 거대한 고기의 벽을 마주하고 말았다.
‘…!’
그러니까 이게…… 그 살아 있는 근육 조직 같은데.
나는 예상치 못한 징그러운 장면에 놀라버리고 말았다.
이 부근은 대대적인 토벌 작업이 이루어진 곳이지만 아직 남아 있는 괴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아……”
그러니까 나는 괴수를 만나서 놀란 건 아니다. 그냥…… 마주친 괴수의 비주얼이 좀 충격적이었다. 가죽을 벗겨 놓은 고깃덩어리 같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골목을 떡하니 가로막은 거대한 고깃덩어리는 살아 있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계속 꿈틀거렸다.
“으, 징그러워.”
붉은빛이 도는 근육 다발들은 벌레가 기어가듯 꿈틀거리다가, 갑자기 그 사이에서 내 주먹만 한 동그란 살덩이가 올라왔다.
그러다 점점 고기 표피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눈알이 나왔다.
“으어아어억?! 역겨워! 징그러워!”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알에 주먹을 내지르고 말았다.
퍼억
내 주먹을 맞은 눈알은 주변의 고기들과 함께 터져 나가 고기 벽면이 무너져 내렸다.
“헉, 사진 자료 남겨야 했는데.”
관찰만 하다가 빌어먹을 눈알 때문에 깜짝 놀라서 그냥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하… 이 거 또 팀장님한테 한 소리 듣겠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조각들이 많으니 이것들이라도 자료로 남겨야겠다.
나는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로 카메라를 켜서 고기 조각들을 열심히 찍었다.
고기 벽 한 면을 터뜨리니 이 고깃덩이의 내장이 있을 걸로 추정되는 내부가 드러났다. 나는 시계의 플래시를 켜고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퀴퀴하고 시큼한 구린 냄새가 엄청나게 났다.
‘한 5평쯤 될 것 같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순대 같은 기둥들이 빽빽하게 있어 빈 공간은 별로 없었다.
순대들은 아직 생명 활동이 안 끊겼는지 뭔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시뻘건 순대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그중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저게 뭐지? 확실히 괴수의 근육 다발 질감이 아니다. 저거 사람 아닌가? 이질적이지만 아까 봤던 징그러운 눈깔이 아니라, 그…… 사람 얼굴에 있는 그 눈인 거 같은데?’
다가가서 보니까 속눈썹도 짙다. 더 가까이서 보니까 이거 진짜 사람 같은데?
“으아아아, 순대에 사람이 파묻혔어!”
나는 패닉에 빠져서 눈 주변에 달라붙어 있는 고기 조각들을 손으로 마구 뜯어냈다.
살점들을 마구 뜯어내니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나는 순대를 끊어 버리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발굴해내기 시작했다. 일단 상반신에 붙은 고깃덩어리들을 대충 다 뜯어내긴 했는데 이 사람 뭔가 상태가 이상하다.
“저기요, 숨은 쉬는 거죠? 체온은 따뜻한 것 같은데?”
어…… 이런 상황일 때는 인공호흡을 하라고 배웠어. 나는 패닉을 깨고 내가 받았던 인명 구조 교육을 떠올렸다. 인공호흡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 확보를 해야 한다.
나는 기도 확보를 위해서 이 사람의 입을 벌렸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윽. 이게 뭐야?!”
아니 그게, 이 사람의 입 안은 가느다란 순대들이랑 이상한 국물들로 꽉 차 있었다.
“우읍…”
한마디로 완전 그로테스크했다! 나는 기함하며 순대들을 마구 뽑아내기 시작했다.
순대들은 길기는 또 엄청 길어서 가장 짧은 게 50센티는 되는 것 같았다. 괴물 체액으로 추정되는 국물에 푹 절은 순대들을 얼추 다 뽑아냈는데 아직도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는 흉부 압박을 해 줘야지.’
나는 흉부 압박을 위해 떼다가 만 고기 조각들을 뜯어냈다. 그리고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고기들을 뜯어내서 드러난 이 사람의 배가 짐볼같이 커다랬던 것이다.
“으어아으으, 이게 뭐야?! 설마 아까 못 뽑아낸 순대 조각들이 그럼 다 저기 안에 있는 거야?”
나는 다시 패닉에 빠져 배를 붙잡고 냅다 눌렀다. 천만다행으로 배가 눌리니 국물과 순대 조각들을 뱉어 냈다.
나는 이 사람을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치약 짜내듯 배를 꾹꾹 눌렀다. 열심히 눌러대니 짐볼 같던 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해졌고 안에 든 걸 게워 내느라 얼굴이 엉망이긴 했지만 숨도 잘 쉬는 것 같다.
“휴, 다행이다.”
이제야 좀 제정신을 차린 나는 긴급 의료팀에 신고를 했고 상부에 보고를 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나는 고기 조각을 다 떼어 내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그 사람의 얼굴과 몸을 대충 닦아 주었다.
센터 근처에서 조깅을 했기 때문에 구급차는 금방 도착했다.
‘우와… 내가 처음으로 직접 사람을 구했어.’
인명 구조를 해낸 스스로가 기특했다. 꽤 오랫동안 임무 활동을 하면서 면대면으로 인명 구출을 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따로 임무를 받은 상황도 아니다. 그냥 운동을 나간 건데 사람까지 구하다니,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은 구급차에 사람을 실으면서 상태 설명을 해 주고 난 뒤, 와장창 깨졌다.
“그러니까 안에 든 걸 손으로 눌러 짰다고? 강하나, 너 제정신이야?”
“어…… 그렇지만 덕분에 숨도 쉬고…….”
“네 힘을 생각해야지! 무슨 짓이야! 내장 파열됐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심폐 소생술도 갈비뼈 나갈 수 있는데. 네가 내장을 쥐어짰다니…… 아무튼 알겠어. 난 이만 가 볼게.”
“……”
의료국 친구인 화영이는 환자를 실으면서 날 혼내고 구급차 문을 닫고 가 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구한 사람이 나 때문에 잘못됐을 수 있다고?”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구급차가 떠난 뒤에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자괴감에 휩싸인 채 현장을 지키고 괴수 뒤처리 담당 팀에게 인수인계를 해 주었다.
돌아와서 씻고 밥 먹고 훈련받는 중에도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난 구해 주려고 한 건데…… 진짠데……. 근데 내가 잘못해서 죽을 수도 있다니…… 내장파열…….’
이런 생각을 하느라 유격 훈련 중에 절벽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생각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난 금강불괴니까 떨어진건 별로 안 아팠다. 오히려 새벽에 내가 저지른 일이 더 충격적이라, 교관에게 듣는 꾸중을 빙자한 폭언이 쏟아져 내려도 난 계속 그 일만 생각했다.
‘허… 내가 사람을 구했는데 나 때문에 그 사람이 죽는다니…….’
온종일 그 생각만 하느라 점심밥도 코로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몰랐다.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조치가 됐겠지? 화영이한테 물어볼까?’
드디어 그나마 생산적인 생각을 하며 밥을 퍼먹고 있는데 김상혁이 식판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야~ 강하나, 너 오늘 새벽에 한 건 했다며? 보너스 들어온다냐?”
나와 같은 강화계 B급 에스퍼 김상혁이 아는 체를 해 왔다. 동기이기도 한 상혁이는 내 심란함을 이해해 주겠지? 친구 좋다는 게 뭔가.
나는 상혁이에게 오늘 새벽에 있었던 괴수 처치랑 민간인을 구출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잘못된 응급처치 때문에 기껏 구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자, 상혁이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위로를 해 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괴수한테 죽어서 사라질 뻔했는데 네 덕분에 적어도 장례는 여기서 치를 수 있게 됐잖냐. 기운 내, 짜샤!”
“….”
이런 소시오패스 새끼. 친구 좋다는 말 취소다, 이 자식아. 이번 보너스 턱에 네 몫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을까 봐 걱정된다는데 그딴 말을 해?!’
김상혁한테 들은 재수 없는 말을 씻어 내기 위해 화영이를 만나봐야겠다. 암만 바쁜 의료국이라도 점심시간은 있을 거니까.
난 한시라도 빨리 화영이를 만나기 위해 텔레포트 이능력자 해미를 보너스 턱으로 꾀어서 의료국으로 순간 이동했다.
의료국 식당에서 마침 식사를 마친 화영이랑 딱 마주쳤다.
“그 사람 다행히 내장이 파열되지는 않았어. 생명엔 지장 없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화영이는 김상혁에게 들은 재수 없는 말을 씻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줬다. 멍이 심하게 들기는 했지만 아무튼 안 죽을 거란다.
“와, 다행이다.”
새벽부터 방금까지 얹혀 있던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다. 싱글벙글 웃으며 기뻐하는 나에게 화영이는 암울한 추가 정보를 덧붙여 주었다.
“그런데 아직 의식 불명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계속 안 깨어날 수도 있고. 신원 파악을 위해 지문을 채취해서 알아보는 중이야. 괴수한테 꽤 오래 붙들려 있었던 것 같아.”
“뭐야, 안 죽는다며?”
“그야, 지금 당장은 그렇지.”
“되게 찝찝하네…… 나 그 사람 보러 가도 돼?”
“음…… 아직 신원 미상자고 네가 데려왔으니까……. 그래, 보호자 신분으로 면회시켜 줄게.”
나는 화영이를 따라 멸균 에어 샤워를 하고 방호복을 입은 다음, 방호 텐트 속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갔다.
‘아까 구할 때도 꽤 크다고 느꼈는데 침대에 누운 거 보니까 진짜 키가 크긴 크네. 큼지막한 병원 침대가 별로 안 커 보여.’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남자는 괴수의 체액에 절어서 부어 있던 붓기도 다 빠졌는지 날렵한 턱선과 콧대가 드러나 있었다. 짙은 속눈썹과 단정한 눈매와 눈썹이 연예인 뺨을 쳤다. 이제 그런 직업은 없다시피 하지만, 아무튼 엄청 잘생겼네.
나는 면회 시간 끝났다고 화영이 손에 끌려 나오기까지 그를 정신없이 감상했다.
‘내가 엄청 잘생긴 사람을 구했구나. 꼭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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