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늑대와 장수와 개
무휼은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새하얀 입김이 시야를 잠시 가렸다가 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졌다.
그 사이로, 한층 선명해진 호수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한눈에 끝과 끝이 다 보일 정도로 작은 호수였다. 사실 호수라기보다는 못이나 저수지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규모였다.
그러나 천천히 출렁거리는 맑은 물 안을 가득 채운 별빛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구름 없는 날씨에 환하게 뜬 달빛이 사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달빛과 별이 가득 담긴 호수는 그 자체로 발광하는 것처럼 보여 꼭 동화 속에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여기 앉을까?”
호원은 그렇게 말하며 무휼의 손을 이끌었다. 무휼은 꼭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기분을 느끼며 속절없이 호원이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호원은 근처에 있는 판판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는 어두운 색깔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엉덩이를 걸치는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자신의 지정석이라는 듯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호원은 잡은 손을 당기며 제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앉으라는 몸짓에 무휼은 얌전히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멋있지?”
호원이 씩 웃으면서 물었다. 무휼은 그가 말하는 멋있는 것이 이 광경인지 호원 본인인지 모호했으나 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차피 둘 다 대답은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답하는 대신 호원의 손에 깍지를 끼어 꼭 쥐었다.
“여기가 삼월도라고 불리는 건 이 호수 때문이야.”
호원은 깍지 낀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무휼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목소리가 이어짐에 따라 그 손가락은 리듬감 있게 무휼의 손등을 간지럽혔다.
어쩐지 그 움직임만으로도 심장께가 간질거리는 듯해서, 무휼은 애써 고개를 들고 달빛이 내려앉은 호원의 옆얼굴만 바라보았다.
“섬 안에 호수가 있다 보니 달이 뜨면 세 개로 보이거든.”
세 개? 무휼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늘 위에 뜬 달 아래로 호수 속 달이 쌍둥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나 둘러보던 무휼이 아, 하고 짧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바다구나.”
“맞아.”
호원이 씩 웃었다. 달이 세 개로 보여 삼월도라니, 섬 이름치고 퍽 로맨틱하다는 생각에 무휼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부모님은 역사학자였는데, 이 근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연구하셨어.”
“전설?”
무휼이 토닥거리는 호원의 손가락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물었다. 호원은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옛날에 이 섬에 한 늑대가 있었대. 그 늑대는 천계에서 죄를 지어 떨어진 죄인으로, 너무도 흉포하고 강해서 아무도 상대를 못 했다고 해.”
갑자기 전래동화라도 말해줄 셈이야? 무휼은 우스갯소리로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호수의 수면을 바라보는 호원의 얼굴이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계에서는 늑대를 잡으려 한 장수를 보냈고, 오랜 싸움 끝에 늑대는 지쳐 쓰러졌지. 장수는 늑대를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 늑대의 목덜미를 붙잡고 달로 뛰어들었어.”
그러나 그게 장수의 실수였던 거지. 호원의 입술 새로 새어 나온 입김이 서늘한 공기 속에 사그라져 흩어졌다. 찬바람에 호원의 머리카락이 휘날려 새하얀 피부 위를 쓰다듬었다.
무휼은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서늘한 기온에 푸르스름하게 물든 호원의 입술이 재차 열렸다.
“장수는 이 호수에 비친 달을 하늘 위의 달로 착각해 버린 거야. 하지만 다시 하늘로 오르기엔 장수도 많이 지쳐 있었지.”
그래서 그 장수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호원이 대뜸 무휼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무휼이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너무 뚫어지게 보고 있던 것 같아 머쓱했다.
“…어떻게 됐는데요.”
어색함을 숨기느라 목소리가 조금 불퉁하게 새어 나갔다. 무휼은 아차 싶었지만 호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낮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그 장수는 자신의 몸을 바쳐서 이 호수에 늑대를 봉인했어.”
영원히. 마지막 말은 어째서인지 스산할 정도로 불길하게 들렸다. 무휼은 뒤통수부터 허리께를 관통하는 찌릿한 예감을 느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이 불길하고 섬뜩한 감각이었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이 세상을 평화로워졌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뭐 그런 흔한 얘기야.”
호원은 가볍게 말하며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잡은 손이 바위 위에서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무휼아.”
“안 돼.”
부르는 소리에 무휼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이 사람은 왜 저런 얘길 하는 걸까. 왜 갑자기 사라져선 이런 먼 곳까지 혼자 온 걸까.
그리고 왜… 왜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냉정한 표정을 짓는 걸까.
불길한 예감이 등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무휼은 필사적으로 호원의 얼굴에서 표정을 찾아내려 했지만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거 미안해. 하지만-”
“그러지 마요.”
무휼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는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지금 호원이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저렇게 단호한 얼굴을 할 때면, 호원은 꼭 슬픈 말을 했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손안에서 호원이 깍지 낀 손가락을 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무휼은 다른 손으로 호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급한 행동에 호원의 입가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돼요.”
“무휼아.”
호원이 재차 그를 불렀다. 무휼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호원을 올려다보았다.
냉담한, 차갑게 굳은 갈색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형처럼 감정이 보이지 않는 갈색 눈동자에 한껏 일그러진 무휼의 얼굴만이 비쳤다.
“싫어요….”
제발. 무휼은 애원했다. 어색하게 뱉어지는 존댓말 따위 이젠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지금 당장 호원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부유했고, 그 외에는 달빛처럼 새하얗게 표백되어 버렸다.
뺨을 타고 따듯한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호원의 입술이 떨어졌다.
“헤어지자.”
무휼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
너무 낡고 외져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어진 기차역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이런 역에 들어서기에는 너무 의외의 손님이라 역무원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 기차역은 하도 옛날에 지어진 역이라 새 직원은 오지도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고, 지금은 이 넓은 역을 관리하는 게 곧 60이 다 되어 가는 역무원 한 명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의 사이트에 올라가기라도 한 모양이다. 날이 추워지고 눈이 올까 말까 한 이맘때 즈음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갑잖은 손님들이 방문하곤 했다.
그들은 대부분 빈손이었고, 겨울인데도 이렇게 할 두꺼운 외투 한 장 두르지 않은 채였다. 얼굴은 거무죽죽하니 그늘이 져 있었다. 그런 이들은 대개 품 안에 눈물 냄새가 밴 종이 한 장을 넣고 오곤 했다.
역무원의 역할을 그런 이들을 대합실로 데려와 눈과 비를 피하게 해주고, 따듯한 싸구려 녹차나 믹스커피 따위를 한 잔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펑펑 울고, 누군가는 화를 내고, 그러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따듯한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마지막으로 그런 손님들이 처분해 달라고 전해주는 유서를 석유 난로에 넣어 태워주는 것이 역무원의 일이었다.
저 멀리서 손님 한 명이 천천히 걸어올 때만 해도 역무원은 또다시 손님맞이를 위해 석유 난로에 낡은 주전자를 올렸다. 그러나 그가 역 안으로 들어선 순간, 역무원은 당황해 버렸다.
남자는 지금까지의 손님들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30살도 안 된 것처럼 젊었고, 심지어 잘생긴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던 것이다.
큰 키에 잘 어울리는 연한 갈색 롱코트는 멋스러웠고, 그 안에 두른 회색 목도리도 어디 유명 메이커의 것처럼 보였다. 배우인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분위기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남자는 역무원을 발견하고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예의 바르고 우아한 행동거지마저 지금까지 본 손님과는 확연히 달라서 역무원은 퍼뜩 놀라 후다닥 고개를 마주 숙였다.
거참 놀랍네. 역무원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역에 저런 사람이 다 오다니.
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느낌의 청년이 다녀갔었다. 조금 긴 듯한 갈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예쁘장한 미남이라 기억에 남았었다.
그 청년도 불쑥 나타나서는 역의 벽을 한참 올려다보다 기차를 타고 떠났었다. 기묘한 분위기라 역무원은 이제껏 자신이 환각이라도 본 게 아닐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그런 기묘한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혹시 여기서 뭐 영화라도 찍나? 역무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흘긋흘긋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열차 대기선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한 곳에 서서 역 이름이 쓰인 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남자의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역 이름이 쓰인 현판은 교체하지 못한 지 오래되어 이름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교체할 사람이 역무원인데 허리가 아파 사다리는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었다.
역무원은 새삼스럽게 낡은 현판을 부끄러워하며 크흠,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거나 이 역을 안 좋게 생각할까 봐 괜히 눈치가 보였다.
“저기요.”
긴장하고 있어서일까. 남자가 대뜸 그를 불렀을 때, 역무원은 화들짝 놀라서 들고 있던 종이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네?”
목소리가 뒤집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대답에 신경 쓰느라 정작 남자의 뒷말은 놓쳐 버렸다.
역무원이 당황해하자 남자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더니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역무원은 화면 속에 크게 박힌 한 청년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드려다 도로 시선을 내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 저번의 그 갈색 머리 청년이었다. 혹시 눈앞의 남자는 이 청년을 찾으러 온 걸까? 의아해하는데 시선 한 자락에 남자의 손목이 들어왔다.
코트 소매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남자의 손목에 가로로 길게 흰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선명하고 깊은 흉터였다.
어쩐지 꺼림칙했다. 꼭 사람이 아니라 귀신과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비현실감에 역무원은 생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
남자가 재차 목소리를 냈을 때에야 역무원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잘생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이 사람, 본 적 있으시죠?”
이곳, 곡창역에서 역무원을 한 지 어언 30년.
그동안 역무원은 많은 승객을 봐왔지만, 그중에서도 이토록 기분 나쁜 손님은 처음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