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Hunting instinct (5)
신우대 축제는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3일 동안 개최되었다. 오전부터 이른 저녁까지는 각 학과에서 준비한 부스들이 열리고,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며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재단이 부유한 덕인지 초대가수 라인업도 좋고 부스들도 볼거리가 많아 일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우대 축제가 유명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우대 축제에는 한 가지 특별한 규칙이 있었는데, 주점으로 부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주점 운영이 곧 성적 평가로 이어지는 식음료학과를 제외하고, 축제에서 주점을 운영하길 원하는 학과는 무조건 기획안 공모에 참가해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보다 특별하고, 현실적이며, 창의적인 주점을 기획한 학과만이 심사에 통과해 주점 운영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각 학과는 축제 약 2달 전부터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었고, 오로지 축제만을 위해 특별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기획들을 평가했다.
덕분에 주점 운영권을 건 공모는 매년 치열해져서, 이제는 주점 운영권을 따내는 것만이 축제의 목적이 되어버린 학과도 많았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통과한 학과들의 주점은 그야말로 기상천외란 말이 잘 어울렸다.
“거기 누가 전기 좀 끌어와!”
“애드벌룬 이거면 충분해? 잠깐! 그거 거기 아냐!”
“여기 있던 알전구 누가 가져갔어? 나무에 걸어야 하는데 안 보이잖아!”
학생들은 대체 어디에 쓰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바쁘게 움직였다.
한 천막에서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묘목들에 나뭇잎처럼 얽힌 알전구를 걸어 휘황찬란한 빛을 뿌렸다.
천막 기둥에 천 대신 비닐을 붙여 안이 비치도록 한 곳도 있었고, 암막으로 사방을 막아 어둡게 꾸미고 촛불 모양 무드등을 켜 내부를 밝히는 곳도 있었다.
호원은 차근차근 완성되어 가는 천막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당장 내일부터 축제가 시작되는 만큼,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의에 차 있었다.
“다들 진짜 열심히 하네. 진짜 지도 볼 맛 나겠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총학생회로부터 전달받은 축제 안내서가 들려 있었다. 관광지 지도처럼 생긴 팸플릿에는 각 학과에서 운영하는 부스의 소개와 위치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주점 경쟁에서 떨어진 학과들도 카페나 음식점, 전시장 등으로 구성을 바꿔 운영하기 때문에 어딜 가도 수준이 꽤나 높았다.
이들이 이렇게나 열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학장과 재단장이 의기투합해서 부상을 내걸기 때문이었다.
전체 부스 중 매출이 가장 높은 학과는 그 매출을 그대로 학과 운영비로 쓰게 해준다거나, 가장 방문객이 많은 학과는 과방에 몇백만 원 상당의 전자기기를 신청하는 대로 전부 놔주는 등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부상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창 경쟁과 상품에 열 올릴 나이인 대학생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와 투표 방법도 바꿨네. 우리 때는 제일 재밌는 부스에 스티커 붙여주는 게 다였는데.”
호원이 팸플릿 한쪽에 인쇄되어 있는 QR코드를 보며 감탄했다. 방문자가 핸드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각 부스들의 정보를 열람하고 좋았던 부스에 투표할 수 있는 사이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며 호원은 휴대폰 화면을 무휼에게 내밀었다.
“봐봐, 너희 과도 있어.”
호원이 내민 화면 속에는 체육대의 이름 옆으로 ‘주점’이라는 분류 표기가 떠 있었다.
이벤트 기획이나 서류 작업에 약한 편인 체대는 올해 제일 먼저 주점 운영권을 따냈다. 그 의외의 결과에 다른 과에서는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전말을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는 무휼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는 축제 2달 전쯤, 학과장 선배가 찾아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가 그 유명한 권무휼이구나? 이번 축제에 우리 학과도 주점 하려는데, 거기 기획안에 네 사진 좀 써도 되지?’
인사도 없이 다다다 용건만 뱉은 학과장은 무휼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고마워!’라고 외치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야말로 돌풍과도 같은 등장과 퇴장이었다.
무휼은 그 후 체대의 주점 기획안이 어떤 식으로 올라갔는지는 몰랐지만, 기획안의 검토와 심사 통과까지의 시간이 이례적일 정도로 빨랐다는 것은 들었다.
‘말하면… 싫어하려나?’
무휼이 흘긋 호원을 쳐다보았다. 이전에 최민호의 말에 반응하던 걸 생각해 보면 그다지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처럼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들 열정이 넘치네. 너희 과는 분위기 어때?”
호원의 질문에 무휼은 상념에서 깨어 그를 쳐다보았다. 흥미가 가득 담긴 갈색 눈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무휼은 호원을 만나기 전에 잠시 들렀던 부스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다른 데랑 똑같지, 뭐. 다들 의욕이 과해서 저러다 터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야.”
“그런 것치고는 넌 한가로워 보이는데.”
“난 할 거 없다 그러길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으니 무휼도 축제 준비에 동원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동기며 선배들은 그에게 어떤 일도 시키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오늘은 가서 푹 쉬라며 천막을 설치하는 일마저도 제외당했다.
지금 일해두면 나중에 광고탑으로 일할 시간이 좀 줄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무휼은 억지로 등을 떠밀려 부스에서 쫓겨나야 했다.
“너… 괜찮겠어?”
호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뭘?”
무휼은 그가 뭘 걱정하는지 몰라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호원은 뭐라 설명하려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피식 웃으며 성큼 앞서 걸어갔다.
“모르면 됐어. …고생해라.”
뒷말은 작게 속삭이다시피 한 말이었지만 무휼은 똑똑히 들었다.
대체 왜 저래? 무휼은 의아해하며 어느새 멀어진 호원의 뒤를 성큼 쫓았다.
***
숙경은 복잡한 심경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쪽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름 한 자 없이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는 쪽지를 가만 쳐다보며 그녀는 남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진수의 학교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난, 훈훈하게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던 남자.
‘김진수 어머니 되시죠?’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는 그 자리에 굳었다. 지금 소중한 그녀의 아들은 병원 침대에 누워 남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아들은 모두 제 잘못이라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뭔가 내막이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 진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아이라 믿으니까.
아마 그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 것인지, 언제 한번 시간을 내달라고 말하던 남자는 곧바로 말을 바꿔 뜻밖의 제안을 꺼냈다.
‘괜찮으시면 차나 한잔 어때요?’
아드님과 관련된 이야긴데. 나직하게 덧붙이는 목소리를 하와를 홀리는 뱀처럼 묘한 마력을 지니고 그녀를 유혹했다. 그녀는 뭔가에 취한 것처럼 남자를 따라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아들의 사고가 있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아들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파릇파릇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날 사고 현장에 있던 다른 학생 역시 동갑의 나이라고 들었다.
고작 21살 먹은 어린아이가 감히 그런 짓을 했다니. 그녀는 놀라는 한편 공포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사실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제 갓 사회에 나온 21살짜리 어린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악마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남자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번호로 연락 달라며 숙경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음료를 그대로 둔 채 쪽지만 손에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그 후로 사흘.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일이었다.
더 늦건 빠르건 그녀는 행동을 취했을 거고, 그 결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숙경은 거실 한쪽 테이블에 있는 오래된 유선 전화기에 시선을 두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낡은 전화기는 남편의 취향으로, 그녀가 타인과 연락을 취할 방법은 오롯이 그게 전부였다.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에 게임기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건만, 그녀에게는 오래되어 전화와 문자밖에 안 되는 구형 휴대전화밖에 없었다.
남편은 그녀가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지인들과 긴밀하게 연락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 탓에 그녀 주변에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 친구들마저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숙경이 기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진혁과 진수 형제뿐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그 형제를 완벽하게 키우는 데에만 의미가 있었다.
이미 진혁이는 실패해 버렸다. 진수마저 이대로 실패해 버린다면 남편은 그녀를 기어이 이 집에서 내쫓아 버릴지도 모른다.
다이얼을 누르는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숙경은 지난 사흘 동안 틈만 나면 들여다보았던 번호를 차근차근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것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체온이 단숨에 올랐고 전신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이것이 맞는 선택일까? 일순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것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수화기 너머로 예의 불길하리만치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후였다.
[진수 어머님?]
자신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몰랐을 텐데도,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숙경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의 정체가 하와를 타락시키는 뱀일지, 악마를 벌하는 천사일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인생을 더한 지옥으로 빠트릴 사탄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쪽인들 어떤가? 그녀는 아들이 왜 병원 침대 신세를 지게 되었는가만 알 수 있다면 그 전서구가 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든 검은 날개를 가지고 있든 아무 상관 없었다.
“네, 저예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 강렬한 직감이 전신을 내달리는 것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의 물음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