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어린 개의 육감 (3)
그새 시간이 많이 늦긴 했는지 도로 상황은 꽤 한산했다. 그 덕에 택시는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휼은 택시비를 지불하고는 반쯤 잠들어 있는 호원을 차에서 끄집어냈다.
오는 동안 무휼의 어깨가 퍽 편안했는지 호원은 반쯤 잠들다시피 해선 비틀거리며 무휼에게 몸을 기댔다.
“안 되겠다.”
나중에 뭐라 하든 일단 지금 편하고 보자. 그렇게 생각한 무휼은 호원의 무릎 뒤와 등허리를 붙잡고 번쩍 안아 들었다.
“와아- 멋지네?”
호원은 평소처럼 화를 내기는커녕 무휼의 목에 덥석 팔을 감으며 감탄했다.
“너 힘 세구나.”
반쯤 잠기운에 잠겨 몽롱한 목소리로 흘리는 말에 무휼은 귓가가 화륵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냐, 진정하자 권무휼. 상대는 주정뱅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박자박 잔디 밟는 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혹시나 싶어 긴장했지만 다행히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이 시간이면 집이 비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휼은 호원을 현관에 잠시 앉혀놓고 신발을 벗겼다. 그러고는 짐짝처럼 호원을 어깨에 둘러메고 거실을 가로질러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높다란 계단을 절반쯤 지날 때였다.
“무휼아.”
“왜.”
“화장실이 어디야.”
지금까지와는 달리 뚜렷한 발음에 이상하다 생각하던 무휼은 뒤이어 그 내용이 암시하는 것을 떠올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 잠깐만 당신-”
“웁.”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무휼은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오르더니 복도 끝의 방으로 직행했다. 호원이 한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는 게 닿아 있는 어깨로 느껴졌다.
“조금만 참아!”
“우욱.”
무휼은 방에 딸린 욕실로 호원을 데려가 내려놓았다. 호원은 발이 땅에 닿자마자 변기를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썩 듣기 좋지 않은 소리가 넓은 화장실 벽을 타고 웅웅 울렸다. 무휼은 어쩔 줄 몰라 하다 조심스럽게 호원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투박한 손길로 등을 토닥이며 허물어지는 몸을 붙잡아 지탱했다.
안주도 제대로 먹지 않고 술만 들이켠 탓에 게워낼 만한 것도 딱히 없었다. 옆에서 세 사람이나 살뜰히 챙겨서 뭐라도 많이 먹은 줄 알았더니만, 속 다 상하려고. 무휼은 다음엔 주의해야겠다 생각하며 조심조심 호원의 등을 쓸었다.
한참 욱욱거리며 헛구역질을 하던 호원은 이윽고 무휼에게 몸을 기댄 채 헐떡거렸다. 어느 정도 토기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무휼은 호원을 부축해 침대 헤드에 기대 앉혀놓고는 뒤처리를 하고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고 왔다.
뚜껑을 여는데 손바닥에 서늘하게 감겨오는 냉기가 신경 쓰였다.
“찬물인데 괜찮아? 미지근한 물 가져다줄까?”
“괜찮아….”
호원은 무휼이 내미는 생수병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바로 전에 속을 게워낸 주제에 찬물을 너무 들이켜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아, 무휼은 호원이 입을 떼자마자 생수병을 도로 받아 협탁에 올려두었다.
호원은 침대 헤드에 몸을 깊게 파묻더니 그대로 스르륵 흘러내렸다. 반쯤 눕다시피 한 그가 손등을 들어 눈가에 대었다. 깊은 밤의 찬바람에 식은 피부가 홧홧하게 열이 오른 머리를 식히는 듯했다.
“미안…. 너한테 못 볼 꼴 보였네.”
“신경 쓰지 마.”
무휼은 호원의 곁에 걸터앉았다. 창백한 뺨에 손등을 대자 얇은 피부 너머로 뜨거운 체온이 전해져 왔다.
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냉각 시트가 어딨더라. 무휼이 머릿속으로 약상자와 냉각 시트의 위치를 더듬으며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평소엔 이렇게까지 안 마셔. 그냥… 오늘 일이 다 꿈 같아서. 마시고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
그 말에 무휼은 다시 시트에 몸을 붙였다. 호원은 눈가에 대고 있던 손을 내려 뺨을 감싼 무휼의 손을 그러쥐었다. 열이 오른 건 손도 마찬가지인지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열이 뜨거웠다.
“6년이나 걸려서 겨우 가진 가게였어.”
억눌린 듯한 목소리는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무휼은 아무 말 없이 손을 그에게 맡긴 채 손등과 손바닥에서 흘러들어 오는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바 ‘3월’이 그가 20살 때부터 악착같이 일하고 공부해서 얻은 가게였다는 건 시영을 통해 들은 적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하고, 자격증을 따고,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서 아귀처럼 경험을 얻으면서 조금씩 쌓아 올린 곳이었다.
“그리고 6년 동안… 내 손으로 키우고 보살핀 가게였어.”
가게를 갖는 데 6년. 그리고 하나하나 가꿔 지금의 바 ‘3월’로 만들기까지 또 6년.
그렇게 호원의 12년의 시간이 오늘 불타 버린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제정신을 유지한 것만 해도 무휼은 그가 얼마나 강한 의지력을 가졌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섣불리 돕겠다는 말도, 당신 지금 괜찮냐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시영을 도와 가게 안을 치웠다. 타버린 가구를 그의 눈이 닿지 않게 창고로 옮겼고 깨진 술병을 치웠다. 그의 마음과 같을 그 광경을 어떻게든 돌려놔 주고 싶었다.
식사 자리에서 진혁과 다툴 뻔한 건 반은 진심이었지만 반쯤은 호원의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러 으르렁거리며 진혁의 신경을 긁고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고 삐진 것처럼 툴툴거렸다.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호원은 많이 웃고 많이 마셨다. 그 웃는 얼굴이 가짜라는 것 따위 무휼은 모를 수가 없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데도 군말 없이 잔을 채워주었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왜 하필-”
호원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불행한 사고. 보험사에서 나온 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화재 원인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화재 진원지가 부엌 쪽인 걸 보니 가스 누출로 인한 화재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 불행한 사고라는 건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당하는 일일까.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오늘, 하필 자신의 가게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걸까.
‘게다가-’
호원은 질끈 눈을 감았다. 술기운에 얼굴에도 열이 올랐다. 그 홧홧한 피부의 열기가 낮에 마주했던 끔찍한 광경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새빨간 불꽃이 날름거리며 창문을 부수고 벽을 기어올랐다. 사방으로 재가 튀고 우지직- 하는 나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불에 타는 소리가 그토록 요란할 수 있다는 것을 호원은 오늘 처음 알았다.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전신에 휘감기는 열기 속에 호원은 어떤 목소리를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더라. 호원은 몽롱한 정신 속에 그 잔상을 잡아채 보려 했지만 상대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불길함이라는 개념이 음성으로 빚어진 것 같은 그 목소리만은 머릿속 한구석에 들러붙어 지워지질 않았다.
대체 누구였을까. 기억해 내야 할 것 같은데, 동시에 기억해 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감은 눈가를 지그시 누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서늘한 피부의 감촉이 달아오른 눈가를 차게 식혔다. 젖은 속눈썹에서 물기가 느껴졌을 텐데도 큰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호원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자.”
부드럽게 감겨오는 목소리가 달큰했다. 마주 잡았던 손이 스르륵 빠져나가 등허리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가볍게 들어 올려진 몸은 푹신한 시트 위에 내려앉았다. 몸에 닿은 침구에서는 너른 숲 한가운데 선 것처럼 상쾌한 향이 났다. 어지럽던 머리가 순식간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무휼아.”
“응.”
고마워. 그 말을 입속으로 웅얼거렸는지 말로 전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호원은 눈을 덮은 타인의 체온을 절절하게 느끼며 긴 숨을 내뱉었다.
***
“고마워.”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희미한 그 말을 들었을 때, 무휼은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굵은 가시로 가슴을 마구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난 당신한테 그런 말 들을 자격 없는데-”
무휼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오늘 한 것이라고는 고작 쓰레기를 치우고 애처럼 다툰 것밖에 없었다.
시영처럼 바로 구입해야 하는 보틀의 리스트를 짤 능력도 없었고, 그 꼴 보기 싫은 김진혁처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힘도 없었다.
지금의 그는 그저, 미래도 불투명하고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보다 훨씬 어른인 호원에게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짐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인 존재였다.
무휼은 어느새 색색거리며 규칙적인 숨을 내뱉는 호원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술기운에 살짝 붉어진 얼굴에는 피로감이 짙게 묻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눈을 덮은 손을 떼어내고 손가락으로 눈가에 남은 물기를 걷어냈다.
이 사람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무휼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반짝거리는 물방울을 꾹 감아쥐었다.
자기 주변의 사람에게 큰 사고가 났을 때, 그것이 ‘우연한’ 사고라는 사실을 순수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예전부터 그랬다. 그가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치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재앙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재앙은 결국 유일하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던 양아버지마저 삼켜 버렸다.
그 뒤로도 사건 사고야 많았지만, 대부분 원인은 분명하게 있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고. 지긋지긋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제 호원과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전화를 받았을 때,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무휼아, 어떡해…. 가게에… 가게에 불이….]
시영의 목소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한 음절 음절마다 물기가 묻어났다. 119에는 신고했고, 호원 오빠는 마침 밖에 있다가 돌아와서 지금 옆에 있다. 시영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그걸 듣는 무휼은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하다, 가까스로 옆에 있던 가로등을 붙잡았다. 몸이 덜덜 떨리고 등 뒤로 오한이 몰아쳤다.
안일했다. 호원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서 그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무휼은 헐떡거리며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호원이 있을 가게를 향해 뛰고 있었다.
생각에 잠겼던 무휼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침대에 잠들어 있는 호원의 얼굴로 푸른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호원의 하얀 뺨에 손등을 대었다.
창백한 피부에서 넘어오는 높은 체온에 안도의 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