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사이트 하운드
호원의 차는 큰길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길로 접어들면서 호원은 의아한 기분에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안내를 따라 들어온 건 좋았는데, 이상하게 가는 길이 익숙한 것은 제 착각일까.
“너 이 동네 살았어?”
“응.”
무휼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단답뿐이었다. 호원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핸들을 돌렸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이었지만 익숙한 만큼 운전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했다.
겉보기에도 그렇고, 바 단골이자 무휼의 팀메이트인 민호에게 들은 바로도 무휼의 집이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만 해도 얼핏 보기엔 평범한 트레이닝복이었지만 호원도 알 만한 명품 브랜드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동네는 대학가며 원룸용 빌라들이 즐비한 곳이라 도저히 무휼의 집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혹시 거짓말한 게 아닐까 싶어 호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목적지는 맞으니까 나 믿고 가봐.”
무휼이 그런 호원의 생각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했다. 속을 들킨 듯한 기분에 호원은 입을 다물고 액셀을 밟았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와 함께 호원의 시야에 잡힌 것은 익숙한 건물이었다.
“우리 가게 옆집?”
“응.”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 완연한 호원의 목소리에도 무휼은 당당하기만 했다. 차를 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호원은 별수 없이 평소 차를 대던 곳에 주차를 해야 했다.
그러니까, 바 ‘3월’이 있는 건물 1층 주차장에.
호원이 자동차를 본래 있던 곳에 대자마자 무휼이 기다렸다는 듯 히죽 웃었다.
“나도 당신 가게 가는 길이었거든. 그러니 목적지는 맞잖아?”
뻔뻔스럽게 웃는 얼굴에 호원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건 무휼이 거짓말을 했다는 데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무휼이 가게 주소를 외우고 있었다는 것도, 혹시라도 자신이 알아차릴까 봐 옆집 주소로 목적지를 지정한 것도 마냥 당돌하고 귀엽게 보이는 스스로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갔나 봐.’
호원은 핸들에 두 손을 포갠 채로 이마를 기댔다. 가슴속에 보송보송한 깃털을 한가득 채워 넣은 것처럼 간질간질했다.
“주인님.”
낮은 목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속닥거려 왔다. 고막이 녹아버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끈적하게 부드러운 소리였다.
“고개 좀 들어봐.”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한 부탁에 속절없이 고개가 들렸다. 언제 안전벨트를 풀었는지 무휼의 얼굴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도장 찍듯 호원의 입술을 꾹 누른 무휼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손목을 감싸 핸들에서 떼어내는 큰 손의 체온이 뜨거웠다.
찰칵,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슴 앞에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던 안전벨트가 풀렸다. 어깨를 지그시 미는 힘에 등줄기로 시트 가죽이 닿았다.
델 것처럼 뜨거운 입술이 다시금 호원의 숨을 삼켰다. 흐릿해진 시야에 운전석 창문을 짚은 커다란 손과 빠져들 것처럼 진한 푸른색 눈동자가 비쳤다.
“안에 들여보내 주면 안 될까?”
살짝 떨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음성이 야릇했다.
어딜 들여보내 달라는 거야. 호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잠시 후에야 호원은 그의 말이 가게 위층, 호원의 집에 들여보내 달라는 소리라는 걸 깨닫고 얼굴을 더 새빨갛게 물들였다.
“오픈 준비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
시계는 또 언제 확인한 건지, 무휼이 은근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입술을 맞대다시피 하는 거리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무휼을 집에 데려다주고 올 생각으로 일찍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 당돌한 강아지 녀석은 애초부터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호원이 차오른 숨을 할딱거리며 무휼의 가슴을 꾹 밀어냈다. 순순히 몸을 물렸던 무휼이 다시 상체를 내리는데, 호원의 손이 그의 입을 턱 막았다.
“내가 말했지.”
“뭘?”
얼굴의 반이 손바닥에 가려져 있는데도 웃고 있는 얼굴이라는 게 잘 보였다. 호원은 초승달처럼 사르르 휘어지는 푸른 눈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또 허락도 없이 입질하면 혼난다고.”
“엇?”
무휼이 채 대꾸하기도 전에 호원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호원은 오른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은 채로 휙 내던졌다.
무방비하게 있던 무휼은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속절없이 밀려가다 자동차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악!”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휼의 비명이 짧게 울렸다. 무휼은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서 커다란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난 옷 갈아입고 가게로 갈 테니 넌 머리 좀 식히고 들어와. 무알코올 음료 정도는 만들어줄 테니까.”
시동을 끈 호원이 차 키를 무휼에게 던지며 말했다. 그 말에 무휼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자동차 키를 가볍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햇빛을 받은 호수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디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호원은 피식 웃더니 그의 반듯한 이마에 딱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당연히 가게지, 멍멍아.”
“아씨-”
무휼이 화끈거리는 이마를 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이 억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호원이 키득키득 웃으며 차 문을 열었다.
***
“…하.”
천천히 저무는 햇빛이 가득 내려앉은 거리 위로 짧은 헛웃음이 흩어졌다. 술집이며 원룸 빌라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그림자가 길게 몸을 늘였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음험하게 들렸다. 깊게 눌러쓴 모자챙 아래로 날카롭게 치뜬 눈이 살기를 담아 이글거렸다. 그 시선은 이제 막 차에서 내리는 호원을 향하고 있었다.
한여름의 햇볕에 녹아내린 젤리처럼 끈적한 시선이 호원의 전신을 훑었다. 호원은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 층계를 밟아 올라갔다.
길고 곧게 뻗은 종아리 아래로 가느다란 발목이 훤히 보였다. 남자의 시선이 그 맨다리에 한참 동안 머물렀다.
이윽고 호원이 2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호원의 차 조수석에 몸을 깊게 묻은 채 마른세수를 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또 뭐야.”
남자가 나직하게 말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단번에 그 차가 어떤 차인지 알아봤다. 호원이 큰맘 먹고 샀다며 중요한 날 외에는 시동도 잘 켜지 않던 차였다.
그런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 심지어 호원과 굉장히 가까운 듯 스킨십을 하는 것조차 서슴없었다.
“거슬려.”
악문 잇새로 짓씹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단단하게 말아 쥔 주먹 위로 도끼질을 당한 나무처럼 손목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여러 개 새겨져 있었다.
잠시 그 자리를 지키던 남자는 이윽고 등을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
“그러니까, 어머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진혁은 한숨을 삼키는 얼굴로 말하며 이마를 짚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까칠한 피부와 눈 아래 짙게 그늘이 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일은 전적으로 저희 잘못이었다고요.”
울컥울컥 올라오는 한숨 대신, 그는 몇 번이고 했던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상대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이 없는 듯 결연한 얼굴로 고개만 저어댔다.
“아냐, 분명 뭔가 있어. 우리 진수가 그럴 리 없잖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상할 게 뭐가 있어요, 대체.”
저도 모르게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것을 느꼈는지 상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었던 그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상대 쪽은 아무 잘못도 없고, 진수가 잘못한 거라고요. 진수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가족 모두 잘못이 있어요. 그러니-”
“아니, 아니야. 너도 속고 있는 거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희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자로 다물린 입술과 치켜뜬 눈은 그녀의 확고한 믿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진혁은 오랜만의 식사고 뭐고 그저 지금 눈앞의 상을 들어 엎고 싶었다. 가지런하게 차려진 한정식은 가격대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색깔과 향을 뽐내고 있었지만 아까 전부터 음식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입 안이 모래를 한가득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까끌까끌했다.
마음 같아서는 냉수라도 한 병 들이켜고 싶었지만 하필 그가 예약한 고급 한정식집에서는 나오는 물 하나마저도 평범하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진혁은 하얀 도기에 담긴 연꽃차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면서 지금쯤 병원 특실에서 한가롭게 만화책이나 보고 있을 동생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픈 녀석한테 이런 뒤처리까지 시킬 수는 없다지만, 이 정도로 고된 일이 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럴 바엔 아버지한테 따귀 한 대 더 맞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할 수준이었다.
“오늘도 학교까지 찾아가셨다면서요.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내가 간 것까지 그새 너한테 홀랑 일러바쳤니? 거봐,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 너도 그렇고 진수도 그렇고, 순진해서 그 애들한테 놀아나는 거야.”
“어머니 제발….”
진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잇다 입술을 잘근 말아 물었다.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해 보였다.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식사를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쪽에 고이 걸려 있는 재킷을 낚아챈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더 이상 그 사람들한테 폐 끼치면 어머니라 해도 가만 안 있을 테니 그렇게 아세요.”
“진혁아, 너….”
“계산해 둘 테니 식사 드시고 가세요.”
더 이상 말을 잇기 싫다는 듯 진혁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해가 완전히 진 저녁 시간대라 사위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진혁이 새하얀 끄트머리에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새벽빛을 받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잠시 후, 그는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자동차 키를 쥐었다.
지금 당장,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곳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