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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50)화 (50/101)

제50화. 동물의 직감은 때때로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차 안은 안온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호원은 묵묵히 운전을 했고 무휼은 창문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로 그런 호원을 감상했다. 떨어지지 않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했지만 호원은 이따금 눈동자를 굴려 흘긋거릴 뿐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도로는 점점 한산해졌다. 이쯤 되면 불안해서라도 목적지를 물어볼 텐데, 무휼에게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디 가는지 안 물어봐?”

참다못한 호원이 슬쩍 입을 열었다. 흘긋흘긋 무휼 쪽을 쳐다보며 입술을 우물거리는 것이, 어째 본인이 더 말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런 호원을 알아채지 못할 무휼이 아니었다.

그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려 팔짱을 끼더니 눈을 휘며 웃었다. 선명하게 푸른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모양 좋은 입매가 느른하게 올라갔다.

“그러게. 대체 어딜 가길래 이렇게 인적 드문 산길을 다 갈까.”

마냥 여유로워 보이더니 궁금하긴 했나 보다 싶어 호원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이어진 무휼의 말에 그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대낮부터 우리 주인님께서 적극적이시니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그러네.”

“…뭐?”

“아냐?”

호원이 황당한 얼굴로 돌아보자 무휼이 어깨를 으쓱하며 전면 유리를 고갯짓했다. 운전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호원은 화들짝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옆에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운전 중에 정신을 팔 수는 없었다.

그런 그의 옆모습에 대고 무휼이 설명을 덧붙였다.

“다짜고짜 조수석에 태우더니 으슥한 산길만 골라 가는데, 나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

웃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만은 진지해서 진담인지 아닌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호원은 핸들에 이마를 박고 싶은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생각하는 게 그런 것밖에 없어?”

“내가 뭐.”

뾰족한 목소리로 타박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태평하기 그지없는 대답뿐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저런 애를…. 한숨을 내쉰 호원이 핸들을 크게 틀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타이어가 작은 자갈이 깔린 길 위를 드륵드륵 움직였다. 딱 중형차 3~4대 정도면 꽉 찰 듯한 아담한 주차장에 도착한 차가 매끄럽게 주차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생각보다 꽤 늦었네.”

호원이 흘긋 계기판의 시계를 보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로 몸을 살짝 내밀며 한 손으로 조수석의 시트를 붙잡았다. 자갈이 많이 깔린 데다 바로 뒤에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주차하기가 까다로웠다.

우거진 수풀 때문에 어둑어둑한 뒤편을 식별하느라 호원의 눈이 찌푸려졌다.

“나한테 뭐라고 하더니.”

그때, 바로 지척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돌연 시야 가득 푸른 빛이 차올랐다.

맞닿은 입술에서 델 것처럼 뜨거운 체온이 넘어왔다. 놀라 눈을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 떨어져 나간 무휼이 몸을 물렸다.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짧은 입맞춤이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거지?”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무휼이 씩 웃었다. 장난기가 다분히 섞인 여유로운 모습에 괜히 심술이 났다.

“또 허락도 없이 입질하면 혼나.”

“무서워라.”

무휼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원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 왔어. 내려.”

호원이 시동을 끄며 하는 말에 무휼은 그제야 전면 유리를 쳐다보았다.

아담하게 작은 산장은 한껏 짙어진 녹음에 잡아먹힌 것처럼 보였다. 눈 닿는 모든 곳이 푸르러 지나치게 선명한 색상에 오히려 눈이 부셨다.

차 문을 열자마자 풀 특유의 싱그러운 냄새와 이끼의 습한 냄새가 뒤섞여 들이닥쳤다. 늦여름의 숲속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살갗에 닿는 공기도 서늘했다.

조금 습하게 느껴지는 나무 그늘로 발을 디디는데, 문득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였을 때처럼 당황스럽고 거북한 감각. 조금 짜증이 나는 듯도 갑자기 왈칵 설움이 올라오는 듯도 한 감각에 무휼은 잠시 어쩔 줄을 몰랐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데 그게 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걸까.

갈팡질팡 흔들리는 시야에 카디건을 걸친 등이 비쳤다. 그것은 이윽고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호원의 얼굴이 되었다.

“당신….”

속삭이듯 중얼거린 목소리는 공기 중에 녹아들 듯 사그라들었다. 무휼은 누군가 목줄기를 틀어쥔 것처럼 목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가 이상하다. 분명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맞는데, 아무래도 호원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러나 귓가에 파고드는 걱정 어린 말을 듣는 순간, 막혔던 숨이 트이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떠돌던 모든 감각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무휼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저 지금 그와 함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되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가.”

무휼은 햇빛 아래 선 호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며 입꼬리를 올렸다.

***

“그런데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무휼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아기자기한 산장을 훑어보며 물었다.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향긋한 커피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지리상으로 보나 외관상으로 보나 아무리 봐도 영업 중인 카페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미심쩍은 무휼의 표정에 그의 생각을 알아본 듯 호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카페. …겸 식당?”

“이런 데에?”

“겸 상담소.”

이어진 말에 무휼의 표정이 더 오묘해졌다. 호원은 가볍게 웃으며 이끼로 살짝 덮인 철제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선생님, 계세요?”

호원이 안쪽을 향해 외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꼭 단골집에라도 들어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산장 안에는 방금 막 커피를 내린 듯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무휼은 성큼성큼 앞서 들어가는 호원의 뒤를 천천히 따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무로 만든 찬장은 관리가 잘되어 반질반질했고, 그 안에 차곡차곡 쌓인 그릇들도 이 나간 곳 하나 없이 깔끔했다.

바깥에서 보기보다 안쪽 공간이 넓은 듯, 작은 소품들 몇 개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테이블과 소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도 좁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제각기 다른 무늬가 들어간 테이블보나 작은 헝겊 인형, 에어컨이 없는 데도 선선하고 쾌적한 공기는 긴장을 탁 놓게 만드는 평온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들어오는 순간 안락한 느낌이 든다는 데에서는 호원의 바 ‘3월’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선생님?”

“…원이니?”

드디어 호원이 산장 주인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호원은 산장 안쪽으로 쭉 들어가더니 계단 층계에서 몸을 내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꼭 숨바꼭질하는 아이 같아 무휼은 피식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막아야 했다.

이윽고 계단 위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낡은 상자를 옆구리에 낀 중년의 여성이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정말 원이구나!”

듬성듬성 새치가 보이는 머리카락을 단정히 올린 여성은 호원의 얼굴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한 팔을 벌렸다. 호원은 그녀를 마주 안아주고는 낡은 상자를 받아 대신 들었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오랜만에 보는 모자지간을 떠오르게 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연락도 자주 안 하면서 얼굴도 잘 안 비추고, 서운하게 하는 덴 선수지.”

“가게 일 보느라 바빴어요.”

호원은 샐쭉하게 그를 노려보는 여인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호원의 모습은 퍽 신선한 것이었기에, 무휼은 말 한마디 없이 그런 두 사람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렀지. 그러면 학생 때 알던 사이인 걸까?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호원의 등을 팡팡 때리던 여인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쪽의 잘생긴 청년은 또 누구?”

호원은 그제야 아차 하며 무휼을 돌아보았다.

“인사해, 무휼아. 이쪽은 내 선생님이신 김순영 여사. 그냥 김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돼. 그리고 선생님, 이쪽은….”

매끄럽게 말을 잇던 호원이 뒷말을 얼버무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휼을 뭐라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무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연하의 잘생긴 애인입니다, 하면 될걸. 하여간 손 많이 가는 사람이다 싶었다.

“권무휼입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 자신의 죄인 것을. 무휼은 붙임성 좋은 미소를 걸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끔 시간 날 때 오너의 가게를 돕고 있습니다.”

“아아….”

순영은 인상 좋은 얼굴만큼이나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무휼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무휼을 소개할 타이밍을 빼앗긴 호원은 곤란한 듯 미간을 좁히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무휼은 그런 호원에게 잠시 서운함을 느꼈다. 가끔 시간 날 때 가게를 돕는 청년. 일견 아무 관계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개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두 사람 사이를 정의하기에는 가장 들어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 점이 무휼은 못내 아쉬웠다.

“자, 그럼. 모처럼 원이가 왔으니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순영이 팔을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카페 겸 음식점이라더니, 제대로 된 좌석이라 할 만한 건 4명 정도 겨우 나란히 앉을 만한 길쭉한 바 테이블이 다였다.

이제 보니 나름 오픈 키친으로 꾸며둔 것이었는지 테이블에 앉으면 주방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그런 구조 때문인지 대낮에 바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영은 창고처럼 보이는 방에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가져오는가 싶더니 호원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내 정신 좀 봐. 원아, 마당에 가서 허브 좀 따올래? 아까 해놓는다는 게 깜빡했지 뭐니.”

“얼마나요?”

호원은 익숙한 일인 듯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그러고는 순영이 대답하자마자 작은 소쿠리와 과도를 척척 꺼내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늘상 드나드는 듯한 익숙한 모습에 헛웃음을 뱉고 있는데, 순영이 무휼의 팔을 턱 붙잡았다.

“그리고 무휼 씨는 나 좀 도와줘야겠어.”

“…네?”

무휼이 멍하니 대꾸했다. 도와? 뭘?

순영은 당황이 가득 묻어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향해 씩 웃으며 물었다.

“자네 칼질 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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