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45)화 (45/101)

제45화. 집에 홀로 남은 개는 주인의 생각을 한다

그날 이후, 무휼은 바 ‘3월’에는 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호원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던 무휼은 언제든 어디서든 휴대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사실 확인하는 버릇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확인했다가 실망하는’ 버릇이 생긴 셈이었다.

그 사건 이후 바 ‘3월’이 어떻게 되었는지라든가, 호원 본인이 잘 지내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기대했지만, 호원이 그 기대에 부응해 주는 일은 없었다.

대신 시영으로부터 예의 스토커 일이 무난하게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요즘 바에는 오지 않냐며 은근하게 물었지만, 무휼은 그저 힘없이 웃을 뿐 대답할 수 없었다. 시영도 더 묻지 않고 잘 지내란 말만 되돌려 주었다. 사려 깊은 그녀다운 대응이었다.

무휼은 어깨의 가방을 추어올리며 마당 잔디를 가로질렀다. 무거운 대문을 한 손으로 열어젖히며 밖으로 나왔다.

반깁스를 했던 왼손은 이제 가벼운 테이핑만으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아직 경기를 뛰는 데는 무리가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나 싶어, 무휼은 왼손이 나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쓰렸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일은 금방 익숙해졌다. 애초에 호원의 집보다 그의 본가가 학교와 가까웠고, 호원의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집에서 등하교를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무휼은 꼭 해본 적도 없는 하숙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집이 어색하게 느껴지다니, 호원과 지낸 그 짧은 시간이 이토록 긴 여운을 남긴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팠다.

무휼은 습관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멈칫했다. 진동음을 내는 휴대폰 화면 가득 크게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입이 말랐다. 무휼은 선 채로 굳어 있다 천천히 수화기를 귀에 댔다.

수화기로부터 나직한 남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휼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고, 뒤이어 긴 한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후에 뵙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떨떠름해하는 어조였다고, 무휼은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섭섭하게 여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면 모를까.

“시간 참 빠르네.”

무휼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름이 지나간 하늘은 천천히 가을을 대비라도 하는 듯, 유독 푸르른 빛을 띠고 있었다.

***

오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 지는 꽤 됐다고, 무휼은 흐릿한 머리로 생각했다.

하루를 어찌어찌 흘려보내고 나면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이따금 누군가 말을 걸어오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화들짝 제정신이 돌아왔다가 또 멍하니 있게 되는 일의 반복이었다.

“어, 무휼이 너 웬일이냐? 운동에 방해된다고 끊지 않았나?”

인적 드문 골목이라 방심했던 게 잘못일까, 동기 한 명이 입술 끝에 걸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쓴웃음만 지으며 하얀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당겼다. 풀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며 가느다란 막대 끝에 불티가 번졌다.

“실연이라도 당했냐?”

농담조로 말을 뱉었던 동기는 이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크흠, 하고 다분히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마 자신의 표정을 본 모양이라고 무휼을 생각했지만, 부러 말을 덧대진 않았다.

“나, 나는 곧 수업 시작이라. 다음에 또 보자.”

동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짓으로 손을 흔들더니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벗어났다. 무휼은 그런 그를 구태여 잡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쉬니 하얀 막대 끝이 붉게 물들었다. 마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오늘따라 유독 매웠다.

무휼은 필터만 남은 담배를 튕겨 단번에 불씨를 털었다. 근처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비틀린 꽁초를 내버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큰길을 끼고 있는 대학가 앞에서는 택시를 잡는 게 퍽 수월했다. 병원 이름을 말하고는 시트에 몸을 푹 기댔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와 사람들이 휙휙 지나갔다. 어느덧 사람들의 옷차림은 짧은 반팔에서 얇은 카디건과 재킷으로 바뀌어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병실을 향해 가는 동안, 무휼은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췄다.

상대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막상 만나고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병실 문 앞에 선 그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가락은 손잡이를 잡았다기보다는 걸쳐 있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머뭇거리며 서 있는데, 갑자기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렸다.

“아, 왔네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직한 목소리가 묘하게 날이 선 것처럼 느껴졌다. 하기야 그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 리 없는 입장이니 불퉁한 태도도 이해가 갔다.

무휼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비슷한 눈높이의 남자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평균을 크게 웃도는 자신과 눈높이가 비슷하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여전히 연장자를 상대로 머리가 높네.”

호원 형은 올려다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뒤이은 말에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쪽한테 그런 말 들을 이유는 없는데요.”

“글쎄. …그런 것치고는 여유가 없어 보이는데.”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맞대응하지 못한 건 그저 갑자기 목이 막혔기 때문이다. 무휼은 부러 크흠, 하고 과장되게 목을 가다듬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상대는 더 이상 무휼의 심기를 긁을 생각이 없는 건지, 본인이 우위를 점했다 판단했는지 모를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 문이 탁, 소리를 내며 닫혔다.

“…….”

무휼은 자신을 부른 상대와 단둘이 병실 안에 남게 되자, 새삼스럽게 의식하지 못했던 어색함이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어 괜히 시선만 이리저리 굴렸다.

“권무휼.”

그런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상대방 쪽이었다. 무휼이 시선을 병신 안쪽으로 옮겼다. 창가에 붙은 1인용 침대 위에, 상대방이 상체를 세워 앉은 채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김진수는 이상하게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시트를 그러쥔 손이나 꽉 다물려 핏줄이 선 입가를 보니 긴장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쪽으로 더 와. 보다시피 내가 네 쪽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김진수는 그에게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무휼은 저도 모르게 그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트로 가려진 다리에는 아직도 두꺼운 깁스가 단단히 들러붙어 있을 터였다.

저 깁스를 풀고 나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할지는 미지수.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니 가슴 한쪽에 무거운 돌이라도 올린 것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고, 호원을 상처 입힌 상대다. 그걸 알면서도 무휼은 그의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것은 비단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연민뿐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플레이에 유일하게 맞춰줄 수 있는 파트너를 잃는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가슴 쓰린 일이었다.

게다가 두 에이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다른 녀석들을 볼 면목도 없었다.

무휼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배구를 꽤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진수가 앉아 있는 침대로 가까이 간 그는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김진수는 제가 불러놓고 의외라는 듯 눈을 끔뻑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왜?”

무휼이 흘긋 쳐다보자, 김진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 진짜로 올 줄은 몰랐어.”

“네가 오라며.”

“자신을 죽이려 한 인간이 부르는데 넙죽 올 사람은 너 정도뿐일 거다.”

김진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무휼이 이곳에 와준 것에 안도한 눈치였다.

“손은… 좀 어떠냐.”

“보시다시피.”

무휼은 손목 보호대를 찬 왼손을 들어 보였다. 보호대 아래로 살구색 테이핑 끄트머리가 살짝 보였지만 휙휙 움직이는 것만 봐도 순조롭게 회복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진수는 그 손목을 물끄러미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다행이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그건 그렇네.”

김진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웃었다. 무휼이 일부러 툴툴거리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

“꼭 할 말이 있는데, 오늘이 아니면 못 할 거 같았거든.”

무휼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짙은 푸른빛의 눈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빛깔을 들여다보던 김진수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본래라면 무릎을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김진수는 무휼이 자신을 치더라도 가만히 맞아줄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지나도 무휼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

왜 이렇게 조용하지? 김진수는 머뭇거리다 슬쩍 고개를 들어 무휼을 훔쳐보았다.

무휼은 곤란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너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불쑥 커다란 손이 시야 한쪽을 비집고 들어왔다. 김진수는 제 멱살을 잡아 올리는 큰 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무휼을 쳐다보았다.

“네가 사과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

뜻밖의 말에 김진수는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무휼을 바라보았다. 무휼은 밀쳐내듯이 김진수의 멱살을 쥔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반동으로 침대에 처박힌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그 사람한테 사과는 했냐? 연락처라면 방금 전에 나간 네 형이 알고 있을 텐데?”

젠장, 무휼은 스스로 말해놓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모르는 호원의 연락처를 그 남자는 알고 있을 터였다. 제 입으로 상대가 우위에 있다는 걸 인정한 것 같아 무휼은 입맛이 썼다.

김진수는 무휼의 말에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 아, 그 바 주인?”

“그래.”

“그 사람이라면 이미 진즉 다녀갔어. 사과도 제대로 했고, 피해 보상은 형이 해주기로 했는데….”

상대방 쪽에서 필요 없다고 했다더라. 이어진 말에 무휼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여간 이호원…. 여전하다면 여전한 그의 성격을 새삼 답답해하며 무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됐어.”

“…됐다니, 뭐가?”

“나한테는 더 사과할 필요 없다고.”

무휼이 불평하는 것처럼 툴툴대며 말을 뱉었다. 김진수는 순간 그의 말뜻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과해도 받아줄 마음 따윈 없으니 할 생각도 말라는 건가?’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가정이 맞을 듯했다. 무휼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김진수 자신이라도 제 옆구리에 칼자국을 내고 주위 사람들까지 말려들게 한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심각해진 그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무휼이 말을 이었다.

“난 이제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마.”

“…뭐?”

김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가 허,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뜻밖의 말이었다.

사실, 무휼 입장에서는 오늘 이곳에 올 이유 따윈 전혀 없었다. 일부러 진혁을 통해 연락한 것도 자신의 연락을 무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무휼은 이곳까지 혼자 와주었고, 심지어는 일련의 사건은 아예 없던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이전의 무휼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너… 좀 변한 거 같아.”

“그러냐.”

“…그 사람 덕분이냐?”

그 질문에 무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김진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무휼에게서 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한 적 없는 다정한 미소였다. 얼핏 쑥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헛것이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그 미소는 쓴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할 말 끝났으면 이만 간다.”

무휼은 볼일 끝났다는 듯 간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발걸음을 돌리는 그를, 김진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붙들었다.

“잠깐만.”

막 등을 돌리던 무휼이 의아한 얼굴로 뒤돌아봤다. 김진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고는 무휼을 올려다보았다.

“너… 그때 왜 날 살려준 거냐?”

병원에서 눈을 뜬 뒤로 줄곧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다. 그의 물음에 무휼은 뒤를 돌아보았던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너른 등 너머로 잔잔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사람이 그러길 바랐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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