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보호는 여기까지
호원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난 이른 오전 경이었다.
그가 왔을 땐 이미 무휼의 치료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다만, 하루 정도는 입원해서 경과를 보자는 의사의 말에 응급실 침대에서 제대로 된 병실 침대로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만이 달랐다.
시영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근처에 숙소를 잡고 쉬러 갔다. 결판을 냈다고는 하지만 스토커가 알고 있을 집에 혼자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것 같아, 호원이 대신 숙소를 잡아주었다.
시영은 괜찮다며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호원은 자기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는 것이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쉬라는 말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새벽에 헐레벌떡 달려오느라 잠옷 바람에 겉옷만 걸치고 나온 무휼의 코치는 집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덕분에 지금, 무휼의 병실에는 그와 호원 단둘뿐이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시영이 사다 두고 간 편의점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는 호원에게, 무휼이 물었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어조에 호원은 생수를 꺼내다 말고 그를 돌아보았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어. 생명에 지장은 없다더라.”
담담하게 나오는 말에 무휼의 얼굴에 일순 안도감이 스쳤다. 그래서 호원은 ‘생명만 겨우 건진 상태’라는 말을 덧붙이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생수병을 든 호원이 무휼 가까이로 다가왔다. 밝은 곳에서 보니 무휼의 얼굴에는 상처 외에도 짙은 피로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너도 피곤할 텐데, 잠이라도 자고 있지.”
호원이 간이 의자를 당겨 무휼 가까이 앉으며 말했다. 침대 상단부를 세워 기대앉아 있던 무휼은 그나마 멀쩡한 오른손으로 호원이 건네는 물을 받아 들며 대답했다.
“당신이 없는데 맘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소 퉁명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삐졌나 싶어 호원이 슬쩍 눈을 굴려 무휼을 쳐다보았다.
무휼은 매끈한 뺨이며 목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꼴이었다. 호원은 잘생긴 얼굴이 웃겨졌다며 농담이라도 건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의 무휼은 화가 나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괜히 건드렸다가 험한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화… 많이 났어?”
“그럼 안 나게 생겼어?”
대답이 즉각 돌아왔다. 무휼은 생수병의 뚜껑을 따려 했지만, 한쪽 손밖에 쓰지 못하다 보니 손이 계속 헛돌았다.
“해줄게.”
“됐어.”
호원이 손을 뻗었지만 무휼은 오히려 생수병을 호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러고는 엄지와 검지로 뚜껑을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페트병의 병목을 꽉 잡았다.
손이 커서인지 힘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무휼은 금방 뚜껑을 열었다.
호원은 신기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감탄한 듯한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잔뜩 굳어 있던 무휼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쑥스러운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 호원이 작게 웃었다.
“그래, 내가 무모하긴 했지. 인정.”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무휼이 휙 고개를 돌려 호원을 돌아보았다. 거즈를 덕지덕지 붙였어도 잘생긴 얼굴과 선명하고 새파란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그가 햇빛을 받아 호수처럼 빛나는 눈으로 호원을 노려보았다.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하고 말 문제야?”
날카로운 어조에 호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휼은 아무 생각 없이 해맑아 보이는 그 얼굴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다 말했다.
“상대는 칼을 가지고 있었다고. 다치는 건 둘째 치고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었어. 알아?”
“알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호원이 즉답했다. 그러고는 기가 차서 말도 잇지 못하는 무휼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는 너도 꽤 무모했잖아. 차가 달려드는데 사람 구하겠다고 도로로 뛰어들고.”
“적어도 난 내 살 궁리는 하고 움직였어.”
“나도 마찬가지야.”
호원은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무휼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항복이라도 하듯 긴 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한마디도 안 지지.”
“누가 할 소리.”
그 말에는 무휼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오른손이 침대 위에 내려둔 호원의 손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손목을 감아쥐자 이전보다도 말랐는지 손가락이 손목을 감싸고도 한참 여유가 남았다.
무휼은 그대로 상체를 숙여 호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카락이 목을 간지럽혔는지 호원이 작게 웃는 것이 닿아 있는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도드라진 쇄골뼈에 뺨을 댄 채로 무휼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김진수와 대치하고 있던 호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호원이 상처를 입거나… 아주 재수가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해.”
제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혼잣말처럼 새어 나온 목소리는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호원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못 들었을까? 무휼이 고개를 들려는 찰나, 호원의 손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
“네가 사과할 일 아냐.”
무휼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은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눈앞이 물기로 흐려지려 해서 무휼은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 일에 말려들어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으면서, 호원은 단 한 번도 무휼을 원망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가 자신을 원망했더라면, 무휼도 감정의 정리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호원은 줄곧 변함없었다. 처음 만난 그를 집에 데려와 치료해 주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다정하고 배려 깊은 이호원이었다.
“만약… 그 녀석이 정말 찌르려고 했다면. 어쩔 셈이었어?”
이 질문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호원이 곤란해할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그 대답이 어쩐지 예상이 가서, 그래서 듣는 게 무서웠다.
“…….”
호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무휼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야. 알아?”
말을 하면서도 입술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무휼은 깊은 물 속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가빠 크게 공기를 들이켜야 했다.
김진수가 다음번에도 또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무휼이 그곳에 있는 한, 타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또 자신을 쉽게 내던지겠지.’
무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는 호원이 그런 짓을 하게 둘 수는 없었다.
자신이 평생 그를 보지 못하게 된다 해도.
“범인은 잡았으니까 약속대로 그 집에서 나갈게.”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호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호원의 턱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래.”
어쩐지 쓸쓸하게 들리는 목소리라고, 무휼은 생각했다.
***
김진수가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본 것은 튼튼해 보이는 끈이었다. 그 아래에는 엉망이 된 자신의 다리가 우스꽝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일어났어?”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구나, 그 생각이 든 순간 병원이라는 걸 인식했다.
‘아, 나 사고당했지.’
그제야 기억의 조각이 하나둘 들어맞기 시작했다. 차선으로 뛰어들었던 자신의 모습과 시야를 가득 채웠던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 그리고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채던 권무휼의 얼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왜… 그랬을까.”
권무휼은 왜… 그를 구했을까. 그냥 내버려 뒀어도 상관없었을 텐데.
‘이상한 놈….’
김진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곁에 앉은 형을 올려다보았다. 반듯한 얼굴은 피로감에 젖어 있었지만, 항상 그리워하던 형의 얼굴이었다.
집을 나가도, 아버지에게 그 어떤 말로 매도당해도, 진혁은 진혁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형….”
바싹 마른 목소리가 칠판 긁는 소리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나 김진수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진혁 쪽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안해, 진수야.”
뜻밖의 말에 김진수는 입을 다물었다. 진혁은 괴로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더니 힘없이 늘어진 그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널 그 집에 혼자 두는 게 아니었어. 어떻게든 데리고 나와야 했어. 내 잘못이야.”
“…….”
“이젠 혼자 두지 않을게. 그 집에서 나와서 함께 지내자.”
이미 결심을 굳힌 듯, 진혁의 표정은 진지했다. 김진수는 형의 얼굴을 가만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형… 나, 부탁이 있어.”
***
김진수는 전치 12주를 진단받고 입원했다. 발목 위부터 무릎 아래까지 분쇄 골절을 당한 터라 철심을 여러 개 박아야 했고, 운이 나쁘면 일상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생활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하는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병원 복도의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으며, 코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룻밤 사이에 팀의 에이스가 둘이나 큰일을 겪었고, 그중 하나는 영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그는 곧 쓰러질 사람처럼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라도 무사하기에 망정이지. 아니, 이거 무사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너도 경과 봐야 한다며.”
코치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들어 올리며 뒤편을 노려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무휼이 반깁스를 한 왼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러나 그 작은 동작도 영 불편한지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생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코치는 혀를 쯧쯧 차며 그 잘나 빠진 얼굴을 노려보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너희 둘.”
그 질문에는 천하의 무휼도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하기에는 김진수의 상태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전부 말하자니 지금까지 숨긴 게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코치가 병원까지 불려온 데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김진수의 상태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김진수는 신원을 찾을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고, 무휼이 아는 사람 중에 김진수의 부모와 연락이 될 만한 사람이 바로 팀의 코치뿐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코치는 새벽 댓바람부터 허겁지겁 달려와 김진수의 부모에게 연락을 돌렸고,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진혁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무휼에게서 답이 없자, 코치가 그새 미적지근해진 커피를 후룩 마시고는 툭 내뱉었다.
“얼마 전에 네놈이 잠수 탔던 거랑 관련 있는 거냐?”
물론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짜식, 입 무거운 거 하나는 어머니랑 쏙 빼닮았구만.”
남 생각하느라 자기 발목 잡는 것도. 코치는 그렇게 덧붙이더니 종이컵을 빙글빙글 돌렸다. 보기만 해도 달아 보이는 연한 갈색의 액체가 종이컵 표면을 따라 빙글빙글 회오리쳤다.
“너한테 오기 전에 진수한테 들렀었다. 얘기도 대충 들었어.”
젠장. 그쪽 입을 막을 생각은 못 했었다. 무휼은 안일한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경찰에 말하지 않은 건, 팀 때문이냐?”
더 이상 숨길 이유는 없었다. 무휼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 데뷔도 전에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김진수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팀메이트들 때문이기도 했다.
곧 있을 대회를 기대하며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녀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진수 쪽은 그 형님이라던 사람이 정리해 주기로 했다. 진수가 자기 입으로 가해 사실을 인정했으니 할 말 없기도 하겠지.”
김진수가? 무휼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코치는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더니 이어 말했다.
“왜, 갑자기 상대가 수그러드니까 놀랐냐? …뭐, 본인도 이번 일로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더라.”
그러고는 남아 있던 커피를 단숨에 비웠다. 빈 종이컵을 구기며 코치가 흘긋 반깁스를 한 무휼의 팔을 쳐다보았다.
“근데 넌 이제 어쩔 거냐? 그 상태로는 훈련도 못 할 텐데. 아, 집에 들어간다 그랬나? 어머니 곧 오신다 했지?”
“…네.”
“몸 관리 잘하고, 학교 일은 걱정 마라. 조만간 연락하마.”
이번에는 잠수 타면 안 된다? 웃으며 말한 코치가 격려라도 하듯 무휼의 오른쪽 어깨를 톡톡 쳤다. 그러고는 구긴 종이컵을 휴지통에 툭 던지고서 복도를 걸어갔다.
무휼은 한동안 가만히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만 잘근거리던 그가 이윽고 참았던 숨을 터트리듯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뿌리내린 듯 굳건하던 밑창이 천천히 떨어졌다.
이젠 정말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