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그 개의 사정 (2)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선발전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평소에 별로 인사조차 나눠본 적 없던 팀메이트가 돌연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 한 날이기도 했다.
이름이 김진수였던가? 어려운 공격을 성공시켜도 하이파이브 한번 하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단둘이 식사를 하자는 게 퍽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계속 볼 사이에 피차 껄끄러워 봤자 좋을 게 없으니, 무휼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새어머니에게 자랑할 것이 또 하나 생겼다고 기뻐했다.
보세요, 어머니. 최민호 아니어도 친구는 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킬 생각에 뿌듯해했다.
그리고 그날, 무휼은 김진수가 휘두른 커터칼에 옆구리를 길게 베였다.
‘너…, 너 때문이야. 네가 그런 놈만 아니었어도 이럴 일 없었어.’
김진수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쳤다. 무휼은 어딘지도 모를 골목길 한쪽에 쓰러진 채로 차갑게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그는 억울했다. 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이제야 겨우 안락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이런 곳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니.
동시에 그는 이를 갈며 분노했다. 살아남는 건 무휼이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 어릴 적 한 달이나 방치되어도 굶어 죽지 않았던 그다. 고작 이런 상처에 고꾸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머리 위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죠, 오너? 주, 죽었나 봐요.’
‘아냐, 살아 있어. 일단 신고부터 하고-’
다행히 근처에 상가가 있던 모양이었다. 안도한 것도 잠시, 신고라는 말에 무휼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신고가 들어간다는 건 곧 그의 부상에 대한 소식이 바다 건너에 있는 새어머니에게까지 닿는다는 말이었다.
가뜩이나 새아버지 일 이후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하던 새어머니였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때 새아버지를 말렸어야 했다며, 하다못해 자신이 대신 출장을 갔어야 했다며 죄책감을 안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런 새어머니에게 더 이상 걱정거리를 끼칠 수 없었다.
‘안 돼.’
‘신고하면 죽여 버린다.’
급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려던 남자가 생각을 바꾼 듯 무휼의 앞에 쭈그려 앉았으니까.
‘말하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본데, 진짜 병원 안 가도 되겠어? 내 가게 앞에서 시체 치우는 건 사양이라고.’
담담하기 짝이 없는 말에 오히려 헛웃음이 났다. 무휼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이까짓 상처, 조금만 쉬고 나면 알아서 병원까지 갈 셈이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잠깐 쉬다가 갈 테니까 상관하지도 말고.’
그런데 남자는 그의 말에 제 갈 길 가기는커녕, 대뜸 무휼의 몸을 둘러업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까지 데려가 치료해 주고, 재워주고, 밥까지 먹여주었다.
처음에는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이러나 싶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냥 호구인가 싶었다.
그의 인생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남에게 손을 뻗은 사람은 오직 지금의 양부모님뿐이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무휼의 세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들이 무휼의 세상 속에 유일한 ‘예외’로 남아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무휼에게 있어 세상은 여전히 사람 간의 거래로 인해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도운 남자도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휼의 얼굴은 굉장히 남자의 취향인 모양이었다. 무휼이 바짝 다가서거나 얼굴을 들이밀면 귓불까지 붉게 물들이며 당황하는 것이 티가 났다.
그것이 꽤 재밌기도 하고, 괜히 짓궂은 심보가 생겨서 무휼은 슬쩍 남자의 허리를 감거나 부러 얼굴을 가까이 하고 대화를 나누곤 했다.
호감이 생기면 여기에 더 머물게 해줄지도 몰라. 마침 남자는 무휼의 얼굴을 좋아했고, 무휼이 보기에도 남자는 꽤 호감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성애의 대상을 굳이 여자로만 한정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남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남자 정도의 외모라면 못 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남자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할지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무휼에게 있어 얼굴과 몸은 평생을 살아남게 해준 유용한 무기였다. 그걸 이용하는 일이야 눈 감고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자, 이호원의 집에 머문 지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다. 그제야 무휼은 알 수 있었다.
이호원은 특이한 남자였다. 하는 짓만 보자면 그냥 호구인 데다, 사람 돕는 걸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성가시게 느껴진다거나 한심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누구에게나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이호원이. 일생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한없이 긍정적인 이호원이.
어떤 삶을 살면, 얼마나 사랑받고 살면 저런 사람이 되는 걸까. 무휼은 궁금증과 생경함이 섞인 눈으로 호원을 관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사람이 너무 좋은 것 같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의 세상에는 이호원처럼 마냥 좋기만 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말에 호원은 별거 아니란 반응이었지만, 무휼은 이젠 그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저렇게 태평하고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라니, 무휼은 자신이 호원의 곁에 있다 보면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처럼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점점 더 이호원이라는 남자에게 흥미를 느낄수록, 이 집에 머물고픈 욕심이 생겼다.
새어머니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일을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 눌러앉았던 호원의 집은 이제 그에게 너무도 친숙하고 안락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검은색의 다소 흔한 야구모자를 눌러쓴 장신의 남자.
그를 찌른 팀메이트, 김진수가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창백한 얼굴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등을 돌려 달렸고, 무휼은 홀린 것처럼 김진수를 쫓아 달렸다.
그리고 놓쳤다. 하필이면 옆구리를 찔렸던 탓에 뛰기가 영 힘들었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김진수가 사라진 곳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녀석은 어딘가로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무휼은 고민했다.
그는 늘 불행의 한가운데 있었다. 시설에서도, 새 가정에 입양되어서도 그의 주변으로는 늘 불운한 사고가 휘몰아쳤다.
새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낸 후로 잠잠해졌다 싶더니. 무휼은 방 안에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에서도 나가야 할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저 바보같이 착한 이호원에게도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김진수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그의 주변을 호시탐탐 노리는 불행이 무슨 사고를 낼지 모른다.
그러나-
‘잘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너무 따듯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귀여워하는 강아지라도 쓰다듬는 것처럼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담긴 손길이었다. 길쭉하고 마디가 고운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로 움직이며 사락사락 소리를 내는 것을, 무휼은 가만 듣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단순히 머리 좀 쓰다듬은 걸로 이런 기분이 든 것은.
그제야 장난처럼 했던 모든 접촉들이 생생하게 와닿는 기분이었다. 불쑥 다가서거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치고는 낭창한 허리에 손이 닿을 때마다 괜히 심장께가 간질간질하게 느껴졌다.
관리가 잘된 손가락을 만지고, 시럽처럼 달큰한 향기가 나는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싶었다. 허리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아 안고 싶었다. 손님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는 말캉한 입술을 깨물고 싶었다.
그 마음을 자각한 순간, 무휼이 마주한 것은 뜻밖의 방해꾼이었다.
꽤 젊은, 아마 호원과 아는 사이라던 남자 손님이었다. 척 보기에도 젊은 나이에 사업에 성공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티가 났다.
생활 방수도 안 되는 주제에 비싸기만 한 고급 시계와 번쩍번쩍한 명품 구두, 그리고 잔에 담긴 위스키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는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호원의 뺨을 스쳤고, 호원은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무심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버렸다.
적어도 외모만은 무휼도 어디 가서든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무휼은 어딜 가서도 외모 하나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무휼과 남자 사이에는 그런 것으로는 메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남자와 자신의 간극을 실감한 순간, 무휼은 초조해졌다.
‘주인님, 게이야?’
‘꼬시고 있는 거잖아, 지금.’
그래서 무작정 달려들었다.
자신의 얼굴이 호원의 취향이라는 것쯤 이미 진즉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휼을 거부했던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호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쯤 별거 아니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건드리지 마!’
그래서 처음 호원에게 거절당했을 때, 무휼은 누군가 망치로 머리를 후려친 듯한 충격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한 이호원이, 자신을 거부했다. 그것만으로도 무휼은 심장이 절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았다.
그 후 호원은 무휼이 다가오는 것을 부러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휼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멀찍이 떨어진 채로, 평소와 같은 다정함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제야 무휼은 알았다. 이호원은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대가 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친절이라는 벽에 둘러싸여 그 누구도 자신의 안에 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두에게 친절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거다.
그걸 깨달은 순간 무휼은 발밑이 까마득하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당신한테… 난 대체 뭐야?’
이토록 절박하게 누군가를 원해본 적이 없었다. 무휼은 자꾸만 제 의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벅찬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잔인한 이호원은, 그런 그를 평소와 같이 제 울타리 밖으로 부드럽게 밀어냈다.
‘이제 그만하자, 이런 거.’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새어머니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