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20)화 (20/101)

제20화. 잔인한 사람이네 (1)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흐트러진 차림으로.”

김진혁의 눈이 느릿하게 호원의 목덜미와 가슴팍을 훑었다. 답지 않게 거친 숨소리나 붉게 물든 피부, 느슨하게 풀린 타이에 남자의 시선이 질척하게 들러붙었다.

호원은 당황하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그때, 뒤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것인지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권무휼, 겁 없는 꼬맹이가 그를 뒤따라 나온 것일 터였다.

“이런….”

호원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진혁이 흘긋 호원 뒤를 건너다보고는 손을 뻗었다.

“이리로.”

진혁이 호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3월’이 있는 골목은 초행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씩은 길을 헤맬 정도로 복잡했다. 그런 곳에서 두 사람이 급하게 몸을 숨길 만한 골목을 찾는 일쯤이야, 바 ‘3월’의 단골인 진혁에겐 손쉬운 일이었다.

좁은 골목 안에 두 남자의 몸이 맞붙었다. 온몸이 지나치게 밀착되자 호원이 뒤로 몸을 물리려 했다.

“어어, 움직이지 말아요.”

진혁이 그런 그의 옆을 손으로 짚었다. 양옆이 막힌 호원이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근처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 모습에 진혁이 눈꼬리를 휘며 진한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그가 아니었다.

“형, 이쪽으로 더 가까이 와요. 그러다 들키겠어.”

그의 손이 호원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그러고는 다른 쪽 팔꿈치를 호원의 머리 바로 옆에 대며 거리를 좁혔다.

완벽하게 밀착된 몸이 뜨거웠다.

호원은 의도적으로 몸을 붙여 오는 그를 알아채고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진혁아.”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며 제지하려 했지만 진혁은 물러설 기미조차 없었다.

이미 무휼로 인해 미열이 올라 있던 몸은 진혁의 작은 손길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저도 모르게 억눌린 소리를 내뱉은 호원이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좀 떨어져.”

“싫어요.”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 줄 알고. 진혁은 쿡쿡 웃으며 고개를 숙여 호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평소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호원은 유독 목덜미가 예뻤다. 시원하게 쭉 뻗은, 남자치곤 가느다란 목선과 그 아래 선명하게 파인 쇄골은 무작정 이를 박아버리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에 뜨거운 숨결이 닿자 호원의 몸이 긴장으로 굳는 게 느껴졌다.

진혁은 솜털이 오소소 솟은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걸었다.

“야, 김진혁.”

호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들자 싸늘하게 굳은 호원의 얼굴이 보였다.

호원이 다시 한번 그의 가슴께를 밀어냈다. 이번엔 꽤 만만찮은 힘이었기에, 그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났다.

“난 손님이랑은 안 해. 알고 있잖아.”

“…….”

단호한 말에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비죽 웃었다.

“네, 알죠. 형이 왜 그러는지도 아는걸요.”

“그럼…!”

비키라고 말하려던 호원이 숨을 멈췄다. 별안간 진혁이 그의 허리를 확 당겨 안으며 입술을 맞대왔기 때문이었다.

진혁은 호원의 뒤통수를 감싸 잡으며 거칠게 입술을 삼켰다. 말캉한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 뜨거운 살덩어리가 호원의 안을 제멋대로 헤집었다.

질척하게 젖은 살덩어리가 떨어졌다. 서로의 코끝이 뺨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진혁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러니까… 손님만 아니면 되는 거죠?”

진혁이 낮게 속삭였다.

“그럼 같이 일했던 친한 동생이면?”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까부터 탐이 나던 목덜미에 이를 세우자 호원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잠…, 진혁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다급함으로 떨렸다. 그 소리가 더없이 달게 느껴져 진혁이 진한 미소를 띠었다.

쇄골에 입을 맞춘 그의 손이 호원의 셔츠 안쪽을 파고들었다.

“진혁아, 그만….”

“조용히 해야지. 그러다 들키겠어.”

매끈한 속살을 미끄러져 내려간 진혁의 손이 호원의 바지 버클을 건드렸다. 철컥, 하는 소리에 호원이 이를 바득 갈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 ×발. 김진혁!”

퍽! 동시에 진혁의 얼굴이 강한 충격에 밀려 옆으로 휙 돌아갔다.

진혁은 비틀거리며 호원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입 안을 씹었는지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혀에 감겼다.

머리가 웅웅 울리는 걸 보니 제대로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호원에게 맞은 게 얼마 만이더라. 진혁은 상황에 맞지 않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웃음 대신 피 섞인 침을 바닥에 퉤 뱉은 그가 호원을 돌아보았다.

“내가 작작하랬지. 이딴 식으로 기어오르는 버릇, 아직도 못 고쳤냐?”

호원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진혁은 터진 입가를 손등을 쓱 쓸어 닦고는 똑바로 섰다.

“그러는 형이야말로, 기어오른다는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버릇 아직 못 고쳤네.”

“…….”

그 말에 뭐라 말하려던 호원이 입을 다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봐, 지금도 그러잖아.”

진혁이 손을 뻗어 호원의 타이를 움켜쥐었다. 놀란 호원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형은 옛날부터 그랬어. 사람 마음을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 않고 매번 장난으로 흘려넘기지.”

“야, 김진혁.”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려서 전부 다 외면하고 사냐고.”

진혁의 목소리가 어그러졌다. 이를 악무는 바람에 발음이 새어 나간 모양이었다.

그의 손에 호원의 타이가 스르륵 흘러내려 갔다. 아무 무늬도 없는 검은색 타이를 꽉 움켜쥔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형, 나는-”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름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다.

진혁과 호원이 동시에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진혁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확 꺾이며 그의 몸이 나동그라졌다.

진혁이 구석에 쌓여 있던 박스에 처박히며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권무휼!”

호원이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붙잡았다.

무휼은 진혁에게 주먹을 날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쓰러진 진혁에게 성큼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을 붙잡은 호원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놔.”

“진정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무슨 짓?”

무휼의 고개가 진혁에게서 호원에게로 돌아갔다. 얼어붙은 것처럼 서늘한 푸른 눈이 자신을 향하자 호원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건 내가 할 말 아닌가?”

무휼의 한마디 한마디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호원은 말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무휼의 시선이 목덜미에 다다랐다.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죽여 버리겠어.”

무휼이 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진혁에게로 다가섰다. 몸을 일으키던 진혁에게 다시금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권무휼!”

호원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 진혁은 맞고만 있지 않았다. 질러드는 주먹을 쳐낸 그가 무휼의 얼굴을 후려쳤다. 무휼의 고개가 확 꺾이며 몸이 휘청하자 진혁은 발로 가슴께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피 섞인 침을 퉤 뱉어낸 진혁이 쓰러진 무휼의 위에 올라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거슬렸어.”

“나도 마찬가지다, 새끼야.”

진혁이 다시금 무휼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무휼은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진혁의 멱살을 붙잡으며 허리를 세우더니, 그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옆으로 쓰러진 진혁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당겼다.

“이 자식이 진짜…!”

“그만 좀 하라고, 이 새끼들아!”

치켜든 진혁의 주먹을 호원이 붙잡아 내던졌다. 그러고는 뒤엉킨 두 남자의 뒤통수를 동시에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두 남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호원을 돌아보았다.

호원이 씩씩거리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주먹질이야? 너희들이 무슨 애야? 나이 처먹을 만큼 처먹은 것들이 유치하게 무슨 짓들이야!”

엄한 호통에 진혁과 무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억울하단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지만 차마 둘 중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진 못했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주먹질하면 둘 다 다신 안 볼 줄 알아! 알겠어?”

단호하게 내뱉은 불호령에 두 남자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처럼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호원이 단단히 화가 났을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

‘방심할 수 없는 자식. 그새 손을 대?’

대신, 두 사람은 호원 몰래 서로를 향해 눈을 흘겼다.

“어허, 시선 처리 똑바로 안 해?”

그러나 눈치 빠른 호원의 한마디에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불퉁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호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권무휼 넌 가서 일해. 그리고 김진혁, 너는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뭐?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 새끼랑 단둘이 뭘 하려고!”

무휼이 버럭 소리쳤다. 호원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 권무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내가 왜 네 눈치를 봐야 하는데? 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들어가.”

단호한 말에 무휼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주먹 쥔 손을 바르르 떨며 이를 악물더니, 호원을 스쳐 지나갔다. 단단히 화가 난 모습에 호원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 없다니, 아쉬운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호원은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는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재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그가 그제야 진혁을 돌아보았다.

“김진혁.”

“네, 형.”

진혁이 방글방글 웃으며 호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호원이 자신이 아니라 무휼을 돌려보낸 부분에서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호원의 말은 완전히 그의 예상 밖이었다.

“이번 일은 내 실수였어. 미안하다.”

“…….”

진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오늘 일에 대해 호원이 사과할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진혁 자신이 제멋대로 행동한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호원은 굳이 자신이 사과할 일이 아님에도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저렇게 정중하게.

그 행동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선을 긋는 거다. 너와 나는 여기까지라고, 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다고. 안타깝게도 진혁은 그 의도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차라리 못 알아챘으면 좋았을걸. 진혁이 쓰게 웃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호원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호원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피했다. 명백한 거부의 표시였다.

“진혁아.”

호원이 한숨을 내쉬며 진혁의 이름을 불렀다. 진혁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호원은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난 아끼는 동생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호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선을 지키지 않으면 잘라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호원은 잔정이 많고 타인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인연을 끊어낼 때는 가차 없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호원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온 진혁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진혁은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호원의 타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겉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호원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그 손을 지나쳐 호원의 목에 타이를 둘렀다.

“너….”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호원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쓰게 웃는 진혁의 얼굴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목에 타이를 매준 진혁이 불시에 고개를 숙였다.

목에 와 닿는 뜨거운 입술에 호원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밀어냈다. 진혁은 한껏 풀 죽은 얼굴을 하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오늘은 그만 가볼게요, 형.”

인사를 마친 진혁은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떴다. 다행히 잘 알아들은 것 같아, 호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돌아선 진혁의 얼굴을 봤더라면, 그토록 쉽게 안심하지 못했겠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