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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13)화 (13/101)

제13화. 큰 멍멍이와 산책할 땐 목줄을 주의할 것

마트에 들어선 뒤에도 호원은 무휼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물건을 골랐다.

칵테일이니 면 종류니 하는 걸 잘 모르는 무휼은 그저 카트 손잡이를 잡은 채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거랑 이게 다른 거야? 같은 파스타 아냐?”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 생연어를 넣을 거니까 면은 푸실리로 하는 게 좋겠다.”

호원은 그 뒤로도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지만, 요리에 관심이 없는 무휼로서는 마법 주문이나 진배없었다.

대신 그는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면서, 자신에게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호원을 구경했다.

“치즈는 뭐가 어울리려나…. 그라나파다노? 리코타? 아니면 아예 상큼하게 요거트를 섞어볼까? …넌 어떻게 생각해?”

“난 주인님이 주는 먹이면 다 좋은데.”

즉각적인 대답에 호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손안에서 치즈 덩어리가 뚝 떨어졌다.

“너, 너…. 무슨 그런 말을 밖에서까지….”

말도 잘 나오지 않는지, 호원은 입술을 벙싯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듯했지만, 마트에 들어오고서부터 줄곧 주변의 시선이 따라붙는 터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호원은 후다닥 치즈를 골라 카트에 던져 넣고는 허리에 손을 짚고 섰다.

카트에 엎드리다시피 상체를 기댄 채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무휼은 그런 그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왜?”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듯한 해맑은 얼굴에 호원은 말문이 막혔다.

다 큰 성인 남자가 주인님이니 뭐니 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심지어 무휼은 쓸데없이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호원으로서는 자주 오는 마트에서 괜한 눈총을 받는 건 질색인 데다, 자칫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났다간 당장 바 운영에 불벼락을 맞을 터였다.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그, 다른 호칭은 없냐?”

“주인님이 싫어? 그럼 뭐라고 불러?”

“형이라고 부르면 되잖아.”

“그건 내가 싫어.”

의외로 무휼은 이상한 곳에서 고집이 셌다. 호원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보자, 무휼이 설명을 덧붙였다.

“주인님은 연상이라기엔 너무 빈틈이 많아서, 형이라 부르기 좀 그래.”

“뭐, 이 자식아?”

상당히 괘씸한 이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양보할 생각 없다는 듯, 무휼은 새침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호원은 그 동그란 뒤통수를 한 대 확 쥐어박고 싶은 마음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차마 실행하진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멀쩡하게 잘 돌아다니고야 있지만 아직 그의 기준에 무휼은 환자였던 것이다.

저보다 한참 어린, 그것도 상처 회복 중인 환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호원의 양심이 허용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호원은 무휼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대신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그럼 하다못해 밖에서는 그러지 마. 물론 가게에서도.”

“밖에서는 안 할게. 가게에서는… 주문을 해야 하니까 오너라 하지 뭐.”

“그래, 그렇게 부르…, 잠깐. 그러면 그냥 밖에서도 오너라 하면 되는 거잖아?”

무휼의 담담한 결론에 무심코 수긍하려던 호원이 눈을 부릅떴다. 무슨 조삼모사도 아니고, 그냥 ‘오너’로 통일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러나 무휼은 이미 결론을 냈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긴 다리를 얄밉게 쏘아보던 호원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그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

“아, 잠깐만. 여기 좀 들렀다 가자.”

한 손에 하나씩 비닐봉지를 들고 걷던 중이었다. 호원이 갑자기 무휼을 불러세웠다.

무휼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호원은 이미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간판을 보니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옷가게였다. 그럭저럭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처음 보는 상표도 아니었다.

남성복 전문이라는 글씨를 흘긋 본 무휼이 호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호원은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꺼내보더니, 무휼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무휼이 가까이 가자 두 사람을 발견한 직원이 다가왔다.

“손님,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 저 말고. 얘 입을 건데요.”

호원이 무휼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한 손엔 비닐봉지를, 다른 손엔 옷걸이를 들고 있었기에 별수 없었다.

직원은 그 몸짓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휼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머, 너무너무 잘생기셨네. 키도 크시고. 이러면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겠어요.”

“애가 골격이 커서 사이즈 큰 옷이 좋겠는데. 몇 벌 골라주실래요?”

“그럼요. 이쪽으로 오셔서 한번 보시겠어요? 이쪽이 신상 라인이라….”

직원은 자연스럽게 안쪽을 손짓했다. 호원이 직원을 따라가려 하자, 뒤에서 무휼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내 옷은 왜?”

호원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무휼을 만난 이래 처음 보는 감정이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호원은 당황과 곤란함이 덕지덕지 묻은 그의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당분간 지낼 건데, 계속 내 옷을 입을 순 없잖아. 새 옷 사줄 테니까 그거 입어.”

“내가 언제 나갈 줄 알고? 당장 내일 나갈 수도 있잖아.”

“내일 나가더라도 오늘 밤은 자고 갈 거 아냐. 그러면 어차피 옷은 필요할 거고. 난 큰 옷 잘 안 입으니까 나중에 나갈 때 입고 가도 되겠네.”

호원은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척 보기에도 작아 보이는 제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이 기회에 잘됐다는 심정이었다.

호원은 신난 직원이 열성적으로 골라준 옷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무휼과 잘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하긴, 뭔들 저놈에게 안 어울리는 게 있겠냐마는.

그는 한 손에 옷걸이를 두 개나 들고 무휼의 가슴팍에 대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심하느라 무휼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이게 낫나? 피부가 하야니까 밝은색도 잘 받네. 무난하게 입으려면 무채색이 좋긴 하겠지만.”

“옷걸이가 워낙 좋으셔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릴 거예요. 어깨가 넓으시니까 셔츠 쪽은 어떠세요?”

커다란 티 두 장을 들고 고민하는 호원에게, 직원이 사근사근한 어조로 제안했다. 그에 호원은 반가운 소리라는 듯이 무휼과 시선을 맞췄다.

“아, 그러고 보니 너 가게에서 입을 것도 사야지. 내 옷 입었을 때 보니까 좀 끼는 거 같더라.”

그러고는 무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들고 있던 옷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둘 다 포장해 달란 뜻이었다.

직원은 통 큰 손님을 잡아 신나는지, 뜻밖의 눈요기에 신나는지 모를 얼굴로 웃었다.

“그럼 셔츠도 몇 가지 추천해 드릴까요?”

“네, 좋아요.”

호원은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쪼르르 따라갔다.

결국 호원은 외출복, 가게에서 입을 옷, 거기에 잠옷까지 골라 계산대에 올리고서야 만족한 얼굴로 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형님이 동생분을 많이 아끼시나 봐요. 이렇게 쇼핑까지 같이 하시고.”

옷을 포장하며 직원이 서글서글하게 말을 붙였다. 머쓱하게 웃기만 하는 호원 대신, 무휼이 툭 내뱉었다.

“형제 아닌데.”

“네?”

“척 보기에도 안 닮았는데. 눈이 좀 안 좋으시네.”

불퉁하게 내뱉는 말은 기분이 나쁜 건지 장난치는 건지 구분하기 애매했다. 직원이 당황한 사이, 무휼의 손이 자연스럽게 호원의 어깨를 감싸 당겼다.

“안 그래?”

호원의 귓가에 무휼의 숨결이 닿았다.

“응? 주인님.”

작게 속삭인 말은 직원에게 들리지 않았겠지만, 붉게 달아오른 직원의 얼굴만 봐도 무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갔다.

‘어린놈이 페로몬 뿜기는.’

호원은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는 멍한 얼굴의 직원에게서 포장된 옷을 받아 들고 후다닥 가게를 나섰다.

***

“너 진짜 나 곤란하게 하는 게 재밌냐?”

호원은 툴툴거리며 무휼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무휼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하여간 속을 알 수 없는 놈이었다. 호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바뀌는 신호를 초조하게 바라보던 호원이 흘긋 시계를 내려다봤다.

옷을 사는 데 너무 몰두했던 걸까. 시간이 벌써 꽤 지나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새 메뉴 개발은커녕 오픈 준비도 아슬아슬할 지경이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던 호원은 멈칫 걸음을 멈췄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무휼이 꼼짝 않고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왜 그래?”

호원이 말을 거는 순간, 무휼은 누군가 뒤에서 떠민 것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투며 종이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휼은 마주 오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뛰었다. 꼭 무언가를 쫓는 사람 같았다. 아니, 그는 확실하게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어어, 야! 권무휼!”

호원이 외쳤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호원은 재빨리 바닥에 흩어진 것들을 주워 들고 뛰었다. 그나마 짐이 못 들 정도로 무겁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호원은 횡단보도를 지나고서 몇 골목 가지 않아 무릎을 짚은 채 헉헉거리는 무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해댔으니 힘든 게 당연했다.

“하아…, 하아…, 야, 너….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짐을 한가득 안고 그를 쫓느라 호원도 지쳐 있었다. 짐을 잠시 길가에 내려놓고 씩씩거리며 호원이 무휼을 바라보았다.

무휼은 그 와중에도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쫓던 대상을 놓친 듯했다.

파란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손을 내밀면 거멓게 타들어 갈 것 같았다.

호원은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나 흥분한 건지 궁금했지만,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차마 캐물을 수가 없었다.

“미안.”

그새 숨을 고른 무휼이 차분하게 말했다.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돌아온 모습이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벽을 치는 듯했다.

무휼은 호원이 내려놓은 짐을 나눠 들었지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건지 멍하니 시선이 허공에 떠 있었다.

‘3월’로 돌아오는 내내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휼의 이상한 상태는 가게 오픈 후에도 여전했다.

멍하니 있다가 한 잔을 15분 넘게 닦고 있기도 했고, 청소한 곳을 또 해서 호원에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죽하면 평소 무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시영도 “오늘 쟤 무슨 일 있어요?”라고 슬쩍 물어올 정도였다.

호원도 걱정스럽게 무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릇을 치우는 뒷모습이 오늘따라 위태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휼이 사고를 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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