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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10)화 (10/101)

제10화. Muzzle control (3)

오후 2시를 넘어가는 초여름의 집 안은 딱 낮잠 자기 좋게 선선했다.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앉은 호원은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리모컨 버튼을 꾹꾹 눌러댔다.

주중 낮이라 그런지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볼만한 방송이 없었다.

산속 암자를 소개하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방송을 무료하게 시청하던 호원은 문득 고개를 돌려 무휼을 돌아보았다.

무휼은 소파에 늘어진 채 한쪽 팔꿈치를 팔걸이에 대고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햇빛을 받은 긴 속눈썹이 규칙적으로 팔락거리며 천천히 감겼다 떠지길 반복했다.

딱히 재밌는 내용도 아닌데 푸른 눈은 줄곧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있었다.

“뭐 보고 싶은 거 없어?”

“딱히?”

호원의 물음에 반응은 재깍 돌아왔다. 졸린 듯 끔뻑이는 눈을 가만 쳐다보던 호원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부지런히 채널을 돌렸다.

몇백 번 대까지 채널이 오르내렸다. 결국 어지럽게 바뀌던 화면이 정착한 곳은 애견의 문제 행동을 교정해 주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2살쯤 되었을까, 금색 털을 가진 통통한 몸집의 강아지가 해맑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 좋아해?”

오늘은 어째 얌전하다 싶더니만, 또 시작이다. 호원은 옆자리에서 여상하게 흘러나온 질문에 다시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휼은 여전히 시선을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한 채였다.

무료해 보이는 옆모습을 보니 딱히 대답이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기보다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을 던진 모양이었다.

“글쎄. 키워본 적이 없는데. 넌?”

“별로 안 좋아해.”

의외의 답이 의외의 속도로 돌아왔다. 강아지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싶어, 호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강아지 귀엽잖아.”

“말을 못 하잖아.”

호원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무휼은 그제야 호원을 흘긋 돌아보더니, 다시 화면 속 강아지를 덤덤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끼리도 힘든데, 말도 못 하는 동물이랑 같이 살면 얼마나 괴롭겠어.”

어느 쪽이? 라고 물어보려다, 호원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면서도 유독 화면에서 눈을 못 떼는 모습에서 이미 대답을 들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호원은 입 안에 날카로운 쇳조각이라도 물고 있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는 예의 강아지가 돌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20대 남자만 보면 잔뜩 경계하며 이빨을 드러낸다는 자막이 아래에 떠올랐다.

[이전에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는 강아지들은 가끔 비슷한 나이대나 성별의 사람을 보면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인 거죠.]

애견 행동 전문가가 진지한 표정으로 강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학대라니, 저 작고 귀여운 강아지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호원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옛날에 자신을 때리고, 괴롭혔던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구분하지 못합니다. 덩치나 성별로 구분을 하는 거죠.]

전문가는 남자를 강아지와 떨어뜨려 놓고는 간식을 주며 강아지를 진정시켰다.

방금 전 이를 드러내며 흥분해 있던 강아지는 금세 얌전해지며 꼬리를 흔들거렸다.

[그리고 비슷한 사람이 다가오면 또 자신을 괴롭힐 거라 생각하고 먼저 경계를 하는 겁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인 거죠.]

전문가의 말에 호원은 자꾸만 옆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신경 쓰느라 애를 썼다.

‘이 녀석이 남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까?’

사람과 개가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화면 속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녀석과 언쟁을 벌였던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무휼은, 꼭 자신이 다칠까 두려워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하는 강아지처럼 보였던 것이다.

화면 속 전문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주시고, 단둘이 산책을 자주 가준다거나, 간식을 준다거나.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모션을 취해주는 거죠.]

호원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과 산책이라. 강아지였다면 통했을 방법이지만, 상대가 사람이라면 글쎄….

그보다 괜히 신경 쓰다 역시 가식이었다는 소릴 들으면, 이번에야말로 만사 때려치우고 내쫓아 버리고 싶어질지 모른다.

호원은 의욕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에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휼과의 언쟁 이후, 호원은 딴에 나름대로 무휼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그를 대하되, 괜한 오지랖이 되지 않도록 건조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러나 막상 무휼이 자꾸만 말을 걸어오거나, 먼저 저녁을 먹자고 가게로 그를 찾으러 오는 통에 호원의 거리 두기는 오히려 애매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의 휴일을, 호원은 온종일 집안일에 바쳤다. 이불을 빨아 햇빛 아래 널어두고, 집 안을 쓸고 닦고, 식칼을 갈아두고, 양손 가득 장을 봐와서는 양푼 가득 밥을 비벼 나눠 먹었다.

그동안 무휼은 바지런하게 그를 도우며 주인을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호원 뒤만 쫓아다녔다.

그러고는 지금, 겨우 한가해진 틈을 타 쉬고 있는 중이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며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더니, 무휼은 자연스럽게 호원 옆에 붙어 앉아 얌전히 텔레비전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나이에 비해 능글맞은 것 외에는 얌전한 편이긴 했다.

그랬던 녀석이 그런 언쟁을 겪고 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자 호원은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바로 나가지 않는 걸 보면 갈 곳이 없다는 말은 진심인 것 같은데.’

역시 가정폭력인 건가. 그런 경찰서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경찰에 넘겼다가 괜히 일만 커지고 해결은 안 될 거고….

호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는 사이 텔레비전 속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 등장한 강아지는 주인 가족 중 유독 한 사람에게만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녀석이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다가도 그 사람이 곁에 오기만 하면 잔뜩 털을 세우며 이빨을 드러냈다.

전문가는 이번에도 한참 동안 강아지의 행동을 관찰하더니 술술 말을 꺼내놓았다.

[주인과 강아지 사이에 서열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케이스네요. 그러니까, 강아지가 주인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는 거죠.]

어라? 싶어 호원의 의식이 다시금 텔레비전을 향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평소에는 별다른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간식을 먹을 때, 자기보다 서열이 아래인 주인이 근처에 있으면 제 것을 노리는 줄 알고 경계하는 거죠.]

전문가의 진단을 들은 주인은 ‘저를 호구로 보는 거네요.’라며 허허 웃었다. 호원은 어쩐지 그 모습에 기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호원은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상체까지 앞으로 당겨 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주인의 질문에, 전문가가 대답했다.

[일단 주인이 자신보다 위라는 걸 강아지에게 알려주고, 더 이상 거스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요. 호원은 무심코 텔레비전 속 전문가에게 투덜거릴 뻔했다.

다행히 주인도 호원과 비슷한 표정이었는지, 전문가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손으로 강아지의 주둥이 부분에 손가락으로 큰 원을 그렸다.

[원래는 훨씬 어렸을 때 했어야 하는 일인데, 강아지의 주둥이 부분을 살짝 치거나 가볍게 움켜잡는 거죠. 이걸 노즐 컨트롤이라고 합니다.]

호원은 가늘게 뜬 눈으로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화면 속에는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간식과 목줄을 쥔 주인이 강아지와 대치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진짜 개였으면 좀 쉬웠을지도 모르지.’

호원이 불퉁한 얼굴을 한 채로 몸을 뒤로 젖혔다.

화면 속 강아지처럼 주둥이를 잡고 조련할 수도 없고, 애초에 저보다도 덩치가 큰 녀석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호원은 막막한 기분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건지,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는 파란 눈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엇….”

호원은 순간 당황했다.

무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기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흔들림 없이 차분한 눈동자는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호원을 샅샅이 뜯어보며 감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 마주 보고 있기 퍽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재, 재미없네. 그치? 다른 거 보자, 다른 거.”

호원은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멀쩡한 사람을 개 취급한 것이 괜히 찔려 민망했다.

호원은 이렇게 된 거 아무거나 나오라는 심산으로 리모컨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렀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며 언쟁을 벌이는 남녀의 모습이 화면에 떠올랐다.

귀퉁이 쪽을 보니 한창 유행하는 평일 저녁 드라마의 재방송인 모양이었다.

‘그래, 이거면 좀 낫겠다.’

호원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그로서는 무휼과 다정히 붙어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지금이 답답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집에서 편히 텔레비전도 못 보며 방 안에만 콕 박혀 있고 싶진 않았다.

드라마 정도라면 무난하게 볼만할 테고, 잠깐 시간 좀 죽이다 간식으로 사온 과자나 먹다 보면 금방 저녁 시간일 터였다.

평소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호원은 저녁 식사를 9시가 넘어서야 하곤 했다. 오늘은 휴일이니 적당히 뒹굴뒹굴하다 실력 발휘한 저녁을 거하게 챙겨 먹고 푹 잘 셈이었다.

그만하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휴일이다. 만족스러운 선택이라 생각하며, 호원은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굳어버렸다.

화면 속에서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따귀라도 갈길 것처럼 사납게 싸워대던 남녀가 진한 키스 신을 벌이고 있었다.

‘쟤네 분명 싸우고 있지 않았어? 근데 갑자기? 왜? 아니, 요즘 드라마는 애들도 보는데 이렇게 찐하게 키스 신을 넣어도 되는 건가?’

호원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채널을 돌릴까 싶었지만, 이 상황에 부산스럽게 행동하는 게 오히려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스러웠다.

무휼의 반응을 보며 슬쩍 눈동자만 굴리는데, 시야 한쪽에 대놓고 그를 내려다보는 파란 눈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움찔한 호원이 흘긋 무휼을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너무 얼어 있길래.”

“내가 뭐.”

호원이 단답으로 대답했다. 뜨끔한 기분을 숨기려고 그런 것이었지만, 눈치 빠른 무휼에게는 빤히 들여다보인 모양이었다.

호원을 돌아보는 무휼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장난기 어린 푸른 눈이 휘어지며 무휼이 호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설마 그 나이 되도록 키스 한번 못 해본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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