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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8)화 (8/101)

제8화. Muzzle control (1)

제 방으로 돌아온 무휼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호원이 가게로 출근하기 전까지 생각나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 보긴 했으나, 결국 뭐 하나 제대로 된 반응으로 돌아온 것은 없었다.

‘왜 벽에 삐딱하게 서 있어? 그러다 상처 덧난다.’

‘아, 성가시게 길은 왜 막아. 걸리적거리니까 할 일 없으면 빨래나 개어놔.’

‘눈은 또 왜 끔뻑거려? 진짜 뭐 들어갔냐?’

굴욕적이다. 무휼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민망함과 치욕 속에서 몸부림쳤다.

“대체 남들은 이딴 걸 어떻게 하는 거지?”

무휼은 지금껏 숱하게 겪어왔던 타인의 유혹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유혹을 대충 흘려 넘겼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쯤 했으면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얼굴로 이만큼 했는데 반응이 없다니. 무휼은 스스로의 자존감이 하락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혹시 자신의 짐작이 틀린 게 아닐까?

호원은 그저 남자든 여자든 예쁘고 잘생긴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단순히 자신이 착각한 거라면….

‘그런 사람한텐 어떻게 잘 보여야 하는 거지?’

무휼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친구…라기엔 나이 차이가 많고. 그렇다고 아는 형처럼 대하자니 주변에 아는 형이라고는 없는데….’

무휼에게 있어 인간관계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자신의 적인 사람과 ‘아직’ 적은 아닌 사람.

그의 주변에는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밖에 없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옛날부터 알고 지낸 친구 한 명뿐이었다.

그런 무휼에게 ‘친한 형’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짜증 나네, 진짜.”

무휼이 거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새삼스럽게 제 처지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냥 다 관둘까.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떨쳐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꺼뒀던 전원을 켜니 스무 통이 넘게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그 기록들은 대부분 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무휼은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 번호 옆의 수화기 버튼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막 전화를 걸기도 전에, 상대방으로부터 스물한 번째 통화가 걸려왔다.

-코치님.

기다렸다는 듯이 걸려온 전화에 무휼이 인상을 찌푸렸다. 별수 없이 수화기 버튼을 옆으로 밀고 수화기를 귀에 대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속을 찔렀다.

[권무휴우울!!!]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에 무휼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상대는 숨 쉴 틈도 없이 다다다 말을 쏘아붙였다.

[야, 이 미친 새끼야아!!! 이제 전화를 받냐? 왜, 아예 내가 관짝 들어가기 전까지 잠수 타지 그러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코치님 좀 진정-”

[진정? 진저엉? 네가 지금 진정이라는 말이 나와! 이게 뚫린 입이라고 못 하는 소리가 없지, 어?]

무휼의 말이 오히려 역효과였는지, 수화기 속 상대가 더욱 우렁찬 목소리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난 목숨이 간당간당하게 생겼다, 이 새끼야. 나 짤리면 우리 여보야랑 딸내미는 네가 책임질래? 엉? 네가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이럼 안 되지, 권무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너 요즘 좀 풀어줬다고 내가 만만하냐?!]

“정말 죄송합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사과부터 하는 게 낫다. 무휼은 보이지도 않을 상대를 향해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다행히 상대는 깍듯한 사과에 좀 진정이 되는지, 긴 숨을 푹 내쉬고는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휴, 그래. 뭔 일이 있었는지는 민호한테 대충 들었다.]

“…최민호가 뭐라고 했어요?”

무휼의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했건만, 그새를 못 참고 냉큼 일러바쳤나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유일하다시피 한 친구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너 선발전 오는 길에 사고 났었다며. 그래서 선발전 못 왔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마. 사고가 났으면 났다, 다쳤으면 다쳤다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말을 하다 보니 또 열이 받는지, 수화기를 건너오는 목소리가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그냥 사고라고 둘러댔구나. 무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상황이 좀 복잡해서 말씀 못 드렸어요. 죄송합니다.”

[됐다.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둘 테니 그리 알아. …그래, 상처는 좀 어떠냐? 병원에 물어보니 너 안 왔다던데. 다른 병원 간 거냐?]

그새 병원까지 연락을 돌렸나. 과보호도 이런 과보호가 없었다. 무휼은 이전, 호원과 동네 아무 병원이나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래요. 병원은… 거기까지 가느니 근처에서 빨리 치료받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보름 정도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시간 되는 대로 병원 꼭 가봐. 내가 윤 선생한테 말해놓을-]

“아뇨, 제가 말씀드릴게요. 마침 윤 선생님이랑 할 얘기도 있어서요.”

무휼이 상대의 말을 뚝 끊었다. 코치는 잠시 침묵하더니 ‘그래라, 그럼.’ 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언제쯤 다시 나올 거냐? 너 지금 민호네서 지낸다며. 내가 언제 그리로 갈까?]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무휼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아 둘러댈 말이 바로 떠오르질 않았다.

“그냥…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배구 생각은 안 하고 싶어요.”

[어머님은? 너 사고 난 거 아셔?]

핑곗거리를 대기가 무섭게 카운터가 날아왔다. 무휼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숨을 들이켰다.

[어이, 권무휼이? 왜 말이 없어.]

“…아세요.”

무휼은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거의 자동반사처럼 나온 대답이었다.

코치는 그 대답에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잠시 침묵하더니,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너, 김진수하고는 혹시 연락하냐? 둘이 안 친했던가?]

“…….”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무휼은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방바닥을 짚었던 손은 꽉 주먹 쥐어진 채 바들바들 떨렸다.

“…김진수가 왜요?”

가까스로 내뱉은 말은 다행히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다. 동요한 티는 나지 않았는지, 코치는 여상하게 대답했다.

[아니이, 그 자식도 선발전 펑크 내놓고 잠수 타고 있잖냐. 하여간 너넨 어째 사고를 쳐도 둘이 같이 치냐? 김진수 그 새끼는 아직도 연락이 안 돼. 혹시 너 뭐 아는 거 없냐? 저번에 둘이 같이 나갔다더만.]

“없어요.”

스스로가 듣기에도 칼같이 단호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무휼은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코치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하튼, 몸조리 잘하고 좀 움직일 만하면 잠깐이라도 코트 들러라. 김진수 그 자식한테 연락 오면 바로 보고하고.]

“네.”

무휼의 대답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그는 까맣게 변한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다,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버렸다.

하, 하고 비틀린 입술 사이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꼬리 말고 숨어 있다 이거지.”

이가 으득 갈렸다. 대충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걸 확인하니 더더욱 열이 뻗쳤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바닥을 나뒹구는 휴대폰을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하필 나를? 왜 하필 그런 날, 그런 식으로?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배신당하는 일이라면 지겹도록 익숙했다. 하지만 무휼은 여전히 왜 하필 자신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왜 그의 주변 인간들은 그를 못 괴롭혀 안달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풀어낼 대상이 없는 화는 무휼의 안에 고여 자꾸만 그의 신경을 갉아 먹었다. 맘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나 틀어박히고 싶었다.

빌어먹을.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냉수라도 들이켜야 들끓는 속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문을 열고 나온 무휼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현관 쪽에서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인가? 아직 올 시간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무휼은 의아한 얼굴로 시계를 돌아보았다. 시곗바늘은 어느덧 저녁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호원이 출근을 한 것이 6시. 가게 오픈은 보통 8시쯤부터였으니 뭔가 놓고 간 거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필 지금….’

무휼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당장은 아무하고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 순간 가장 껄끄러운 상대를 마주하게 되다니, 짜증이 울컥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심호흡을 하며 내리눌렀다.

어쨌거나 상대는 당분간 신세 져야 할 사람인 데다, 적어도 무휼에게 부당한 뭔가를 요구하진 않았다.

아직은.

“어? 밖에 나와 있었네?”

집 안으로 들어선 호원이 부엌에 서 있는 무휼을 발견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휼은 대답 없이 컵에 물을 따랐다. 기분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작은 말 한마디에도 짜증이 울컥 솟았다.

지금 기분이라면 잘 보이고 자시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을 것만 같았다.

“너 저녁 어떡할래? 난 원래 가게에서 대충 때우니까 괜찮은데, 생각해 보니 넌 집에서 뭐 먹을 게 마땅찮을 것 같더라고.”

해맑게 들리는 목소리에 물병을 기울이던 손이 우뚝 멈췄다.

‘고작 그게 용건이라고? 나 밥 챙겨주는 거?’

어처구니없는 짓도 정도껏이었다. 그동안이야 사람이 좋아서, 집주인이 호구라서 잘해줬다 치겠지만 갈수록 단순히 ‘호의’로 이렇게까지 해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원하는 게 있지 않고서는.

무휼은 서늘한 시선으로 호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호원은 무휼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한 듯, 그의 등에 대고 조잘조잘 말을 뱉었다.

“간단한 것도 괜찮으면 알아서 먹어도 되는데. 라면보다는 그래도 제대로 된 거 먹는 게 회복에 도움 될 거 아냐. 너만 괜찮으면 가게 내려와서….”

“당신 대체 뭐야.”

호원의 말이 느닷없는 냉랭한 목소리에 뚝 끊겼다.

쾅, 소리가 나게 물병을 내려놓은 무휼이 고개만 돌려 호원을 돌아보았다.

호원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고작 그딴 거 물어보려고 가게 일도 미뤄두고 올라왔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단순히 호의로 그렇게까지 해준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무휼은 호원의 어리둥절한 얼굴에 왈칵 화가 치밀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말을 할 것이지, 저딴 식으로 호의를 가장해 사람 좋은 척하는 종자들을 그는 제일 경멸했다.

그런 이들이 결국 어떤 말을 하며 무휼을 고립시키는지 이미 질리도록 봐왔기 때문이다.

‘야, 나는 그래도 너 좋으라고 우리 조에 끼워준 건데 무슨 태도가 그러냐? ×나 실망이다, 권무휼.’

바라지도 않은 친절이었다. 애초에 대회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교수에게 양해를 구해 조 편성에서 빠진 것도 무휼이었다.

‘그래도 걔 덕분에 추가점 들어와서 성적 잘 나오지 않았어?’

‘야, 넌 모르면 말도 하지 마. 권무휼 걔 그런 앤 줄 몰랐는데, 진짜 재수 없더라. 집 좀 잘살고 운동 좀 잘한다고 기고만장해서는-’

그들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강의하는 시간보다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 학생들이 휴게실로 쓰곤 하는 그 강의실이 생각보다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그저 ‘권무휼’의 이름이 가진 영향력만 보고 저들 입맛대로 무휼을 끌어들였고, 볼일을 마치자 그대로 무휼을 ‘재수 없는 도련님’으로 만들어 내버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무휼을 절친이라 말하고 다닌다거나, 이름도 모르는 ‘여자친구’가 갑자기 생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는 테이블 맞은편에서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호원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닌지, 이번 상대는 꽤 교묘하다. 그동안 당한 게 없었으면 끝없는 친절에 마음을 놓아버렸을지 모른다.

무휼의 손이 컵에서 스르륵 떨어져 나왔다. 테이블을 짚고 삐딱하게 선 그가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입을 열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척을 하는데.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말해, 들어줄 테니까.”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예리하게 벼린 말이 비수가 되어 호원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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