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3)화 (3/101)

제3화. 임시 보호

“그래서 정체도 모르는 데다, 칼빵까지 맞은 애를 집에 들였다?”

호원의 연락을 받고 하루 만에 바 ‘3월’을 다시 찾은 수현은,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수현의 맞은편에 팔짱을 끼고 앉은 호원이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라고 별수 있었겠냐. 어린놈이 갈 데도 없다는데 어쩌겠어. 게다가 뭐, 옆에서 보니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닌 것 같고.”

“나쁜 애가 아닌데 길거리에서 칼에 찔려? 그것도 그렇게 어린 애가?”

수현이 눈썹을 찡그렸다. 호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내 말은. 깊게 엮이지만 않으면 나쁘지 않겠다는 거지. 며칠만 있다가 나간다는데 잠깐 보살펴 주는 정도야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정체는 모르잖아. 불안한데.”

하여간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라며, 수현은 혀를 찼다.

그가 아는 이호원이란 사람은 늘 이 모양이었다. 대가도 없이 남을 돕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쉽게 믿었다.

그동안 가게를 차리려고 온갖 알바를 전전한 덕에 눈치나마 생겼으니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사기를 당해도 몇 번은 당했을 녀석이었다.

물론 그런 살갑고 정 많은 성격 덕분에 바 ‘3월’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걸 테지만.

아무튼 수현은 오랜 친구인 호원이 걱정스러웠다. 심지어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너 1년 전에 있던 일 기억 안 나? 그때도 지금이랑 똑같았잖아.”

“윽.”

호원은 정곡을 찔린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1년 전의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바 ‘3월’은 비슷한 업종의 다른 가게에 비해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는 기간이 월등히 길었다.

그것은 호원이 사람 보는 눈이 좋아 잘 뽑은 덕분이기도 했지만, 워낙 대우도 좋고 호원이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준 덕이 컸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매니저는 호원이 직접 키웠다 해도 무리가 없었다.

현재 바 ‘3월’의 매니저는 권시영이라는 20대 중후반의 여자아이였는데,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호원이 바텐더 교육을 지원해준 아이였다.

시영은 호원의 지원을 받아 일본과 호주로 유학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세계 바텐더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은혜를 갚겠다며 바 ‘3월’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시영이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잠시 고용했던 파트타임 알바로 인해 발생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 아르바이트생은 걸핏하면 지각에, 일도 엉망이라 클레임이 끊이질 않았다. 호원에게 월급 가불을 요청하는 일도 많았다.

수현도 몇 번 얼굴을 봤었는데, 껄렁껄렁한 태도에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주문을 놓치기 일쑤였다. 심지어 한 번은 손님에게 시비를 걸다 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호원은 그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것과, 최근 애인과 헤어져서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그 모든 일들을 덮어주었다. 오히려 맛있는 것 좀 먹고 다니라며 월급 외에도 개인적으로 용돈을 쥐여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아르바이트생은 가게에서 손님과 주먹질을 하다 손님에게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도 너 걔는 그런 애 아니라고, 힘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했지, 아마?”

“그거는… 그럴 줄 몰랐으니까 그렇지.”

“그럼, 그러는 애들이 이마에 ‘나 사고 칠 애예요.’ 하고 써 붙이고 다니겠냐?”

수현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호원은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눈동자만 데굴 굴려댈 뿐이었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내보내. 괜히 험한 일에 말려들까 걱정된다.”

“에구, 그래. 이렇게 걱정해 주고 네가 최고다, 친구야.”

호원은 얼른 너스레를 떨며 애교를 부렸다. 더 말했다간 수현의 길고 긴 잔소리만 한참 들을 게 뻔했다.

그때, 도어록 여는 소리가 나더니 예의 바 매니저, 시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오너, 왜 벌써 출근했… 수현 오빠까지 있네?”

“시영이 왔냐. 일찍 출근했네.”

호원은 마침 잘됐다는 듯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반겼다. 시영이 왔으니 수현도 무휼에 대해 더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지 못할 거란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걱정돼서 일찍 왔죠. 저 쉬는 날에 웬 이상한 놈 하나 주웠다면서요? 제정신이에요?”

산 넘어 산이라더니, 수현보다 더한 잔소리꾼이 바로 시영이었다. 그녀는 작정하고 잔소리를 하려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팔짱을 척 끼었다.

“가게 앞에서 피 철철 흘리고 있는 걸 오너가 집에 데려갔다고 들었어요.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아무나 막 집에 들여요, 네?”

“아니이… 그래도 상처 입은 사람을 길거리에 막 놔둘 수도 없고….”

“구급차는 그럼 왜 있는데요? 경찰은요? 오너가 무슨 정의의 히어로라도 돼요? 그러다 나쁜 놈한테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다다다 쏘아붙이는 시영에 호원은 진땀을 뺐다. 수현은 시영의 말이 구구절절 맞는다는 듯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뭐 당일엔 어쩔 수 없었다고 쳐요. 근데 왜 지금까지 안 내보낸 건데요? 듣자니 덩치도 커다란 남자라던데, 조폭이라든가 도주하던 범죄자일 수도….”

“아닌데.”

속사포처럼 늘어놓던 시영의 말이 돌연 끼어든 낮은 목소리에 뚝 잘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시영이 열어 놓은 문에 기대선 남자가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금 말했다.

“나쁜 사람 아냐, 나.”

“아, 그쪽이 그 사람?”

시영이 마침 잘됐다는 듯 남자 쪽으로 몸을 틀었다.

“직접 보니 더 수상하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음… 학생?”

무휼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태평하기까지 해 보이는 모습에 시영은 허, 하고 헛웃음을 뱉었다.

“자자, 그쯤 하고 그만하자. 시영이는 오픈 준비 해주고, 무휼이 넌 잠깐 나 좀 봐.”

“아니, …오너!”

시영이 큰 소리를 내자 호원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걱정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고는 무휼의 등을 떠밀며 계단을 올라갔다.

“원래도 사람이 좀 허술한가 봐? 주변에서 저 정도로 걱정하는 거 보면.”

무휼은 호원이 떠미는 대로 순순히 밀려주며 툭 내뱉었다. 호원은 어쩐지 강가에 내놓은 어린애가 된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처는 좀 괜찮아?”

호원의 말에 무휼은 무심코 계단에 한 발을 올리며 대꾸했다.

“뭐… 원래부터 별거 아니었….”

돌연 무휼이 말을 멈췄다. 슬쩍 호원을 내려다본 그가 갑자기 상처 부분을 감싸며 허리를 숙였다.

“윽! 계단 올라오느라 무리했나.”

“왜? 아파?”

호원이 화들짝 놀라 무휼의 어깨를 잡았다. 무휼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흘긋 호원을 살폈다. 호원은 찡그린 얼굴 가득 걱정을 담고 있었다.

대체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 것인지,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라고 무휼은 생각했다.

이렇게 보니 방금 전 바에서 그 여자가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

‘하긴 이렇게 호구면 나라도 걱정되겠다.’

뭐, 덕분에 이용하긴 쉽지만. 분명 이번에야말로 집에 돌려보낼 생각이었겠지만, 호락호락 넘어가 줄 무휼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이곳에 있어야 했다.

무휼은 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호원이 가게에 가봐야 한다며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야, 너 왜 이제 전화해! 코치님 난리 났어!! 어떻게 선발전에서 펑크를 내냐, 개또라이야! 아주 미쳤지? 지금 당장 코치님한테 전화해서 빌어라, 어?]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오는 큰 소리에 무휼이 인상을 찡그렸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문밖까지 다 들릴 것 같았다.

“시끄럽고, 그래서 선발전은 어떻게 됐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냐? 유력 후보가 둘이나 펑크 내서 선발전 완전 개판 되고 난리도 아니었다. 코치님도 지금 모가지 간당간당하게 생겼다고!]

시끄럽다는 말에도 상대방은 목소리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의 심정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기에, 무휼은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어머니한테 전화 오진 않았냐.”

[그러잖아도 어제 왔다, 인마. 너 연락 안 되는 것 같다고 걱정하시길래 일단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말해 뒀어.]

“그래, 당분간 좀 부탁한다.”

무휼은 다소 안심했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슬슬 대화를 끝내려 하는데, 상대 쪽에서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는 듯 다시 물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당분간이면 얼마나? 야, 너 뭔 일 있는 거 아니지? 막 약에 손댔다거나 한 거면 나한테 뒤진다?]

“그런 거 아냐, 새꺄. 일단 어머니한테는…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만 잘 좀 숨겨줘. 코치님한텐 나랑 통화한 거 말하지 말고.”

그러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무휼은 벽에 앉아 있던 그대로 고개를 젖혀 벽에 머리를 기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해결되는 일은 없는데 계속 꼬이기만 했다. 당장은 어찌어찌 넘어간다 해도 이다음이 문제였다.

시간을 벌었다지만 허술한 거짓말은 곧 들킬 터였다.

집은 이미 노출되어 있으니 여기저기서 그를 찾을 것이고, 당장 숨어 지낼 곳이 필요했다. 적어도 상처가 어느 정도 나을 때까지는 이곳에, 호원의 집에 있어야 했다.

무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그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선발전…?”

휴대폰을 두드리던 호원은 들려온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을 닫고 나서야 문고리가 달랑거린다는 걸 깨달아서 막 수리점에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통화를 숨어 들은 격이었다. 어쩐지 양심이 찔리는 듯해, 호원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래도 문고리는 나중에 고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호원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였다.

‘그나저나, 부모님하고 통화한 것 같진 않은데. 친구인가?’

무휼은 호원을 그저 사람 좋은 호구 정도로 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냥 눈치 없는 호구였더라면 서울 한복판에 이렇듯 번듯하게 자기 가게를 차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허름한 문도 문이라고, 무휼의 말이 드문드문 끊겨 들렸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친구 집에 있다고 거짓말을 쳤다 이거지? 어떻게 해서든 집에는 안 들어가겠다는 거군.’

아무리 어른스러워 보여도 애는 애였다.

호원은 적어도 무휼이 한밤중에 가게를 털거나, 식칼을 휘두를 종류의 인간은 아니라는 걸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자존심 센 애송이 정도에 가깝달까? 남에게 미움은 살지언정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못할 성정이었다.

애초에 무휼이 그런 악독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젯밤에 진즉 집 안의 물건을 털어 도망가거나, 호원에게 뭔가 해코지를 했을 것이다.

‘선발전이니 코치니 하는 걸 보면… 운동하는 녀석인가?’

골치 아픈 일은 질색인데. 호원이 설핏 인상을 찡그렸다. 애초에 상처도 얕았고, 얼추 몸을 움직일 정도만 회복되면 바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임시 보호는 쉽게 결정하는 게 아닌데….”

호원은 자신의 처지도 참 처참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저 커다란 놈을 집까지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이 임시 보호자의 의무였다.

적어도 그때의 호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일이 그리 순순하지 않다는 걸, 그는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