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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2)화 (2/101)

제2화. 주인 없는 개?

호원은 주방 한쪽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가늘고 긴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건 누가 봐도 새것 같은 신분증이었다.

“설마하니 21살일 줄은 몰랐는데.”

어려도 너무 어렸다. 이제 갓 사회에 나온 거나 다름없는 녀석이 벌써부터 무슨 원한을 그리 져 대로변에서 봉변씩이나 당했담? 그렇게 생각하니 기가 찼다.

‘지금쯤 정신을 차렸으려나?’

호원의 눈동자가 흘긋 바 천장을 향했다. 남자가 누워 있을 침대 쪽을 어림해 보던 그는 피곤한 눈을 문지르며 목을 돌렸다. 스트레칭하는 목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 ‘3월’도 장사를 마무리하고 뒷정리까지 모두 끝냈을 시간이니, 밖은 아침 해가 떠오른 지 오래일 터였다.

온몸에 무거운 추라도 단 양 피곤했지만 호원은 의자에 앉은 몸을 좀처럼 일으키질 못했다. 그의 앞에서 아담한 냄비에 담겨 끓고 있는 달걀죽 때문이었다.

있는 재료로 급하게 만든 거긴 하지만, 나름대로 솜씨를 발휘한 음식이니 먹을 만할 터였다. 주걱으로 달걀죽을 휘휘 저은 호원은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깨를 뿌리고 뚜껑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 잠긴 문을 여는 동안에도 안에서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자고 있나 싶어 숨소리를 죽인 호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거실 테이블에 죽이 담긴 냄비를 내려놓고 남자가 자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어이, 죽이라도 먹-!”

그러나 문을 연 순간, 시야가 확 반전되며 벽에 이마를 찧었다. 틀어 잡힌 팔에서 고통이 엄습했다.

호원은 그제야 자신이 낯선 남자에게 제압당해 벽에 밀어붙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 너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

“시끄러워.”

간단히 호원을 제압한 남자가 짜증스럽다는 듯 까칠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호원은 어떻게든 남자의 손을 벗어나려 발버둥 쳐 봤지만, 호원의 등에 바짝 붙은 남자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힘이!’

요즘 어린놈들은 잘 먹고 잘 커서 그런가, 힘이 아주 장사였다. 그러고 보면 부축할 때 유독 근육질의 몸이라 버거웠던 기억이 났다.

‘내가 더러워서라도 체육관 다시 다닌다.’

호원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고개를 틀어 남자를 보았다. 기이할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등허리로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놓으라 했다?”

“무슨 속셈인지 말하면.”

남자가 호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디 가서 남을 올려다본 일이 많지 않은 호원은 자신보다 반 뼘이나 높은 남자의 눈높이가 심히 불쾌했다.

“속셈은 무슨 속셈?”

그래서일까, 절로 불퉁한 목소리가 나왔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좀체 수그러들 기미가 없는 호원의 태도에 남자의 미간이 구겨졌다.

꺾어 잡은 팔에 힘을 가하자 호원의 입에서 으윽,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남자는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힉!”

덥석 엉덩이를 쥐어오는 손길에 호원의 몸이 쭈뼛 곧추섰다.

황당한 상황에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동안,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른 쪽 엉덩이를 주물렀다.

“너- 뭐, 뭐 하는…, 미친!”

커다란 손이 앞으로 다가오는 걸 본 호원이 기겁을 하며 소릴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호원을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며 허리께에 손을 댔다.

호원은 남자의 손이 골반을 지나 사타구니 쪽으로 향하는 것을 깨닫고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무슨 짓이야, 이 변태 새끼야!”

“찾았다.”

남자의 손에 들린 건 검은색 지갑과 핸드폰이었다. 그제야 호원은 남자의 의도를 눈치챘다.

‘저거 찾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남의 엉덩이를 주물러?’

이 새끼 이거 미친놈 아닌가. 순간 호원은 자신이 이상한 놈을 구하겠답시고 스스로의 목숨을 바닥에 내팽개친 건가 싶어 심란해졌다.

남자는 지갑과 핸드폰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는 다시금 손을 뻗었다. 마디가 굵고 두꺼운 손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호원의 가슴팍이었다.

콱 쥐어오는 손길에 호원이 또다시 비명을 삼켰다. 호원의 가슴을 더듬던 남자가 셔츠 앞주머니에서 또 다른 핸드폰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앗, 내 폰!”

호원이 몸을 뒤틀었다. 남자는 호원의 손가락으로 손쉽게 잠금을 해제한 뒤 한 손으로 슥슥 화면을 넘겨 보았다.

남자는 남은 한 손으로 가볍게 호원을 제압하고 있었다. 힘도 힘이지만, 남자는 어떻게 하면 적은 힘으로 큰 효과를 내는지 잘 아는 듯했다.

요령 좋게 제압당한 탓에 호원은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야, 볼 만한 것도 없네.”

애초에 남들 다 하는 SNS며, 그 흔한 게임 하나 없는 핸드폰은 말 그대로 무전기나 다름없었다.

남자는 정보라고 할 만한 걸 못 찾았는지, 호원의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 버렸다.

“야! 그거 아직 할부 한참 남았거든? 조심히 다뤄!”

“이 와중에 그게 중요해?”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처음 본 낯선 사람,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칼에 찔린 사람과 단둘이 있는 상황인데도 태평하기만 한 호원이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 정체 모를 집주인은 언제까지 그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당신,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이 안 돼?”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며 은근슬쩍 몸을 가까이 붙였다. 등 뒤로 닫는 탄탄한 몸이 느껴졌는지 호원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야, 너 뭐… 뭐 하려고 그래.”

당황한 목소리에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슬슬 머리가 돌아가? 지금 내가 그쪽한테 무슨 짓을 하든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당신을 쥐어팬다거나, 혹은 아예 죽여버리고 집을 털 수도 있겠지.”

“아, 그런 쪽.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당황해서 떨리던 목소리가 다시금 예의 심드렁한 어조로 돌아왔다. 정말 아무 상관 없다는 듯한 말투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남자가 뭐라 말하려는데, 별안간 호원의 손이 움직였다.

눈 깜짝할 새에 두 손목을 비틀어 남자의 손아귀를 풀어낸 호원은 그대로 남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남자의 가슴에 등을 대고 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윽!”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업어치기당한 남자가 신음 소리를 냈다. 등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옆구리의 상처에서 격통이 몰려왔다.

호원은 상처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남자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내가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모르는 놈을 들였겠냐? 이래 봬도 운동깨나 한 몸이거든?”

심드렁하게 말하는 표정에는 한심함이 서려 있었다. 남자는 씩씩거리면서도 호원을 치켜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너…, 죽여 버린, …으읏.”

“아서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무슨 협박을 하겠다고. 나도 손목 다치기 싫으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응?”

도저히 말로는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남자는 결국 체념한 모양인지 방바닥에 사지를 늘어뜨리고 드러누웠다.

호원은 그새 피가 배어 나온 붕대 부분을 보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거 봐라. 네가 막 날뛰니까 모처럼 치료한 게 다 쓸모없어졌잖아. 너 이거 치료비 받을 거다? 그러니까 이름이….”

“권무휼.”

남자, 무휼이 드러누운 자세 그대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많이 아픈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식은땀이 그득했다.

“그래, 권무휼 씨. 일단 좀 일어나 앉을래? 붕대 갈고 나서 우리 차분히 대화란 걸 좀 해보자.”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에 무휼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순순히 일어나 앉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영 못 이길 상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처를 입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순순히 말을 들으면서도 얼굴은 시종일관 부루퉁한 것이, 꼭 간식을 빼앗겨 삐진 대형견 같아서 호원은 피식 웃어버렸다.

***

진짜 잘 먹는다. 호원은 놀라움을 넘어 감탄스럽기까지 한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붕대를 간 뒤, 무휼은 호원이 끓여온 달걀죽 한 냄비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고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며 라면까지 요구했다.

호원은 뱃가죽이 뚫린 사람에게 라면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먹여도 되는가 잠시 고민했지만, 5개들이 라면 한 묶음을 순식간에 흡입하고 찬밥 두 공기까지 말아 먹는 모습에 생각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한 톨까지 찾아 먹을 기세로 냄비 바닥을 긁는 무휼을 마주 보며, 호원이 툭 내뱉었다.

“너 한 일주일 굶었냐?”

“아니.”

“그럼 얼마나 굶은 거야?”

“어제저녁에 밥 먹고 그 뒤로 안 먹었어.”

고분고분 대답하면서도 숟가락질은 멈추질 않았다.

호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무휼의 말에 따르면 밥을 먹은 지 고작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런 사람이 무슨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니 기가 막혔다.

“혹시 직업이 뭐, 푸드파이터 그런 건가?”

“에이씨, 그만 좀 하지?”

무휼이 숟가락을 냄비에 탕탕 치며 인상을 구겼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놈의 아저씨는 한시도 쉬지 않고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숟가락으로 칠 기세에 호원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결국 두 사람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건, 냄비를 싹 비운 무휼이 디저트랍시고 사과 한 알까지 손에 든 다음이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뒤져 꺼내 든 것이었다.

아직 상처가 쓰린지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사과를 베어 무는 무휼을 호원이 기막히단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주 지 집이다?”

“어디 가서 눈치 보는 성격은 아니라서.”

무휼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눈에 확 띄는 새파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나이가 어려 그런가,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임에도 웃는 얼굴은 묘하게 천진했다.

물론, 그러고 나서 곧바로 윽,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리긴 했지만.

‘여러 의미로 개 같은 놈이네.’

호원은 무휼이 들었으면 노발대발했을 생각을 하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탕 쳤다.

“자, 그럼 이제 얘기 좀 하자.”

“그러든가.”

“먼저 첫 번째. 권무휼 씨, 너 뭐 하는 놈이십니까?”

요상한 말투에 무휼이 미간을 구겼다. 이게 아저씨 감성이라는 건가.

겉보기엔 자신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휼이 툴툴거렸다.

“뭐야. 존대야, 반말이야? 하려면 똑바로 하든가.”

“시끄럽고, 대답이나 해.”

호원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무휼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학생이야. 대학생.”

“그리고?”

“그리고 뭐.”

호원은 황당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무휼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황당해졌다.

“야, 인간적으로 남의 가게 앞에서 배때기 뚫린 채 자빠져 있는 걸 치료해 줘, 재워줘, 먹여줘. 이렇게까지 했는데 뭐 할 말 없냐?”

“고마워?”

“아니, 그거 말고… 아씨, 진짜.”

대화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호원은 어떻게 해야 이 덩치 크고 제멋대로인 어린애와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견본을 보여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 일단 그럼 내 얘기부터 하자. 난 이호원이고, 이 건물 지하에 있는 바 주인이야. 이 집 세입자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너를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 중이란다. 그러니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자기소개 좀 해보련?”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줄줄 읊어대는 말에 무휼은 질렸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난 권무휼이고. 내가 칼 맞은 게 오해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 어둠의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음… 또 뭐가 있지. 아무튼, 못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나름 건실하고 평범한 대학생이야.”

“너 진심으로 그 말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냐?”

“아, 못 믿겠음 말든가.”

호원은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아마 무휼의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당장 집 밖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참자. 얘는 어린애다. 나랑 띠동갑이 넘는 꼬맹이다.’

버럭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며,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자, 권무휼 씨?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나는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내 집에 둘 정도로 호구는 아냐. 그러니까 네가 스스로를 설명할 생각이 없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내쫓아도 상관없다고. 알겠어?”

“그러니까 건실하고 평범한 대학생이라니까?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물어?”

“그럼 믿을 만하게 말해보든가. 학교는 어디고, 집은? 아, 그래 너 집 어디냐? 집으로 가면 되잖아? 평범한 대학생이라며!”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호원은 테이블을 쾅쾅 치며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무휼은 그 기세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대신 슬쩍 시선을 피했다.

“못 가.”

이쯤 되면 차라리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랑 대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호원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왜.”

“말 못 해.”

“그럼 어쩌려고?”

호원은 거의 체념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칼빵을 맞고 쓰러져 있었을 때부터 뭔가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적당히 치료만 해주고 돌려보낼 셈이었다.

그런데 이 평범하고 건전한 대학생이라는 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집은… 아, 그래. 여기 있을 거야.”

마치 이곳이 제집이라도 된다는 듯 당당한 태도였다. 호원은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말문도 함께 막힌다는 걸 깨달았다.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묻은 호원은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다시금 무휼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못 간다는 게, 그러니까-”

호원이 다시금 침착하게 말을 뱉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이를 확인하면서 주소지도 봤던 거 같은데- 동네가 어디더라?

일이 막 끝난 시점의 피곤한 상태라 그런지 가뜩이나 나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호원은 멍청한 자신을 책망하며 물었다.

“집이 없냐? 아니면 뭐, 본가가 외국에 있다거나 그런 거야?”

그리고 무휼에게서는 다시금 태평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근데 왜 못 가?”

“그건 말하기 싫어.”

도돌이표였다. 호원은 슬슬 이러한 대치가 피곤해졌다. 가뜩이나 밤새 일하고 들어온 상태라 피곤한 데다, 원래라면 이미 진작에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일단, 하… 그래. 집에 못 간다는 건 알겠어. 그래도 어디 갈 곳은 있을 거 아냐?”

“여기 있을 건데.”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겠니.”

“안 할걸?”

그 말에 짜증이 서리던 호원의 말이 뚝 끊겼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한 대답이었지만, 유독 빠르게 나오는 그 답변이 호원의 마음에 걸렸다.

가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괜히 마음이 약해져, 호원은 긴 한숨만 내쉬었다.

무휼은 그런 그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오래 있을 거 아냐. 상처만 대충 나으면 바로 나갈게. 신세 진 것도 갚을 거고. 그냥 며칠만 여기 있게 해주면 돼.”

한풀 기가 꺾인 어조에 호원은 더더욱 마음이 약해졌다.

어차피 이 집엔 들고 나갈 귀중품도 없거니와 상대는 부상자고, 심지어 어렸다. 게다가 뭔가 말 못 할 사정도 있는 모양이었다.

‘뭐…, 사정 있는 놈 돌봐주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고민하던 호원은 이렇게 된 거 그냥 다친 동물을 임시 보호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대신 상처 낫는 대로 나가는 거다?”

체념 어린 호원의 말에, 무휼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모양인지 동그래진 파란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호원은 오늘 오랜 친구에게 만들어 주었던 신작의 이름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개 같은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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