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린 개를 길들이는 법 (1)화 (1/101)

제1화. 어느 날, 개를 주웠다

“허, 참.”

호원은 기가 막힌다는 듯 짧은 말을 내뱉었다. 비에 젖은 앞머리가 반듯한 이마에 달라붙어 걸리적거렸다.

하얀 손가락이 앞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자 잘생겼다는 말보단 예쁘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옆에 선 아르바이트생은 호원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을 쳐다보며 연신 눈치를 살폈다.

비에 젖어 웅덩이가 진 바닥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자신의 발치까지 흘러드는 검붉은 액체에 호원은 난처한 얼굴로 혀를 찼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지만 아직 밤에는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비까지 와서인지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발밑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청년을 도울 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오너?”

아르바이트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이 늦은 밤에, 그것도 멀쩡히 영업 중인 가게 앞에 피 칠갑을 하고 쓰러진 사내라. 산전수전 다 겪은 호원도 난감한 마당에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아르바이트생이 괜찮을 리 없었다.

호원은 하얗게 질린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흘깃 보고는 한숨과 함께 대답을 뱉었다.

“일단 신고부터 하고 이 사람 안으로 들여-”

“안 돼.”

놀랍게도 호원의 말을 끊은 것은 쓰러진 남자였다. 그는 한 팔로 옆구리를 감싸 안은 채 고개만 들어 호원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머리카락 아래로 불타는 것 같은 푸른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다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눈빛이었다. 렌즈인가 싶을 정도로 선명한 푸른빛에 호원은 조금 놀랐다.

“신고하면 죽여버린다.”

숨을 헐떡이느라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호원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릎을 굽혀 쭈그리고 앉았다.

이제껏 술집을 운영하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봤던 호원은 단박에 남자의 상처가 치명상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피를 좀 흘리긴 했지만 당장 숨이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말하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본데, 진짜 병원 안 가도 되겠어? 내 가게 앞에서 시체 치우는 건 사양이라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잠깐 쉬다가 갈 테니까 상관하지도 말고.”

잘 벼린 칼처럼 까칠한 대꾸였다.

호원은 미간을 구겼다. 곧 숨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는 주제에, 그를 노려보는 남자의 눈은 완강하게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상처 입은 야생동물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뒀다가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 찜찜함은 어쩐단 말인가.

흘긋 옆을 살피니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르바이트생이 그와 남자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들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호원이 말하자 아르바이트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쫓기는 사람처럼 가게 안으로 쏙 사라졌다.

호원은 벽에 기대앉은 남자의 몸을 천천히 훑었다. 건장한 몸이긴 했지만 얼굴만은 앳된 티가 났다.

손은 비어 있고, 무기가 될 만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충 확신이 선 호원이 몸을 굽혀 남자의 팔을 잡았다. 천천히 당겨 일으키자 남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짓이야.”

“병원 안 갈 거면 치료라도 받아. 여기 바로 위층이 내 집이니까 옷도 갈아입고. 아무리 젊다지만 이런 날씨에 그러고 돌아다니면 감기 걸려.”

배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 감기가 대수인가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남자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호원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남자를 둘러매다시피 하고 성큼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일 터였다.

어깨 즈음에 걸쳐진 남자의 턱 부근을 슬쩍 바라본 호원은 이를 악무느라 힘이 들어가 각진 턱 근육을 볼 수 있었다.

호원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으려 했지만, 덩치 큰 남자를 부축하면서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

“아 진짜, 덩치도 더럽게 크네.”

호원이 귀찮게 됐다며 투덜거렸다.

그 자신도 상당히 큰 키였지만, 남자는 거의 2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게 컸다. 게다가 호리호리해 보이는 몸임에도 무게가 상당했다.

부축하느라 팔을 두른 허리나 어깨에 얹은 팔이 단단한 걸 보면 근육질의 몸이라 보기보다 무거운 모양이었다.

이런 근육질의 덩치 큰 남자가 어쩌다 뱃가죽을 뚫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비 오는 밤거리에 다친 사람을 그냥 두는 건 호원의 성격상 용납이 안 됐다.

호원은 자꾸만 축 처지는 남자의 몸을 억지로 추어올리며 계단을 올랐다. 바 ‘3월’이 있는 건물의 2층은 호원이 세 들어 사는 곳이기도 했다.

열쇠로 문을 따고 남자의 몸을 밀어 넣자 반쯤 정신을 잃은 남자의 몸이 허물어졌다.

“어엇, 잠깐만, 잠깐-!”

앞으로 훅 쏠리는 남자의 몸을 호원이 서둘러 붙잡았다. 그러나 자신보다 덩치가 큰 데다 정신까지 잃은 남자를 부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오, 씨!”

결국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진 호원이 욱신거리는 뒤통수를 문질렀다. 그의 위로 엎어진 남자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손 많이 가네, 정말.”

구시렁거리며 몸을 일으킨 호원이 남자를 바로 눕힌 뒤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었다. 끙끙대며 집 안으로 들여 신발과 옷을 대충 벗기고 상처를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남자의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회복하는 데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가볍게 스친 상처에 가까웠다. 아마 비가 오는 바람에 피가 번져 큰 상처처럼 보인 듯했다.

나중에 놀란 아르바이트생을 달래줘야겠다 생각하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깨끗한 수건을 가져온 호원이 빗물과 피에 젖은 남자의 상체를 닦았다. 상처를 지혈한 뒤 소독을 하고 상비약을 바른 다음, 붕대를 감았다. 덩치 큰 남자를 움직이느라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한참 만에야 겨우 치료를 마친 호원은 남자를 따듯한 방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열은 없지만 혹시 몰라 감기약과 진통제, 물 한 컵을 가져다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었다.

“이 정도면 됐나…?”

뺨을 긁적이며 고민하던 호원은 잠든 듯 미동도 없는 남자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비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코 위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밝은 데서 보니 수염 자국도 파릇하고 피부도 매끈했다. 생각보다 어린 나이일 수도 있겠다고 호원은 생각했다.

‘어린놈이 벌써부터 길거리에서 칼빵이나 맞고 다니고, 잘하는 짓이네.’

쯧쯧 혀를 찬 호원이 바닥에 널브러뜨렸던 남자의 옷을 하나씩 주워 들었다.

푹 젖어서 축축한 옷을 대충 한쪽에 던져 두려는데, 바지 뒷주머니에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보였다.

지갑과 핸드폰이었다.

“오호라.”

쌕쌕 숨을 내쉬며 잠든 남자와 바지 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본 호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

“무슨 일 있었어?”

2층에서 내려와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가게로 돌아오자, 바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호원에게 말을 붙였다. 갑자기 아르바이트생의 호출을 받고 나갔으니, 무슨 일인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오랜 친구이자, 아들내미처럼 여기는 이의 목소리에 호원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뭐. 밖에 시비가 좀 붙은 거였어.”

잘 돌려보냈으니 걱정 말라며, 호원이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주중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바 ‘3월’ 안은 손님들로 거의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한눈에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가게여도 늘 북적거리는 3월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일상적인 일이었다.

오늘 매출도 나쁘지 않겠군. 호원이 흐뭇하게 생각하는데, 어김없이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시비? 너 또 싸움 말리고 온 거야? 어디 다친 건 아니지?”

남자가 다시금 말을 붙여왔다. 단아한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며 호원을 보는 눈이 가늘어졌다.

“멀쩡하다니까? 하여간 이수현 오지랖은.”

호원이 태연하게 대꾸하며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그러다 소맷자락 끄트머리에 물든 검붉은 액체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럽게 소매를 접어 올렸다.

새하얀 셔츠와 검은색 베스트는 바 ‘3월’의 오너이자 메인 바텐더인 그에겐 유니폼이나 마찬가지였다. 평균 신장을 웃도는 장신과 길쭉길쭉한 팔다리 덕분에 소매를 걷는 모습이 그림처럼 수려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현은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원은 그가 소매의 핏자국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걸 확신하고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이수현, 요새 얼굴 좀 폈어? 잘난 애인님 덕분인가?”

짓궂은 어투로 말을 꺼내자 수현이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최근 애인이 생긴 수현은 그야말로 알콩달콩한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한번 데려와. 어떤 남자인지 얼굴이나 좀 보자. 호원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셰이커를 흔들었다.

역삼각형 잔에 새파란 액체가 가득 담겼다. 문득 방금 전 마주쳤던 파란 눈이 생각나 호원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가 잔을 내밀자, 수현은 잔을 받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같이 들를게. 근데 이건 뭐야?”

“신작. 요즘 많이 더워졌잖아. 여름 메뉴 개시해야지.”

호원의 말에 수현은 파란 액체를 입에 머금었다. 입에 넣자마자 혀끝을 톡 쏘는 탄산이 느껴졌다.

강렬한 첫맛에 비해 끝이 부드러워서 몇 잔이고 술술 넘어갈 것 같았다. 과연, 초여름에 잘 어울리는 칵테일이었다.

“맛있네. 이름은 뭐야?”

“허스키.”

허스키라니, 그 털이 북슬북슬하고 잘생긴 개를 말하는 건가 싶어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을 본 호원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내 꿈이 허스키 한 마리 키우는 거잖냐. 그때 되면 눈 색이 딱 그렇게 파란 녀석으로 데려올 거거든.”

“…이름 너무 막 짓는 거 아니냐?”

“그럼 네가 짓든지. 베스트셀러 작가님이니 작명은 특기일 거 아냐.”

어차피 이름을 바꿀 생각도 없으면서, 호원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자신을 부르는 종업원의 목소리에 손짓으로 양해를 구했다.

“너 오랜만에 왔는데 오늘 유독 바쁘네. 신경 못 써줘서 미안.”

“난 괜찮아. 바쁘면 좋지 뭐. 그리고 신경 써준 건 이거로도 충분해.”

수현이 자신의 앞에 있는 파스타 접시를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만들어준 바질파스타는 조금 식어도 충분히 별미였다.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종업원과 얘기하던 호원이 한쪽 테이블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하얀 셔츠와 허리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수현은 조금 남아 있던 ‘허스키’를 단번에 비웠다.

***

남자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느껴진 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포근한 감촉이었다.

“뭐-”

말을 내뱉으려던 남자가 사정없이 갈라지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입술만이 아니라 목구멍과 그 안쪽 장기까지 모두 바싹 마른 것 같았다.

두 팔을 지지대 삼아 상체를 일으켰다. 상처 난 옆구리 쪽에서 송곳으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남자는 미간을 찌푸릴 뿐,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협탁 위에 물컵이며 각종 약들이 놓여 있었다. 자신을 데려온 이상한 남자가 또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린 모양이었다.

가만 보니 허리와 옆구리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라 생각하며 남자는 방 안을 휙 둘러보았다. 다행히 방의 주인은 외출하고 없는 듯했다.

‘나가려면 지금인가.’

물컵부터 단숨에 비운 그는 빈 컵을 내려놓으려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길거리에 학원 홍보용으로 많이들 나눠주는 포스트잇이었다. 노란 종이에 학원 이름이 촌스러운 서체로 박혀 있었다.

문제는, 그 안에 적힌 내용이었다.

-네 지갑이랑 핸드폰 나한테 있다. 돌려받고 싶으면 나 돌아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인질극인가 싶었다. 남자는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다 훅 치밀어 오르는 통증에 몸을 굽혔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병원도, 경찰도 안 되는 상황에 그렇다고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난감했다.

“에이씨, 모르겠다.”

남자는 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쉴 새 없이 욱신거리는 옆구리가 아팠지만 애써 협탁에 놓인 진통제를 외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부로 약을 먹지 않는 건 남자의 오랜 버릇이었다.

억지로 눈을 감자 자신을 보고 혀를 차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냉큼 집에 들이다니, 정신 줄이 어떻게 된 사람 아닌가 싶었다.

“이상한 놈이야.”

남자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이내 방 안엔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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