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옳지!”
눈 사이를 휙 헤집은 연녹수가 화색을 띠었다. 얼어붙은 흙 사이로 풀떨기가 빼꼼 드러나 있었다. 한참 가래질을 하느라 얼굴이 뻘겋게 익은 막둥이가 헉헉거리며 물었다.
“이, 이, 이게, 머, 뭔데, 누, 눈을 치우라, 하셨어요?”
“뭐긴 뭐겠니. 귀한 영초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 연녹수가 주변 흙을 살살 퍼 올리자 차츰 드러나기 시작한 풀떨기의 아래 뿌리가 불룩했다.
“으악!”
자세히 들여다본 막둥이가 기겁하며 유원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쭉 딸려 나온 풀떨기 밑뿌리에 붙어 있는 둥그렇고 커다란 덩어리는 얼핏 보기엔 사람의 머리뼈처럼 보였다.
“녹수 님, 이게 아까 말씀하신 그 두해초인지요?”
“그래, 산지기들 사이에선 살살이풀이라고도 불리는 그 영초란다. 아가도 바리데기 이야기는 들어 봤겠지?”
연녹수가 되묻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종종 자장가 대신 들려주던 이야기로, 효심 깊은 일곱째 공주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온갖 난관을 헤치고 서천에서 약을 구해 온다는 영웅담이었다.
“바리공주가 죽은 부모를 살리고자 세 가지 약을 구해 오는데 개중 하나가 뼈에 살을 돋게 하잖니? 이 살살이풀이 그 영약을 만들 때 쓰였다는 설이 있단다.”
“즉, 뼈와 힘살에 크게 효능이 있겠네요.”
“그렇지. 다만 자라는 조건이 쉽지 않단 점이 좀 아쉽구나.”
“어, 어, 어떤데요?”
옆에서 자루를 넓게 벌리고 있던 막둥이가 말을 끼어들었다. 연녹수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막둥이에게 휙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풀은 차가운 겨울 눈과 송장만을 영양분 삼아 자라거든.”
“소, 소, 송장이요?”
생각지도 못한 섬뜩한 대답에 하얗게 질린 막둥이가 울상이 된 반면 유원은 덤덤했다. 송장을 거름 삼아 자란다니, 저승의 영약을 만드는 재료라는 말이 붙을 만했다.
“아무튼 여기까지 따라온 보람이 있구나. 이 산은 혼자 다니기엔 좀 번거로운 곳이거든.”
연녹수는 막둥이가 들고 있던 자루 안에 캐낸 영초를 집어넣었다. 보기보다도 훨씬 묵직한지 두 손으로 자루를 들고도 끙끙거릴 정도였다.
현운산에 들어선 이후로 연녹수는 틈날 때마다 유원을 데리고 이 숲 저 숲 들쑤시며 독과 풀을 채집했다. 팔도에서 견줄 자가 손에 꼽히는 용한 도사라는 말에 걸맞게 그는 박학다식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외양을 갖춘 청년인데 입을 열면 백 년을 산 현인처럼 잡학이 술술 나왔다.
“참, 내가 읽으라고 했던 의방서랑 도감은 다 읽어 보았니?”
“틈틈이 읽긴 했는데, 어려운 글자가 많아서요. 그려진 생김새랑 언문으로 쓰인 이름만 몇 가지 외웠습니다.”
“뭐, 우선은 그 정도만 해도 되었다. 나중에 돌아가거든 천자문부터 빠르게 익혀야겠구나.”
“정말로, 제게 글을 가르쳐 주시려고요?”
“글은 기본이고 의술도 가르쳐 줄 생각인데?”
“예?”
그 말에 유원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자 팔짱을 낀 연녹수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농법용 생약 연구라고 해도 회복과 재생시키는 원리는 비슷하기 마련이잖니. 약재도 잘 알겠다, 의술까지 겸비해 두면 더할 나위 없지.”
“하지만, 의술은 중인들이나 배우는 고급 기술이지 않습니까.”
“잡과 응시를 한다면 좀 번잡해지겠다만, 교양으로 배우는 정도야 아무 상관 없단다.”
단호하기까지 한 대답에 유원은 대꾸할 말을 잃었다. 못 한다고 한들 고집이 꺾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여러 마리가 날아와 머리 위를 맴돌며 깍깍, 울어 댔다. 손청준이 보내는 출발 신호였다.
“아직 정오도 아닌데 벌써 움직인다고?”
예상 시각보다 빠른데. 연녹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더 둘러보고 싶지만 혼자 온 것이 아니니 지체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녹수는 소매에서 부적을 꺼냈다. 그가 축지법을 쓸 것임을 짐작한 유원이 막둥이를 끌어안고 심호흡했다.
머지않아 발아래가 울렁거리더니 야영지가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구릉에 사뿐하게 내려선 연녹수와 다르게 유원은 휘청거리지 않도록 나무를 붙잡아야 했다. 어지럽기는 막둥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멀찍한 구석에서 우웩,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분 무사히 다녀오셨습니까.”
말안장을 재정비하던 손청준이 생긋 웃으며 연녹수와 유원을 반겼다. 이에 연녹수가 오냐, 하며 느긋하게 준비된 말 위로 올라탔다.
“참 나.”
곽현욱이 별꼴을 다 본다며 그를 노려보다 유원을 보곤 헛기침했다. 그저께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이미 해명했지만 딱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도리어 유원에게 입 꾹 다물고 비밀로 할 테니 괘념치 말라는 위안을 하기까지 했다.
나부끼는 깃발 아래로 말에 탄 태백훈의 옆모습이 보였다. 검푸른 철릭과 챙이 넓은 군모는 특별한 예장이 아닌데도 유난히 그의 용모를 돋보이게 하는 듯했다.
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태백훈의 눈길이 먼 곳에 있는 유원을 잠시 향했다. 저도 모르게 움츠린 풀꽃처럼 고개를 숙인 유원이 숨을 집어삼켰다.
* * *
이어지는 사냥은 다소 순탄했다.
식인서는 북도에서도 손꼽히는 유해 요수로 가죽이나 뼈 등은 값어치가 없었다. 그나마 고기는 먹을 만하지만 포획하기 까다로워 굳이 찾아 먹진 않았다. 그럼에도 매년 사냥하는 까닭은 그들의 무시무시한 번식력 때문이었다.
굶주린 식인서 떼를 소탕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북도 요수들은 추위에 강한 대신 불에 약했다. 특히 식인서는 불에서 나는 그을음만 봐도 이리저리 도망칠 만큼 불기운을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음양오행 중에서도 특히 화마에 능통한 도사인 연녹수에게는 가장 손쉬운 요수였다.
횃불을 든 선봉병들이 신호에 맞춰 식인서 떼를 몰았다. 순식간에 땅굴로 몰린 쥐 떼가 찍찍 악다구니를 썼다.
연녹수가 주구를 휘두를 때마다 하얀 두루마기 소매가 날갯짓하는 두루미처럼 펄럭거렸다.
펑, 펑! 동쪽 서쪽 막론하고 불꽃이 회오리쳤다. 새카맣게 그을린 쥐들이 죽기 살기로 사람에게 달라붙었다. 뭔가 묵직하다 싶어 팔 아래를 살펴보니 어느 틈에 식인서 한 마리가 소매를 붙잡고 늘어져 있었다.
“뭐야, 언제 여기에 붙었어?”
연녹수가 짜증스럽게 몸을 흔드는 가운데 앞으로 들이닥친 곽현욱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크게 발을 굴렀다. 퍽! 풍압에 떨어져 나간 식인서가 납작하게 짓이겨졌다.
“그깟 한 마리 옷에 들러붙었다고 뭔 호들갑입니까.”
“호들갑이라니. 그러면 곽가가 나 대신 세탁이라도 해 줄 것이니?”
“어이구, 소인이 어찌 종친 어른의 옷에 손을 댄답니까? 설마 그 대단하디대단한 도술로는 세탁도 못 하시는지요?”
“네놈은 도술이 무슨 잡역꾼들 묘기인 줄 아느냐?”
언성이 높아진 둘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저 두 분은 또 싸우는구만.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에게 적응한 사람들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누군가는 죽은 요수 사체를 회수해 불에 태웠고, 누군가는 가죽을 벗겼다. 유원은 여기저기 퍼질러진 관병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저번에 팔이 부러진 듯하다던 병사는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는지 전보다 동작이 편해 보였다. 이마가 찢어지고 혹이 크게 났던 또 다른 병사도 회복한 듯 멀쩡하게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기 바빴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수레에 탄 저놈은 대체 왜 따라왔는지 알 수 없다며 불만하던 이들조차 어느새 정성스러운 돌봄에 익숙해졌다. 목마르다 하기도 전에 눈치껏 물을 가져다주고, 아픈 곳을 짚어 주지 않아도 알아서 부상 있는지 없는지를 세세하게 살펴봐 주기까지 하니 마치 시중 받는 듯한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 저기, 아기씨. 거시기가 조끔 아픈데 혹시 봐 주실 수 있을지요?”
지나가는 유원을 붙잡은 관병 하나가 부상을 호소했다. 어디가 아픈가 살펴본 유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고, 고간이, 어찌 아프신데요?”
“그저께부터 뻐근하고 근질근질한 게 꼭 벌레 물린 듯한데, 어떻게 방법이…….”
딱!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힘에 관병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큼직한 주먹을 든 곽현욱이 멱살을 잡아 들었다.
“이놈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했냐?”
“아이고, 아닙니다. 대장! 지, 진짜로 가렵단 말입니다. 오줌 누기도 힘들 정도인 걸 어떡합니까요?”
“어허! 그래서 바지라도 훌렁 까서 속살이라도 보일 작정이었더냐?”
관병이 억울하다는 듯 언성을 높이자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다는 듯 도끼눈을 뜬 곽현욱이 윽박질렀다. 번쩍 든 주먹에 관병이 겁에 질려 고개를 확 움츠렸다.
“나리, 그만하세요. 그러다 두 분이 다치면 곤란하잖습니까.”
흠씬 두들겨 팰 기세에 급히 끼어든 유원이 곽현욱을 간신히 뒤로 밀어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닌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곽현욱은 유원이 관병과 살갑게 대화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 불벼락같이 나타나 위협하곤 했다. 마치 관병들이 유원에게 엉큼한 수작이라도 부릴까 경계하는 듯했다.
“증상만 듣자면 아마 그, 그쪽에 염증이 생기면서 가렵고 따갑게 느껴지는 것인 듯합니다. 일단 울금과 생강을 섞은 연고를 좀 드릴게요.”
보따리를 뒤적여 알맞은 연고를 꺼내 내밀자 주춤거리며 서 있던 관병이 감사하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멀어지는 관병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곽현욱이 혀를 차며 유원을 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기씨께선 너무 경계심이 부족하신 듯합니다. 만약 저놈이 따로 봐 달라며 바지라도 벗으면 어쩌려고 그걸 받아 주십니까?”
“그야, 환부를 살피려면 아무래도 벗어야 하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기씨는 그, 그, 임자 계신 몸이잖습니까. 몸,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심이 맞습니다. 안 그래도……!”
유원은 두 눈을 슴벅거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곽현욱은 곤란한 듯 입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크게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그런 일은 아기씨보단 의술을 배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니 저기 한가롭게 꽃구경하는 종친 어른더러 하라고 하십시오.”
“이 곰탱이 같은 놈이 입만 살았구나. 내가 뭐가 한가하단 말이니? 방금도 내 덕에 손가락이나 빨고 있었으면서.”
“옷소매 더러워진다며 멀쩡한 사람 방패 삼으신 분이 할 말은 아니겠습니다.”
재차 불붙은 신경전에 어색하게 웃던 유원은 문득 등에 닿는 시선을 느끼고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관병 대장과 논의 중인 태백훈을 잠시 지켜보던 유원이 목덜미를 문질렀다.
찰나였지만 분명했다. 방금까지 태백훈은 저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뜻하지 않게 시선이 스친 줄 알았는데,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어나니 우연이라고 치부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도통 의중을 알 수도 없고 묻자니 만에 하나 착각이면 어쩌나 싶어 쉽사리 나설 수도 없었다.
“아가, 뭘 그리 생각하니?”
곁으로 다가온 연녹수가 불쑥 고개를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유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래? 정말로?”
재차 되물은 그가 맞은편에 있는 태백훈을 보더니 두 눈을 여우처럼 새치름하게 떴다. 뭔가 재밌는 흥밋거리가 생길 때마다 습관처럼 짓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등에 생겼던 상처는 좀 괜찮아졌니? 어디 한번 봐야겠구나.”
“그러실 필요 없는……!”
말을 맺기도 전에 유원을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긴 연녹수가 등거리 안쪽으로 손을 휙 넣어 더듬더듬 등줄기를 훑어 내렸다. 맨살을 스친 차가운 손끝에 몸이 흠칫 떨렸지만 간지럽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도리어 만지는 듯 시늉만 하는 손길이 의뭉스럽기까지 했다.
“목석같던 양반이 유난도 심하지. 어디 생채기라도 냈다간 불벼락이 떨어지겠구나.”
작게 웃음을 터트린 연녹수가 혀를 찼다. 왜 그러시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리기 바쁜 유원이 힐끔 뒤돌아보자마자 태백훈은 말머리를 휙 돌려 저 멀리 가 버렸다.
방금, 얼핏 보인 표정이 왠지 무시무시했는데. 또 뭘 잘못한 건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제 행동에 문제점이 될 만한 구석은 잡히지 않았다.
* * *
홀로 먼 산을 바라보던 태백훈을 향해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근방에 딱히 더 수상한 동태는 없어 보이는 듯합니다.”
손청준의 보고에 태백훈은 잠자코 깊은숨을 내쉬었다. 뒷짐을 지고 그의 옆자리에 선 손청준도 묵묵히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리 걱정되시면 지금이라도 사람을 붙여 돌려보내시지요.”
“누가 걱정을 해?”
“홍유원 아기씨 말입니다. 지난번부터 계속 신경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경 쓰기는 무슨.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엉뚱한 사고를 터트릴까 하고 지켜본 것이지.”
다소 퉁명스러운 대꾸에 손청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누가 봐도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그것도 상당히 사적인 데다 내밀하게.
방금만 하더라도, 그 부끄러움 잘 타는 곽현욱이 굳이 홍유원의 일에 끼어든 것도 분명히 태백훈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였다. 직접 드러내기는 싫고, 무시하기도 싫으니 밑의 사람을 시켜 간섭한 것이다. 매사 냉정하던 태백훈답지 않은 기행이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늘 곁을 배회 중이니 특별한 일이 생기거든 즉각 연통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생각하시지요.”
손청준이 올린 말에 태백훈은 알겠다는 듯 고요히 고개만 끄덕였다. 먼저 가 있겠다며 뒤로 물러난 손청준의 발소리가 바람 소리에 아득하게 묻힌 뒤에도 태백훈은 설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서리와 눈발 섞인 바람이 우뚝한 코와 입술을 스쳤다. 차가운 한기를 깊이 들이마신 그가 비로소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신발 끝, 바스락 스친 무언가에 눈길이 향했다.
소복한 눈 사이로 볕을 향해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들꽃. 살을 벨 듯한 찬 바람에 꺾일 듯이 흔들리면서도 마치 봄을 맞은 듯이 억척스럽고도 끈질긴 생기였다.
가만히 꽃망울을 바라보던 그는 꽃을 밟지 않도록 옆으로 크게 돌았다. 흡사 꽃이 바스러질세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