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캄캄한 거리 가운데 불빛 환한 색줏집 향래원에서 한바탕 놀음판이 벌어졌다. 색색으로 곱게 차려입은 기생들이 북과 장구를 치며 춤사위를 뽐내는 동안 둘러앉은 이들은 양반이고 중인이고 서로 계급 따지지 않고 형님, 아우 하면서 술잔을 부딪쳤다.
그때, 대문 앞에 걸어 둔 주렴이 차르랑 소리를 냈다. 문지기가 흘끗 살피니 현관에 세 남자가 서 있었다. 분명 출입 금지라 쓴 종이를 붙여 뒀는데. 입맛을 다신 문지기가 다급하게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나리들, 죄송하지만 오늘 밤은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어쩌나. 나도 오늘은 이 집에서 술을 좀 즐겨야겠는데.”
여유롭다 못해 느른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문지기가 슬쩍 상대를 올려다봤다.
얌전한 빛깔의 두루마기지만 화려한 문양을 수놓은 쾌자(快子)에 향낭까지, 모로 봐도 높으신 고관의 행색이었다. 게다가 체고까지 훤칠하니 마주 보고 있기만 했는데도 위압감에 침이 꼴딱 넘어갔다.
외양으로나 생김새로나 큰손임이 분명하건만, 공교롭게도 오늘 밤은 이미 예약 손님으로 만석이었다. 암만 귀빈이라 해도 없는 자리를 낼 수 없으니 정중히 돌려보내려는 그때였다.
“꺽쇠야, 게서 뭣 하는 것이냐.”
현관에서 머무적거리는 문지기에게 다가온 행수(行首)기생이 손님들을 빠르게 훑었다. 개중 가운데에 서 있는 사내와 눈이 마주친 행수의 얼굴에 일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다. 머지않아 행수가 공손히 말을 올렸다.
“죄송하지만 당장 빈방이 없습니다. 동석도 괜찮으신지요.”
“동석도 좋지. 기왕이면 여길 대관했다는 그 도방의 얼굴을 좀 보고 싶네만.”
이미 다 알고 찾아온 모양이로구나. 눈치 빠르게 뒤로 물러난 행수가 꺽쇠에게 말했다.
“이분들은 내가 안으로 모실 것이니 문을 단속하거라.”
“예? 하지만 들일 방이 없을 텐데요.”
“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안팎을 살피고 문을 걸어 잠그게나.”
이에 꺽쇠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행수가 시킨 대로 문밖을 살폈다. 행수는 서둘러 손님들을 이끌고 주점 안쪽으로 안내했다.
술집 곳곳에서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큰 상단 하나가 잔치를 대신해 향래원 하나를 빌려 한껏 유흥을 즐기던 중이었다.
웃통을 드러낸 사내들이 손짓 발짓 섞어 가며 떠들어 대는 만담에 기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런가 하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기생 앞에서 반쯤 벗은 채로 덩실덩실 춤사위를 뽐내는 이도 있었다.
“참나, 저것들은 창피하지도 않나.”
곁눈으로 그들을 살핀 곽현욱이 인상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피식 웃은 손청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러고 놀자며 온 곳인데 창피할 일이 있겠나.”
“아무리 놀자 판이라도 사내씩이나 되어 저리 칠렐레팔렐레하는 꼬라지를 보여야겠는가? 나, 나는, 이런 곳은 딱 질색이네.”
“아하하, 그렇지, 참. 자네 여태 여인 손도 못 잡아 본 동정(童貞)이었던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내, 내가 한 번 눈길만 줘도 여인들이 홀딱 반해 각시 하겠다며 줄을 섰단 말이다!”
“괜찮네, 괜찮아. 여인들 앞에선 숙맥처럼 부끄러움 타던 모습 본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아니, 아니라니까! 형님, 거, 말 좀 거들어 주십시오!”
지목받은 태백훈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러 흘려 넘기는 듯한 태도에 곽현욱이 분한 듯 가슴을 탕탕 쳤다.
그러는 사이에 조용히 길을 밝히던 행수가 이내 발걸음을 멈춰 섰다. 사람이 북적거리던 본채에서 떨어진 별실이었다.
“이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행수가 문을 열며 눈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색색의 장막을 사방에 두른 방 한가운데에 주안상과 늘어진 술병이 보였다. 나리, 소첩이 더 예쁘다고 해 주셔요. 별실 손님에게 엉겨 붙은 기생들이 교태 섞인 아양을 떨었다. 멋쩍게 눈치 보는 곽현욱과 달리 태백훈은 불투명한 장막을 휙 걷고 거침없이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난데없는 외부인의 등장에 당황한 기생들이 저고리를 추스르고 도방의 뒤로 숨었다. 정작 도방은 그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자네가 이화 상단을 이끄는 도방 미현이 맞는가.”
태백훈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현은 대답 없이 불청객처럼 찾아온 태백훈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뒤에 있던 곽현욱이 손청준에게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이보게, 분명 이화의 단주(團主)는 젊은 여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모로 봐도 곱상한 사내놈인 것 같은데.”
“글쎄, 여색 밝히는 여인이란 말은 들어 보긴 했지.”
“뭐, 뭣? 그럼, 정말로 저자가…….”
기함하는 곽현욱을 향해 태백훈이 쉿, 소리를 내며 눈치를 줬다. 어스름한 불빛 사이로 살짝 드러난 얼굴을 본 미현이 싱긋 웃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행차하셨을까요?”
“자네한테 사고 싶은 것이 생겨서 말이네.”
“사고 싶은 물건이라면 낮에 방문하시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으신지요?”
“실은 물건이 아니라, 정보를 사려고 하거든.”
갸름하게 뜬 눈을 한 번 깊게 깜빡거린 미현이 옆에 있던 여인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타고나기를 장사치라 그런지, 돈 되는 손님을 마다할 수가 없구나. 내 다음에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놀아 줄 테니 이만들 쉬러 가겠느냐?”
어르고 달래는 목소리가 퍽 곱고 단아한지라 기생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어여머리를 고치고 옷가지를 챙겼다. 기생들이 방을 나서다 말고 뻣뻣하게 굳은 곽현욱을 보고는 까르르 웃으며 대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멀어지는 기생들을 돌아본 태백훈이 곽현욱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네가 가서 저들과 좀 어울리고 있거라.”
“예? 자, 자, 잠시만요. 제, 제가 어울린다니요. 누, 누구랑요?”
“이 밤에 일부러 색줏집까지 들렀는데 방탕하게 노는 시늉은 해야 할 것 아니더냐.”
“아, 아니! 형님! 어, 어찌 저를 시키세요!”
“방금 네 입으로 눈길만 줘도 여인들이 홀딱 반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점에서 네가 여인들을 보다 잘 구슬려 줄 테니, 믿음직스러울 수밖에.”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진 곽현욱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뱉은 말이 있어 차마 부정도 하지 못하니, 그저 무거운 발걸음으로 행수를 따라 본관으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축 처진 그의 뒷모습을 보며 키들거리던 손청준이 태백훈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저는 이 근처를 감시하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십시오.”
문 너머로 발소리가 멀어졌다. 장막을 사이에 두고 바닥에 늘어지듯 앉아 있던 미현이 입술을 끌어 올렸다.
“도백께서 최근 색줏집을 안방처럼 드나든단 소문에 놀라긴 했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안 그래도 자네를 찾아 색줏집을 다니다 보니 내가 굳이 시간 내서 놀고먹지 않아도 한량이란 소문에 불이 붙더군.”
“하하, 하지만 오늘 그 일을 따지려고 찾아오신 것은 아니신 듯한데. 상석에 모실까요? 아니면 거기서 말을 들으시려는지요?”
“관원으로서 온 것도 아닌 데다 자네가 대관한 별실이니 불청객은 서 있도록 하지.”
“그렇다면 하나 청컨대, 소인이 담배 좀 피워도 되겠습니까? 아리따운 여인들을 내보낸 뒤라 입이 쓸쓸합니다.”
태백훈은 허락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나뒹굴던 담뱃대를 집어 든 미현이 대통에 불을 붙이자 쌉싸름한 냄새를 머금은 연기가 퍼졌다. 양반을 세워 놓고 기다리게 하면서도 성급함이라곤 도통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그래서, 소인에게 정보를 구매하고자 찾아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한낱 상인에게 무슨 정보를 찾으시려는지요?”
“사람 하나를 찾는 중이네.”
“사람?”
“다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태백훈은 품에 넣어 둔 물건을 그의 앞에 던지듯이 건넸다. 보자기로 겹겹이 싼 물건은 담배합이었다. 자개는 갈라지고 옻칠은 벗겨져 고물로도 되팔 수 없는 수준이었다. 비스듬히 틀어진 뚜껑의 잠금쇠를 만지작거리던 미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담배합 자체는 평범하군요. 어디 보자, 잠금쇠 머리가 구렁이와 비슷하나 주둥이에 구슬을 물었으니, 용이 아니라 이무기인 듯한데 소인의 눈이 맞습니까?”
“일맥상통이군.”
“흐응, 확실히 특이하긴 하나, 고작 이 담배합 하나만으로는 소인이 큰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만 뭘 알고 싶으신 것인지요?”
“이 이무기 문양과 관련된 소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전부 다.”
태백훈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미현이 동그랗게 연기를 뿜었다. 시원하게 뻗은 눈매가 흥미진진하다는 듯 호선을 그렸다.
“소인이 워낙 돈을 밝혀 맨입으로는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는데, 뭘 거래하시렵니까? 금품? 아니면 전토?”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줄 생각이 있지.”
“값진 것이라면?”
“작년 말에 원경도 북동부 은맥 유통권 매입장이 열렸는데, 이화 상단 또한 참가했다 들었는데.”
끝없는 호한(沍寒)이라 불리는 원경도에선 개간된 농토가 적은 데다 배추나 무, 토란 같은 곡류가 아닌 채소 정도만 재배할 수 있었다.
납과 은 광맥이 곳곳에 있긴 하나 험준한 산세와 출몰하는 요수들 때문에 채굴하기 힘들었고 그마저도 호족들을 필두로 한 지역 유지(有志)가 전부 다 자산으로 삼아 왔었다.
이를 보다 못한 임금께서 큰 결단을 내리신 끝에 몇 년에 걸쳐 호족들이 수탈하던 전답과 광맥을 압류하니, 현재는 은맥 절반이 국유지로서 원혜부를 통해 관리 중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유통권을 두고 입찰 공고를 올리니 중부를 중심으로 이름난 상단은 죄다 몰려들 정도였다.
“비록 국유 재산에 속한 광맥이라 사익은 적겠지만 절세를 비롯해 국가에서 신분을 보장하는 만큼 탐이 안 날 수가 없겠지. 다만 광산 유통권을 관리하는 관원이 굉장히 꽉 막힌 사람이라 팔도에서 손에 꼽히는 대상(大商) 가문 서 씨의 여식에다 자수성가하여 일궈 낸 상단임에도 입찰을 거부한다니, 참으로 아쉬운 말이지.”
“…….”
서미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로선 불공평한 입찰 거부 사유인 만큼 쉬이 넘기지 못했으리라. 성큼 한발 다가간 태백훈의 눈동자가 잠자코 서미현을 내리훑었다.
분기 없이 귀밑까지 단정하게 차린 모습은 여느 선비들과 다를 바 없으나 자세히 보면 남장(男裝) 티가 났다. 비상한 능력에도 딸이란 이유로 가업을 잇지 못했다고 들었다. 집안과 절연하고 상단을 스스로 설립하는 동안 여인의 몸으로 온갖 무시를 당했을 테지. 그러니 굳이 상투까지 틀어 가며 사내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자네가 내 정보원이 되어 주겠다 약조하면 은맥 유통권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줄 수도 있네. 물론 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품값은 당연히 치를 것이고.”
“소인의 뒷배가 되어 주시겠다는 말입니까?”
“뒷배라고 하려면 양물 달린 것 외에 볼 가치도 없는 양반들을 관직에 올릴 때나 할 말이지 않나? 굳이 따져 보자면 나와 자네의 관계는 합리적인 투자라 봐야겠지.”
그 말에 서미현이 파안대소했다. 한참 깔깔거리며 웃던 그녀가 담배를 한 모금 깊숙이 빨았다가 후우, 시원스레 연기를 뿜었다. 양쪽 눈썹이 부드럽게 축 처졌다.
“건너 듣기로는 사납고 무뚝뚝한 분이라는 말만 자자하던데, 제법 듣기 좋은 농담도 치시는군요. 다시 봤습니다.”
몸을 일으킨 서미현이 태백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살랑거리는 장막을 손에 쥔 그녀가 귀에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으로부터 한 일 년 전에, 외진 산골 주막을 들렀는데, 마침 동석하게 된 상인들이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지요. 그들 말을 들어 보니 여기서 멀지 않은 작은 고을의 한 생원이 백방으로 약을 찾는다지 뭡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 집 장남이 생원시 과거를 보고 온 이후로 미쳐 버렸다더군요. 그런데 그 장남을 두고 도는 말이 있었는데 어떤 방물장수에게 물건을 산 뒤로 그리되었답니다.”
“방물장수?”
“네, 그 방물장수는 색줏집 같은 기방부터 시작해 주점, 심지어 오일장 같은 저자에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물건만 골라서 판다더군요. 이를테면 구운몽의 양소유처럼 여러 미인을 처첩으로 들이게 해 준다는 향낭부터, 열 잔의 술보다도 더 감미롭고 황홀한 느낌을 주는 담배, 흰머리도 다시 검어지는 불로장생의 영약 등등. 양반이고 중인이고 양인이고, 혹해 샀다가 헛것에 시달린 이도 있고, 변사를 당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수상한 자가 버젓하게 돌아다녔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단 건가.”
“직접 봤다는 이는 잘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만 돌고 도니까요. 소인 또한 곡곡을 다니는 동안에도 딱히 그 방물장수와 맞닥트리지는 못했거든요. 만일 그날 주막에 들러 봇짐상들 말을 듣지 않았다면 소인 또한 영영 몰랐겠지요.”
“그래서, 자네가 말하는 괴상한 방물장수와 이무기 문양 간에는 무슨 관련이 있어 이야기를 꺼냈는가?”
진중한 물음에 생긋 웃어 보인 서미현이 담배합을 흔들어 보였다.
“그 도련님께서 방물장수한테 사들인 향낭을 태웠는데, 그 안에서 아무기를 그린 부적 한 장이 나왔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