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설광 (36)화 (36/60)

36화

짚 더미를 벽처럼 둘러싸 그 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유원이 발끝을 까딱거렸다. 새파란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라고는 입에서 가늘게 흩어지는 더운 김뿐이었다.

헛간에 갇힌 첫날 새벽, 장명길이 찾아왔었다.

‘이만하면, 잘못을 인정하시겠지요?’

마치 주인어른을 대리하는 양 묻는 목소리가 거만했다. 유원은 굳게 잠긴 문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그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러실 바엔 관아로 가서 소상히 따져 보자고 하세요.’

‘그리 안 보채도 조만간 관아로 끌고 갈 거요. 그 까불던 종놈은 진즉 볼기를 맞고 입을 다물었으니까.’

막둥이를 때렸단 말에 발끈한 유원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단련된 몸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디 물도 없이 잘 버텨 보시든가. 아예 꼼짝도 못 하게 유원의 양손까지 단단히 결박한 그는 보는 앞에서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갔다.

그로부터 나흘째였다.

동이 트고 사위가 밝아질 때마다 유원은 나갈 방법을 찾고자 골몰했다. 묶인 두 손을 대신해 몸으로 문을 밀쳐도 보고, 작은 틈 사이로 소리도 질러 봤지만 하등 소용이 없었다. 커다란 저택 뒤, 여분으로 지어 둔 헛간 근처에선 그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양손이라도 자유로우면 위로 기어올라 가 볼 텐데, 새끼줄로 단단히 포박된 손은 무슨 짓을 해도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길어진 공복에 배 속에서 나던 소리도 어느덧 잠잠해졌다. 저번에 끼니를 얻어먹지 못했을 때는 막둥이가 가져다준 열매 따위로 허기라도 달랬는데,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니 눈앞도 흐리멍덩해졌다.

“졸려….”

멍하니 졸음을 쫓다가 서둘러 손가락을 깨물었다. 하도 손을 깨물어 대서 손가락마다 잇자국이 무성하다 못해 피딱지가 앉았다. 하지만 잠들면 안 된다는 본능이 앞섰다. 추울 때 밀려드는 잠기운은 저승사자가 넋을 가져가는 신호라고도 하지 않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흘쯤 되니 차라리 장명길에게 일단 굽혔어야 했을까, 싶은 후회도 들었다.

열 살 때였던가, 겁도 없이 막내 아씨를 희롱했단 오인을 사서 마님께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당시 유원은 아씨와 소꿉놀이 중이었고 아씨한테 맞춰 주느라 시키는 대로 각시야, 라고 불렀는데 그걸 둘째 도련님이 고스란히 고자질한 덕이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더니, 첩년 자식이 주제도 모르고!’

노발대발하는 마님 앞에서 유원은 억울한 나머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매달렸다. 막내 아씨가 시켰다고 설명해도 오히려 종아리와 허벅지살이 다 터지도록 맞았다.

그날로 유원은 저택 바깥으로 내쫓겼다. 대감댁은 물론이고 사대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꼴이 보인다면 사지를 분지르겠다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매일 밤낮 빌고 빈 끝에 겨우 본집에 들여보냈건만, 친자식마저 쫓겨난 꼴에 어머니는 망연자실했다. 그 뒤로는 무슨 경우에도 말대꾸하기를 삼갔다. 억울해도 일단은 참고 무시하려 했다.

이번에도 참아야 했을까. 하지만 이 집 어른은 장명길이 아니라 태백훈이었다. 맞절을 나눈 이도 아닌, 일개 남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영감만 돌아오시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리 생각하는 동안 속 쓰림마저 무뎌지고 무릎에 파묻은 머리가 몽롱해졌다. 쿨럭, 쿨럭, 부어오른 목구멍을 타고 기침이 나왔다. 뜨끈하게 열이 오른 눈꺼풀을 멍하니 깜빡거리던 그때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갈퀴나 괭이같이 가늘고 단단한 날붙이로 긁는 듯한 소리였다. 곧이어 헛간 문 아래쪽이 덜컹 흔들리더니 문틈 사이로 불쑥 손 하나가 들어왔다.

“여기, 아, 안에 계, 계세요?”

또래 정도 될 듯한 여자의 목소리. 더듬거리며 앞으로 기어간 유원이 손을 붙잡자 여자가 “어마, 깜짝아!” 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누구….”

갈라진 목소리는 꺼져 가는 촛불처럼 작고 약했다. 머뭇거리던 여자가 대답했다.

“사, 사월이라 합니다.”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이름에 기억을 되짚던 유원은 며칠 전 가락지를 찾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여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늦은 밤에 어쩐 일로 찾아왔을까. 장명길이 이쪽으로는 드나드는 자에게 죗값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용건을 채 묻기도 전에 부스럭부스럭 구긴 천을 펼치는 소리가 나더니 문틈 사이로 표자(瓢子) 모양의 가죽 수통이 들어왔다.

“그, 그냥, 물이에요. 목마르실 것 같아서.”

“…손이 묶여 있어서 마실 수 없어요.”

그러자 사월이 직접 수통을 열어 입구 부분을 문틈 사이로 끼워 주었다. 유원은 필사적으로 문에 달라붙어 입을 대고 쏟아지는 물을 삼켰다.

독을 탔다든가, 불순물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상태가 아니었다. 다행히 물은 아주 멀쩡했다. 오히려 꿀을 약간 섞어 달착지근하면서도 따뜻했다.

“이러면 아까보다는 말씀하시기가 편하시겠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사월이 말을 이었다.

“소인은요, 도련님께 악감정은 품을 생각 없어요. 다만, 도련님께서 소인의 가락지를 훔치셨다면, 부, 부디 어디에 감추셨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구요.”

사월은 쪼그린 몸을 문가에 더욱 가까이 붙였다. 문 너머로 엎드려 비는 듯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제, 정인한테 받은 소중한 물건이에요. 돌아가신 어머님의 물건이라 했고요. 물론 한낱 천것이 가지기엔 턱없이 비싼 물건인 것도 알아요. 그러니까, 돌려주시기만 한다면, 하다못해 어디다 감췄는지, 팔았는지 알려 주시기만 해도, 여기서 나가게 도와드릴 수 있어요.”

혹여 순찰 중인 경비한테 들킬까 봐 벌벌 떨면서도 말을 잇는 사월의 목소리에서 그간의 고뇌가 엿보이는 듯했다.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안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반쯤 넋이 나간 유원에게 더더욱 달콤하게 들렸다. 설령 거짓말로 둘러댄다 해도 사월은 철석같이 믿을 기세였다.

“…정녕 제가 가락지를 가지고 있다면, 진즉 당신한테 돌려줬겠지요. 하지만 그날도 말했듯이 난 가락지를 못 봤어요. 보지도 못했으니 훔친 적은 더더욱 없고요.”

“그, 그렇지만 장명길 나리께선 도련님이 어디다 숨겼을 거라고….”

“거야 그분께선 계속 저를 도둑으로 몰고 계시잖습니까. 다른 사람을 추궁하거나 의심하기보다는 한 명한테 전부 뒤집어씌우는 편이 쉬울 테고요.”

쓴웃음을 삼킨 유원이 말을 덧붙였다.

“행랑채를 들쑤신 도둑은 제가 아니라 장명길 나리일 테니까요.”

“예? 어, 어떻게 그런…!”

“애초에 장명길 나리가 아무도 없던 쪽방을 뒤지시면서 저를 도둑으로 모셨는걸요. 수상한 낌새가 보였다면 집주인께 알리거나, 아니면 포청에 알렸어야 마땅할 텐데요. 예전에야 행랑 권솔이었다 해도 지금은 아닌 사람이 집 안을 뒤진 꼴인데, 당연히 의심되지 않겠어요.”

사월은 도통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비록 양반은 아니라 해도 장명길은 제법 부유한 중인 집안의 차남이었다. 장 씨네 전답은 규모가 컸고 밭을 빌린 소작농만 해도 너덧이었다. 그런 넉넉한 집안의 사내가 좀스럽게 도둑질을 했다니, 여기 있는 행랑채 권솔들에게 들려준다면 아무도 믿지 못할 말이었다.

괜한 헛걸음을 했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근 장명길의 행동 또한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도백 영감과 얼굴을 익힌 사이라지만 주인 없는 집에 무턱대고 들어오질 않나, 마치 포청 대장처럼 범인을 몰지 않나.

“반지를 찾고 싶으시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뭐, 뭔데요?”

“날이 밝거든 포청에 가서 있었던 일을 전부 고발해 주세요. 제가 여기 갇혀 있다는 말도요.”

마른침을 삼킨 사월이 말을 물으려는 순간,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당황한 사월이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수통을 챙겨 허둥지둥 달아났다.

머지않아 헛간 근처에 불빛이 일렁거렸다. 좁은 틈 사이로 하인 한 명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헛간 앞에 멈춰 선 그가 걸려 있던 자물쇠를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덜그럭거리는 문을 보던 유원은 보란 듯이 문을 쾅쾅 두드렸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아우, 씨, 깜짝이야!”

기겁하며 뒤로 물러난 하인이 문을 걷어찼다. 염병할, 밤잠도 없나. 짜증스럽게 불평한 하인은 몸을 돌렸다. 사월이 도망치던 방향과 반대편이었다.

이러면 당장 누가 여기 왔었다는 의심은 하지 않겠지. 한숨 돌린 유원이 엉금엉금 짚 더미로 돌아가 앉았다. 사월이 제 부탁을 들어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외에는 손수 결백을 주장할 길이 없는 탓이었다.

오밤중에 정혼자가 준 가락지 하나 때문에 위협을 무릅쓰고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목마를까 물을 챙겨 준 심성으로 봐선 쉽게 넘기진 않으리라. 당장은 사월을 믿어야 했다.

* * *

수탉이 울면서 동트기를 알렸다. 또 한 번의 아침이었다.

사월이 들렀던 그날 밤 이후로 사흘이 지났지만 포졸들이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제 생각이 틀린 듯했다. 사월은 유원을 믿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날 새벽에는 꿈인지 헛것인지 모를 것을 봤다. 흰 안개 같은 빛무리가 주변을 맴돌 때마다 싱그러운 풀과 꽃 냄새가 풍겼다. 그 순간만큼은 하나도 춥지 않아 저승길 문턱에 다녀온 듯했다. 선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이 이상하리만큼 가뿐했다. 온몸을 누르는 듯하던 오한도 가시고, 기침도 훨씬 잦아들었다.

그날 밤에 사월이 갖다준 꿀물 한 모금이 이렇게까지 도움이 될 줄이야. 불행 중 다행이긴 하나 상황마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유원은 헛간에 홀로 갇혀 있었고, 꽁꽁 묶인 손목으로는 제대로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었다.

저 멀리서 까마귀 소리가 울렸다. 손청준이 데리고 다니는 까마귀인가. 그때, 희미하게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전부, 수색… 확인되었다?”

“예, 물론…. 심지어… 안까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합니다. 곳집… 없고요.”

분명 사람 소리긴 하나, 헛간과 거리가 멀어서인지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눈도 귀도 흐릿한 가운데 목련 냄새만은 선명했다.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태백훈, 영감께서 택사로 돌아오신 것이리라.

엎드린 몸을 굼벵이처럼 비튼 유원이 바동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천근 같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원은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영감, 영감, 살려 주세요.”

끅끅, 앓는 듯한 쇳소리만 새어 나왔다. 유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마구 뒤척였다. 저 기척이 멀어지기 전에 여기에 자신이 있음을 알려야만 했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헛간에서 얼어 죽기만을 기다리게 될 터였다.

유원은 벽에 몸을 기댄 채 굼벵이처럼 비비적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저 두 발로 일어섰을 뿐인데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찼다. 크게 숨을 들이쉰 그는 문을 향해 제 어깨를 들이박았다. 우지끈, 굳게 맞물려 있던 문짝이 작게 흔들렸다. 몸에 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했다.

어깨부터 팔꿈치가 얼얼하고 머리가 울렸지만 유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어깨로 쿵, 쿵, 문을 두드렸다. 제발 알아 달라는 간절한 몸짓에도 바깥에 있던 두 사람의 기척은 가까워질 기미가 없었다.

제발, 제발…. 여기 좀 봐 주세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움켜쥐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으스러지는 듯한 어깨의 통각도, 추위도 점점 희미해졌다.

끼익, 손에 닿았던 문고리가 멀어졌다. 캄캄하던 눈앞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어디서 들고양이가 이리도 구슬피 우는가 하였더니.”

검푸른 옷자락이 흐늘거렸다.

“나한테서 달아났다던 그 어린 도련님이시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