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서신을 들여다보던 태백훈의 낯빛이 음산하게 가라앉았다. 주저하던 보장사가 말문을 열었다.
“그, 혹시 돌아가는 편으로 송달하실 서신은 없으십니까?”
태백훈은 말없이 소매 안에서 은전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서신 하나 배달한 값치고는 많은 수고비에 보장사의 눈이 탐욕스럽게 커졌다. 냉큼 돈을 받아 쥐려는 손을 구길 것처럼 우악스럽게 잡은 그가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 자네는 여기 원혜부 감영관에는 들른 적이 없었네.”
“예?”
“기왕이면 원혜에도 온 적이 없었던 것으로 하면 좋겠군. 그렇지?”
강하지 않은 억양, 부드러운 말씨의 청유였으나 보장사는 감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수조차 없었다. 샐쭉하게 휘어진 두 눈을 마주보기만 해도 온몸의 털이 반대로 곤두서는 듯했다. 젊은 보장사는 그 길로 두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담장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그 뒤를 쫓았다.
손에 쥐고 있던 서신을 구긴 그는 걸음을 돌렸다. 축사 쪽으로 향하는 태백훈 곁을 동행한 황우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되십니까.”
“옥양에서 오는 간찰은 일체 받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들어온 물품이 여럿이라 놓친 듯합니다.”
“오늘 이후로 차사를 통한 연통이 아니라면 전부 돌려보내게.”
“예, 그러겠습니다.”
영 심상찮은 표정에 황우경은 더는 까닭을 묻지 않았다. 슬쩍 보였던 서신의 필체는 분명 숙용 태 씨가 보낸 듯했다. 작년 이맘때에도 도성에서 보장사가 그를 찾아뵈었으나 얼굴조차 대면하지 않았다.
“부윤께선 사무 보실 일이 많으시지 않은가. 가뜩이나 송산 때 일로 밀린 업무가 태산일 테니 이만 가 보시게.”
잠시 혼자 있겠다는 확고한 뜻이었다. 황우경은 망설임 없이 물러났다. 요수 문제로 의논할 이야기가 있었으나 당장 급하진 않았다.
축사 근처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홀로 남은 그는 울타리에 걸쳐 서서 품 안쪽을 뒤적거렸다. 구기듯 쑤셔 넣었던 서신과 목도리가 딸려 나왔다.
문득 후원을 보니 봄나무가 만개했습니다. 오라버니 계신 곳은 여전히 겨울이겠지요. 몸은 평안하십니까. 항상 무탈히 돌아오시기만을 바라고 바랍니다.
돌아오는 삼월 말일이 작은 오라버니 생일이자 기일입니다. 최근 작은 오라버니 꿈을 꿨습니다. 큰 오라버니께서 난주의 몫까지 대신하여 명복을 빌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