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닭 우는 소리가 우렁찼다. 눈곱도 채 못 뗀 행랑 권솔들이 아래채에 집합했다. 너는 아궁이 재를 긁어 세탁방에 올리고, 너는 쌀을 씻어 안쳐 놓거라. 집사에게 아침 몫을 배정받은 하인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니 오경(五更)을 막 지난 식전 무렵이었다.
“씻을 물을 데워 달라고요?”
세숫물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 부엌데기 정애가 유원을 의뭉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전날 갑작스럽게 주인어른의 명으로 사랑방 청지기가 바뀌었다더니, 불쑥 찬간을 찾아온 얼굴은 최근 저택 내 불청객으로서 권솔들 입방아에 오른 소년이었다.
불청객에 대한 말은 익히 들었다. 아랫방 누구는 분 바른 듯 곱상하다고 했고, 누구는 귀신도 고개 저을 흉물이라고 했다. 정애는 가볍게 슥,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좀 마르긴 했어도 단아한 미인이었다. 아마도 흉물이란 혹평이 나온 데에는 저 눈동자 때문인 듯했다. 간혹 짝짝이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있단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문제는 저이가 도백께 시집온 지 열흘도 안 된 새신부란 점이었다. 김수남의 말로는 외당에서 종놈살이를 하게 되었다더니, 곱게 자란 도련님이 뭘 알겠냐며 권솔들끼리 벌써 불만이 많았다.
얌전히 서 있는 유원을 지긋하게 바라보던 정애가 별수 없다는 듯 쟁반에 받친 대야를 내밀었다. 보자기로 덮어 둔 대야에서 쑥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엎지르면 다시 데워야 하니 조심히 들고 가셔야 해요. 그리고 다음에는 사랑채 아궁이 솥에다 물을 끓이시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어차피 밤부터 새벽까진 군불을 때야 하니까요. 아, 그리고 주인마님 조반은 언제 드실지도 꼭 여쭤봐야 해요. 규칙적인 분이시긴 한데 가끔 늦으실 때가 있어서요. 아시겠죠?”
거듭 신신부탁을 들은 끝에 유원은 비로소 부엌 문턱을 나설 수 있었다. 등 뒤로 츳츳, 혀를 차는 소리가 멀어졌다.
볼끼 대신 수건으로 대충 감싼 얼굴에 찬 바람이 따갑게 스쳤다. 간밤에 또 눈이 내려 마당 곳곳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언 땅에서 올라온 찬 기운으로 발끝이 에는 듯했다. 하아, 하고 입김을 분 유원은 서둘러 잰걸음으로 걸었다.
해도 들지 않은 방 안은 여전히 캄캄했다. 마루 앞에 선 유원은 목을 가다듬었다.
“기침, 하셨습니까.”
조심스레 문안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설마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나. 사랑방을 빤히 노려보던 유원의 등 뒤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 찰나였다.
“뭐냐?”
“헉!”
뒷덜미에 닿은 차가운 감촉에 유원이 놀라 뒤로 자빠졌다. 들고 있던 대야가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빙글빙글 굴렁쇠처럼 구르다 엎어졌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유원이 고개를 들자 태백훈이 칼을 겨누고 있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오는 길인지 얼굴이 땀투성이였다. 망건과 상투를 풀고 하나로 대충 묶어 올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모습이 음산하면서도 퍽 아름다웠다.
문득 숨을 들이쉬자 코끝에 흙과 풋내가 뒤섞인 살냄새가 났다. 고약하기보다는 묘하게도 싱그럽게 느껴지는 향기였다. 거기다 목련꽃 냄새까지 더해져 차갑고도 달큼했다.
유원임을 알아본 태백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불쾌감으로 일그러졌다. 썩 달갑지 않은 반응에 마른침을 한 번 삼킨 유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뭐 하는 겁니까.”
“…세숫물을, 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대가 왜?”
“그제, 영감께서, 저더러 사랑채에서 종살이를 하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말에 태백훈이 비로소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제 입으로 말하고도 별 신경도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정말로 종살이를 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다는 듯,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잠자코 유원을 내려다보던 그가 쏟아진 물과 나뒹구는 대야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가 안 통하더니, 쓸모도 없고.”
“소, 송구합니다. 얼른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세숫물이고 뭐고 필요 없습니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길을 거둔 태백훈이 대청에 오르는 대신 그대로 유원을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김수남이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영감. 연무(演武) 마치고 오셨습니까. 목간에 더운물 준비해 뒀습니다.”
목욕 준비를 마쳤다는 말을 전하던 그의 눈이 물에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유원을 잠시 스쳤다. 퍽 당황스러운 듯하던 기색은 얼마 안 가 흐려졌다. 태백훈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편 목욕간으로 걸어갔다.
힘없이 일어난 유원은 텅 빈 대야를 집어 들었다. 유원은 그가 소세는 필요 없다고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무 후였으니 당연히 목욕을 하고 싶었을 터였다. 둘째 도련님만 하더라도 종종 연무 다녀온 길에 늘 멱을 감곤 했었다.
둘째 도련님.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물을 떠올린 탓인지, 젖은 몸이 금세 식으면서 한기가 올라왔다. 바람 없는 담 아래로 피한 그는 흠뻑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한심하고 멍청한 꼴로 보였겠지. 당연하게 대감댁 도련님들처럼 수발들면 되리라 여긴 탓이 컸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쫓겨날 명분을 만들어선 안 된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릎 꿇은 유원을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네 어미는 천한 계집이다. 그러니 너 또한 똑같이 일개 노비 놈이다.’
그리하여 반평생 대감댁 외거 노비로 살아온 덕에 유원은 종살이가 익숙했다. 고된 종살이니 뭐니 겁박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예전 주인이 홍세환이었다면 지금 그를 부릴 주인이 태백훈이란 차이뿐이었다.
궂은일이라 한들 별게 있을까. 옥양 살 적에 이미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땔나무 캐 오기, 경작에 물 길어 오기, 나귀처럼 등짐 나르기 등등. 오히려 쉴 틈 없이 바쁘면 시간이라도 유수처럼 가려니 싶었다.
처음에는 대면조차 꺼리던 김수남은 며칠 사이에 유원을 제 아랫것으로 취급하는데 익숙해졌다. 유원 또한 김수남의 지시를 불만 없이 들었다.
사흘 내리 번을 서라고 해도 번을 섰고, 혼자서 눈을 전부 치워 바깥으로 버리라고 해도 두말없이 수행했다. 아무 쓸모 없는 종놈으로 낙인 찍힐 바에는 조금 힘든 편이 나았다.
반면 태백훈은 유원을 아랫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처럼 여겼다.
첫날 이후로 태백훈은 유원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먼저 말을 여쭤도 대답이 돌아오기는커녕 비아냥거림 한 번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가끔, 태백훈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태백훈은 못 볼 꼴을 본 듯 언짢음이 묻어났지만, 그조차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뿐만인가. 유원의 손을 거쳐 들어간 물건은 번번이 손도 대지 않아 새것처럼 나오곤 했다. 담뱃대, 옷, 신발, 심지어 자리끼 한 대접조차도.
어두운 밤마다 홀로 대청에 앉아 번을 서고 있노라면 자꾸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한참 어릴 적에 어머니 없이 혼자 대감댁 낯선 골방에서 반년을 지냈다. 하인들은 그를 보고도 모른 척했고, 막내 아기씨는 놀이 상대로 여겼다.
도련님들은 유원을 말 못 하는 장난감 정도로 여겼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불쑥 설움 같은 응어리가 목구멍에 맺히는 듯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마당 구석 목석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덜컹, 협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는 소리에 홀로 마당을 쓸던 유원이 문을 쳐다봤다. 들어선 사내의 낯이 익숙했다.
“어, 어?”
유원과 마주친 곽현욱이 당황한 듯 머무적거렸다. 산길에서 본 이후로는 두 번째 대면이었다. 그때는 감사한 손길이라며 넘겼었다. 이제 보니 곽현욱이 왜 그리도 살뜰했는지, 왜 유원을 원혜로 보내길 망설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태백훈이 이리 질색하니 차라리 돌려보내는 쪽이 낫다 여겼겠지. 굳이 함구한 데는 애꿎은 비방이 돌까 싶어 숨긴 것일 터였다.
“저기, 아기씨… 흠, 흠, 강녕하셨습니까?”
먼저 인사를 붙인 곽현욱이 멋쩍게 목을 긁적거렸다. 아기씨, 란 호칭에 쓴 웃음을 삼킨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그날 무척 놀라신 듯하여 걱정했는데 이리 무사하셔서 다행이, 아니, 다행은 아니시겠지만. 그것이, 소인도 그날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사정이….”
“나리 덕분에 별 탈 없이 원혜에 왔으니 다행이지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곽현욱이 그날 얼빠진 채 길바닥에 엎어져 있던 유원을 도와준 은인이었음은 기정사실이었다. 덤덤한 감사 표시에 곽현욱이 크게 헛기침했다.
“흠, 흠, 아무튼!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다른 놈들은 대체 뭘 하는데 안주인 손을 힘들게 한답니까.”
“제가 하겠다 자청했습니다.”
“예? 아니, 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일제히 돌아보자 열린 문지방 너머에 태백훈이 담뱃대를 들고 서 있었다.
“현욱이 넌 거기서 뭘 하는 것이냐.”
냉랭한 눈빛에 곽현욱이 눈을 끔뻑거렸다. 썩 들어오기나 하라며 먼저 방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본 곽현욱이 서둘러 태백훈을 따랐다. 들어가기 전 꾸벅 인사하는 눈짓에 유원도 말없이 눈인사만 나눴다.
이따 나오시면 불개 외투를 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한참 마당을 쓸어내린 지 어언 두 식경 후였다. 볕에 눈이 슬슬 녹을 무렵에 방문을 열고 나온 곽현욱을 발견한 유원이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나리! 말씀은 다 나누셨습니까?”
“아, 어, 예.”
곽현욱은 입맛을 다시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쩐지 태도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저, 소인은 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아기씨, 건강하시고 다, 다음에 뵙지요!”
그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갓을 고쳐 쓰고는 급히 자리를 피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뭐 그리 한가롭게 계십니까?”
뒤를 돌아보자 태백훈이 팔짱을 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상황을 구경이라도 한 듯 여유롭고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
아랫입술을 꾹 깨문 유원은 홱 돌아섰다. 저 표정을 보니 곽현욱이 왜 그리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가 버렸는지 알 만했다. 태백훈에게 전부 이야기를 들었겠지. 이혼하지 않는 대신 일 년간 외당 몸종 노릇을 하는 전제로 사저에 있는 몸이다. 그러니 굳이 상대하지 말라는 언질이라도 했을 게 틀림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먼저 친근하게 말도 걸던 사람이 본체만체하며 가 버리니 섭섭하다면 섭섭했지만, 차라리 그쪽이 속 편했다. 어색하게 상전 대우받는다고 해서 형편이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곽현욱은 태백훈의 아랫사람이니 유원보다는 태백훈의 말을 따르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다 쓴 빗자루를 돌려 두고 나오는데 마당 저편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린 여종 셋이 빨래 더미를 품에 안은 채 쭐레쭐레 담장 옆을 지나고 있었다. 우물이 아직 녹지 않은 탓에 바깥 세답터를 다녀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참, 순자 너 들었어? 아까 오전에 나리 돌아오셨대.”
개중 볼살이 통통하고 빨간 빛이 도는 아이가 발랄하게 말했다. 순자라 불린 여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현욱 나리?”
“아이, 참. 그분 말고! 당연히 청준 나리 말하는 거지.”
청준 나리?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곽현욱 말고 다른 방문객이 있었던가.
“늦단이는 심부름 나오다가 마주쳐서 인사도 여쭤봤대. 어찌나 호들갑이었는지 몰라.”
“아, 부럽다. 나두 나리 얼굴 뵙고 싶어. 생각만 해도 힘이 팍팍 날 텐데.”
여종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쉬자 동기가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콕 찔렀다.
“기지배, 언제는 울 영감 어른 얼굴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더니. 이젠 나리 얼굴이 보약이야?”
“얘는! 보, 보약이라니.”
대꾸한 여종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이어졌다. 서로 투닥거리기 바빠 그들은 마당에 유원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까악, 까악. 마른 감나무에 모여 앉은 까마귀들이 울어 댔다.
“아휴, 저 까마귀들 또 우네. 까치가 울 것이지, 기분 나쁘게.”
괴팍한 새소리가 거슬린다며 여종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닥에 놓인 돌을 집어 든 여종이 수차례 돌팔매질을 하자 새들이 쫓겨나듯 우르르 날아올랐다.
도망가는 새 무리를 향해 콧방귀를 흥 끼던 여종들이 돌아서다 말고 유원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얼음덩이처럼 얼어붙은 그들이 서로 눈짓했다. 그리하여 여종들은 유원을 본체만체하며 쪼르르 행랑채 쪽으로 달음박질쳤다.
홀로 남은 유원은 마당에 서서 감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살얼음 낀 까치밥이 무성히도 매달려 있었다. 그저 먹이 찾아온 새들인데도 불길하다고 저리 몹쓸 놈 취급하며 쫓아내는 것이었다.
원경도에 들어선 이후로 유난히 까마귀 우는 소리가 잦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새들이 해악을 끼친 적은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울음소리니 뭐니 해도, 정말로 까마귀 떼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몰라도 말이다.
한숨 쉬며 돌아서려는 찰나에 문득 깩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어린아이 잔기침하는 듯한 소리에 고목 아래를 살피니 서리 낀 낙엽 사이로 까마귀가 배를 깐 채 누워 있었다. 인기척에 까마귀가 종종거리며 날개를 흔들었으나 공중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자꾸 고꾸라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날개 한쪽이 찢겨 있었다.
“아팠겠다.”
이러니 날갯짓을 해도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여태 제자리를 맴돈 모양이었다. 날개가 있는데 날지 못하는 새라니 참으로 딱한 처지가 아닌가.
다친 까마귀를 보자 이 나무에만 유난히 까마귀 떼가 모여 있던 이유도 이해가 갔다. 동료가 떨어져 있으니 경계하느라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안자 까마귀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머리 위로 까마귀들이 빙글빙글 돌며 울었다. 마치 동료를 해치지 말라며 위협하는 듯이 험악한 기세였다.
“해치는 거 아니야. 금방 돌려보내 줄게.”
허공의 새들을 향해 어르듯이 말한 유원이 안락한 자리를 찾았다. 행여 누군가 보고 흉측하다며 다친 새를 건드릴까 싶어 서둘러 바구니에 넣었다. 지나가다 마주친 행랑아범 김 씨가 의아한 듯 유원을 봤으나 더 물어보려는 눈치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