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예? 기방이요?”
당황한 황우경이 되물었다. 전장에서조차 여색 한번 밝힌 적 없던 이가 기방을 먼저 입에 담은 것이 처음이었다. 태백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만 그렇게 하라는 거네.”
“…차라리 진짜 기방에 출입하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기방을 굳이 입에 올린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새신부를 대면하기도 싫다는 뜻이리라. 황우경은 혼례 날 교지를 읽으며 은밀히 살펴본 새신부 홍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얼굴선이 얇고 부드러워 고운 미색이긴 했어도, 틀림없이 사내아이였다.
태 영감이 여색을 그리 즐기지 않으니, 사실 뒤로는 남색을 하진 않느냐는 망측한 빈정거림이 도는 것은 알고 있었다. 홍세환은 그런 악질적인 소문을 이용해, 대놓고 사내 신부를 보낸 것이었다. 그러면 항간에 떠돌던 남색 소문이 더더욱 퍼질 테고 도성 대사부들은 앉아서 영감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었다.
어명이라 무를 수도 없을 정혼이니 거절하지도 못할 것이다. 어지간히도 태백훈을 얕잡아 보고 벌인 수작이었다. 비단 영감만인가. 하늘 같은 주상 전하마저 능멸하는 작태였다.
“전하께 혼담을 물러 달라 간청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굳이 이런 식으로 영감의 살을 깎아 먹으실 필요가 있습니까. 벌써 나흘째 사저도 아니 들어가시고요.”
“전하의 뜻이었네.”
“뜻이었다 한들 이런 상황을 바라신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이라도 영감께서 금위영으로 돌아간다 하시면 전하께서 두 팔 벌려 환영하실 것을 알면서요.”
“됐네. 전하와 숙원 마마께 갖은 간섭 늘어놓는 꼴을 볼 바에는 여기 틀어박혀 겨울 산이나 보는 게 낫지.”
“하지만….”
“그만, 그만. 자네까지 이럴 건가?”
길어지는 대화에 태백훈이 말을 가로막듯 손을 저어 보였다. 황우경은 한숨 쉬며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도성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당상관 문신들이 태백훈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며 왕을 들들 볶기 바빴다. 그들은 충신이자 일당백이라 칭송받는 태백훈의 입지를 경계했다. 남들은 좌천이라며 꺼려 하는 북도로 귀향한 이후에도 뿌리를 꺾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리하여 나온 계책이 다름 아닌 혼사였다.
유능한 장수가 혼인할 나이가 지나도록 가정을 꾸리지 않은 탓에 혈기를 잠재우지 못하니, 전하께서 손수 정혼자를 골라 누그러트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여 매일 같이 태백훈의 혼사를 두고 상소문이 올라왔다. 적당히 조종할 만한 낮은 가문의 여식을 접붙여 태백훈을 아래로 두려는 속셈이었다.
왕께서 내린 어명은 뜻밖이었고 이례적이었다. 대대로 문신의 주축이자 공신 가문으로 대우받아 온 홍세환 이조 참판과의 혼담이었다.
그 콧대 높은 자도 제 집안이 새 후궁 간택이 아닌, 무관과의 혼맥에 엮일 줄은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본의 아니게 허를 찔린 사대부에게는 꽤 모욕적인 결과였다.
선대의 공적과 왕조 수호라는 명목으로 당상을 제집 안방처럼 주무르려 드는 세력들을 두고 전하께서는 엄히 길들이고자 이리 명을 내린 것이었다. 허나 제아무리 왕께서 의도하셨다 한들 태백훈은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었다. 저들의 무례함에 어명을 거두어 달라 청할 만도 하거늘, 그는 끝내 혼사를 무르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그를 두고 왕의 위세를 뛰어넘으려 든다느니, 왕이 그에게 조종당한다느니 떠들어 댔다. 황우경이 본 바는 정반대였다. 일부러 뒷전으로 물러난 지금에서도 전하께서 바라신다면 순순히 장기짝이 되겠다 하는데, 이를 두고 어찌 충정(忠情)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뭐, 그 덕에 홍 참판께서도 속에 천불이 나지 않겠는가. 이 정도 심술은 부려야지.”
“그 심술이란 것이 잘 통하진 않은 모양이던데요. 그러니 그 어린 도련님께서 버티고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뒷짐 지고 걷던 태백훈이 기가 차다는 듯 실소했다.
“맞아. 어린 도련님께서 꽤나… 맹랑, 하시더군.”
초야 날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늘어졌다. 땀과 눈물에 연지와 분이 반쯤 지워진 얼굴은 보송보송했다. 거기다 그 눈. 정보원에게 건너 들었던 대로 희한한 눈동자였다. 물먹은 이끼 같은 색. 그래서 녹색과 붉은 비단으로 지은 신부복이 요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엎드려 벌벌 떨면서도 옷자락을 움켜잡는 힘이 어찌나 억세던지, 입었던 혼례복 솔기가 터질 정도였다. 아니, 붙잡은 것은 비단 초야 날만이 아니었다. 산길에서 맞닥트렸을 땐 무작정 검을 든 제 앞을 가로막기까지 했다.
곱게 자란 아기 도련님이라 겁이 없는가. 그도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이던가. 미색이야 훌륭했으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예쁘기만 할 뿐, 제 손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한 도련님일 텐데.
조만간 제풀에 지쳐 제 발로 도망갈 터였다. 길어 봤자 열흘. 양반집에서 모자람 없이 큰 도련님께서 푸대접을 감당할 리 없었다. 전하께서 조정을 뜻대로 하실 날까지 기다렸다가,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를 들어 사정파의(事情罷議)를 하면 될 터였다.
길게 숨을 고른 태백훈이 준비된 말 위에 올랐다.
“그럼 나는 기방이나 드나드는 한량 놀음 좀 하겠네. 그동안 잘 부탁하지.”
“이번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날이 좀 풀릴 때가 되었으니, 북강에 식인서(食人鼠) 떼가 설칠 무렵이지. 미리 쫓아낼 겸, 나들이라고 해 둘까.”
나들이라고는 하지만 북강 유역에서 요수 무리를 쫓아내러 간단 말이었다. 특히 식인서는 쥐라는 명칭이 무색하도록 그 크기가 멧돼지와 같고 떼를 지어 민가를 습격해 가축과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유해한 요수였다.
“닷새 정도 걸릴 거네.”
“여기는 신경 쓰지 마시고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말을 마친 황우경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기세 좋게 말고삐를 잡아당긴 태백훈이 박차를 가했다. 수리가 날아간 방향으로 말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 * *
닷새 만에 뒤뜰 창고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행여나 빗자루 하나 못 준다 하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행랑아범은 별말 없이 도구함을 내보여 줬다. 차려입은 행색이 조촐하니 새로 들어온 종놈 정도로 여긴 모양이었다. 덕분에 서고 정리는 한결 수월했다. 빗자루로 먼지와 거미줄을 쓸어 내고 걸쇠 주변에 촛농을 듬뿍 바르자 바람 불 때마다 삐걱거리던 음산한 소음도 더는 나지 않았다.
염옥화가 일러 준 대로 뒤뜰 서고 쪽으로는 지나가는 인기척이 없었다. 나무꾼 밑에 들어간 막둥이 또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노비로 소속되었으니 아마도 행랑채에서 먹고 자게 된 모양이었다. 적어도 밥을 굶을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유원은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 저 해괴한 눈깔 달린 놈과 같이 있으면 재수가 털린다며 무시당하는 게 일상인지라 혼자서 다니는데 도가 텄다. 오히려 저 때문에 엄한 누군가가 욕 듣는 꼴이 더 보기 싫었다. 그러니 막둥이가 바빠 오지 않는 쪽이 도리어 위안되었다.
태백훈이 사저로 돌아오지 않은 지 어느덧 이레째였다. 기방에서 외숙한다는 말이 집 안에 파다했다. 어찌나 새색시가 꼴 보기 싫으면 그러실까. 별채를 지나칠 때면 종들은 들으란 듯이 입방아를 찧었다.
유원은 태백훈의 저의를 확연히 깨달았다. 소문이 돌 것을 알면서도 기방 출입을 티 낼 정도로 유원의 존재가 싫단 뜻이었다. 졸지에 그의 집을 빼앗은 꼴이 되었지만 이제 와서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그에게서 공식적으로 축객령이 떨어지기 전까진 유원도 머무를 명목이 충분했다.
“우욱….”
구석에 박혀 있던 광주리를 열자마자 유원은 기겁하며 코를 막았다. 툭 하고 열린 광주리 안에는 짐승 가죽이 가득했다. 짚 태우는 듯한 매캐한 풀냄새에 가죽 생김새도 질겨 보이는 것이 일개 산짐승이 아니라 요수인 듯했다. 대충 헤아려도 가죽은 총 오십 령(領)이었다. 요수 오십 마리라니, 요수 전문 사냥꾼이라 해도 쉬이 잡기 어려울 숫자였다.
“그럼 여긴 뭐가 들었지?”
이왕 하나 열어 본 김에 나머지 광주리도 확인하자 각각 말린 칡뿌리, 토복령, 쑥 등이 들어 있었다. 이쪽은 아무래도 주로 써먹는 곡식이나 건조채소류가 아니다 보니 일부러 여기 창고로 옮긴 모양이었다. 다행히 통풍이 적고 서늘한 자리라 보관 상태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양달에 짚을 푹신하게 깔고 자루를 늘어놓았다. 이대로 바싹 말려 잘 보관만 한다면 반년도 거뜬할 터였다.
한숨 돌리려 몸을 일으키니 창고 바깥이 어둑어둑했다. 데엥, 멀리서 종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이경(二更)이었다. 어차피 별채로 가더라도 불이 어둡고 바닥이 차기는 마찬가지니 서고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요 대신 깔아 놓을 짚도 넉넉했고 지붕도 멀쩡하니 밤이슬 맞진 않을 터였다.
늦은 저녁으로는 누룽지와 말린 무를 먹었다. 옆에는 밤과 도토리가 바구니 가득했다. 세 시간 전에 막둥이가 주고 간 수확품이었다. 오전에 나무를 캐면서 야금야금 주운 것인데 아기씨 먹으라는 말만 남기고는 쪼르르 도망쳐 버렸다. 조그만 것이 새앙토끼처럼 어찌나 빠른지 붙잡을 새도 없었다.
짚 더미 위에 누운 유원은 이전에 곽현욱에게서 받았던 가죽 외투를 담요 대신 덮었다. 순식간에 몸이 따끈따끈해졌다.
불개 가죽이라고 했던가. 덮고만 있어도 열이 난다니 참으로 신통방통했다. 저기 광주리 안에 있는 가죽 중에도 불개 가죽이 있을까. 약간은 쓴 냄새가 나긴 해도 이 정도 보온이라면 노인들이나 어린아이, 환자들 겨울나기에도 좋을 듯싶었다.
어머니가 추위를 많이 타셨지. 나중에 돌아가면 이 외투는 어머니께 드려야지. 분명 따뜻하다며 좋아하실 터였다.
화로에서 숯 대신 태우는 약초 냄새가 은은했다. 타닥타닥 불티 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몸은 노곤한데 어쩐지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좀 좋아지셨을까.
급하게 원혜로 오게 된 지라 어머니께 이렇다 할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집사에게 부탁해 서신을 보내 두긴 했지만 답을 받으려면 달포는 족히 걸렸다. 그전에 대감께서 보장사를 미리 올려 보냈다면 좋으련만 아직까진 기별도 없었다.
떠나기 전, 홍세환은 제게 직접 약조했다.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어머니를 측방에 들여 극진히 간호해 주겠다고. 비록 대감께서 냉정하시긴 해도 거짓말하실 분은 아니다. 별채 규방 하나를 치우라는 말도 직접 했으니 어머니는 지금쯤 사랑하는 정인 곁에 계실 터였다. 그러니 분명 심병도, 몸 병도 좀 더 편안해졌을 터였다.
유원은 좁은 땅굴에 파고든 토끼처럼 짚 안에 깊숙이 몸을 눕혔다.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이러다 날밤을 새우면 다음 날 고생할 게 뻔했다. 가뜩이나 요 근래 밤잠을 설쳐 잠이 모자랐다.
감은 눈 너머로 담장을 넘는 고양이를 덧그렸다. 어머니가 알려 준 잠이 오는 방법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 웅크린 몸을 한 번 뒤척인 그때였다.
잠귀 사이로 스산한 기척이 느껴졌다. 바람 소리라기에는 움직임이며 발소리가 선명했다. 사저 내 순찰이라면 이미 지나간 뒤였다. 통행도 금지된 이슥한 밤 시간에 후원 쪽, 그것도 창고에 무슨 용건일까. 설마 고양이는 아니겠지. 방금까지 고양이를 삼십 마리 정도 머릿속으로 세긴 했지만 고양이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패물을 노리는 도둑인가.
소리 죽여 몸을 일으킨 유원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스름한 달밤에 흐려진 사위(四圍)뿐이었다. 잘못 들은 걸까.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의아해하던 찰나에 삐걱,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웬 사내가 사당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떡 벌어진 몸 하며 장대한 기골이 마치 산군 같은 사내였다. 손에 든 촛대에서 피어오른 불빛이 일렁거리며 얼굴을 비췄다. 유원은 어렵지 않게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도백이자 가주인 태백훈이었다.
소등 전까지도 주인어른께서 귀가하셨단 말은 듣지 못했으니 이제 막 집 안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헌데 야심한 시각에 어찌하여 현관도 아니고 후원으로 들어온 걸까. 이 집 주인이 들어오겠다는데 문지기가 출입을 막을 리도 없을 터였다.
사당 분합문 안쪽으로 들어선 태백훈이 몸을 숙여 향에 불을 피웠다. 과일과 떡 몇 개를 올린 차례상에 이름도 없는 위패가 놓여 있었다.
서립옥에 서서 잠자코 신주를 내려다보는 태백훈의 옆모습이 묘하게도 쓸쓸하게 보였다. 목련목 뒤에 숨어 잠자코 사내를 지켜보던 유원의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아 앉았다. 까악까악, 메아리치는 까마귀 소리가 선득했다.
“거기 목련 나무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