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처음에 보인 것은 소매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손이었다. 굵고 빼어난 손가락 마디며, 손끝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혼례복이 답답했는지 헐겁게 풀어헤친 옷깃 사이로 다부진 가슴이 드러났다. 분명 마주 앉아 있는데도 훤칠함이 느껴지는 건장하고 단단한 몸이었다.
살짝 위로 시선을 올리자 맵시 좋은 턱과 입술, 유려한 콧볼과 콧대가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얼핏 봐도 빼어난 외모란 것이 느껴지는 하관이었다. 이윽고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유원은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
산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두 눈을 다시 감았다 떠 봐도 앞에 서 있는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때 만난 엽사였다. 발끝이 차가워지며 속이 뒤집힐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을 고르려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째서 저 사람이 여기 있지? 아니, 이유를 따질 필요가 있던가. 신방에 들어온 이가 불청객이 아닌 이상 신원은 단 한 사람을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
원경도 도백, 홍유원의 혼약자. 저 남자가 바로 태백훈이었다.
태백훈은 표정 없는 얼굴로 유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 신부를 마주하는 새신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심한 눈길이었다. 인형, 혹은 그보다도 값어치 없는 일개 폐물 따위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주안상에는 술과 약간의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먹으라고 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예식 용품이었다. 몸을 굽혀 앉은 그가 느긋한 손길로 술병을 집었다. 합환주(合歡酒)였다. 준비된 잔 두 개에 술을 따르는 대신 남자는 병째로 입에 대고 마셨다.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 청주가 방울방울 턱에 고여 젖힌 가슴팍 사이로 뚝뚝 떨어졌다.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낸 남자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제풀에 알아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순진하다 해야 할지, 아니면 고집불통이라 해야 할지.”
영문 모를 말에 유원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만 하는데 눈에 발랐던 풀이 입에도 옮았는지 도무지 입술이 벌어지지 않았다.
남자가 돌연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바로 눈앞을 장악하듯 파고든 시선에 유원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루 종일 이 순간만 기다리셨을 텐데 어찌하여 피하십니까?”
탄식 섞인 웃음을 터트린 태백훈이 술로 재차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아, 그대가 바라던 신랑은 내가 아니었던가요?”
두 눈이 샐쭉 휘어졌다. 날이 선 비웃음은 묘하게도 아름다웠다.
“그대가 낭군이라 주장하던 그자라면, 안타깝게도 이미 저기 성벽 밖 멀리, 기슭에다 내다 버렸습니다.”
“…….”
“며칠 지났으니 살은 들개가 찢어 먹고, 내장과 골수는 독수리가 쪼아 먹었을 겁니다. 생전에는 몹쓸 인간이었어도 굶주린 짐승에게는 나름 쓸모 있었던 셈이지요.”
재밌는 농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태연한 말투였다. 유원은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서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음? 무얼 말입니까?”
“그날은… 경황이 없어 함자조차 묻지 못해, 도백이신 줄 정녕 몰랐습니다. 무례하게 굴려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불현듯 돌아오는 질문이 차가웠다. 달라지는 것이야 많았을 터였다. 그날 남자가 태백훈이었음을 알았더라면 정혼자 되시는 도백에게 감사를 표했을 테고, 홀로 산길을 헤매는 대신 동행을 청했을 것이었다. 이런 전후 사정을 태백훈이 파악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알고도 일부러 피한 것이었다.
혼인을 치르기도 전에 모습을 봤으니 실망할 만도 했다. 새신부로 온 이가 여인이 아닌, 사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몸을 낮춰 바짝 엎드린 유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인이, 많이 미흡하고 부족하여 실망하신 것은 이해합니다.”
“이해한다? 내가 뭘 실망했을 것이라 보시고요?”
“사내, 를… 신부로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 을 테니까….”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유원은 이대로 한 톨만 한 먼지가 되어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자코 마주 앉아 술을 들이켜던 태백훈이 병을 탁 내려놨다. 그는 안주가 담긴 접시로 손을 뻗었다. 손에 들린 것은 샛노란 깨와 콩가루를 입힌 강정이었다.
“내가 어릴 때, 너무 배가 고파 이것을 훔쳐 먹었는데 크게 탈이 났었습니다. 그 뒤로 아무리 굶주려도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기름에 조청 범벅이라 한 입만 베어 물어도 구역질 났거든요.”
“…….”
“그런데 겉보기엔 빛도 곱고 보기에 예쁘니 별별 잔칫날이면 상 위에서 주인인 양 요란스레 굴지 뭡니까. 그래 봤자, 속이 텅 비어 배도 채우지 못할 것인데.”
손에 쥐고 있던 강정이 파삭, 힘없이 으스러졌다. 끈적끈적해진 손가락을 가볍게 튕긴 남자가 말을 이었다.
“사대부 인간들이 딱 이 같은 것들입니다. 저 잘났다 거들먹거리지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저 간교한 혓바닥으로 어심(御心)을 흔들어 대고, 모함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밖에 모르거든요.”
“…….”
“그대 아비처럼 말입니다.”
차가운 눈동자에 유원이 가득 맺혔다. 심드렁하던 얼굴에 경멸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엔, 그 피를 이어받은 그대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왜요, 설마 아니라고 하시려고요? 정말로 남자 몸으로 내게 시집오려 했다는 겁니까?”
태백훈이 웃었다.
“도백의 정실이란 권세가 꽤나 탐이 나셨나 봅니다. 그러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도 마다하고 시키는 대로 신부 단장을 하고선 줄곧 신방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닙니까?”
뼈가 실린 말이었다. 독이 밴 듯 싸늘한 눈이 천천히 유원을 내리훑었다.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한 오싹함에 등줄기가 떨렸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태백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뒷마당에 나귀를 매어 놨습니다. 성문은 세 시진 뒤면 열릴 것이나, 보는 눈이 부끄럽다면 개천을 따라 나가면 될 것입니다.”
융숭하고 따스한 배려라도 베푸는 것처럼 부드럽고 온후한 말투였다. 그러나 남자가 바라는 뜻은 사려 깊은 배려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여기서, 제 발로 나가라는 명령이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그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뒤돌아섰다. 어느 틈에 손이 먼저 나갔다. 옷자락이 붙들린 남자가 고개만을 살짝 돌려 제 발길을 붙잡는 신부를 내려다봤다.
“가, 갈, 수 없습니다. 소, 인은 여기서….”
여기서 일 년은 살아야만 한다. 그리 답해야 할 입술이 차마 언어를 잇지 못하고 작게 달싹거렸다. 어떻게든 그에게 유예를 청해야만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쫓겨난다면, 제게 있는 모든 것이 없어질 터였다.
호원촌 작은 집, 그리고 어머니.
손바닥에서 진땀이 솟았다.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고 장기가 뒤죽박죽 얽히는 것처럼 뱃속이 뭉근히 쓰라렸다. 목구멍에 흙을 쑤셔 넣기라도 한 듯이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럼에도 유원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심정으로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애타게 고개를 저었다.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는, 소리 없는 간청이었다.
말없이 유원을 내려다보던 태백훈이 웃었다. 섬뜩한 조소였다.
“못 나가시겠다 하면 내가 나가겠습니다.”
그가 옷자락을 거칠게 잡아 빼냈다. 그 바람에 홍촛대가 쓰러졌다. 미약하게 방 안을 밝히던 불씨가 꺼지자 차가운 어둠이었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세차게 열렸다. 순식간에 신방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숙직원에 갈 것이니 따라오지 말거라.” 하며 명령하는 목소리가 냉엄했다.
열어 둔 문 사이로 소슬한 겨울바람이 찾아들었다. 유원은 제 두 손을 내려다봤다. 솔기 하나 남은 것이 없어 그저 빈 손바닥에 싸늘한 바람이 내려앉았다. 닭 우는 소리가 세 번 들릴 때까지, 남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저기, 별채 얘기 들었어? 그저께 난리도 아니었다면서?”
“그러니까. 주인마님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나가셨다더라. 그리고 벌써 이틀째 발길도 안 하시고. 오늘도 청사 숙직원에서 주무시겠다 하셨대.”
“그런데도 안 나가고 버틴대? 나 같으면 소박맞은 게 쪽팔려서라도 못 있겠다.”
“집에도 못 갈 판이니까 저러는 거겠지. 듣자 하니 별방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대.”
“맙소사, 그럼 버젓한 도련님도 아닌 거잖아? 대체 무슨 생각이래?”
“양반님들 속을 어찌 알겠어. 우리 주인마님이야 어명이라 정혼자 받은 건데, 눈 뜨고 코 베이고 사기 결혼 당하신 거지! 그나마 어멈이 눈치껏 별채로 들여놔서 망정이지, 저게 지금 안방에 있었어 봐. 어휴, 꼴사나워.”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몸서리친 여자가 흘끔 별채 쪽을 올려다봤다. 시커멓게 마른 고목 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깍깍 우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저 별채는 참 터가 안 좋네. 예전에 저기서 자결한 사람도 있다면서. 못 나간다고 버티고 앉아 있다가 괜히 송장 치르는 거 아닌가 몰라.”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이는 별채 객을 따라왔다던 어린 시동이었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노려보는 눈길에 하인들이 서로 눈짓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지, 진짜 못된 사람들이에요. 누, 누, 누가 뭐라 하든 아기씨는 이제 여기 안주인이신데. 저, 저렇게 무시하다 나중에 버, 벌 받을 거예요.”
군말 쏟아 내는 목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막둥이는 한참 동안 씩씩거리며 화를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속상하고 분했으면 말을 자꾸 더듬으면서도 불만을 멈추지 못했다.
유원은 아까 막둥이가 주워 온 터진 연시 껍질을 벗겼다. 멀쩡한 속살만 막둥이에게 내밀자 투덜거리면서도 아기 새처럼 날름 받아먹었다.
“저들 말이 맞아. 난 도련님도 아기씨도 아니야.”
“그, 그치만, 그래도요. 혼례도 치렀으니 엄연히 이 집안 안주인이시고….”
막둥이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차마 어린아이 앞에서 한숨 쉬긴 싫어 고개를 돌린 유원이 구석을 바라봤다.
색색의 혼례복이 허물처럼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