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따 어멈한테 말해 삯을 빌려올 것이니, 내일 날 밝는 대로 채비하면 될 거야.”
가마며 일꾼들이며, 심지어 최씨 부인마저 변고를 당했으니 막둥이만큼은 제대로 챙겨 주고 싶었다. 수중에 패물이라도 있었다면 여비라도 챙겨 줬을 텐데, 그 흔한 비녀 하나 받아 둔 게 없었다.
“채비, 요?”
“네 일은 끝났으니 옥양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그러자 막둥이가 숟가락을 쥔 채 입술을 오므라트렸다.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이었다. 이내 숟가락을 살그머니 내려 둔 막둥이가 말했다.
“아, 아기씨. 저 안 가면 안 될까요.”
“옥양에? 네 부모님과 형제는?”
“두, 두 분 다 아, 안 계셔요. 형님도 뵌 지 오래구요. 마님께서도 변을 당하셨는데, 부, 분명 주인어른께서 절, 저를, 호되게 매질하시고서 아무 곳에나 팔아 버리실 게 분명해요. 그러니, 호, 혼자 가 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연을 들으니 옥양으로 가기 싫다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안주인 되는 분의 변고를 막지 못하고 홀로 돌아온 사노비를 동정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노비 탓을 하며 큰 벌을 주거나, 섬 같은 데다 팔아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당장 옥양 살 적에도 주인에게 질질 끌려 헐값에 팔리는 노비들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 저 인제부터 밥도 조금만 먹고, 시,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제, 제발 가라고만, 내쫓지만 말아 주세요. 예?”
엎드린 막둥이가 두 손 모아 싹싹 빌며 애원했다. 옹송그린 작은 몸을 내려다보던 유원이 밥상을 그의 머리맡으로 밀며 말했다.
“일단은 밥부터 마저 먹고. 네 거처를 어찌할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그, 그럼, 저는….”
“주인한테 말을 전하지 않으면 막둥이 네가 더 곤란할 거야. 추노로 찍혀 관아로 끌려가기라도 하면 억울하게 죄인이 되잖아.”
처지야 딱하고 측은하나 주인 있는 노비를 마음대로 데리고 있을 순 없었다. 저 어린 것을 물건처럼 여기고 싶지 않지만 실상이었다.
“대신 주인께서 너를 데리고 있기 싫다 하거든 그다음에는 내가 어떻게든 널 여기서 일할 만한 자리를 부탁해 볼게.”
“차, 참말로요?”
발갛게 부어오른 토끼 눈으로 올려다본 막둥이가 물었다. 유원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대감댁에 전보를 보내야 하니 같은 옥양에 편지를 보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유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아기씨는 좋은 분이세요. 정말로 복되고, 복 받으실 거예요.”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지른 막둥이가 헤헤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반쯤 산으로 기울어 있었다. 배부르게 먹은 덕에 식곤증이 왔는지 막둥이는 문가에 웅크리고 쿨쿨 졸고 있었다. 반대편 광창 아래 앉아 온기가 옅어진 볕을 맞던 유원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문전박대를 각오하고 들어온 곳이었다. 더 나아가 운이 나쁘면 객사할 수도 있었다. 그 모든 우려가 그저 걱정이라는 듯 환대받았건만 왜인지 불안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긴 여정에 지친 탓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한숨 돌리던 찰나였다.
“들었어? 아까 영감마님 정혼자랍시고 들어온 사람. 여인이 아니라 치마 두른 사내였다며?”
두런두런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광창 바깥, 별채 뜰 쪽이었다. 다른 쪽이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계춘이가 교대하면서 직접 봤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더라.”
“왜, 왜? 어떻대?”
“풍만한 구석이라곤 도통 없이 삐쩍 말라 볼 구석도 없었다던데. 거기다 머리는 까치집인데 단발(斷髮)에다 가짜 댕기를 달았고, 옷은 다 찢어져서 왔대.”
“세상에, 그게 무슨 꼴이야? 광대도 그런 꼴은 안 하겠다.”
“저들 말로는 오는 길에 도적들한테 변고를 당해서 그렇다던데, 정말 대갓집 사람은 맞나 몰라. 옥양 사대부 집이면 돈도 많을 텐데 그런 집에서 신부 가마를 저렇게 초라하게 보내? 말도 안 돼.”
“애초에 그 혼례란 것도, 주인어른께선 한마디 말도 없으셨지 않아?”
“그게, 작은어멈이 듣기로는 한 달 전엔가 도성에서 사람이 왔었대. 왜, 그때 차사가 왔다 가서 환대 잔치를 열었잖아. 그게 이번 일이었나 보더라고.”
“차사가 오면 뭐가 달라?”
“차사는 임금님이 보낸 사람이잖아. 영문(營門)에서 일하는 석이 말로는 이번 혼례도 임금님께서 내린 명령이라 들었대.”
“그럼 진짜, 영감께서 그 치마 두른 사내를 색시로 맞으신단 말이야?”
“그런가 봐. 아까 김 씨도 점심 한 술 못 뜨고 한숨 푹푹 쉬더라. 자기가 양반님들 모신 햇수만 헤아려도 십 년인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은 처음이라면서.”
“으휴, 신부랍시고 들어온 게 사내라니, 주인어른께서도 참 고단하시겠다.”
거기서 뭣들 하느냐, 하며 호통치는 집사 목소리에 여자들이 흩어졌다. 새소리, 소슬한 바람 소리. 바깥의 갖은소리가 뒤섞여 창 너머로 새어 들어왔다.
유원은 그대로 방석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오한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서늘함에 몸이 덜덜 떨렸다. 두 팔로 몸을 둥글게 감싼 유원은 구석에 웅크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떨리는 손끝을 가만가만 쥐었다 펴길 반복하며 그는 “괜찮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저런 말들도 예상한 반응이지 않은가. 오히려 겉으로라도 환대해 준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적어도 아직은, 쫓겨나진 않았다. 그러면 된 것이었다.
험담이나 욕설이야 무수히 들어온 일이었다. 감히 익숙해졌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런 것 하나로 겁먹고 달아날 수는 없었다. 유원이 홍씨 집안의 양자로서, 홍유원으로서 이곳 원혜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태백훈의 부인으로서 옆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부친이 그에게 목숨값으로 내건 기간은 일 년이었다. 일 년 동안 태백훈 옆에서 자리를 지킨다면, 그간의 빚을 탕감해 줌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면천(免賤) 또한 기회를 만들어 주겠노라 했다. 그러나 만일 일 년 안에 유원이 도망을 가거나, 허튼짓을 해 태백훈으로 하여금 이혼할 명분을 만든다면, 모든 제안은 무효가 될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외딴곳에 팔아 버릴 터였다.
그러니 몸 아픈 어머니의 안위, 그리고 유원의 자유가 일 년을 어떻게 버티냐에 달려 있었다.
드르렁, 코를 골던 막둥이가 옆으로 찰파닥 돌아누웠다. 그리 울고불고할 때는 언제고, 세상모르고 잠든 얼굴이었다. 그래도 이 방에서 한 사람이라도 무상하니 다행인 일이었다.
깊이 잠든 아이의 몸 위에 이불을 끌어와 덮었다. 기울어진 해로부터 흘러나온 어둠이 방 안을 서서히 덮었다.
* * *
스며든 밤바람에 홍촛불이 살랑거렸다. 녹아내린 붉은 촛농이 철 지난 꽃잎처럼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병풍과 휘장으로 가려 둔 문 너머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원경도에서는 임금 다음으로 권세가 높은 도백의 혼삿날이었다. 경사로운 날인 만큼 저택에서는 돼지에 닭과 염소를 여러 마리 잡아다 푸짐하게 축하상을 차렸다. 원혜 시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읍면리 백성이 죄다 모여들어 신랑의 됨됨이를 칭송하고서, 그 대가로 술이며 고기를 입에 넣느라 바빴다.
창문도 없는 방 안에서 유원은 몇 시진째 홀로 앉아 있었다. 길일 꼭두새벽부터 응장성식이니 뭐니 하며 초례 준비를 하느라 내내 시달린 덕에 온몸은 뻐근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수모가 시키는 대로 옷을 걸치고 얼굴은 향분과 연지로 치장했다. 눈꺼풀 사이에는 쌀풀을 발라 둬 대낮 동안 눈 한 번을 뜨지 못했다. 겹겹이 덧입은 혼례복은 쌀가마라도 업은 듯 무거웠고 신발은 폭이 좁고 높아 걷는다기보단 어딘가에 올라탄 것만 같았다. 어지를 앞에 두고 절을 할 때마다 넘어지지 않으려 어찌나 안간힘을 썼는지 아직도 발끝이 얼얼했다.
하도 하품을 한 덕에 눈 사이에 눈물이 고여 말라붙었던 풀기가 녹았다. 유원은 분이 지워지니 함부로 손대지 말라던 수모의 말도 잊고서 눈을 손으로 비볐다. 갑갑하던 눈 사이가 그제야 편안해졌다.
유원은 살금살금 엉덩이를 뒤로 빼고 늘어지듯 앉았다. 등 뒤로 폭삭한 솜이불이 느껴지니 당장이라도 옷을 벗고 편히 눕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혼례가 끝나지 않았다. 새신랑이 신방에 들기 전까지는 제 자유랄 것이 없었다.
유원은 상 위에 장식된 원앙 한 쌍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부지정(夫婦之情), 백년가약(百年佳約).
교지(敎旨)를 쥔 주례사 앞에서 신랑과 맞절을 하는 동안, 유원은 그의 웃음소리 한 번 들은 적 없었다. 같이 서 있는데도 온기는커녕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정녕 산 사람이긴 한가 싶었다. 실은 부친께서 저를 어디다 영영 팔아먹으려고 부린 술수가 아닌가 하는 무시무시한 상상까지 들 지경이었다.
문득 수모가 긴장을 풀어 준답시고 건네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처럼 길한 날에 찾아오는 함박눈은 복눈이라 한답니다. 아무래도 새신부께서 사랑받으면서 사시려나 봐요.’
사랑받는다니. 과연 그 말대로 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방문 앞이 어수선했다.
“아유, 도백 영감 오셨어요! 이제 신부께 가시려고요?”
넉살 섞인 수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창호지 문 앞에 바로 멈췄다. 종이에 비친 그림자를 확인한 유원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드르륵, 방문이 확 열린 것과 동시에 유원은 질끈 눈을 감았다.
사부작 옷깃 스치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감은 두 눈에 어둠이 한 겹 짙어졌다. 풀썩, 주저앉는 새신랑에게서 바깥에서 묻혀 온 겨울 냄새, 그리고 축축한 목련향이 났다.
혼자 방 안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누군가 앞에 있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긴장이 됐다.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이다음은 신랑이 신부의 감겨 있는 눈을 닦아 줄 터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부부가 서로 눈을 마주 보게 되니, 초야의 시작이었다.
유원은 눈을 질끈 감고서 상대가 손을 내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신랑은 유원에게 손을 대지도, 말을 묻지도 않았다. 그저 긴 침묵뿐이었다.
수모가 일전에 맡았던 혼례 중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 했다. 혼삿날 흥에 겨운 신랑이 술을 마다하지 못하여 잔뜩 취해 신부를 두고 곯아떨어진 적이 있다 했다. 신부의 긴장을 풀어 주려 한 우스갯소리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라던가.
하여 술김에 지쳐 잠드시기라도 한 건 아닌지 싶었다. 견디다 못한 유원이 이내 슬그머니 눈을 가늘게 떴다. 하도 감고 있던 탓에 어둠에 익지 않은 눈이 꼭 천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흐리멍덩하던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며, 한 덩어리 같던 명암이 점차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