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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234화 (23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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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선득해지는 기분에 진걸이 한쪽 발을 뒤로 뺐다가 다급하게 당겼다. 이런 열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석주가 얄미웠다. 그가 총의 잠금쇠를 풀어 석주를 겨누었다.

    “죽긴 누가 죽어. 네가 죽겠지. 여기에, 어? 여기에 총알 박혀서.”

    진걸이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툭툭 두드렸다. 전생에 그가 총을 맞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석주가 쏜 총에 허무하게 죽어 버렸던 그때를, 복수도 뭣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 버렸던 그때를 떠올린 진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럼 내가 노잣돈으로 당신 입 속에 아진이 저놈 손가락을 잘라 넣어 줄게.”

    진걸이 석주와 아진의 뒤로 멀찌감치 서 있던 깡패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깡패가 살금살금 아진에게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휙 뒤로 잡아뺐다. 가벼운 몸이 주르륵 빠르게 끌려갔다.

    “형!”

    아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석주가 곧장 뒤를 돌았다. 그리고 깡패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퓩.

    짧은 소음과 함께 석주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진걸이 총을 쏜 거였다. 그러나 그것이 석주의 움직임을 제지하진 못했다. 석주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깡패의 팔꿈치를 쥐고 자신 쪽으로 훅 당겼다. 깡패가 아진의 목을 잡고 늘어지며 버텼다.

    “큭…….”

    기도가 조이는 아픔에 아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것을 본 석주의 안광이 날카로이 번뜩였다. 그가 아진의 목을 쥔 깡패의 손목을 꽈아악 움켜쥐었다. 엄청난 아귀힘이었다.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듯했다.

    “으아악!”

    깡패가 굵직하게 신음하며 아진을 놓쳤다. 석주가 그를 당겨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 뒤통수를 거머쥔 채 그대로 쾅! 그의 얼굴을 주차장 기둥에 내리찍었다.

    “컥…….”

    안면 그대로 벽에 찍힌 깡패가 둔탁하게 신음했다. 일격에 코피가 터졌다. 무시무시한 통각에 놀란 깡패가 몸을 움츠리는데, 석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깡패의 머리채를 쥐고 들어 올려 다시금 쾅! 벽에 처박았다. 희멀겋던 벽 위로 피가 페인트처럼 튀었다.

    “커흑…….”

    깡패의 사지가 축 늘어졌다. 석주가 그를 짐짝처럼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진을 등진 채, 버석하니 굳어 있는 진걸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리를 들었다. 매끈한 구둣발이 미약하게 번쩍였다. 그것은 곧 곤죽이 된 깡패의 광대를 퍼걱 내리찍었다.

    그 후로도 일방적인 폭력이 이어졌다. 석주는 집요하게 깡패의 얼굴만 노렸다. 그것이 관중들이 공포를 가장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감히 아진을 만졌던 손도 잊지 않고 꼼꼼히 밟아 잘근잘근 부러트려 주었다.

    석주는 흡사 악귀 같았다. 그의 발짓마다 튀어 오르는 핏방울하며, 질퍽거리는 소름 끼치는 타격음하며, 그의 얼굴을 온통 뒤덮은 피와 그 피로 시뻘겋게 물든 눈알이 방금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와 다름없었다.

    “미, 미친놈…….”

    진걸의 턱이 부르르 경련했다. 분명 총을 들고 있는 건 전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석주를 죽일 수 있는데도 무서웠다. 아니, 죽일 수 있는 건 맞을까. 머리가 깨지고도, 총에 맞고도 멀쩡한 석주인데. 총 몇 발 더 쏜다고 해서 죽을까. 어쩌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인 게 아닐까. 그런 얼토당토않은 의심까지 됐다.

    다른 조직원들도 버석하니 굳어 있었다. 깡패 짓을 해 오며 온갖 핏빛 광경은 만만찮게 봐 왔는데. 석주가 행하는 폭력은 그저 그런 주먹질이나 발길질과는 전혀 달랐다.

    한동안 깡패를 짓뭉개던 석주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부패한 고깃덩이처럼 늘어진 깡패의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헛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석주는 회칼을 고쳐 쥐었다가 말아 쥐길 반복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슬쩍 아진을 살폈다. 아진은 착하게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폭력에게서 서너 걸음 멀어져 있었다.

    다시금 그를 가리고 선 석주가 칼을 쥔 손으로 피에 축축하게 젖은 앞머리를 대충 쓸어 올렸다. 그 후 특유의 저음으로 나긋이 말했다.

    “나 사람 때리는 거 안 좋아해.”

    방금 사람 하나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서슬 퍼런 칼까지 쥔 채 할 말은 아니다만 진심이었다. 과외 선생님으로서 교복을 입은 아진과 처음 통성명을 했던 날. 아진이 솥뚜껑만 한 제 손을 보며 맞으면 아프겠다고 장난스레 말했었다. 그때 그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나는 사람 안 때려.’

    그건 허투루 한 소리가 아니었다. 아진에게 고하는 각오였고, 다짐이었다.

    현생을 살아오며 때리고 싶은 이들은 물론 죽이고 싶은 이들도 숱하게 만났다. 이를테면 아진에게 못된 짓을 했던 창두나, 철없는 도련님이라며 아진을 무시하는 회사 주주들이나, 아진을 귀찮게 하는 주혁이나. 마음 같아서는 흠씬 두들겨 패다가 목 따로 몸 따로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진의 곁에 있으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흠 하나 있어선 안 됐다. 살인자로, 깡패로 그의 곁에 있을 순 없었다.

    저는 불결하지 않아야 했다. 무고하고, 고결한 아진과 감히 동등하진 않더라도 그의 발아래에 무릎 꿇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살인도, 폭력도, 피도, 욕설도, 하물며 담배도 멀리하며 살았다. 근데. 결국 이 꼴이다. 제 팔자도 참…….

    석주가 후우 길게 숨을 내뿜었다. 오랜만에 담배가 당겼다. 입 안 가득 차는 쌉싸름한 연기가 그리워 소리 없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자꾸 피를 보게 하지 마라, 진걸아.”

    말을 마친 석주가 뒤를 돌았다. 아진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했다. 그의 다친 광대도 치료해야 했고, 다친 마음도 달래 줘야 했다.

    그러나.

    “강 사장. 오랜만이야.”

    어느새 나타난 기헌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아진의 뒤통수에 총구를 대고 있었다. 파리하게 질린 아진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만 떨어 댔다.

    “총 한 방으로는 꿈쩍도 안 하는 그 괴물 같은 몸뚱이는 여전하네, 그래.”

    기헌이 히죽 입꼬리를 째며 웃었다. 그러다 머리를 까딱거리며 떠나자는 몸짓을 했다.

    “풀 회포가 많은데, 이만하고 자리 옮기지. 여기 더 있으면 강 사장한테나 우리한테나 좋을 게 없어.”

    “…….”

    “미리미리 CCTV도 끄고 길도 막아 놓긴 했는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처리할 게 너무 많아져.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전처럼 치우고 숨기고 이런 게 어-마어마하게 어렵단 말이야.”

    기헌이 쯧쯧 혀를 찼다.

    “…….”

    석주는 우뚝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앞에는 기헌의 총, 뒤에는 진걸의 총이 있다. 제가 아무리 날쌔게 움직인대도, 두 자루의 총으로부터 아진을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석주의 뺨이 분노로 푸르르 떨렸다. 그가 억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이미 나를 죽였잖아.”

    “…….”

    “아진이를 죽였잖아.”

    “…….”

    “근데 뭘 더 하고 싶어서 이래.”

    기헌으로 인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했다. 온도가 각기 다른 피가 바닥을 흠뻑 적시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헌데 기헌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는 걸까.

    근본적인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기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분이 덜 풀려서.”

    “뭐?”

    “강 사장도 알잖아. 우리 같은 깡패들한테 그거 말고 명분이 뭐 있나. 화나면 가서 패고, 목 따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

    석주가 으득 어금니를 씹었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기헌은 아주 논리적인 척 말을 하나 정작 내용을 보면 떼를 쓰는 게 태반이다. 그저 자신의 이익만, 감정만 내세우는 게 철없는 아이와 다름이 없었다.

    “칼 버려.”

    기헌이 총구로 아진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석주에게 말했다. 아진의 머리가 맥없이 들썩거렸다. 아진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눈을 부릅뜨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분노와 공포와 허탈함으로 점철된 그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었다.

    “버리라니까. 아니면 아진이 귀부터 날려 줄까? 귀는 병원 가도 못 붙여.”

    기헌의 총구가 아진의 귓등으로 옮겨 갔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을 본 석주가 경련할 정도로 힘껏 말아 쥐고 있던 칼을 떨어트렸다. 철그렁. 칼이 매끈한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깡패들이 석주를 덮쳤다. 팔을 잡고, 어깨를 내리누르는 손아귀들이 꼭 지옥 불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석주는 반항 없이 무릎을 꿇으며 짓눌려 주었다.

    “형…….”

    아진이 턱을 덜덜 떨며 석주를 불렀다. 석주가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때. 어느새 다가온 진걸이 석주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얼굴을 들게 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아진을 보며 씨익 웃는 것이다. 아진이 그를 힘껏 노려봤다.

    “하지 마.”

    강석주한테 손대지 마.

    진걸은 아진의 푸르스름한 눈동자에서 쏟아지는 원망을 한껏 즐기며, 재킷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입으로 주사기 캡을 벗긴 그가 길고 날카로운 바늘을 석주의 목에 쑤셔 넣었다. 정체 모를 약물이 석주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석주의 눈꺼풀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진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는데. 기헌이 텁텁한 냄새가 나는 손바닥으로 아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손 떼.”

    석주가 낮게 으르댔다. 날카로이 벼려진 눈동자에 살의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 진걸이 헛웃음을 흘렸다.

    “소름 끼치는 새끼야, 하여튼…….”

    약을 맞고도 꿈쩍 않는 석주가 신기하다 못해 두려웠다. 진걸이 깡패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깡패가 또 다른 주사기를 내밀었다. 진걸은 그것을 곧장 석주의 목에 내리꽂았다.

    그제야 석주의 눈꺼풀이 가물가물하게 풀어졌다. 늘 또렷하던 검은 눈동자가 흐려지고, 손끝도 축 늘어졌다. 아진의 눈에 걱정과 염려가 차올랐다. 기헌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껏 발버둥 쳤으나 온갖 것에 취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깡패들이 석주를 질질 차로 끌고 갔다. 마치 짐짝처럼. 그가 끌려간 길을 따라 피가 줄줄이 이어졌다. 맥없이 펴진 그의 사지가 도무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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