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엄마.”
“너 엄마를 왜 이렇게 괴롭혀! 그냥 석주 만나. 그래, 백번 양보해서 석주 걔가 뭘 잘못했을 순 있어. 근데 그게 뭐. 그게 그렇게 용서 못 할 일이니? 걔가 잘못해 봐야 사사로울 게 뻔한-”
“그런 거 아니야!”
아진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난 그가 악을 지르기 시작했다. 선화를 향해 지르는 고함이 아니라, 제게 그리고 세상에게, 또 제 삶을 이따위로 창조한 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
“얼마나 무서워했는데!”
“…….”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무슨 짓까지 했는데!”
“…….”
“왜 내가 잘못했대! 왜 나더러 용서하래!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평소보다 검은 아진의 청색 눈동자 위로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억울했다. 서럽고,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목이 옥죄는 갑갑함에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눈치 없이 치미는 열기에 눈앞이 다 시뻘게졌다.
그가 제자리에서 쿵쿵 발을 굴렀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나 무서워! 너무 무서워! 또 아플까 봐 무서워 죽겠어! 이런 거, 손바닥 찢어지고 머리 깨진 거?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내가 당한 거에 비하면, 내가 쏟은 피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진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있었던 일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했다.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도 잊지 못할 터였다.
그 덕에 저는 다시 태어났음에도 깨져 있다. 온전하지 못했다.
함부로 짓밟히던 몸뚱이. 맞아서 터진 입술. 울음으로 불모지처럼 갈라진 목구멍. 흉하게 일그러진 발목. 그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 제가 제 손으로 그었던 손목.
그리고 먼지 구덩이를 나뒹굴던 제 손가락. 가슴을 꿰뚫은 총알. 찢어진 피부, 터진 살, 갈라진 근육. 바닥 위로 웅덩이처럼 퍼져 나가던 피.
시시각각 다가오던 죽음. 항상 제 주위를 배회하던 죽음. 그 언젠가는 해방처럼 느껴졌다가, 또 언젠가는 지옥처럼 느껴지던 죽음.
닿지 못한 마음. 맞물리지 못한 감정. 무시당했다가,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절절한 사랑.
그렇게 지독하게 날 괴롭히더니, 나보다 먼저 죽어 버린 그 사랑.
아진이 으드득 이를 짓씹었다. 거칠게 울분을 토해 냈더니 갑자기 뭐가 툭 하고 끊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눈앞이 핑- 돌았다. 시야가 까맣게 죽었다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몸이 휘청거렸다. 아진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꽉 막힌 호흡을 내쉬려 애썼다.
이상함을 느낀 선화가 몸을 일으키는데. 아진이 나직이 그녀를 불렀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아진아?”
“근데 강석주랑 있으며 더 힘들 거야.”
그러니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아진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팔을 들고 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어쩜 이 비루한 몸뚱이는 서 있는 것도 힘드네,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콧잔등이 뜨끈해진다 싶더니 뭐가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진이 무심코 턱 아래로 손을 받치는데. 시야가 옆으로 기울었다.
털썩.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침대 뒤로 넘어가서 선화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높다란 천장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진이 느리게 눈을 끔뻑이며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아진아!”
기겁한 선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닥탁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몸을 안아 왔다. 작고 따듯한 손이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문질러 댔다. 줄줄 쏟아지는 코피에 선화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어떡해, 어떡해. 아진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욕심부려서 미안해.”
“…….”
“미안해. 미안해, 우리 아들.”
아진이 설핏 미간을 구겼다. 선화가 사과할 건 없는데. 제가 이 꼴로 태어난 게, 전생을 기억하는 게 그녀의 잘못도 아니고. 사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잘 수 있으려나. 기대가 됐다.
* * *
늦은 밤. 석주는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마우스를 딸깍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긴 했으나 그 밖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후…….”
요즘,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도 곤혹스럽다는 걸 알아 가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자질구레한 상념들이 가득 차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몇 없었다.
아, 그 자질구레한 상념에 아진이 포함된 건 아니다. 아진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해도 항상 머리에, 시야에 들어와 있다. 때로는 상상으로 때로는 환상으로. 실체가 아닌 그와 함께하는 데에 적응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자질구레한 상념이라는 건 후회나, 원망이나, 만약과 같은. 값어치가 되지 않는 하찮은 것들을 말한다.
그것들은 저를 좀먹는다. 가끔은 죽고 싶게 만들고, 또 가끔은 못된 짓을 하고 싶게 만든다.
거기에 매몰되어 봐야 지금 이 삶에, 상황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아…….”
모니터를 가득 채운 활자를 보던 석주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며칠 자지 못했더니 눈알이 지끈거렸다.
오랜만이었다. 불면에 시달리는 건. 아진을 만난 이후 잠을 자지 못한 날이 없었는데. 일이 바빠서, 혹은 아진의 시중을 드느라 자지 못한 적은 있다만 그것은 불면과 타격감이 전혀 달랐다.
지금은 누워도 잘 수가 없다. 너무 더워서, 혹은 너무 추워서와 같은 1차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진의 부재 때문이지. 그 부재를 메꿀 수가 없어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아진이 없는 한은 황량하고 아득한 검은 우주에 나동그라진 것과 같았다. 아무리 사지를 퍼덕거리고, 악을 써 봐야 종착지가 없었다.
석주가 크게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는데. 책상 한쪽에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보는 순간 고민이랄 것 없이 곧장 손이 뻗어 나갔다.
“예, 회장님.”
선화였다. 석주의 등이 꼿꼿이 섰다.
-석주야. 미안하다. 늦은 시간에…….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석주의 미간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그리고 1분 남짓 되는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재킷을 챙긴 그가 어두운 회사를 뛰쳐나갔다.
-아진이가…… 많이 아파. 많이 아픈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석주 네가 좀…… 와 주면 안 될까?
아진의 방은 어둑했다. 밝기를 낮추어 둔 조명만이 은은히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석주가 넥타이를 끌어 내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재킷은 벗어서 소파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아진과 조우했다.
아진은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희게 질린 피부와 마른 입술, 식은땀이 주렁주렁 맺힌 이마, 색색 가쁘게 내쉬는 호흡 같은 게 그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다 손등에 링거는 왜 꽂고 있는 건지, 눈두덩에 붙은 밴드는 또 뭔지.
“하…….”
석주가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침대 곁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았다.
아진이 잘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해맑고 팔자 좋아 보이는 겉과 달리 잔잔한 불행이 많은 삶이라서. 근데 이렇게 아파서, 다쳐서 누워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나보단 잘 살 줄 알았지.”
그래서 놓아줬는데. 내 곁에 있는 게 더 괴롭고, 더 아파 보여서 떠나보냈는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마른세수를 한 석주가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땀에 젖은 아진의 앞머리를 크게 쓸어 넘겼다.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제겐 반갑고 아진에겐 괴로운 열기였다.
석주가 차가운 손바닥으로 부지런히 아진의 열기를 훔쳤다. 이마, 뺨, 목덜미를 매만지고 있으니 아진의 숨결이 한결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석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뿌듯했다. 제가 아진에게 필요한 존재 같아서.
한참 아진을 매만지던 석주가 천천히 손을 물렸다. 그때, 아진이 덥석 손을 잡아 왔다. 석주가 우뚝 굳었다. 그가 정신을 차릴 줄은 몰랐던지라. 긴장을 풀고 있던 근육들이 확 움츠러들었다.
아진의 미간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그러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열감에 젖어 혼탁한 눈동자가 석주를 뿌옇게 응시했다.
석주가 숨을 거꾸로 삼켰다. 싫어하려나. 싫어하겠지. 어디 감히 이곳에 발을 디뎠나, 염치도 없이 얼굴을 들이미는 거냐, 쫓아내면 어쩌지, 지레 겁을 집어먹는데.
아진이 가냘프게 그를 불렀다.
“형…….”
“…….”
“나 너무 무서워…….”
“…….”
“나 좀…… 안아 줘…….”
아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것이 눈꼬리를 타고 힘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석주의 숨이 우뚝 멈췄다.
아진은 무어라 더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살짝 벌어진 잇새로 흘러나오는 숨결이 뜨거웠다. 그 숨결에 맞춰 석주의 가슴팍이 크게 들썩거렸다.
“…….”
그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망설이는 거였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건 간호를 위해서였다. 물론 오랜만에 아진을 볼 수 있다는 사심도 조금 있긴 했다. 그러나 그를 안거나 그의 곁에 누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게 어떻게 간호인가. 욕심이지. 물론, 체온이 유난스러운 저와 아진에게는 서로의 온기가 간호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 모르겠다.
벌떡 일어난 석주가 침대로 올라갔다. 아진이 깰까, 조심하며 그의 곁에 몸을 뉘었다. 그 후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토해 냈다. 행동이 더디고 느렸다. 이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아진이 싫어할 짓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그랬다.
그래 놓고도 꾸역꾸역 누웠어.
아진이 곁에.
치졸한 욕심을 못 참아서 또.
“미친놈…….”
석주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자조하는데. 툭, 뜨끈한 온기가 팔뚝에 닿아 왔다. 아진이었다. 허리를 둥글게 만 그가 석주의 팔뚝에 이마를 묻고 있었다. 알고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서늘한 체온을 찾아 무심코 움직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