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215화 (21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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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장엔 새하얀 운동화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운동화는 요즘 것이 아님에도 새것 같았다. 아진이 몇 번 신지 않았던 것이라 그랬다. 그래도 아진의 것이라는 티가 났다. 한쪽 운동화 뒤꿈치가 유달리 닳아 있었으니까.

    이것은 수십 년 전, 석주의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날. 그가 선물로 주었던 그 운동화였다.

    “…….”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아진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구둣발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너무 파렴치한 같아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진은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 두고 발을 내디뎠다.

    예상했던 대로, 집은 그대로였다. 거실도 부엌도 아진의 기억과 똑같았다. 다만 오래된 시간 탓에 찬장의 이음새가 뒤틀리고, 마루가 심하게 삐걱거리고, 벽지도 누렇게 변색되거나 일어나 있었다. 그럼 좀 뜯어고칠 만도 한데. 석주는 이 환경 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었던 건지,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 한해서 여기저기를 손본 것 같았다.

    또, 가구나 잡다한 물건들 위로 먼지가 없었다. 석주가 주기적으로 이곳에 방문했다는 뜻이었다. 예상하는 바로는, 그가 자처하던 그 수많은 야근 후에 이곳에 왔던 게 아닌가 싶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 아파하는 집을 혼자 돌봤겠지.

    거실을 둘러보던 아진의 시야에 전화기 하나가 들어왔다. 그 언젠가 벽에 붙어 앉아 석주와 통화를 했던 그 전화기였다.

    -이만 끊을게. 잘 자.

    ‘아니, 어, 형은, 형은 안 자요?’

    -……나야 잘 시간 되려면 멀었지.

    ‘그 시간이 몇 시인데요?’

    -음……. 새벽 한두 시쯤. 아니면 서너 시쯤.

    ‘그게 뭐야.’

    -그냥 넘어가 주라. 나는 여전해.

    좋지 못한 음질 탓에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흘러오던 낮은 목소리가 어떠했는지, 얼마나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수줍어했던 제 기분이 어떠했었는지도.

    아진이 전화기로 다가갔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어 귀로 가져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기가 고장이 난 건지, 아니면 전화선이 없는 건진 알 수 없었다.

    아진이 묵직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쉬웠다. 이 집은 그때의 그 집과 같은데, ‘여전’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체감할 수 있어서.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도 전과 같았다. 아진은 매일 밤 외로움을 삼키던 침대를 잠시 보다,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크고 작은 액자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다.

    꽃님의 영정 사진과, 석주의 집에서 태회파 조직원들과 함께 찍었던 단체 사진과, 몇 시간 전 석주의 지갑에서 봤던 그와 아진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건 둔 기억이 없는데…….”

    아진이 마지막 액자를 들어 올렸다. 사진은 석주의 지갑에 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멀쩡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아왔던 날. 석주가 여러 장을 뽑았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개중 하나겠지. 어쩌면 석주는 다른 사진을 더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쓸데없이 보기 좋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두 사람을 빤히 보던 아진이 이번엔 단체 사진을 들었다. 그곳엔 저와 석주를 비롯해 명진과 꽃님, 덕재와 순철 그리고 진걸까지 있었다.

    아진의 입이 뻐끔 벌어졌다.

    다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인데. 잊어 본 적도 없는 얼굴인데. 죽었던 그 시점에 뚝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 제 기억상으로는 1년도 채 안 된 나날인데. 왜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진이 코로 한숨을 내쉬며 액자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서랍장 옆에 뒤집혀 세워진 액자를 발견했다. 진열된 액자와 달리 검은색이었고, 그 사진이 제법 컸다. 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건 본 적도 집에 둔 적도 없는데.

    그가 한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뒤집어 보는 순간, 불덩이라도 손에 쥔 것처럼 던지듯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영정 사진이었다. 저와 석주의 영정 사진.

    사진은 흑백이었고, 흐렸다. 그래서 꼭 귀신 같았다.

    “아…….”

    아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영정 사진은 석주가 갖다 둔 게 아닐 것이다. 아무리 미쳤기로서니 본인의 영정 사진을 두었겠나. 아마 석주가 죽고, 이 집을 지켜 오던 명진과 태회파 조직원들이 갖다 둔 것이겠지. 그러나 석주는 이것을 여기 두었으면 안 됐다. 이 집에 두었으면 안 됐다.

    아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액자가 세워진 찬장과 부딪쳤다. 헐겁게 서 있던 액자들이 와르르 아래로 쏟아졌다. 챙그랑, 챙그랑. 유리가 깨지고, 사진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소리에 아진이 귀를 틀어막으며 목을 움츠렸다.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본인의 죽음을 인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죽은 후에 다시 체감하는 이는 더더욱 없을 것이고,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맞닥트리는 일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근데 지금. 아진은 본인의 죽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꼴로 죽었는지, 숨결을 타고 혼이 날아가는 느낌이 어떠했는지, 몸에서 빠져나가는 피가 얼마나 뜨거웠고, 그 뜨겁던 온도가 얼마나 빠르게 식어 갔는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었던 손목이 따끔거렸다. 잘렸던 손가락은 지끈거렸고, 총알이 박혔던 가슴팍은 욱신거렸다. 왼쪽 무릎과 발목도 아팠다.

    몸에 오한이 든다 싶더니 경련이 일었다. 앙다문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유 모를 두통이 올라왔다. 사방에 두껍게 쌓인 쿰쿰한 시간 냄새에 속이 메슥거렸다. 누가 관자놀이 위로 탕탕 못을 박는 것 같았다.

    “욱…….”

    구역질이 솟구쳤다. 눈알 위로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아진은 입을 가린 채 역류하는 공포를 꾸역꾸역 눌러 내렸다. 그러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자신의 영정 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

    사진 속의 아진은 등신같이 웃고 있었다. 석주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떼어 온 얼굴이라 그랬다. 고운 두루마기로 엉거주춤하게 가리고 있지만, 안에는 낡은 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덥수룩한 앞머리는 눈을 죄 가릴 만큼 내리고 있는 꼴이 그렇게 추잡하고 볼품없을 수가 없었다.

    “씨발…….”

    아진이 영정 사진을 주워 벽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나 나무로 된 액자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아진이 나동그라진 액자를 다시 잡아 쾅쾅 바닥에 내리쳤다. 오래되어 삭은 액자 틀이 부서지고 으스러졌다.

    그것이 왜 아무 잘못 없는 나를 괴롭히냐며 성이라도 내듯, 아진의 손바닥을 할퀴고 꿰뚫었다. 그러나 아진은 눈을 부릅뜬 채 액자를 엉망으로 깨부수었다. 그로 모자라 사진도 북북 찢어 버렸다.

    “씨발, 씨발…….”

    아진이 찢어진 자신의 얼굴을 힘껏 노려봤다. 그 위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죽어 버린 얼굴이 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울렁거리던 속이 한결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아진이 손가락 끝에 아롱아롱 매달린 피를 대충 털어 냈다. 그 후 휙 뒤를 돌았다.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와서 기분만 역해졌다. 고통과 우울이 몸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피부를 꼬집고, 눈알 위로 바람을 불며 성가시게 굴었다. 전생에 숱하게 경험했던 성가심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년간 시달려야 할 성가심이었다.

    짜증이 났다. 이게 다 석주 때문이다.

    석주는 무슨 마음으로 이 집을 샀을까. 이곳으로 주소를 옮기고, 낡은 집을 쓸고 닦고, 여기저기 케케묵어 있는 제 흔적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니, 궁금하지 않다. 알아서 뭐 하나. 이제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인데. 이 말도 안 되는 인연을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주먹을 말아쥔 아진이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할 때였다.

    철컥. 현관문의 문고리가 돌아갔다. 끼이이- 하며 문이 열리더니.

    “……아진아.”

    머리칼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석주가 나타났다.

    석주는 아진의 얼굴을 보고 또 봤다. 그러다 안심이라는 듯 푹,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아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고 싶었다. 잘못은 석주가 했는데, 나쁜 사람은 석주인데 왜 제가 도망쳐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피하고 싶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석주가 ‘그’ 석주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진을 알았을까. 석주가 문틀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것처럼.

    그가 반대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웬일로 재킷 없는 셔츠 차림이었다. 넥타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대차게 뜀박질을 하고 왔는지, 헐떡거리며 가쁘게 호흡하고 있었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전화 좀 받지. 받아 주지.”

    “…….”

    “걱정했잖아.”

    석주가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다 고개를 내젓더니 말을 주워 담았다.

    “아니, 아니야.”

    “…….”

    “미안해. 여기까지 오게 해서.”

    “…….”

    “사진은……. 그러니까, 사진은…….”

    석주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잘근거리고,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레스토랑 의자 아래에 떨어진 낡은 사진 한 장을 본 후, 온 사방을 뛰어다녔다. 선화의 도움으로 CCTV도 확인하며 아진을 찾아다녔는데 쉽지 않았다. 아진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거는데.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택시에서 카드를 결제했다는 메시지였고, 그 택시의 동선을 추적했다.

    그리고 아진의 목적지를 듣는 순간, 석주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지금 이 상황은 석주에게도 사고처럼 급작스럽고 재해처럼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다른 대책이 있진 않았을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우리가 행복의 절정에 있던 때에 나락을 경험하고 싶진 않았단 말이다.

    석주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데. 아진이 그를 힘껏 노려봤다. 그의 마른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미친 새끼.”

    적나라한 증오에 석주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