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202화 (202/261)

202

“형. 석주 형! 더, 더 안 들어와, 안 돼, 흐악, 죽을 것…….”

“…….”

“형, 아흑! 제발, 너무 깊…….”

아진은 무서웠다. 처음엔 몸이 어떻게 될까 봐, 켜켜이 쌓이는 쾌감이,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무서웠는데. 공포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석주의 얼굴이 뿌옇게 뭉개졌다. 그와 동시에 온갖 잔상들이 몸 여기저기에, 목덜미나 눈가, 뺨이나 턱 아래, 또 팔꿈치 같은 곳에 들쥐처럼 들러붙었다.

얄궂은 쾌락. 안개에 둘러싸인 듯 탁한 눈앞. 계속해서 겹치는 눈물. 지독한 열기. 틈 없이 몸을 붙이고 있으나 단절된 소통. 손목을 움켜쥔 아귀힘. 결박된 몸.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짓눌림.

갑자기 몸이 차가워졌다. 언제 부글부글 끓었냐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했다. 마치 전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차가운 피가 전신을 느리게 감돌았다. 겨울철 칼바람 같은 한기가 스몄다.

경련하던 아진의 눈꺼풀이 우뚝 굳었다. 그의 군청색 눈동자가 인형의 눈알처럼 딱딱해졌다.

머릿속에서 핑-하고 무언가가 끊겼다. 묵직하게 매달려 있던 게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꽉 닫혀 있던 게 열린 것 같기도 했다.

아진은 침대에 누운 채로 아득한 어둠 속으로 훅 곤두박질쳤다.

‘사장님, 안 돼요. 사장님, 아파요. 그만해 주세요. 제발요. 사장님, 사장님…….’

‘사장……님……. 윽, 제발…….’

‘싫어! 하지 마! 씨발! 아아악! 하지 마-아!’

‘아파요, 사장님……. 우흐윽, 아파요…….’

‘제가…… 안 그랬어요. 흐으, 제가 안 했어요…….’

끝내는 떠올라 버렸다. 홉뜨인 아진의 눈동자 위로 눈물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알이 굵은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장님, 사장님…….’

‘사장님, 그러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지 마세요. 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습하다 못해 물기가 철철 넘치던 목소리는 조금씩 건조해졌다. 그러다 종국엔 다 부스러지고 갈라져서 분노만 남았다.

‘사장님이 미워요.’

‘사장님은 거짓말쟁이야.’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끔찍하게 싫어. 저는 다시 태어나도 사장님을 미워할 거예요. 계속 미워할 거야.’

아진이 끅끅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기도가 꽉 막혔다. 꼭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자꾸 아진을 죽이려 했다. 아진은 필사적으로 뿌연 눈앞을 헤쳤다. 제 목을 쥔 커다란 손이 보였다. 뼈가 굵어 두툼한 손목과 팔이 보이고, 이내 얼굴도 드러났다.

석주였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석주가 제 목을 조르고 있었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마치 악귀처럼.

아진의 입이 뻐끔 벌어졌다. 수압이 강한 심해에 갇혀 있는 듯 몸이 딱딱하게 굳고, 차가워졌다. 아진이 억눌린 음성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무섭, 무서워요…….”

“…….”

“무서워요……. 흐…….”

그만, 그만……. 아진의 목소리는 작았다. 자신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였다. 근데 석주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 탁했던 석주의 까만 눈동자가 칼로 도려낸 듯 또렷해졌고, 아진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1분에 가까운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렀을 때쯤.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린 석주가 휙 아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기다란 성기가 내벽을 긁으며 주르륵 빠져나갔다. 손목을 짓누르고 있던 아귀힘도 없어졌고, 무겁게 몸을 결박하던 체중도 사라졌다.

“흐으…….”

아진이 얼얼한 배를 껴안으며 몸을 웅크렸다. 마른 등이 휘어지며 척추뼈가 도드라졌다.

석주는 눈 깜짝할 새에 침대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멀거니 선 그가 아진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낯이 찬찬히 무너져 내렸다. 미간이 좁아지고, 눈가가 일그러지고, 입술이 거꾸로 휘어졌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만면을 짓이기듯 감쌌다.

“아진아……. 아…….”

내가 또, 내가, 내가 결국엔…….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씨발, 미친 새끼, 작은 탄식 너머로 짧게 욕을 읊조리는 듯한 말도 들렸다. 그러나 아진은 그가 진짜 욕을 했는지, 아니면 과거에 침잠한 자신이 환청을 들은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홀로 남은 침대가 너무 넓다는, 몸이 너무 차갑다는, 괴롭고 외롭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진이 조금 더 몸을 옹송그렸다. 턱을 안으로 말고, 신물처럼 치밀어 오른 과거를 갈무리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몸을 할퀴고 깨무는 과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전신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손가락과 발가락 대신 얼음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았다. 꽁꽁 언 뺨 때문에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진이 그렇게 혼자 과거의 구렁텅이로 곤두박질치는 사이, 석주는 어쩔 줄 모르고 서성거리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

“…….”

“내가 잠깐, 정신을 놔서……. 그러면 안 됐는데. 노력했는데. 내가 또 너를, 내가…….”

씨발……. 석주가 꾹 이를 씹으며 머리를 싸맸다. 어째 그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진만큼이나 놀란 것 같았고, 그만큼 공포에 떨고 있는 듯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어딘가 고장이 난 듯한 석주에 아진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손으로 양쪽 팔뚝을 감싼 그가 쉰 목소리로 석주를 불렀다.

“……형.”

그러나 석주는 그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루한 사과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입술이 터지고 목구멍이 헤질 때까지 사과할 기세였다.

“미안해, 아진아. 내가-”

“형.”

조금 더 힘이 실린 부름에 석주가 우뚝 굳었다. 그가 아진을 직시했다. 아진이 옅게 웃으며 흘리듯 말했다.

“나 좀…… 안아 줘요…….”

“…….”

“추워…….”

그 말에 석주가 눈을 부릅떴다. ‘추워.’ 그 짧은 말이 석주를 긴장하게 했다. 생각하고 말고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간 그가 큰 품으로 아진을 껴안았다. 아진에게서 빼앗아 온 열기가 다시 아진을 감쌌다.

“하…….”

아진이 짧게 탄식하며 석주의 어깨에 눈을 파묻었다. 석주는 그의 등을 쓰다듬고, 팔뚝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체온을 묻히다, 반쯤 침대 아래로 내려간 이불을 끌어왔다. 그러면서 욕실로 갈까. 따뜻한 물을 받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별안간 아진이 덥석, 석주의 성기를 쥐어 왔다. 꽤 부피가 죽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우람하고 단단했다.

“아진……아?”

이유 모를 행동에 석주가 눈썹을 슬쩍 올렸다. 아진이 화가 많이 났나. 그래서 제 좆을 부러트리기라도 할 생각일까. 뭐, 그렇다고 한들 피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변호할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성기가 있는 둥 없는 둥 살아왔던 삶이다. 이 나이 먹도록 동정이었는데 오죽하랴.

근데 아진이 뜻밖의 행동을 해 왔다. 몸을 옆으로 돌려 성기 쪽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들이미는 것이다. 가멸차게 들쑤셔 대서 뻐끔 벌어진 뒷구멍이, 석주의 정액이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뒷구멍이 귀두에 맞춰졌다.

당황한 석주가 골반을 뒤로 빼는데. 아진이 강경한 음성으로 말했다.

“계속해요.”

“아진아.”

“계속해, 빨리.”

아진이 석주를 뒤돌아봤다. 입술을 앙다문 고집스러운 얼굴에 물기가 가득했다. 아름다운 눈동자 위로 눈물이 일렁거리는 게 또렷이 보였다.

“내가 다른 생각 못 하게.”

아진이 재차 석주를 당겼다. 자꾸 떠오르면 안 되는 당신이 떠오른단 말이야. 이렇게 있다간 그때로 돌아갈 것 같다고. 당신은 그 강석주가 아니잖아. 내게 흉터로 남은 그 강석주를 당신이 덮어 줘. 잊게 해 줘. 나를 그 지독한 과거에서 해방시켜 줘.

말뚝이 박혀 있던 그 방이 자꾸 날 쫓아온단 말이야. 불에 탄 파도 그림이 나를 삼키려고 한다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당신이 자꾸 내 목을 졸라. 내 입을 막아. 내 눈을 가려.

자꾸, 자꾸 날 괴롭혀.

날 울려.

그렇게…… 그 사람이 보고 싶게 만들어.

날 두고 죽어 버린 그 사람의 행방을 궁금하게 해. 그를 그립게 해.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나를, 나를…….

아진이 원망과 그리움이 규칙 없이 뒤섞여 오물 같아진 감정을 꾸역꾸역 삼켰다. 파르스름해진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석주가 그런 아진을 지그시 응시했다.

“…….”

그러다 마지못해 아진의 뒤에 성기를 집어넣었다. 전과 달리 느리고 부드럽게. 너무 깊지 않게. 아진이 적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쓰면서.

“흐…….”

미끈거릴 정도로 눅진히 풀어진 뒷구멍은 석주의 것을 어렵지 않게 받아 삼켰다. 고개를 바르게 돌린 아진이 가늘게 신음했다. 차게 식은 몸이 안쓰럽게 떨렸다.

석주는 뒤에서 그를 껴안고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진의 어깨나 목덜미에 꾹꾹 입술 도장을 찍으면서, 손을 앞으로 보내 힘을 잃은 아진의 성기를 살살 흔들어 주기도 했다.

이 섹스는 욕구를 풀고 쾌락을 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피였고, 위로였고, 숨겨야 할 것을 숨기기 위한. 어렵게 지켜 온 현실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기묘한 행색의 섹스는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진이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작은 울음이었다. 지척에 있던 석주도 몸을 붙이지 않고 있었다면 몰랐을 만큼 작은 울음.

그 울음은 금세 울분이 됐다. 아진은 울음을,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기지 못했다.

“흐으, 흑, 흐으으…….”

“…….”

“흐으윽, 큽, 흐……. 끅, 흐으으…….”

아진은 열심히 울었다. 귓바퀴가 떨릴 정도로, 가슴이 크게 들썩거리고, 차가웠던 몸이 다시 뜨거워질 정도로 세차게 울었다. 긴 시간 동안 쌓아 온 눈물을 아낌없이 토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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