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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은 부러 천박하게 석주의 혀와 입술을 핥았다. 키스가 아닌 또 다른 것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생과 달리 걱정도, 불편도 없는 지금. 아진은 흔한 남자들처럼 욕정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다. 석주와 함께하는 쾌락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서 더 애가 달았다. 아래에 묵직하게 찬 열을 해소하고 싶었다.
자꾸 몸을 치대며 야살스레 구는 아진에 석주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석주는 극렬한 공격에도 꿋꿋하게 키스를 이어 가다, 어느 순간 뿌드득 소파를 쥐어뜯었다. 단단한 가죽이 그의 손가락에 짓이겨지다시피 했다.
결국 먼저 항복한 건 석주였다. 근데 아진이 바라던 항복과는 조금 달랐다. 석주가 입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아진을 내려다보며 낮게 잠긴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그러더니 휙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진이 바쁘게 욕실로 향하는 석주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등 뒤로 손을 짚고 상체를 세운 그가 나직이 물었다.
“우리 왜 떡 안 쳐요?”
큰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들릴 만한 소리였다. 적나라하다 못해 천박하기까지 한 말에 석주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그가 고개를 반쯤 돌려 아진을 쳐다봤다.
“……뭐?”
아진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설핏 인상을 쓴 채 다른 언어를 탐색했다.
“그 뭐더라……, 아, 맞아. 섹스. 그거 왜 안 해요?”
“…….”
“왜 맨날 키스로 끝나요?”
석주와 연애를 시작한 지도 어언 한 달이다. 그간 수도 없이 키스했고, 약 스무 번 정도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다. 그렇게 기회가 많았는데. 건장한 남성 둘이서 연애하는데. 떡 한 번 치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아무리 전생의 석주와 이곳의 석주가 다른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진은 입만 맞추면 제 몸에 닿는 걸 최대한 피하려는 석주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저와 닿는 게 싫은가, 싶기도 했으나 가만히 안고 있으면 몸 여기저기를 아주 소중하게 만져 준다. 아랫도리가 불능인가, 하기엔…… 아진이 느끼는 게 아주 많았다.
아진이 소파 아래로 발을 디뎠다. 슬리퍼 없는 하얀 맨발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섰다. 석주의 검은 눈동자가 고운 발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아진은 그 시선을 느끼며, 느긋한 걸음걸이로 석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불룩하게 솟은 석주의 아랫도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형 거기. 매번 발기하잖아.”
“…….”
“근데 왜 아무것도 안 해요?”
전생의 석주는 틈만 나면 달려들었다. 글공부를 하던 저를 엎어 놓고 좆을 비비적거리던 순간을 아직도 선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콜라를 쭙쭙 빨아 마시는 게 귀엽다며 볼을 핥다가 온몸을 빨리기도 했고, 걸레질을 하는 엉덩이가 요망하다며 깨물리기도 했다. 정사를 한번 시작하면 해가 뜰 때까지 저를 잡고 놔주질 않았었다.
그 덕에 아진은 정사를 딱히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좋은 것도 정도껏이지. 나중엔 축 늘어져서 석주가 흔드는 대로 나풀거리며 졸기 일쑤였으니까.
근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코피를 쏟았던 날. 석주에게 좆이 빨렸던 이후로 따로 성욕을 푼 적도 없어 더 애가 달았다.
가장 큰 문제는 꿈속에 자꾸 석주가 나온다는 거였다. 눈앞에 있는 그가 아니라, 다른 석주가. 아무래도 몸을 섞은 건 그가 유일한지라 욕구가 쌓이면 자연히 그가 먼저 떠올랐다.
그건 퍽 괴롭고 슬픈 일이었다. 그 때문에 아진은 지금의 석주와 정사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제 딴엔 이런저런 티를 냈다. 입을 맞추며 은근히 그의 아랫도리를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늘 거기서 끝났다. 석주는 아진의 맨살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옷을 벗기려고 하지도 않았고, 다른 걸 원한다는 듯한 뉘앙스도 비추지 않았다.
“…….”
아진의 추궁 아닌 추궁에 석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시선이 은근히 먼 곳으로 흘러가는 게 이 주제를 불편해하는 티가 났다. 아진은 그런 석주를 노려보다, 돌연 언젠가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교복을 입은 저와 과외 선생님의 석주가 나란히 앉아 있던 그 꿈 말이다.
‘쌤 그럼 섹스는 해 봤어요? 당연히 해 봤겠지?’
‘하아……. 너 다른 과외 선생님한테도 그런 거 물어보고 그랬어? 그거 성희롱이야.’
‘내가 그걸 왜 물어봐요. 남의 섹스 사정이 뭐가 궁금하다고.’
‘근데 나한텐 왜 물어.’
‘쌤은 궁금하니까?’
‘……공부하자.’
‘아 해 봤냐고요. 어? 왜 대답을 안 해 줘?’
‘……어른 되면 말해 줄게.’
결국 답을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섹스해 봤어? 해 봤겠지. 그랬으니까 답을 안 해 줬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사내답고 멋진 이가 그걸 안 해 봤을 리 없지.
……근데 왜 나랑은 안 해?
기분이 확 아래로 내리꽂혔다. 신경질 난 고양이처럼 눈이 벼려진 아진이 석주를 노려보는데. 석주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다칠지도 몰라.”
“뭐라고요?”
“내가 널 다치게 할지도 몰라. 그건 정말, 싫어.”
석주의 눈가가 어그러졌다. 누가 보면 이미 아진에게 해를 가한 줄 알 터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의식이 그의 머리 위로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석주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뭐. 떡을 잘못 치면 다칠 수도 있지. 저는 그걸 끔찍하리만큼 또렷하게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근데 지금 눈앞의 석주는 저를 그렇게, 그러니까 마구잡이로 짓누르고, 함부로 다리를 벌리고, 아프다고 우짖는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성격도 성격이거니와, 이 관계에서의 우위는 저니까. 석주에게 휩쓸려 다니던 전생과는 다르니까. 저는 석주가 제게 그런 짓을 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거니까.
“형이 왜 날 다치게 해요.”
아진이 한 걸음 석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서툴러서.”
석주가 반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뭐가 서툰데요?”
다시 한 걸음 다가간 아진이 석주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거였다. 볼품없는 힘이었으나 석주는 땅에 박힌 것처럼 우뚝 굳었다.
“내가, 경험이 없어.”
“뭔 소리야. 무슨 경험이 없다는……, 어? 뭐라고요? 경험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섹스를 안 해 봤, 안 해 봤다는 거예요?”
“그래. 동정이야.”
석주가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진의 눈꺼풀이 위로 잔뜩 말려 올라갔다. 눈동자는 좌우로 바쁘게 움직였다.
동정. 아진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단어의 뜻을 탐색했다. 석주가 말하는 동정이 제가 아는 그 동정이 맞나. 숫총각을 뜻하는 그 동정? 그러니까 석주가 숫총각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아진은 석주와 석주의 아랫도리를 번갈아 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이유를 묻는 거야?”
“네.”
석주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크게 움직였다. 그가 답할 말을 고민하며 볼 안쪽 살을 지그시 씹는데. 아진이 툭툭 석주의 바지춤을 두드렸다. 키스 이후로 발기한 좆이 아직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아진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꺼떡거리는 게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혹시 여기 문제 있어요?”
느슨한 홈웨어가 불룩 솟은 게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만. 까 보질 않았으니 모를 일이지. 발칙하기 그지없는 아진의 언행에 석주가 코로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슬쩍 떼어 냈다.
“……아마도, 아니.”
“근데 왜요?”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누구와도?”
“누구와도.”
아진의 눈꺼풀이 팔랑팔랑 느리게 움직였다. 누구와도 떡을 치고 싶지 않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전생의 석주는 떡치는 걸 즐기다 못해 난봉꾼에 가까웠다.
어…… 아닌가. 집에 매일같이 여자를 부르긴 했지만 정사 그 자체를 좋아했는진 모르겠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몸에 쌓인 열기를 풀어내고 잠깐이나마 자는 거였으니까.
물론, 저와 함께하는 밤은 열 해소보다는 쾌락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많긴 했다만…….
아무튼, 더위를 타지 않는 지금의 석주에게 섹스는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색시 삼고 싶던 여자가 있던 것도 아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으며, 그 후 10년간은 제 몸종을 자처하느라 여유가 없었으니 동정이라는 게 아주 이상한 건 아니었,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너무 이상해.
근데 그 이상함과는 별개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제가 석주를 독점한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랬다. 두 손으로 석주를 꽉 움켜쥔 기분. 저 커다란 사내의 전신에 제 이름이 쓰인 사슬을 둘둘 감아 둔 기분이었다.
아진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스몄다. 그런 아진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주는 툭 도드라진 아진의 손목뼈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를 달래려 했다.
“지금 하면 거칠게 다룰 거야. 그러다 보면 네가-”
“안 해 봤다면서요.”
“…….”
“안 해 보고 어떻게 알아요.”
아진이 그의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갔다. 고개를 한껏 들고, 석주의 앞에 바짝 붙어섰다. 아진의 후끈한 숨결이 석주의 턱 끝을 간질였다. 석주의 뺨이 단단하게 굳었다. 어금니를 씹는 건지 관자놀이가 들썩거리기도 했다.
지척에서 그 움직임을 지켜보던 아진이 속삭이듯 물었다.
“나랑 하기 싫어요?”
“아니.”
석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짙은 육욕에 눈썹이 한껏 오르막을 그리고 있었다. 아진이 가늘게 눈을 휘었다.
“그럼 해요.”
“하지만……. 아진아, 나는…….”
“내가 하고 싶다잖아.”
질긴 고집에 석주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도 패배는 석주의 몫이었다.
침대 프레임에 기대앉은 석주는 두 손을 느슨히 늘어트려 놓았다. 아진은 그런 석주의 허벅지 위에 앉아 그의 옷을 벗겼다. 석주는 꿈지럭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아진의 손을 보다, 중력 때문에 아래로 늘어진 아진의 머리칼을 조심히 옆으로 넘겨 주었다.
그러든 말든 아진은 석주의 홈웨어를 벗기는 데 집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석주가 얄밉다기보다는 신이 났다. 정사를 제가 이끌어 가는 건 처음이라서. 석주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 행위가 귀찮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절 다치게 할까 봐 겁을 내서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아진이 석주의 윗도리를 쭉 잡아당겨 벗겼다. 이내 멋진 상박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