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94화 (19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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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와 꽃님은 바닥에 엎어지다시피 한 아진의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낯에 걱정이 가득했다. 아진이 근 한 시간째 쉬지 않고 울고 있어서 그랬다. 소리 없이 나타난 석주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아랫입술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아니, 얘가 왜 이렇게 울어.”

“너 어디 아프냐? 어?”

선화는 눈물로 흠뻑 젖은 아진의 등을 쓰다듬었고, 꽃님은 투박한 손길로 아진의 팔뚝을 툭툭 두드려 댔다. 아진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가로저으며 계속해서 울었다.

“우흐으, 흐윽, 큽, 흐으윽…….”

한참 울던 그가 빼꼼 머리를 들고 꽃님을 쳐다봤다. 그녀가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반가웠고, 기뻤고, 동시에 불안했다. 말이 안 돼서.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 혹시 꿈인가 싶어서.

그가 더듬더듬 꽃님의 손을 찾아 쥐었다. 그러면서도 무어라 말은 못 하고 눈물만 뚝뚝 떨구어 댔다.

그런 아진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더운 부엌에 퍼질러 앉아 한 시간 내도록 울고 있으니 가뜩이나 열이 많은 몸뚱이가 괜찮을 리 없었다. 이러다 열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꽃님은 걱정이 됐다.

“아이고, 땀 봐라. 얼음 갖다 줄까?”

꽃님이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는데, 아진이 손을 놔주지 않았다.

“좀 놔 봐. 왜 이래, 얘가.”

꽃님이 아진의 손을 털어 내려는데. 입을 꼭 다문 아진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타고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풍성한 속눈썹에 한가득 걸린 눈물이 무거워 보일 지경이었다.

꽃님이 난감하다는 듯 눈썹을 구기자, 지척에 있던 석주가 걸음을 옮겼다.

“제가 갖고 오겠습니다.”

컵을 꺼내는 석주를 흘끔 본 꽃님이 아진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뭐 말을 해야 달래 주든 말든 할 거 아니냐. 울기만 하면 어쩌라고. 스물일곱이나 먹은 놈이 입 꾹 다물고 질질 짜기나 해.”

선화는 반대쪽에 앉았다.

“그래, 아진아. 왜 울어. 말을 해야 엄마랑 이모가 뭘 하지.”

지극한 달램에 아진이 후우웁,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와중에도 딸꾹질을 해서 어깨가 움찔움찔 튕겨 올랐다. 잠시 끅끅거리며 호흡을 고르던 그가 꽃님의 목을 덥석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너무, 흑, 너무 보고 싶었어…….”

“……아진아?”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어…….”

“어이구,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꽃님이 헛웃음을 흘리며 아진의 등을 도닥였다. 그러면서 선화와 눈을 맞췄다. 얘 왜 이래, 하고 입을 벙긋거리며 묻기도 했다. 선화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러든 말든 아진은 꽃님에게 매달리다시피 안겨 있었다. 열이 잔뜩 올라 눈앞이 다 가물가물했는데 그래도 꽃님을 안고 또 고쳐 안았다.

꽃님이 죽고, 아진이 용왕님에게 바란 건 딱 한 가지였다. 다음 생에도 꽃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것. 제가 양반집 막내아들로 사랑받으면서 살든, 아니면 절름발이로 비루하게 살든, 그런 거 다 상관없으니 꽃님과 만나게만 해 달라고 빌었다.

근데 이렇게 다시 만났다. 그냥 다시 만났을 뿐만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됐다. 이모라니. 그토록 완벽한 관계라니.

그리 생각하니 또 벅찼다. 꽃님의 목덜미에 얼굴을 욱여넣은 그가 다시금 눈물을 터트렸다.

아진이 얼음이 잔뜩 든 오렌지주스를 꼴깍꼴깍 단숨에 삼켰다. 벌써 한 잔을 비워 놓고, 연달아 또 마시는 중이었다. 눈가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울었더니 목이 많이 말랐다. 덥기도 더웠고.

아진이 잔을 내려놓자 석주가 다시 주스를 따라 주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저들끼리 부딪쳤다.

“하아…….”

아진이 길게 심호흡했다. 그러다 훌쩍하고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선화와 꽃님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꽃님이 두툼하게 썬 롤케이크를 아진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아진이 포크를 들며 꽃님을 바라봤다. 집요하게 이어지는 시선에 꽃님이 자기 얼굴 뚫리겠다며 볼을 벅벅 문댔다.

꽃님은 제주도에서 커다란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원래는 선화와 함께 경영 수업을 받았었는데,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게 영 체질에 맞지 않아서 제주도로 홀라당 도망쳐 버렸단다.

그 이후로 카페를 운영하며 쭉 거기서 살고 있다고. 다른 일은 딱히 재미를 붙이지 못했는데, 과자나 케이크를 굽는 건 재미있어서 일이 즐겁다고 했다.

아진은 롤케이크를 먹으며 꽃님이 주방일을 하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차로는 갈 수 없는 지역에 사는 것도 싫었다. 근데 꽃님의 입에서 빵 굽는 게 ‘즐겁다’는 단어가 나오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진이 울음으로 소모한 기력을 롤케이크로 채우는 동안, 꽃님과 선화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아버지가 구시대적인 분이라 여자 이름엔 꼭 꽃이 들어가야 한다고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 나는 꽃 화자 써서 선화, 언니는 꽃님이.”

“진짜 너무한 양반이야. 요즘 시대에 딸 이름을 그 지랄로 지어 놓고 말이야.”

“그래도 언니가 노발대발한 덕분에 나는 좀 괜찮잖아. 아무래도 기업 총수 이름이 꽃님이면 영 난감했을 텐데.”

“감사한 줄 알아.”

“아이, 그럼.”

선화가 꽃님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런데도 꽃님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미간을 한껏 구겼다. 그에 입가에 크림을 묻힌 아진이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꽃님이가 뭐가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사랑 많이 받은 이름 같잖아.”

전부터 해 주고 싶던 말이었다. 꽃님이라는 이름이 예쁘다고. 그 예쁜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분명 꽃님을 사랑했을 거라고. 전생에 언젠간 해 줘야지, 해 줘야지, 하다가 끝내 못한 말이기도 했다.

석주가 아진의 입가를 엄지로 슬쩍 닦아 주었다. 아진이 포크로 롤케이크를 한가득 퍼서 석주의 입에 갖다 댔다. 석주는 잠깐 선화와 꽃님의 눈치를 보다,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먹었다.

꽃님이 그런 아진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 아진이 일렁거리며 맺혔다.

“내 이름이 예뻐? 사랑받은 이름이야?”

“그럼.”

“그으-럼? 선화야. 애가 좀…… 이상해지긴 했다, 진짜?”

꽃님이 아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선화가 자신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치며 방정을 떨었다.

“그치, 그치? 언니가 보기도 그렇지? 아우, 나 요즘 얘 걱정 때문에 잠도 잘 못 자. 피부가 다 푸석푸석해졌다니까. 그래서 내일 피부과 가려고. 언니도 갈래?”

“나는 그런 데 흥미 없다. 사람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야지.”

“언니는 진짜 재미없어.”

“미진이랑 가.”

“미진이도 그런 데 흥미 없어. 미진이는 나보다 언니를 더 닮았잖아. 가끔 통화하면 내가 언니랑 통화를 하고 있는 건지, 미진이랑 통화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니까.”

선화가 비스듬히 턱을 괬다. 입으로 쯧, 소리를 내기도 했다. 묘하게 외로워 보이는 그녀에 아진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피부과…… 내가 같이 가 줄까, 엄마?”

그 말에 눈을 몇 번 끔뻑이던 선화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아들 사랑스러운 것 좀 봐. 쟤는 어쩜 저렇게 컸지. 내가 낳아 놓고도 신기해. 우리 집에 저런 캐릭터가 없는데 말이야.”

“신기한 일이지.”

꽃님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석주도 엷게 미소 지었다.

수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개 선화와 꽃님이 수다를 떨고, 아진과 석주는 청중으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롤케이크 반을 뚝딱 먹어 치운 아진이 진지한 낯으로 꽃님을 불렀다.

“아줌, 아니, 이모.”

“왜.”

“병원…… 가 봤어?”

“뭐?”

“병원 가서 검사받아 봐. 가슴, 심장, 그런 쪽으로.”

아진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와 동시에 확신에 차 있었다. 꼭 꽃님의 가슴 안에 뭐가 있는지 보는 듯한 어조였다. 난데없는 건강 검진 권유에 꽃님이 한쪽 눈썹을 비죽 올렸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빨리. 아니, 지금 가자.”

아진이 함께 가겠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석주가 그의 허벅지를 꾹 아래로 눌렀다. 아진이 왜 그러냐는 듯 석주를 보는데. 꽃님이 허공에다 손을 휘저었다.

“아우, 됐어. 병원이라면 신물이 나. 건강 검진 때마다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그래도-”

아진이 다시금 입을 떼는데. 선화가 말을 얹었다.

“그래. 이모 젊을 때 심장에 문제 있어서 아주 병원에서 푹 썩었었어.”

“썩었다니 기집애야.”

“그때 완전 얼굴이 새카매져서, 아으…….”

선화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턱을 안으로 당기며 말했다. 그러다가도 꽃님의 어깨를 슥슥 쓰다듬었다. 말은 치가 떨린다는 듯하지만, 당시에 꽃님을 얼마나 걱정했을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 나았어?”

눈을 크게 뜬 아진이 다급하게 물었다. 꽃님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았지. 그게 언제인데.”

“지금은 건강한 거야?”

“그렇다니까. 언제냐. 어, 올 초에 건강 검진 했어. 이제 나이 있으니까 단거 조심하라더라. 그거 말고는 다 괜찮았어.”

꽃님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펴졌다. 아진이 그녀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미래의 병원은 제가 알던 전생의 병원과 전혀 다르다. 의도치 않게 검사실을 전전해 봤는데, 기계도 신기하고 사진 몇 번 찍으면 제 뼈까지 훤히 다 나온다.

이런 세상에, 꽃님이 건강하지 않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올해 검진도 했다고 하지 않나. 고로, 이번 생에 꽃님이 심장병으로 죽을 일은 없다.

아진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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