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무릎으로 우뚝 선 아진이 석주의 턱을 엄지로 슬쩍 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꺾으며 그의 입술을 삼켰다. 촉촉- 촉, 낯간지러운 소리가 적막한 방에 울려 퍼졌다.
아진의 키스는 서툴렀다. 아무래도 잠든 이와 키스하는 건 처음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닌데…….”
입술을 겹쳤다 떼길 반복하던 아진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그러다 눈썹을 슬쩍 올리더니, 석주의 입술 사이로 혀를 빼꼼 집어넣었다. 뜨끈한 혀가 석주의 잇새로 밀려 들어갔다. 아진이 짙은 숨을 내쉬며 혀를 더 깊게 넣으려는 찰나.
석주가 스르륵 눈을 떴다.
“…….”
“…….”
속눈썹이 팔랑거리는 게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아진이 우뚝 굳었다.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혀가 입술 사이로 빼꼼 앙증맞게 나와 있었다.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물고 빨긴 했지만 대책을 세워 두진 않았다. 어떡하지. 뭐라고 하지. 그냥 뻔뻔하게 ‘다시 눈 감아. 자는 척해.’ 그렇게 말해 볼까.
아진이 바쁘게 고민하는데. 석주가 가늘게 눈을 찌푸렸다. 그의 눈두덩에 잠기운이 두껍게 얹혀 있었다.
“……아진이?”
묵직하게 잠긴 목소리에 아진이 움찔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제가 얼마나 발칙한 짓을 했는지 뒤늦게 인지했다. 놀란 그가 고개를 뒤로 물리는데.
덥석. 뒤통수가 잡혔다.
분명 석주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했다. 근데 뒤통수를 감싸 쥔 손이 강하고 질겼다. 허리도 잡혔다. 기다란 팔이 올가미 같았다. 아진이 무심코 몸을 뒤틀자 석주가 마른 몸을 자신 쪽으로 바짝 당겨 왔다. 그리고 그대로 입술을 잡아먹었다.
“읏…….”
정말 말 그대로 잡아먹혔다. 아진이 한 키스는 곰살맞은 뽀뽀에 불과했는데, 석주는 입을 벌려 아진의 입술을 온통 삼켰다. 얼마나 저돌적으로 돌진하는지. 석주의 얼굴이 아래에 있는데 아진의 머리가 뒤로 밀릴 정도였다.
아진의 입술을 통째로 쪽쪽 빨던 석주는 뒤통수에 있던 손을 뺨과 턱으로 옮겨 왔다. 그러고는 당황으로 뻐끔 벌어진 아진의 잇새로 뜨거운 혀를 욱여넣었다.
그 후끈하고 축축한 느낌에 아진이 흠칫거리며 석주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석주는 아랫입술끼리 맞물려 뭉개질 정도로 바짝 붙어 왔다. 그리고 혀로 아진의 입 안을 온통 돌아다녔다. 치아를 쓸고, 입천장을 긁어내리고, 어쩔 줄 모르고 굳어 있는 혀를 얽어다 타액을 춥춥 빨아 댔다.
그러다 갑자기 혀를 빼내 아랫입술을 베어 물기도 하고, 입가는 물론 턱까지 핥으며 타액을 묻혔다. 그가 내뿜는 질펀한 콧김이 아진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진의 눈꺼풀이 몽롱하게 풀렸다. 제가 혼자서 만들어 가던 키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득한 키스였다. 자극적이고, 야했다. 빗소리만 울리는 고요한 방 안에 춥, 추웁, 쪽쪽, 하는 야릇한 소리가 차올랐다.
저돌적인 석주를 받아 내던 아진이 서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주의 입술을 가볍게 빨다가, 꿈틀거리는 혀에 자신의 혀를 맞붙였다. 입술로는 쪽쪽, 하고 석주의 입술을 물었다가 놓았다.
키스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짙어졌고, 질척해졌다. 고개를 좌우로 바꿔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코와 섞이는 숨결, 밀려오는 입김 같은 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석주는 아진을 마구 만져 댔다. 등을 쓸어내리고, 허벅지를 주무르고, 머리칼을 쓰다듬고, 허리를 지분거렸다. 그 손길이 매우 갈급했다. 애가 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욕정 가득한 손길에 아진 역시 조급해졌다.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을 옮겨 석주의 곧은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 엉덩이 아래로 느껴지는, 두툼하고 뜨겁게 발기한 성기를 은근히 누르며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러면서 석주의 아랫입술을 빠는데.
순간. 석주가 번뜩 얼굴을 뒤로 물렸다.
육욕으로 절절 끓던 검은 눈동자 위로 당황이 커튼처럼 쳐졌다. 그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거…….”
“…….”
“꿈…….”
“아니야. 꿈.”
짧게 일갈한 아진이 고개를 꺾었다. 다시 입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찰나 떨어졌을 뿐인데도 아쉬웠다. 석주의 입술을 더 먹고 싶었다. 혀를 더 비비고 싶었다. 그러다 키스와는 비할 바가 안 되는 야한 짓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근데. 석주가 아진의 양쪽 팔뚝을 잡아 뒤로 밀어 냈다. 짐승 같은 욕정이 가득하던 그의 낯에 혼란이 범람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석주가 속삭이듯 말했다. 아진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얇은 홈웨어 너머, 쇄골이 도드라지는 게 보였다. 상박은 두툼해졌고, 대흉근 사이로 윗도리가 오목하게 파였다.
그것을 보던 아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키스로 달아오른 낯에 색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왜 안 돼?”
가라앉은 음성이 평소보다 허스키했다. 붉은 입술에 석주의 침을 덕지덕지 묻힌 채, 그윽한 눈빛까지 하니 석주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아찔함에 눈썹이 다 어그러졌다.
“……아진아.”
“돼.”
아진이 다시금 속삭였다. 낮고, 비밀스럽게. 그가 석주의 새까만 눈동자 깊숙한 곳으로 침입했다. 석주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크게 움직였다. 아진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를 보며 주문을 걸듯 속삭였다.
“해.”
석주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검어졌다.
“해도 돼.”
갈증을 느끼는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해 버려.”
아진은 마지막 말을 마침과 동시에 턱이 우악스럽게 잡혔다. 곧장 입술이 충돌했다. 아진은 기껍게 잡아먹혀 주었다. 석주가 달뜬 호흡을 내뿜었다. 그러면서 아진의 허리와 등 뒤를 받쳐 그를 소파에 눕혔다.
아진의 보드라운 머리칼이 소파 위로 흩어졌다. 그의 위로 올라탄 석주가 아진의 입술을 머금고 또 머금었다. 아진이 옅게 웃으며 입을 벌려 주었다.
곧 혀가 섞였다. 석주가 위를 차지해서 그런가, 입 안으로 밀려오는 혀가 전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아진은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석주의 혀를 빨고 핥았다. 가끔 불룩거리며 솟아오르는 그의 관자놀이나 귓바퀴, 턱선 같은 걸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에 반해 석주는 아진을 만지지 않았다. 아진의 얼굴 양옆에 팔을 짚고 몸을 지탱하면서, 애꿎은 소파만 쥐어뜯으며, 열렬히 입술만 빨아 댔다. 꼭 자기 혼자만의 벽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진은 그것을 눈치챘으나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섞이는 입술만으로도 충분히 야하고 자극적이었다.
아진은 끝없이 달아오르는 분위기와, 이마를 스치는 석주의 앞머리와, 이따금 진득하게 마주치는 시선 같은 것만으로도 절정에 다다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응, 하으…….”
“…….”
격정적인 키스가 이어졌다. 혀가 넘나들고, 숨결이 얽히고, 입술이 짓눌렸다. 종국엔 턱이 삐걱거리고 입술이 저릿해졌다. 그러나 키스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누구 하나 떨어지려는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 밤이 올 때까지 입술을 비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아진이 무릎을 세웠다. 그리고 뒤척이는 척하며 석주의 아랫도리를 슬쩍 건드렸다.
석주를 먼저 도발하는 것. 전생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욕정에 회까닥 돈 건지, 아니면 원래의 아진과 성격이 뒤섞이면서 이리된 건지. 자꾸 석주를 만지고, 자극하고, 놀리고 싶었다.
무릎 너머로 묵직하게 발기한 석주의 성기가 느껴졌다. 손으로 만진 게 아니라서 그의 좆이 여전히 구렁이 같은 위용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무게로 어림잡아 더 컸으면 컸지, 작아지진 않은 것 같았다.
순간 목이 바짝 말랐다. 석주의 타액을 쭙쭙 빨고 있는데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석주의 목을 쓰다듬던 아진이 그의 윗도리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툭 도드라진 견갑골을 매만지고 탄탄하고 매끄러운 등을 따라 손을 내리는데. 춥, 소리와 함께 석주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아진이 입을 뻐끔 벌린 채 석주를 쳐다봤다. 왜, 라는 질문을 눈으로 하면서.
석주가 아진의 무릎을 옆으로 슬쩍 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눈도 몇 번 깜빡거리고, 숨을 고르던 그가 특유의 저음으로 읊조렸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
아진이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흘린 채 그를 올려다봤다. 그 얼굴이 몹시 야했다. 풀린 눈꺼풀과 퉁퉁 부은 입술, 말간 광대에 들어찬 색욕, 그리고 젖은 군청색 눈동자에 석주는 하마터면 또 아진의 입술에 들이박을 뻔했다.
어금니를 아득 짓씹은 그가 다급하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만.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는 핸드폰을 비롯한 짐도 챙기지 않고 도망치듯 허겁지겁 방을 나섰다. 쾅, 하고 문이 세차게 닫혔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아진이 닫힌 방문을 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손끝이 소파 등받이를 톡톡, 톡 리듬감 있게 두드렸다.
손바닥에 석주의 체온이 묻어났다. 간질간질하면서도 시원한 체온을 느끼던 아진이 꾹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그날 밤. 며칠 내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던 장마가 끝났다.
*운명의 귀환*
꿈속의 아진이자 과거의 아진은 본가 거실에 누워 있었다. 멀쩡한 소파 두고, 대리석 바닥에 대자로 엎드린 채였다. 바닥에 볼을 딱 붙이고 있는 게,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찻잔을 든 선화는 그런 아진이 익숙하다는 듯, 길게 늘어진 그의 다리를 타 넘어 소파에 앉았다. 늘씬한 다리를 곱게 꼰 그녀가 태블릿으로 뉴스 기사를 눈으로 훑으며 물었다.
‘주차장에 못 보던 차 있더라. 또 샀어?’
‘응.’
아진이 눌린 목소리로 긍정했다.
‘왜?’
‘예뻐서.’
‘…….’
선화의 한쪽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갔다. 아진은 그녀를 보지 않았으나 그녀의 표정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못마땅해하는 심기 역시 예상했다. 그가 반대쪽 볼을 바닥에 붙이며 웅얼거렸다.
‘갖고 싶은 걸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