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86화 (18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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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아, 왜 또!”

    아진이 손바닥으로 석주의 잘생긴 이마를 밀어 냈다. 허나 석주는 꿈쩍도 하지 않고 아진의 것을 삼키고 또 삼켰다.

    몸을 뒤틀며 그를 거부하던 아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득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석주의 입천장에, 목구멍 깊숙한 곳에, 혀 위에 치받히고 뭉개지는 성기에 정신이 아찔했다.

    “아흐, 읏, 응, 흐웁, 으응…….”

    아진이 어색하게 허리를 들썩였다. 석주는 피하긴커녕 얼굴을 더욱 앞으로 내밀어 살덩이를 깊숙이 머금어 주었다.

    몸을 덜덜 떨던 아진은 금세 두 번째 절정에 다다랐다. 석주는 이번에도 그가 싸지른 정액을 남김없이 삼켜 냈다. 맥없이 늘어져서 미끄러지려는 아진을 단단히 붙잡고 아주 샅샅이도 핥아 먹었다. 그게 어찌나 집요한지. 꼭 며칠 굶은 짐승 같았다.

    아진은 간헐적으로 몸을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명치에 엉켜 있던 열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몸이 차게 식는 느낌이 좋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싶더니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몸이 무거웠다. 근데 기분 나쁜 무거움은 아니었다. 마치 격렬한 운동을 끝내고 난 후와 같은 무거움이었다.

    아진이 축 늘어져 있는 동안, 석주는 물에 적신 수건으로 아진의 성기와 사타구니를 닦아 주었다. 그리고 속옷과 바지까지 손수 입혀 주었다.

    그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진이 선반에서 내려오려 했다. 석주가 제 좆을 빨았든 말든, 그의 입에 두 번이나 정액을 싸질렀든 말든, 지금 당장 자고 싶었다. 다른 건 내일 생각하자, 내일. 그렇게 급하게 결론을 내리는데. 석주가 아진의 앞에 바짝 붙어선다 싶더니 허리와 엉덩이 아래를 받치고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주무세요. 방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석주는 지금 아진이 이성을 갈무리할 수 없을 정도로 졸린다는 걸 아는 듯했다. 아진은 찰나, 그를 밀어 낼까 고민했다. 너라면 잠이 오겠냐. 비서 목구멍에 정액을 두 번이나 갈겼는데, 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잠깐 몸을 뒤척이던 아진은 손쉽게 편한 자세를 찾았다. 턱을 석주의 어깨에 올리고, 고개를 그의 머리 쪽으로 기댔다. 팔은 늘어트리고, 사지에 힘을 뺐다. 그러자 몸이 석주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석주의 두툼하고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졌다. 그에게서 시원한 기운이 넘실넘실 스며 왔다. 그의 묵직한 호흡이 목덜미를 스쳤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석주는 입김마저 청량했다.

    욕실을 나온 석주가 복도를 걷기 시작하자 몸이 잔잔하게 들썩였다. 그게 참 좋았다. 잠을 자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뺨이 납작하게 뭉개질 정도로 석주의 품에 깊숙이 안긴 아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이 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 * *

    아진은 허리가 찌뿌듯할 만큼이나 오래 잤다. 베개에 얼굴을 문대던 그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타닥타닥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흘끔 본 전자시계가 막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긴 장마 탓인지 세상이 어둑했다. 그마저도 좋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늘어지라 잔 잠. 어둑한 실내.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에 완벽한 환경이었다.

    아진은 한동안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이불을 둘둘 껴안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심코 방을 둘러보는데. 큼지막한 인영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정확히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석주였다.

    “…….”

    아진이 무언가에 홀린 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꿈치를 슬쩍 든 채 조용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석주는 고개를 비스듬히 떨어트린 채 잠들어 있었다. 두툼한 니트를 담요처럼 덮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태블릿과 서류가 흐트러져 있었다. 소파 옆 간접 등이 켜져 있고, 손에 간당간당하게 들린 볼펜 촉이 나와 있는 걸 보아 잠든다는 자각도 없이 잠이 든 것 같았다.

    “…….”

    아진이 석주를 빤히 내려다봤다.

    멀쩡한 본인 방 놔두고 왜 여기서 불편하게 자나, 의아해하다가 어젯밤 제가 코피를 흘렸던 걸 상기했다.

    ……걱정했구나.

    그래도 그렇지 감기도 잘 걸린다면서 이불 하나 없이 이 추운 방에……. 입술을 삐죽거린 아진이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에어컨 리모컨을 잡아 꾹꾹꾹 온도를 높였다. 그러다 에이, 하며 꺼 버렸다.

    방이 한결 고요해졌다. 빗방울이 창문에 달라붙는 소리만 요란했다.

    아진이 소파 테이블에 슬쩍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석주를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잠든 석주는 어젯밤, 제 좆을 빨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적막한. 마치 이른 새벽의 바다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깊은 숲 같기도 했다.

    무방비하게 잠든 그를 보고 있으니 전생의 석주가 떠올랐다. 꽃님의 장례식 후, 밥을 먹지 않는 저를 걱정해 찾아왔던 그. 잠을 자지 못해 코피를 흘리고,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갔다가 결국 제 품에서 잠들었던 그. 그 후 사흘 내내 그가 자는 걸 질릴 만큼 봤다.

    그때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참 비슷했다.

    다리를 모아 안은 아진이 무릎에 턱을 괬다. 고정된 시선이 때로는 과거의 석주를 봤다가, 때로는 현재의 석주를 봤다.

    그렇게 보고 또 보다 보니 어색한 감정이 움텄다.

    욕심이었다.

    방금 고개를 든 감정은 아니고, 처음 인지한 건 어제. 석주가 ‘사장님 사람으로서’라고 말했을 때다. 그때 불쑥 튀어 오른 욕심이라는 감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더 커졌다. 석주가 제 방에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걸 보니 더 그랬다.

    제 곁에 두고 싶고, 가둬 놓고 싶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싶고, 그가 뭘 하든 제 눈앞에서 하게 하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제 허락을 구했으면 했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다. 물건도 아니고, 사람에게 욕심을 느끼다니. 정상이 아니다.

    근데 뭐.

    정상이 아니면 어쩔 건데.

    누가 나를 비난할 건데.

    “…….”

    다리를 풀어 내린 아진이 테이블 끝으로 엉덩이를 당겼다. 그리고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석주를 쳐다봤다. 평소보다 어둑한 군청색 눈동자에 석주가 가득 들어찼다.

    이 석주는 어차피 제가 아는 석주가 아니다.

    제게 못된 짓을 했던 석주는 죽었다. 저를 짓밟고, 욕하고, 아프게 하던 석주는 이 세상에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석주는 다른 사람이다. 얼굴만 같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진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럼 좀, 친해지면 안 돼?

    여기서라도 당신을 가지면 안 돼?

    이번엔 내가 당신을 움켜쥐고 흔들면 안 돼?

    혼자 서고자 다짐한 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어쩌면 내일은 또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진은 전생에 석주와 2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했고, 아귀다툼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같은 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로도 치가 떨리는데, 7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슬러 여기까지 와 다시 만났다.

    미웠다가, 원망스러웠다가, 그리웠다가, 외롭다가, 질투도 했다가, 짜증도 냈다가, 욕심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 파도 같은 감정의 종착지가 어디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진은 당장 석주를 가지고 싶었다.

    아진이 조금 더 석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엉덩이가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손이 석주의 허벅지 옆을 짚었다. 석주가 규칙적으로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이 느껴졌다. 아진은 그 상태로 잠깐 굳어 있다가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대범하게도, 석주의 허벅지에 올라탔다.

    그런데도 석주는 깨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아진의 체온이 반갑다는 듯 차게 식은 손으로 허벅지를 느슨히 감싸 오기만 했다. 아진은 석주의 몸을 덮고 있던 니트를 손가락에 걸어 스르륵 옆으로 치웠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펜 역시 잡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 후, 다시 석주를 내려다봤다.

    가까이서 보는 석주는 여전히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간접 등이 정확히 얼굴 반절만 비추고 있었는데, 높다란 콧대 너머로 그림자가 진 게 쓸데없이 멋졌다. 사내답게 각진 턱이 섹시했다. 적당히 볼록하게 솟은 광대와 오목하게 들어간 코의 시작점, 그리고 다시 올라오는 눈썹뼈 같은 게 참으로 조화로웠다.

    잠시 방황하던 아진의 손끝이 석주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뜨끈한 열기에 석주의 미간이 움찔 떨렸다가 다시 펴졌다. 그는 잠결에 아진의 허벅지를 자신 쪽으로 바짝 당겨 몸이 붙게 했다. 아진이 절절하게 내뿜는 온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진 역시 그런 석주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정신은 어떨지 몰라도 몸은 저를 원하는 듯해서.

    아진은 한동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대로 타닥타닥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다, 잘 뻗은 석주의 턱선에 꾹 입술을 눌렀다가 뗐다.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는 도둑 뽀뽀였다. 그렇게 한 번 나쁜 짓을 했더니 두 번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허리를 곧추세운 아진이 석주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서늘하게 식은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아랫입술이 가장 먼저 닿았다. 이내 윗입술도 닿았다. 그 생경한 느낌에 아진은 자신이 해 놓고도 놀라 얼른 고개를 뒤로 뺐다.

    쪽 소리도 나지 않는 입맞춤이었다. 스쳤다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

    아진이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입가에 꾹 힘을 줬다가 푼 그가 이번엔 석주의 아랫입술을 춥 빨았다가 놨다. 다음으로는 윗입술을 쫍 빨았다가 놨다. 그쯤 되니 거리낄 게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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