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쌍피-158화 (158/261)

158

“…….”

이를 앙다문 석주의 뺨이 가늘게 경련했다. 등을 통과해 복부를 파고든 총알이 뜨거웠다.

기헌이 쏜 총알들은 어긋남 하나 없이 모두 석주의 등에 박혔다. 마지막 한 발은 심장 어귀를 꿰뚫었다. 오장육부에 피가 스미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치명상이다. 석주는 싸움꾼답게 그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왔다. 근데 아프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품에 안은 아진이 안전하다면, 아프지 않다면 수백 발도 더 맞을 수 있었다.

석주가 품에 안은 아진의 등을 슥슥 쓰다듬었다. 아진은 놀란 건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몸도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석주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체온을 부지런히 그에게 묻혔다. 다시는 그의 언 몸을 데워 줄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아니, 사실 제 욕심이었다. 마지막으로나마 그를 안고 싶어서.

“아진아, 미안해.”

“…….”

“미안해.”

석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월요일.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별 시답잖은 것으로 계속 사과할 일이 생겼었다. 약과를 사 오지 못해서 미안해. 말을 너무 매몰차게 해서 미안해. 갑자기 와서 미안해. 등등.

그게 민망해서 또 사과했었다.

‘자꾸 사과할 일이 생기네. 미안. 아니, 아…….’

근데 아진이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전 좋아요.’

‘어?’

‘사장님 사과 말이에요. 좋다고요.’

그리 말하며 배시시 웃는 게 참…… 예뻤다. 그래서 석주는 아진에게 더욱 열심히 사과하기로 했다.

“미안해, 아진아.”

석주가 아진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진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석주의 팔뚝을 감싸 쥐었다. 그 감격스러움에 석주의 입꼬리가 주책맞게 올라가는데.

쿨럭…….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덩어리 같은 피가 솟구쳤다. 석주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피를 뱉어 냈다. 아진에게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함이었다. 입가를 축축하게 적신 피를 대충 손등으로 닦아 내고 아진을 살폈다.

근데, 아진의 가슴팍이 시뻘겠다. 하얀 옷이 온통 붉게 젖어 있었다. 처음에는 제 피가 묻어나서 그런 줄 알았다. 또 등신같이 미안해, 하고 사과하려는데. 아진의 가슴팍에 난 구멍 두 개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석주의 몸을 꿰뚫은 총알 두 개가 그에게 가 박힌 거였다. 석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진아, 너…….”

콜록…….

이번엔 아진이 기침했다. 상처 난 입술 사이로 피가 역류했다. 석주가 얼른 그것을 닦아 냈다. 그의 까만 눈동자가 슬픔에 침잠했다.

너를 구하려 했는데. 너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만 구하면 됐는데. 그거 하나를 못 해서. 그거 하나를…….

이미 죽어 가고 있음에도 머리에 땅을 처박고 죽고 싶었다.

석주가 치미는 죄의식과 자괴감에 눈을 일그러트리는데. 아진이 피에 젖은 입술을 달싹였다.

“저 아파요.”

“……미안해.”

“저 죽나 봐요.”

“…….”

석주가 꾹 눈을 감았다.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는 석주를 보는 아진의 군청색 눈동자가 흐렸다. 곧 그의 눈에도 스멀스멀 눈물이 차올랐다.

“제가 왜 사장님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

“다…… 사장님 때문이에요.”

“응. 나 때문이야.”

석주는 순순히 시인했다. 아진은 티끌만 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제 탓이었다. 그가 우는 것도, 그가 아픈 것도, 그가 이렇게 잔인하게 죽는 것도 다 제 탓이었다.

석주가 피 묻은 아진의 턱을 조심히 닦아 냈다. 그가 깨질까 봐 무서웠다. 그러다 아진이 본인은 이미 깨졌다고, 다시는 붙을 수 없을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또 미안해졌다.

“미안해……. 미안하다…….”

사과하는 석주의 목소리가 느려지고, 늘어졌다. 눈꺼풀의 움직임도 더뎌졌다. 더 버티고 싶은데, 총알이 일곱 개나 박힌 몸뚱이가 끝을 호소하고 있었다.

석주가 가물가물한 시선으로 아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다짐을 했다.

아진아. 내가 다시 찾아가마.

다시 찾아가서, 다시 사과하마.

그렇게 사과하고 사과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면, 무릎을 꿇고 비마. 그렇게 또 사과하다 다리가 부서지면, 머리를 처박으며 사과하마. 그러다 머리가 깨지고 눈알이 썩어 더 이상 네게 사과할 방도가 없는 날이 오면.

비로소 네 앞에서 온전히 사라져 주마.

다시는 너를 욕심내지 않으마.

다시는 너를…… 사랑하지…….

아아……, 그건 자신이 없다. 그건 자신이 없어, 아진아…….

석주가 풀썩 아진의 어깨에 얼굴을 늘어트렸다.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거칠게 이어지던 석주의 숨소리가 한순간에 끊겼다. 아진이 더디게 눈을 깜빡였다. 피가 튄 얼굴 위로 혼란이 내려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가 석주를 불렀다.

“사장님.”

“…….”

“사장님.”

“…….”

“……형.”

“…….”

“왜 대답 안 해요. 왜 대답 안 해.”

아진이 석주의 팔뚝을 북북 긁었다. 그러나 석주는 미동이 없었다. 아진의 눈동자가 거칠게 출렁거렸다.

죽었어? 죽은 거야? 나 두고 죽어 버렸어?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먼저 죽었어?

고작 그걸 못 버티고, 또 나를 혼자 내버려 뒀어?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진이 석주의 몸을 마구 더듬었다. 손 가득 석주의 피가 묻어났다.

석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아직도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맞닿아 있는 제 몸이 다 타는 것 같았다. 제게서 흘러 나간 피와 석주의 피가 한데 모여 바닥을 적셨다.

“…….”

아진이 손끝으로 바닥에 낭자한 자신의 피와 석주의 피를 흩트렸다. 피가 엉기고, 뒤섞였다.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질척하게 섞였다. 뜨거운 피와 차가운 피가 만나니 그 온도가 미적지근해졌다. 그러다 완전히 차게 식었다.

그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죽었구나, 당신.

치미는 상실감에 몸이 서늘해졌다. 뭘 가져 본 적 없는 삶이었던 터라 뭘 잃은 적도 없는데. 석주의 죽음은 또렷한 상실로 다가왔다.

아진이 영혼이 떠난 석주를 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움직일 때마다 눈물이 툭툭 무겁게 떨어졌다. 그러나 그 눈물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호흡이 느려졌다. 콸콸 쏟아져 나가던 피도 느릿해졌다. 빛과 공기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게 눈에 보였다.

“하아…….”

아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데도 입과 코를 통해 연기 같은 무언가가 시시각각 흘러 나갔다. 그럴수록 몸이 무거워졌다. 마치 물에 젖은 것처럼. 신기한 감각이었다.

아진은 그렇게 천천히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마냥 상상하고 가늠해 온 죽음은 무섭고 아픈 거였는데. 정작 그때가 오니 묘하게 편안했다. 이 고통도, 아픔도 다 끝이겠구나 싶어 후련하기까지 했다.

두렵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도 상관없었다. 저보다 십수 초를 앞서간 석주의 흔적을 따라가면 될 테니까.

아진이 석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눈을 감는데.

“형님! 형님!”

“석주 형님!”

조직원들이 석주를 아진에게서 떼어 내려 했다. 아진이 눈을 홉떴다.

안 돼. 내 거야. 내 거야.

아진이 석주의 팔뚝을 꽉 움켜쥐었다. 허나 죽어 가는 몸은, 몇 개 모자란 손가락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끝내 석주가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아진의 눈앞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잠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이게 뭘까, 고민하던 아진은 어렵지 않게 어둠의 정체를 깨달았다.

죽음이었다.

* * *

아진은 파란 어둠 속을 부유했다. 시간도 흐르지 않고, 감정도 흐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이었다. 귀가 먹먹하고, 어렴풋이 짠맛이 났다. 꼭 심해에 있는 것 같았다.

편안한 심해였다. 이따금 묵직한 물결이 몸을 쓸고 갔는데 그 속에 갇혀 출렁이는 기분이 안온하고 황홀했다.

아진은 한참 동안 느리게 출렁이다 깨달았다. 자신이 파도가 됐다는 걸.

신나게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불완전한 다리로는 엄두도 못 내던 세상을 다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쨍한 섬광과 맞닥트렸다. 그러잖아도 빛이 그리웠던 참이었다. 아진은 그것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섬광을 머금은 몸뚱이가 노르스름한 금빛이 되어 빛났다.

* * *

시시시식-

무언가가 새는 소리가 났다. 주전자 물이 팔팔 끓을 때 수증기가 흘러 나가는 소리와 비슷했다.

한참 그 소리를 듣던 아진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왜 눈을 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설마 제가…… 살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은 분명 죽음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한 죽음이었다.

근데 어떻게 눈을 떴나. 혹 이곳이 천당인가. 어쩌면 용궁일 수도 있겠구나. 또 어쩌면 지옥일 수도 있겠지.

말간 천장을 올려다보던 아진이 주위로 시선을 옮겼다. 제가 천당에 왔는지 지옥에 왔는지 궁금해서. 또 말로만 듣던 사후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근데 어째…… 영 괴상한 환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당이라 하면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나다니고, 이름 모를 진귀한 과일들이 사방에 주렁주렁 열려 있을 줄 알았는데. 이곳은 마치 병원 같았다. 정확히는 비싸 보이는 병실.

시시식, 하고 하얀 연기를 내뿜는 괴상한 물건이 있고, 침대가 있고, 소파가 있고, 정체 모를 커다란 검은 판자가 있고, 두툼한 커튼이 쳐진 창문도 있고, 알코올 냄새가 나고, 링거도 있는…….

링거?

넋 놓고 있던 아진이 뒤늦게 자신의 손등에 매달린 링거를 발견했다. 그쯤 되자 이곳이 사후 세계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병원인가?

그렇다면 제가 산 건가?

총을 맞고도 살았다고?

……그럼 석주는? 그 사람도 살았나? 아니면 저만?

아진이 일어나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그러다 손바닥으로 침대를 짚었는데. 어째 손가락이 온전했다. 그러니까 다섯 손가락이 다 있었단 말이다.

아진이 다급하게 이불을 들치고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곧은 손가락 열 개가 눈에 들어왔다. 손톱도 가지런하고, 흉터 하나 없이 보드라운 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꿈이었나.”

순철의 죽음도, 기헌의 습격도, 손가락이 잘린 것도, 낭자하던 총소리도, 석주의 죽음도 다 꿈이었나? 제가 긴 꿈이라도 꾼 건가. 근데 병원은 어떻게 왔지.

아진이 넋 놓고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온전히 붙어 있는 손가락이 어색했다. 옷차림도 그랬다. 아진은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돌돌 말려서 협탁에 놓여 있었고, 값비싸 보이는 손목시계도 곁에 있었다.

이런 건 꽃님의 장례식 이후로 입은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런 게…….

아진이 콧잔등을 찡긋거리는데. 드르륵, 병실 문이 열렸다. 아진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검사 결과는 딱히 뭐가 나온 게 없답니다. 장 원장은 사장님께서 근래 과로하신 게 아니냐고 하던데, 아시다시피……. 예. 어제도 회사에 두 시간 겨우 계셨거든요. 아뇨, 잠은 잘 못 주무셨습니다. 열대야라 에어컨을 틀어도 덥다고 투정을 많이 부리셨어요. 근데 아무리 잠을 못 잤대도 이렇게 쓰러지신 적이 없었는데……. 아, 곧 도착하세요? 그럼 그때 다시 말씀드리겠-”

덩치 좋은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늘씬한 다리가 보기 좋게 쭉 뻗은 남자였다. 손에는 네모나고 작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다 대고 말을 했다. 꼭 통화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아진이 헛숨을 삼켰다.

익숙한 얼굴이다. 죽기 직전까지도 보고 있던 얼굴이었다.

석주. 정장을 입고 있는 석주. 살아 있는 석주. 멀쩡한 석주. 그 역시 놀란 건지 짙은 눈썹이 아치형을 그리며 위로 올라갔다.

“예, 이따 뵙겠습니다.”

다급하게 통화를 끝낸 그가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아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석주가 아진을 불렀다.

“……사장님?”

아진도 석주를 불렀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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