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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가 기헌을 향해 총을 겨누며 욕설을 짓씹었다.
“이, 씨발 새끼…….”
따지고 보면 저나 기헌이나 아진에겐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똑같이 개새끼이고, 똑같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쓰레기인데. 주제도 모르고 분노하는 제가 우습다만, 그래도 어쩌겠나. 화염처럼 시뻘건 분노를 어딘가에는 표출해야 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어금니를 아득 씹은 석주가 방아쇠에 걸린 검지를 안으로 당기려는데.
“쏘게? 그럼 나도 쏴야지.”
기헌이 씩 웃으며 아진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었다. 이미 석주가 방에 들어설 때부터 아진을 향해 있던 총구였다. 석주가 들어오자마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대비한 것이다.
“…….”
석주의 총구가 휘청거렸다. 상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상상됐다. 기헌의 손에서 발사된 총알. 그 총알에 머리가 꿰뚫린 아진. 피를 흘리며 죽는 아진. 죽어 버린 아진. 그의 몸을 부여잡고 우짖는 저. 쏟아지는 절망. 차오르는 어둠. 그런 거.
시시각각 일그러지는 석주의 만면에, 기헌이 보란 듯이 총구로 아진의 관자놀이를 쿡쿡 쳐 댔다.
“참, 사랑이라는 게 얄궂어. 그렇지, 강 사장?”
“…….”
“혼자 오란다고 진짜 혼자 오고.”
석주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단조로운 목소리를 연기했다.
“곧 식구들이 올 거야. 내 말을 그렇게 잘 듣는 애들이 아니어서. 그럼 너는 죽어. 네 하나 남은 팔이랑 두 다리까지 전부 잘라 낼 거야.”
그 말에 기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기도 했다.
“괜찮아. 죽든 살든 상관없어. 그냥 강 사장 괴롭히러 온 거라서.”
“…….”
“팔 하나 없는 병신으로 산 게 고작 몇 달인데. 사는 게 영 별로더라고. 남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
“씨발, 오죽하면 가족들 얼굴도 못 보러 갔어. 기겁할까 봐. 이 꼴로 나타날 바에는 죽은 사람이 낫지. 안 그래?”
기헌이 자신의 꼴을 좀 보라며 오른쪽 어깨를 털었다. 알맹이 없는 셔츠가 펄럭거렸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더라고. 그래서 뒤지기 전에 강 사장이나 대차게 괴롭혀 주려고.”
“…….”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아주 잘 괴롭히고 있는 것 같네.”
기헌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누런 치아가 드러났다. 전등에 비치는 그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검고, 동공은 바둑알처럼 컸다.
석주가 숨을 짧게 끊어 마셨다. 약을 했구나. 꼴을 보아하니 많은 양을 된통 빤 듯싶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약은 사람에게서 겁과 두려움을 앗아 가니까. 실로 여기서 석주가 그의 팔과 다리를 생으로 뜯어낸다 한들, 기헌은 키득키득 웃으며 아진의 머리에 겨누어진 방아쇠를 당길 터였다.
석주가 기헌을 노려보며 틈을 찾는데. 기헌이 아진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그의 팔목을 번쩍 들었다. 아진이 쥐고 있던 천이 스르륵 풀리며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이 드러났다.
석주가 참담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것 봐, 강 사장.”
“……만지지 마.”
“기분이 어때. 내가 잘랐어. 슥삭슥삭. 강 사장이 내 팔 자를 때처럼 슥삭슥삭.”
“만지지 말라고, 개새끼야.”
석주가 총을 까딱이듯 가볍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방아쇠를 당겼는데, 탕! 소리와 함께 기헌의 옆에서 웃고 있던 창두의 이마에 검붉은 구멍이 생겨났다. 창두의 눈알이 빙그르르 제각각 나돌더니 그대로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살집이 많은 탓에 바닥이 찌르르 진동했다.
기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석주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석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총구를 기헌에게로 옮겨 갔다.
“다음은 네 대가리야. 손 떼.”
“…….”
기헌이 눈을 끔뻑끔뻑 빠르게 깜빡였다. 막 눈꺼풀이 처음 생긴 붕어 같은 얼굴이었다. 잠시 무언갈 생각하던 그가 아진의 손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애가 어찌나 울고불고하던지. 그래서 내가 알려 줬어. 다 강 사장 때문이라고. 이 꼴을 당하는 건 다 강 사장 때문이라고. 조금 있으면 목도 잘릴 건데, 그것도 강 사장 때문이라고 알려 줬지.”
“…….”
“아가. 저기 봐 봐. 강 사장 왔네.”
기헌이 총으로 아진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나 아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통과 공포에 침몰하여 넋을 놓은 상태였다. 그에 쯧, 혀를 찬 기헌이 총구로 아진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세심히 각도를 조절해 그의 눈동자에 석주가 맺히게 했다.
흐리게 풀려 있던 아진의 눈에 움직임이 생겼다. 그가 터진 입술을 느리게 달싹였다.
“……사장님.”
목소리가 쉬었다.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목구멍이 다 헤졌다. 목이 따끔따끔한 것 같긴 한데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아픈 곳이 너무 많아서. 손실된 신체의 허전함이 더 커서.
아진이 석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우직하니 서 있는 석주는 오늘도 변함없이 단단하고 강해 보였다. 어깨에 총을 맞아 왼손 손가락을 타고 피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기헌을 향해 겨눈 총구도 강직했다.
그래, 이건 저런 사람들의 싸움이다.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들. 이틀 테면 기헌과 석주 같은 이들.
아진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석주가 오기 전, 제 손가락을 자른 기헌이 그것을 신문지에 둘둘 싸매며 한 말이 떠올랐다.
‘넌 어쩌다 강 사장 같은 인간이랑 엮였냐.’
‘…….’
‘집 나왔다기에 둘이 연이 끊어졌나, 했더니. 강 사장이 밤마다 네 집 앞에 가더라고?’
‘…….’
‘안 그랬으면 네가 이렇게 험한 꼴을 봤을 리도 없었을 텐데. 나라고 사내새끼 같지도 않은 너한테 해코지하고 싶었을까.’
‘…….’
‘이게 다 강 사장 때문이야. 강 사장.’
당시에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았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석주가 오길 기다리면서 시간에 공백이 생겼는데, 그때 이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골몰해 보았다.
제가 왜 손가락이 잘려야 하나. 제가 왜 짐승처럼 얻어맞아야 하나. 얼마나 더 아파야 하고, 얼마나 더 울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혹. 열 살. 차에 치였을 때. 그때 죽었어야 하는 운명인가. 그도 아니면 태회파가 도박장에 들이닥쳐 도륙을 일삼았을 때 죽었어야 했나. 아니면 석주에게 오해를 받았을 때? 손목을 그었을 때? 그도 아니면 꽃님이 죽었을 때?
세상이, 신이 제게 죽음을 명했는데 제가 눈치 없이 꾸역꾸역 살아 있는 것인가.
아, 꽃님의 말을 들을걸.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머리를 잘라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그때 병원에서, 그녀의 말마따나 석주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헤어졌어야 했는데.
늦게나마 나왔을 때 그를 끊어 냈어야 했는데.
그의 안위를 궁금해하지 말걸. 그의 전화를 받아 주지 말걸.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지 말걸.
저는 사랑받을 팔자도, 행복해질 팔자도 아니었는데. 그냥 비루하고 삭막하게 살아갔어야 했는데. 그럼 웃을 일이 없을지언정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순철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일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다 억울해졌다.
왜. 어째서. 남들은 다 갖는 행복을, 사랑을, 사람을 나는 하나도 가질 수가 없어. 왜. 나는 무엇 하나 쥘 수가 없냐고.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봐도 제가 잘못한 것은 없다. 저는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매 순간, 매시간 신의 앞에서 부끄러울 만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러니……
이건 다 석주 탓이다.
모두 석주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잘못은 하나도 없다.
아진의 눈동자가 바닥으로, 지하로,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터진 입술을 천천히 달싹였다.
“석주 형.”
석주의 귓바퀴가 움찔거렸다. 아진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은 항상 감동적이고, 감사하고, 기뻤는데. 지금은 울음이 터져 나올 만큼 아프고 슬펐다.
아진이 구겨지는 석주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형, 저 죽기 싫어요.”
“……아진아.”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
아진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이내 눈가도 뭉그러지고, 묵직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픈 거, 흐으, 싫어…….”
아진이 어깨를 웅크리며 고개를 고꾸라트렸다.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얻어맞은 얼굴도 아팠다. 여기까지 마구잡이로 끌려오며 긁히고 찢어진 발바닥도 아팠다. 차 사고로 무릎이 다쳤을 때보다, 석주에게 짓밟혔을 때보다 곱절에 곱절은 더 아프고 무서웠다.
“아진아…….”
석주가 저도 모르게 아진을 향해 한 발 다가갔다. 기헌의 끄나풀들이 방아쇠를 더 바짝 쥐었다. 손끝만 까딱하면 석주의 몸에 총구멍이 동시에 세 개나 생길 터였다.
그때. 타닥, 타닥. 탁탁탁탁.
복도 끝에서부터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누구의 인기척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석주의 눈매에 힘이 들어갔다. 기헌도 눈을 부릅뜨고 석주를 쳐다봤다. 어깨를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가 끄나풀들에게 소리쳤다.
“야! 바깥에 누구 오잖아!”
끄나풀들이 허둥지둥 문과 석주와 기헌을 번갈아 봤다. 총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부꼈다. 그때. 석주의 안광이 날카로이 번뜩였다. 위협을 느낀 기헌이 본능적으로 아진을 향해 있던 총구를 석주에게로 옮겼다.
그 순간.
석주가 손에서 총을 놓았다.
묵직한 권총이 느리게 추락했다. 예상 밖의 상황에 기헌이 눈썹을 올림과 동시에 벌컥- 문이 열렸다.
“형님!”
“석주 형님!”
명진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명진은 상황을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가까이에 있던 끄나풀에게 곧장 총을 쏘았다. 끄나풀들도 총을 쐈다.
타당, 탕! 탕! 총소리가 난무하는 그 순간. 석주가 아진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총성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피가 튀었다. “억…….” 누군가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기헌의 배에도 총알이 박혔다. 또 하나의 총알은 기헌의 뺨을 꿰뚫었다.
“이 씨발…….”
볼에 시커먼 구멍이 난 기헌이 피와 욕설을 함께 토해 냈다. 그리고 바닥으로 쓰러지며, 아진을 향해 총을 쏘았다. 빠르게 뻗어 나간 총알이 아진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검은 인영이 아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탕, 탕! 탕탕탕!
기헌은 아랑곳하지 않고 총알 다섯 발을 모두 한곳을 향해 쏘았다. 그의 가슴에도 조직원들이 쏜 총알이 푸북 푹 박혔으나, 기헌은 마약에 얼큰히 취한 몸뚱이답게 눈알을 부릅뜨고 살아 있었다.
그리고 탕! 마지막 한 발 역시 같은 곳을 향해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