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모래성
아진은 석주의 방을 닦고 있었다. 원체 방을 더럽게 쓰지 않는 그라 딱히 청소할 게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 쓸고 닦았다. 어차피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는 일이라서 상관없었다.
방을 환기하고, 문틀이나 서랍 위에 앉은 꽃가루를 닦아 내고, 이불을 마당에 탁탁 턴다. 석주의 이불은 그가 덮는 만큼 그 크기가 일반 이불의 곱절이었는데, 그래서 한 번 털 때마다 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진이 이불을 둘둘 싸매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무겁고 커다란 이불에 잡아먹힌 듯한 행색이었다.
아진은 용케 넘어지지 않고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손등으로 이곳저곳을 탁탁 두드려 주름을 펴곤 곱게 접었다. 그것을 농에 넣고 나자 힘이 탁 풀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물이나 좀 마실까.
아진이 서재에 있는 물병을 향해 다가가는데. 발바닥이 따끔따끔했다. 꼭 가시에 찔린 것처럼. 책상을 짚고 선 아진이 발을 뒤집어 봤다. 그러나 가시나 뾰족한 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발을 훌훌 털어 낸 아진은 물을 마시고, 책장을 눈으로 훑었다. 오늘은 뭘 읽을까, 고민하면서.
근데 또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아진은 바닥에 발을 슥슥 문대며 그 통각을 무시했다. 애당초 미간을 구길 만큼 통렬한 통각이 아니어서.
허나 그것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졌다. 책 한 권을 읽고, 씻고, 점심을 먹는 내내 발바닥에 자신이 붙어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쯤엔 아진의 미간에도 흉한 주름이 생겨났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아진이 발바닥을 뒤집었다. 허리를 한껏 숙이고, 눈을 부릅뜨고 발을 살폈다. 허나 가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작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가 모른 체하는 게 얄미워 아예 발 속까지 파고든 건지…….
“하아…….”
아진이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가시가 발에 박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돌바닥이었던 도박장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지만, 석주의 집은 한옥이고 대부분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마루를 닦거나 걷거나 하다 보면 이따금 나무에서 일어난 잔 파편들이 발바닥을 찌르곤 했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면 꽃님이 가자미눈을 하고 빼 주곤 했는데. 지금은 혼자 해결해야 했다.
“어른은 이런 거로 안 울어. 어른은 이런 거로 짜증 안 내.”
천장을 보며 후우, 후우 심호흡한 아진이 가시를 찾아 다시 눈을 홉떴다. 그러다 엄지발가락 아래, 점처럼 박혀 있는 가시를 발견했다.
아진은 발바닥을 누르고, 때리고, 꼬집고, 몸을 비틀며 그것을 꺼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가시는 쉽게 나와 주지 않았다. 아주 콱 박혀 옴짝달싹하지 않으며 아진을 조롱했다.
숨까지 참고 있던 아진은 끝내 가시를 빼내지 못하고 바닥에 철퍼덕 널브러졌다. 같잖은 것과 기를 쓰며 실랑이를 했더니 진이 다 빠졌다. 죄 없이 괴롭힘당한 발도 지끈거렸다. 그가 주먹으로 쿵쿵 바닥을 때렸다.
“짜증 나……. 진짜, 너무 짜증 나…….”
별것도 아닌 게. 하찮은 게.
아진이 푸드덕푸드덕 사지를 퍼덕거렸다. 그러다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석주의 방을 훑어보았다. 가시를 빼낼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찾는 거였다.
근데 되려 다른 가시가 비죽비죽 고개를 쳐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욕실 앞 구석, 말뚝이 박혀 있던 자리였다. 족쇄가 엉켜 있던 그 말뚝 말이다. 지금은 말뚝이 빠지고, 같잖지도 않은 화분이 그 흔적을 가리고 서 있었다.
다음으로는 텅 빈 벽이 눈에 들어왔다. 넘실거리는 파도 그림이 걸려 있던 벽이었다. 네모난 그림 자국만 희미하게 남은 벽이 영 허전하고, 슬펐다. 그 그림이 어떻게 죽었는지, 얼마나 처참하게 타 버렸는지 알고 있어서 그랬다.
그다음으로는 제가 엎어져서 울던 소파가 보였고, 동그랗고 하얀 알약을 찾아 뒤적거리던 서재 책상도 보였으며, 악에 받쳐 우짖었던 방구석도 보였고, 제 손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결마다 고이던 마루도 보였다.
“…….”
아진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솟구치던 울분. 쏟아 낸 눈물. 텅 빈 마음. 치미는 원망. 사무치던 억울함. 진득하게 흐르던 피.
그것을 상기하자 아진은 지금 이 순간이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문득, 별안간의, 느닷없는 깨달음이었다.
제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바라는 게 무엇인가. 이 집을 세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거? 먹고 자고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거? 석주가 제게 어디까지 친절할 수 있나 감시하는 거? 그가 또 변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거? 이 괴상한 평화가 깨질까 전전긍긍하는 거?
한동안 멍하니 있던 아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깊숙이 박혀 있던 가시가 빼꼼 꼬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집어 당기자 쑤욱 손쉽게 빠져나왔다. 그간 애쓴 게 허탈할 정도로 쉽게.
따끔거리던 통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
그 가시를 물끄러미 보던 아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가시를 툭 내던졌다.
그런데도 발바닥이 따끔따끔했다.
* * *
석주는 오늘도 일찍 퇴근했다. 또 이것저것 사 온 두 손이 무거웠다. 그가 사 온 것들을 아진의 앞에 펼쳤다. 먹을 것은 물론, 뽀얀 운동화도 있었다.
그것을 본 아진이 설핏 웃음을 흘렸다. 어쩜 하필 저걸 사 왔나. 이걸 때가 맞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엇갈렸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진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석주를 불렀다.
“사장님.”
“응?”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뭔데?”
운동화를 내려놓은 석주가 아진을 쳐다봤다. 그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좋아한다거나, 앞으로도 함께하자거나, 그런 과분한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진이 제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걸 기대하는 거였다. 뭐가 먹고 싶다, 필요하다, 그런 거. 석주는 아진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즐거웠다.
근데. 아진의 입에서 나온 부탁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저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
석주의 입이 딱 다물렸다. 순간, 세상이 까맣게 죽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태양이 죽고, 땅이 꺼지고, 아득한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상상한 적 있었다. 훗날 아진이 떠나겠다고 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나. 그가 원한다면 놔주기로 했으니, 그러기로 꽃님과 약속했으니 그를 보내 주어야 하는데. 제가 과연 그걸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렇게 걱정만 했다. 결론은 내지 못했다.
그냥 그날이 오지 않기만을 빌었다. 안일한 대처였으나 석주 딴에는 최선이었다. 제 곁을 떠나는 아진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져서 생각의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었다.
근데 끝내 그날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석주의 세상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석주의 아랫입술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검은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가…… 겠다면, 어디로…….”
“어디로든요. 서울이든 다른 지역이든, 그냥 어디든…….”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뜻이네.”
석주가 암울하게 읊조렸다. 그에 아진이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푹 고꾸라트렸다.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네가…… 죄송할 건 없지.”
석주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진의 잘못이 무어가 있나. 괜히 그가 느껴도 되지 않을 감정을 느끼게 한 것 같아 송구스러웠다.
석주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벅벅 마른세수도 했다. 그러다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며 아진을 바라봤다.
“언제, 언제 나가고 싶은데?”
“어……. 준비되는 대로……. 짐이 얼마 없어서 쌀 것도 없긴 한데, 그래도 이것저것, 네. 아, 살 집도 알아봐야 하고, 뭐, 음……. 네.”
아진이 더듬더듬 말했다. 당장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정작 그에 필요한 대책은 전혀 세워 놓질 않았다. 아, 좀 생각하고 말할걸. 준비할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당연히 석주가 해 줄 거라 생각이라도 한 건가. 멍청하긴. 저를 뭐라고 생각하려나.
아진이 부끄러움에 자신의 뺨을 긁었다.
그러나 석주는 그런 것까지 생각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져서 아진의 목소리도 탁하게 들릴 정도였다. 한동안 혼란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던 그가 정신을 다잡았다.
“집은…… 내가 구해 주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아니요, 괜찮아요. 번거롭게-”
“내가 하고 싶어. 꼭. 네가 지낼 곳이잖아.”
“…….”
아진은 거절하고 싶었다. 그게 도리에 맞았다.
……아니지. 받아도 되지 않나. 석주는 제게 빚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제 와 그의 호의를, 속죄를 거절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호화로운 삼시 세끼도, 꽃님의 장례식도, 그 밖의 크고 작은 것들도.
잠시 고민하던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절며 집을 구하고, 낯선 이들과 만나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고, 큰돈을 치를 자신이 없었다.
석주가 덩달아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번잡한 시내 쪽 말고, 주택가로 알아볼게. 요즘은 주택가 주변에 장도 들어서고, 가게도 있고 그래서 멀리 안 나가도 될 거야. 시내만큼 차가 많지도 않고.”
“……네.”
“한옥보다는 양옥이 혼자 지내기 편하겠지?”
“어…… 잘 모르겠어요…….”
“완전 양옥은 아니고, 우리나라식으로 바꿔 지은 거니까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거야.”
“네. 그래도…… 너무 넓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씀하신 대로 혼자…… 지낼 집이니까.”
“그래.”
아진이 입을 다물었다. 석주도 그랬다.
“…….”
“…….”
묵직한 적막이 흘렀다. 아진의 어색함과 석주의 절망으로부터 비롯된 적막이었다. 아진이 어쩔 줄 모르고 석주가 사 온 운동화 뒤축을 긁어 대는데. 눈을 꾹 감았다가 뜬 석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갑자기 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지 물어봐도 돼?”
“네?”
“혹시 내가 최근에 뭘 잘못했거나, 실수했거나, 네 기분이 나쁠 만한-”
“아니요. 아니에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냥…….”
“……그냥?”
“네. 그냥.”
“아……. 그냥…….”
석주가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 얼굴이 몹시 슬퍼 보였다. 아진이 어쭙잖게 둘러댄 말을 ‘너는 내가 그냥 싫구나.’ 정도로 이해한 것 같았다. 석주의 만면에 시시각각 슬픔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