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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피-143화 (143/261)
  • 143화

    집 분위기가 이상했다. 묘하게 적막하고, 가라앉아 있었다. 아진은 방문을 꼭꼭 닫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이상하다 느낀 건 종소리가 이틀째 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석주가 퇴근할 때마다 울리던 그 종소리 말이다.

    석주가 집에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드문 일이었다. 그래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어서 바쁜가, 또 일이 터졌나, 일을 바쁘게 하는 거 보니 몸이 괜찮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늦은 밤. 조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방에 묵는 조직원들은 때때로 마루에 나와 담배를 태웠는데 그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석주 형님은 아직이가?”

    “어-어어, 아까 일어나셨다 카긴 카던데 뭐 문제가 있나. 아직 집에 안 오시네.”

    “우리도 가 봐야 되는 거 아이가?”

    “집 지키라 안 하시나. 명지이 형님이랑 아들 가 있으니까 괜찮을 끼라.”

    “아니, 우째 잠을 얼마나 못 주무셨으면 형님 같은 사람이 쓰러지시노, 쓰러지시기를.”

    “천하장사도 잠은 못 이긴다 안 카드나. 내 참, 공장 관련해서 보고 드리러 갔는데 석주 형님이 쓰러지셔가 얼매나 놀랐는지……. 마 집 기둥이 쓰러지는 것 같더라.”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듣기만 해도 무섭데이. 별일 없어야 될 낀데…….”

    “잠 못 자가 생긴 병이니 잠자면 안 낫겠나.”

    “못 자니까 문제 아이가. 잠자게 해 주는 약도 있다 카던데. 그건 별론가?”

    “이미 졸라게 드셨다던데. 와, 꽃님이 아지매 약 타러 병원 갈 때. 그때마다 명지이 형님이 석주 형님 약도 받아 왔단다. 근데도 영 못 주무셨다 카더라고.”

    “아이고……. 그래도 예전엔 약이나 술 같은 거 하시면서 앵간히 주무시는 것 같더니. 요즘은 그것도 안 하시네.”

    “명지이 형님이 석주 형님 약 하는 거 억-수로 싫어한다 아이가. 그래도 잠잘라면 좀 해도 되지 않나…….”

    “글케……. 아효, 씨발 한숨 쉬다가 토하겠다, 마.”

    짧은 대화였지만 아진은 석주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잤구나. 잠을 못 자서 그랬구나. 그날 흘린 코피도 그 때문이었구나. 그 커다란 사람이 쓰러졌다니. 대체 얼마나 미련하게 잠을 안 잤으면. 저야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넋을 놓고 있으니 조금 덜 자도 무리가 없지만. 석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휴식이 필수란 말이다.

    그렇다고 잠을 못 자는 게 어디 그의 탓인가. 아진은 그를 오랫동안 봐 왔다. 석주는 정말 잠을 자고 싶어 하지만, 못 자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괴로워했고. 근데 얼마 전 그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자고자 하는 욕망을 버린 지 오래라. 이제 밤에 눈 뜨고 있는 게 익숙해.’

    ‘안 자는 게 좋은 점도 있어. 그 덕에 널 오래 생각할 수 있거든.’

    그 말을 말미암으면, 이제는 자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그 대화를 나누었던 게 언제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지 않았다는 건가.

    아진이 엄지를 잘근잘근 씹었다. 흩어지던 정신이 석주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저녁, 종소리가 울렸다. 석주가 돌아왔음을 나타내는 소리였다. 책을 주물럭거리던 아진이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건가. 잠은 좀 잤나. 이젠 괜찮나. 마음 같아선 벌컥 문을 열고 나가 그를 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자존심도 상하고, 그럴 관계가 아니기도 하고, 괜히 민망하기도 해서 참아 냈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가 집으로 돌아왔으니 한시름 놓겠다, 싶었다. 병원에서 조금이나마 잤겠지. 의사가 뭐든 해 줬겠지. 그리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는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진은 웬일로 직접 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르겠다. 누굴 기다렸나, 아니면 무언가를 기대했나.

    문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저녁 밥상을 든 종과,

    “아진아. 내다.”

    명진이었다.

    “고기 함 무바라. 석주 형님이 오는 길에 니 먹인다고 굳이 굳이 시장에 들러가 좋은 거로 골라 산 거데이.”

    “…….”

    명진의 말에 아진이 머뭇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수북이 쌓인 고기는 보기에도 야들야들해 보였다. 아진은 개중 가장 작은 조각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는 맛이 좋았다. 근데 입 안이 껄끄러웠다.

    불편해서 그랬다. 명진은 이 집에서 몇 안 되는 편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단둘이 밥상 앞에 앉은 건 처음이라 매우 불편했다.

    방문 앞에 서 있던 명진은 들어가도 되냐, 묻더니 아진이 답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들어왔다. 꼭 침략 같은 몸짓이었다. 그러더니 밥상 앞에 철퍼덕 앉아서 아진이 밥알 세는 걸 구경했다.

    참다못한 아진이 입을 뗐다.

    “왜…… 오셨어요?”

    제가 밥을 얼마나 속 터지게 먹는지 구경하러 온 건 아닐 거고.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감시하러 왔나. 석주의 명령으로. 그게 가장 그럴싸했다.

    아진이 젓가락 끝으로 고기를 쿡쿡 찌르며 답을 기다리는데. 명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쟁 현황을 보고하는 장군 같은 얼굴로 몹시 진지하게 아진을 불렀다.

    “아진아.”

    “네.”

    “형님 좀 살리도.”

    챙그랑. 아진이 젓가락 한쪽을 떨어트렸다. 부러 그런 건 아니고, 하필 그때 쇠젓가락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아진이 널브러진 젓가락을 모아 밥그릇 옆에 곱게 포개 놓았다. 아무래도 밥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았다.

    “…….”

    “…….”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아진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가 풀길 반복하는데. 돌연 명진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진이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명진이 그런 아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진아. 진짜, 미안하다. 미안해.”

    “…….”

    “내가 니를 아끼지만, 그래도 어쨌기나 내한테는 형님이 제일 중요한 기라. 내한테는 형님이 아버지고, 형이고, 가족이고 그렇다. 네가 꽃님이 아지매 아꼈던 것처럼. 뭔 말인지 알재?”

    “…….”

    “그래서 말인데…….”

    명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형님 방에 있어 주면 안 되겠나. 염치없는 거 알지만 딱- 하루라도, 응? 하루라도 어떻게 안 되겠나.”

    “…….”

    “형님이 지금 잠을 못 잔 게 며칠짼지 샐 수도 없다. 아예 누울 생각조차 안 하신다. 이불도 펴시질 않아.”

    “…….”

    명진이 푸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더 깊게 늘어트렸다. 바닥을 움켜쥐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손가락 몇 개가 없이 민둥민둥한 손이 서글플 정도로 간절했다.

    “사실 형님이 잠 못 주무시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이거든? 아진이 니 만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잘 주무셨지, 그전에도 원래 잠은 잘 못 주무셨어.”

    “…….”

    “그캐도 내가 지금처럼 겁이 나진 않았다. 틈틈이 눈도 붙이시고, 자 볼라고 노력은 하셨으니까. 어떻게 되실까 봐 겁나지는 않았단 말이다.”

    “…….”

    “근데…….”

    “…….”

    “근데 지금의 형님은…… 꼭 어떻게 되기를 기다리는 분 같다.”

    “…….”

    “그래서 무섭데이. 억수로 무섭데이…….”

    명진이 입술을 덜덜 떨었다. 그의 눈알이 시뻘겠다. 진심으로 석주가 어떻게 될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

    아진은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데. 미쳤어요? 썩 꺼지세요. 염치도 없지, 하고 명진을 쫓아내야 하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설마 사람이 잠 좀 못 잤다고 죽기야 하겠냐며 웃겠지만. 직접 보지 않았나. 석주가. 그 커다랗고 단단한 사내가 코피를 흘리는 걸. 거기다 쓰러지기까지 했다니.

    아무리 석주가 밉고 원망스럽다지만, 죽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아니, 이전엔 그냥 콱 뒤졌으면 좋겠다, 까지 생각했던 것 같은데. 꽃님이 없는 지금. 이 세상에 저를 사랑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지금.

    석주는 죽으면 안 됐다.

    그렇게 볼품없는 죽음으로 저를 버리면 안 됐다.

    아진이 마른세수를 했다. 입을 뗐다가 다물길 반복하던 그가 한숨처럼 말했다.

    “생각을 좀…… 해 볼게요.”

    “……그래.”

    명진이 그거라도 어디냐는 듯, 그거면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났다.

    “밥 마저 무라. 내 있으면 불편할 테니까 나가 볼게.”

    옷매무시를 대충 정리한 그가 성큼성큼 방문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잠깐 아진과 눈을 맞추더니 큰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

    아진이 닫힌 문을 쳐다보다, 밥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처럼 쌓인 고기는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에 꽉 차 있었다.

    코피도 콸콸 쏟고, 쓰러져서 병원에 있었다는 사람이. 그 와중에 또 고기를 사 왔단다.

    “짜증 나게…….”

    아진이 발로 밥상을 탁 밀어 찼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그릇들이 차르르, 하며 일제히 경련했다.

    * * *

    자정이 가까워지는 밤. 아진은 석주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반들반들한 문을 응시하던 그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 똑똑. 문을 두드렸다.

    짧은 정적 후, “들어와.” 하는 석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탁하고 먼 것으로 보아 또 서재에 앉아 있는 듯했다.

    심호흡한 아진이 달칵 문을 열었다. 불편한 걸음걸이로 두 발 정도 걷자 끼이익, 하며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아진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석주가 아진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에 아진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어…….”

    예의 바른 인사에 석주가 저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진이 왜 저러는 건지 전혀 가늠이 안 되어서. 어울리지 않게 어영부영하던 그가 책상을 돌아 나왔다. 그리고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아진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지극한 관심이 담긴 물음에 아진이 그를 올려다봤다.

    “저…….”

    “응.”

    “자러 왔어요.”

    난데없는 말에 석주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러다 몇 박자 늦게 되물었다.

    “……뭐?”

    어쩐지 바보 같은 석주에 아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구슬 같은 군청색 눈동자로 석주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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